[1]⑵만물의 생성원리|******@불교의생명관@

2017. 5. 6. 17:19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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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萬物의 生成原理

佛敎와 自然科學 / 朴淳達·吳亨根·曺勇吉·金成九 共著 集文堂 1992. 8. 30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물질은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
태양보다 더 큰 항성(恒星)에서부터 지구는 물론 티끌보다 작은 미진(微塵)에 이르기까지 형(形)도 다르고 자(姿)도 다르며 그들의 성질까지도 완전히 같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여기서 크게 둘로 나누어 형이상자(形而上者)를 도(道)라 하고 형이하자(形以下者)를 기(器)라 할 때, 이 모든 것은 마음이 근본이며 마음의 집착 이전과 집착된 이후의 형성된 것을 도(道)와 기(器)로 나누는 것이다.
도도 도(道)는 형체이상으로서 개개의 성(性)에 대한 본체(本體)로서 불변하는 것을 말하며 기(器)는 개개의 본성이 혼미(昏迷)하여 직접적인 원인(因)과 간접적인 원인(緣)으로 행(行)하여 결과(結果)를 나타낸 모양을 기(器)라 한다.
모든 인간이나 중생(衆生)들의 마음은 하나이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만 몸은 개개의 구성 모양이 다르니, 마음은 도(道)요, 구성된 모양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기(器)라 하는 것이다.
즉 인연결과(因緣結果)에 의한 물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諸行無常)고 하였으니 구성된 모양의 세계나 마음이 집착된 사상(思像)은 변화하여 흐르는 사상(思像)을 낳게 되는 것이므로 이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모양을 가진 미진(微塵)의 세계에서부터 공간의 성군(成群)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것은 없다.
<세계란 작든 크든 움직여 변하는 것이다.>
세계(世界)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으므로 능엄경 제4권에 부처님께서 제자 아난다에게 말씀하신 세계의 정의에 대하여 읽어보자.
「아난다, 무엇을 중생세계(衆生世界)라 하느냐?
<세>는 천류(遷流)요, <계>는 방위(方位)를 말하는 것이니, 너는 마땅히 알아라.
동. 서. 남. 북. 동남. 서남. 동북. 서북. 상. 하는 <계>가 되는 것이고 과거. 현재. 미래는 <세>가 되는 것이니 방위(방위=계)는 십(十)이요, 유수(流數=世:과거.현재.미래)는 
삼(三)이니라.
일체 중생이 망(妄)을 짜서 서로 이루는 것이므로 신중(身中)에 무천(貿遷)하여 세계와 상섭(相涉)하느니라.
계(界)의 성(性)은 비록 시방(十方)이지마는 일정한 방위로 분명한 것은 세간(世間)에서 동. 서. 남. 북만 말하니 상(上)과 하(下)는 정위(定位)가 없고 중간(中間)은 정방(定方)이 없느니라…」
방위는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정한 동. 서. 남. 북으로 실제로는 정확한 위치나 방위는 없는 것이다.
동대문도 청량리에서는 서대문이 되기 때문에 계약상 정한 것뿐이다.
몇 천억 이상의 무량겁(無量劫)의 세월 동안 물질이 존재한다고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삶에 대한 생명의 연한(年限)으로 보아 까마득하게 멀리 생각될 뿐이지
본체의 도(道)로 본다면 멀고 가까운 것이 없는 것이다.
불교(佛敎: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형체를 가진 물질의 세계를 크게 넷(4대요소: 地. 水. 火. 風)으로 나누고 더 작게는 108개의 진경(塵境), 즉 원소로 나누는 것이다.
불교의 뜻에서 말했듯이 모든 만물은 마음에서 나왔고 마음은 모든 것에 앞선다고 하였다.
본성(本性)이 혼미하여 원인과 결과를 낳는다고 하였으니, 본성이 혼미함은 곧 망상(妄想)이며 번뇌이니 이 번뇌는 안(眼:눈), 이(耳:귀), 비(鼻:코), 설(舌:혀), 신(身:몸), 의(意:생각) 여섯 기관을 통한 육감(六感)작용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다.
눈눈은 물체(色), 귀는 소리(聲), 코는 향기(냄새:香), 혀는 맛(味), 몸은 촉각(觸), 생각(意)은 이치나 진리(法: 대상의 특질)를 느끼게 하므로 상호 연결되어 6 6은 36이 되고 여기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통한 감각작용인 바, 36 3=108개의 번뇌와 망상으로 물질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라 한다.
도식하면 다음과 같다.
즉 물질세계의 구분은 망상심(妄想心) 번뇌심(煩惱心)에 의하여 생기는 것을 뜻하겠다.
그러므로 물질세계는 망상심과 번뇌심에 따라 변화하며 생성되는 것이다.
생성되는 물질을 크게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으로 나누며 이것을 4대(四大要素)라고 한다.
지(地)는 견고(堅固)한 성품을 가진 것 같아도 항상 견고한 성품을 가진 것이 아니요, 수(水)의 성품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며, 화(火)는 간접적인 원인을 가차(假借)하여 생(生)하는 것이며, 풍(風)은 동요(動搖)하는 것으로 장애가 없는 것이다.
지지(地)는 응집의 결괴(結塊)요, 수(水)는 습기(濕氣)의 연생(緣生)이며, 화(火)는 더운 기(氣)의 발생이며, 풍(風)은 모든 물질의 흐름(動)을 말하는 것이다.
만물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4대(四大)의 인연에 의하여 발생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응집(凝集)과 습기(濕氣)와 열기(熱氣)와 흐름(風氣)의 연생(緣生)은 마음의 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 한다.
만물(萬物)이 지(地). 수(水). 화(火). 풍(風) 4대의 원인으로 발생되고 소산(消散) 되어가는 과정을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을 성(成:이루고). 주(住:머무르고), 괴(壞:흩어지고), 공(空:본질로 들어감)이라 한다.
이 과정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반복 순환하는 것으로 과거의 시간을 장엄겁(莊嚴劫), 현재를 현겁(賢劫), 미래를 성숙겁(星宿劫)이라 하고, 삼겁(三劫)을 통하여 각각 성(成) 20겁, 주(住)20겁, 괴(壞) 20겁, 공(空) 20겁으로 시간의 무한(無限)한 과정에서 이루어지고(生成) 흩어지는(消滅)것을 4등분한 것이다.
물질은 오랜 세월을 두고 순환 변화하지만 인간은 백세 전에 순환상생 변화로 윤회(輪廻)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태양이 흩어지고 지구가 산산조각이나 먼지가 되었다고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물질의 근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성군(星群)이 산산이 흩어져 가루가 된들 허공을 채울 수 없으며 시간이 없어지
는 것이 아니다.
다시 같은 물질의 형성력(形成力), 즉 동류상친(同類相親)하므로 개체가 형성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본체의 세계(가칭)인 마음의 세계는 멸(滅)하고 없어지는 것이 없는 것이다.
한마음이 일어나 집착한다면 모든 물질이건 비물질이건 형(形)과 자(姿)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물주(造物主)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피조물(被造物)도 없는 것이다.
다만 마음만이 조물주이다[一切唯心造].
조물주가 있다면, 그 조물주는 누가 만들었으며 언제부터 있었으며 조물주 이전에는 어떤 조물주가 있었단 말인가?
불교에서는 마음 이외에 조물주 같은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을 명4대(名四大)라 하고 지(持). 섭(攝). 숙(熟). 장(長)을 용4대(用四大)라하며, 견(堅). 습(濕). 난(煖). 동(動)을 성4대(性四大)라 하는 것이다.
땅의 쓰임은 지지(持持)하고 견고한 바탕을 이루는 데 있고, 물의 쓰임은 모든 만물에
스며들며 생명을 이루는 시점으로 포용하고 섭수하는 반면 습하고 차가운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불의 쓰임은 만물을 성숙시키고 따뜻하게 하여 장양(長養)하는 데 있고, 바람의 쓰임은 변화하고 흐르며 운동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 네 가지 지수화풍에 더한 공(空)과 식(識)의 두 가지를 합하여 6대(六大)라고 하며 이 여섯 가지 조화로 만물(萬物)이 생성소멸(生成消滅)하고 형태(形態)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불교에서 보는 천지창조(즉 緣起의 법칙)이며 어느 누구에 의한 창조는 아닌 것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물질만상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천시만상묵무언(天視萬象默無言)이요, 대지회전차부동(大地回轉車不動)이라 했다.
이 뜻은 <하늘의 모든 형상을 보니 말 없이 묵묵하고 대지는 회전하나 움직이는 것같지 않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미 오래 전에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설명한 것이며, 전에 우주의 움직임을 말한 것이며, 지금 지구가 공전 자전하고 있어도 우리의 의식으로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次不動)것이라 했다.
지금 지구는 초속 30km의 빠른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공전) 있으며 적도를 중심으로 하여 초속 약 464km의 빠른 속도로 자전(自轉)하고 있어도 우리의 의식으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과학에서 우주의 성간물질(星間物質) 또는 생성(生成)의 근원(根源)을「에텔」이라 한다.
우리는 별과 별 사이를 진공(眞空)상태로 알고 배워왔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별과 별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 진공상태라면 우주선이나 광선이 전달될 수 없으며 더구나 로켓은 나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우주의 공간물질이 「에텔」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진공묘유(眞空竗有)라 한다.
진공(眞空)이란 아무 것도 없는 공(空)을 말하지만, 여기서 진공 속에 묘한 것이 있다(妙有)고 하였으니 참으로 삼천년 전의 심오한 우주철학이라 아니 볼 수 없다.
진공은 결국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며,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완공(完空)이라 한다.
더구나 심신명(心信銘)에 지동(止動)은 무동(無動)이요, 동지(動止)는 무지(無止)라는 현대의 관성의 법칙까지도 말하고 있다.
즉 「정지한 상태의 움직임은 움직임이 아니요, 움직인 상태에서 정지함은 정지함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좀더 심오한 불교경전(佛經)의 연구가 더욱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참조로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에서는 천지생성(天地生成)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태역(太易), 태시(太始), 태초(太初), 태소(太素)의 네 가지 과정으로 생성한다고 한다.
* 태역(太易)은 기(氣)가 모이기 이전으로 완전한 허공과 같은 상태를 말하고…
-----불교로 대비한다면, 심부동(心不動)의 상태
* 태시(太始)는 만물을 이룰 수 있는 기(氣)가 비로소 유동하며 모이기 시작한 상태…
-----불교로 대비한다면, 심유동(心流動)의 상태
* 태초(太初)는 형태(形態)를 드러내기 시작한 상태를 말한다.
즉 기독교 천지창조의 시작은 여기에 속한다.
"태초에 여호와가 수면에서 운행하시다."한 것은 형태를 드러낸 것을 뜻한다.…
-----불교로 대비한다면, 무명식(無明識)에 해당하는 상태이다.
번뇌망상 삼독(三毒)의 욕망이다.
* 태소(太素)는 질(質)의 시작을 말하는 것으로서 완전한 형태를 갖춘 품질(品質)을 
말하는 것임.… 
-----불교와 대비한다면, 망상심이 집착심(妄想心執着心)으로 불붙어 고정의식
화 되는 것.
또한 역(易l)이 있어 태극(太極)이 나왔고 태극을 바탕으로 음양(陰陽)이 나왔고 음과 양을 바탕으로 만물이 나왔다고 한다.
즉 태극은 근본 본체를 말하는 것으로 일본(一本)이라 한다.
일본만수(一本萬殊)요, 만수일본(萬殊一本)이라 한다.
즉 한 가지 근원이 만 가지 형태를 드러내고 만 가지 형태가 한 가지 근원으로 돌아간
다는 것이다.
불교 화엄경에서는 일즉일체(一卽一切) 다즉일(多卽一)이라고 했다.
즉 하나는 전체에서, 전체는 하나로부터 형성된 것을 의미하니 불교의 유심사상이 새삼 음미되어진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