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차 한잔

2017. 4. 29. 17:5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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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차 한잔

출출한 오후 차 한 잔을 마십니다.
햇볕은 나른하고, 식곤증이 밀려오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진한 차의 향기가 코끝을 스칩니다. 따스한 온기가 입안 가득합니다. 

 찻잔 안에 갈빛의 차가 보일 듯 말 듯 한 수증기를 가볍게 토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특별할 것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있는 듯 없는 듯 만물이 드러나고 있는데, 많은 경우 지금의 여기

가볍게 나고 사라지는 눈앞보다는 생각에 싸여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습니다.

모든 알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분별상이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들은 이렇듯 눈앞의 차 한 잔의 경험보다는

지나버린 과거, 다가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온전한 경험에는 관심이 없고,

생각의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비록 꿈같은 일이지만,

내 앞에 펼쳐진 온전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경험하지 못하고,

너무도 몽상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여러 가지 감정을 몰고 오는

생각의 시간 속에 빠져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됐다거나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을 실제 한다고 여겨 자기도 모르게

사로잡혀 버리는 것이 장애가 될 뿐입니다.

아마 평범한 우리들은 생각 중독자인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주는 판타지에 매료되어 있고, 생각이 가져오는

감정의 파노라마에 취해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생각과 감정의 정체를 잘 몰라 자기도 모르게

빠져드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순간순간 멈춰있지 않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경험의 현장에

깨어있지 못하고, 일어난 생각에 도취되고,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끌려들어 가는 습관에 삶을 맡겨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은 본래 어느 것도 무엇이라고 할 게 없습니다.

과거의 일이 비었고, 미래의 일이 비었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생각이야 해 볼 수 있지만,

그것에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눈앞에서 경험되는 일이야

시시각각 변하여 자연스럽게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않게 되지만,

과거와 미래는 자기도 모르게 그것에 빨려 들어 무엇이 있는 것처럼

사로잡히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은 생각과 느낌에 사로잡히더라도

그것은 바로 내 마음 안에서 인연 따라 펼쳐진 상일뿐입니다.

과거와 미래의 생각 그대로 그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것뿐인 것을 우리가 몸소 깨달아 생각과 감정의 장애에서

자유로워질 일입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하나의 마음이라면

도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도 특정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눈앞에 드러난 찻잔이 도이고, 차의 향기가 도이고,

옅은 수증기의 일렁임이 도이지만, 어떤 모양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양 바깥에 모양 없고 손댈 수 없는 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양 모양에 모양 아닌 것이 한 덩어리로 진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의 진면목은 무엇입니까?
차의 향기가 그윽합니다.


- 몽지릴라밴드에서 / 릴라님


♬타향살이,강남달 / 신카나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