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9. 20:3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안수정등화 비유
바로 안수정등화(岸樹井藤話)입니다. 안수정등화는 빈두로돌라사위우타연왕설법경(賓頭盧突羅 爲優陀延王說法經)이라는 경전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설화를 기본으로 조금씩 변형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으나 기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때] 크고 사나운 코끼리를 만나 쫓기게 되었습니다. 미친 듯이 달렸으나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때마침] 언덕 위에 있는 우물을 발견한 [그는] 곧 [우물 속으로 드리워진] 등나무뿌리를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등나무뿌리를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이빨로 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물의 네 벽에는 네 마리 독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을 물려고 했습니다. 또 이 우물 밑에는 큰 독룡(毒龍)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옆에 있는 네 마리 독사와 아래 있는 독룡이 무서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등나무뿌리는 [뽑힐 듯이] 흔들리고 [그 때]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꿀 세 방울이 그의 입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때 등나무가 움직여 벌집을 무너뜨렸습니다. 벌들이 날아와서 그 사람을 쏘았습니다. [그사이] 들에 불이 일어나 [그가 매달려 있는] 등나무를 태웠습니다. -중략- 코끼리는 무상(無常)을 비유하며 언덕 위의 우물은 사람의 몸을, 등나무뿌리는 사람의 목숨을 비유합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밤과 낮을 비유하고 [그 쥐들이] 등나무뿌리를 갉는 것은 [사람의 목숨이] 순간순간 줄어드는 것을 비유합니다. 네 마리 독사는 사대(四大)를, 꿀은 오욕(五欲)을 비유하며 [그를 쏜] 뭇 벌들은 나쁜 생각과 견해(見解)를 비유한 것입니다. 또 들불(野火)이 타는 것은 늙음을 비유하고 아래 있는 독룡은 죽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났으나 모든 것이 무상하여 의지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현실을 벗어나 진리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무상함을 피할 은신처를 구하지만 그곳이라고 쉴만한 곳이 못됩니다. 밤낮의 시간은 흘러 점점 죽음이 다가오고 물과 음식물과 공기에 의지해야 하는 육체는 언제 어떻게 상해를 입을지 알 수 없습니다. 거기다 생각은 어찌나 우리를 괴롭히는지 늘 마음이 산란하여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그 와중에도 재물을 얻거나, 명예를 얻거나, 성적 욕구가 만족되거나, 배부르게 먹거나, 단 잠을 자면 좋아하고 즐거워하며 늘 이것을 기대합니다. 잠시잠깐 벌꿀의 단맛이 위로를 주나 곧 번뇌와 갈등에 빠집니다. 들판에 성난 코끼리 떼가 달려들어 우리를 짓밟으려는 것처럼 세상은 우리를 가만 놓아두지 않습니다. 시간은 세상사에 무심한 듯 쉬지 않고 흘러가 우리를 죽음 앞으로 데려가며, 그런 상황에서도 욕망은 쉬도 때도 없이 일어나 마음을 괴롭힙니다. 문득 세상, 시간, 욕망, 몸, 죽음이 모두 마음에서 일어난 환상과 같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실제 그 모든 것을 환상으로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곧 이 마음이어서 이 마음에서 안수정등화라는 이야기를 비롯해 분별되어 드러나는 세상 모든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은 미약하고 여전히 예전에 살아오던 대로 고요하면 머물고 싶고 시끄러우면 피하고 싶습니다. 욕망이 너무나도 큽니다. 그래서 산란하고 부정적인 경계를 만날 때마다 고요하고 긍정적인 경계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요하고 긍정적인 경계에 대한 집착이 우리를 더욱 산란하게 만드는 줄은 모릅니다. 안수정등화의 사내가 코끼리 떼의 핍박을 피해 고요한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으나, 거기에는 더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안수정등화의 사내는 삶의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마음 하나라는 사실에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코끼리 떼의 습격을 피해 자신을 보호해줄 것처럼 여겨지는 우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큰 재앙이었습니다. 환상과 같은 일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코끼리 떼의 들판이 바로 코끼리 떼를 피할 자리입니다. 불길이 타고 있는 그 들판이 바로 불길을 피할 안식처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사내는 정신없이 이리저리 안식처를 찾아 헤맨 것입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 간 곳에는 더욱 큰 두려움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내는 그것도 모른 채 그곳 꿀의 단맛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모른 것입니다. 산란하고 시끄러운 경계는 머물려 하지 않지만, 고요하고 즐거운 일은 더욱 집착하여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부정적인 경계보다 긍정적인 경계가 더욱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쉴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발 딛고 서있는 자리가 해탈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한 마음도 일으키지 않은 이 마음이 삶과 죽음이 어찌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남김없이, 의심 없이 깨닫고 보면 온갖 것이 있는 그대로 고요이고 평화입니다. 들판의 코끼리 떼 그대로, 불길 그대로, 밤과 낮의 시간 그대로, 육체의 노화와 죽음 그대로, 벌꿀의 단맛 그대로 아무런 그것이 없는 진실자체입니다. 공부를 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본래 이렇습니다. - 릴라님 어서말을해 / 김 연숙 토요일은 밤이좋아 / 김 종찬 그래로 그렇게 / 휘버스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 남궁 옥분 나비소녀 / 김 세화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 휘버스 제비처럼 / 윤 승희 피리부는 사나이 / 송 창식 꿈을 먹는 젊은이 / 남궁 옥분 한번쯤 / 송 창식
여고 졸업반 / 김 인순 한잔의 추억 / 이 장희 은지 / 배따라기 사랑의 눈동자/유 익종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 배따라기
사랑이 저만치가네 / 김 종찬 비와 찻잔사이 / 배따라기 해야 / 마그마 찻잔 / 노고지리 골목길 / 신촌부르스 동동주의파전 / 박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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