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윤회|******@불교의생명관@

2017. 9. 24. 17:52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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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輪廻

佛敎와 自然科學 / 朴淳達·吳亨根·曺勇吉·金成九 共著 集文堂 1992. 8. 30

윤회란 과거, 현재, 미래의 변화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한 삶이라고 하면 하루를 살아도 한 생애요, 십 년을 살아도 한 생애이며 백년
을 살아도 한 생애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윤회란 한 삶의 과정, 즉 한 생애의 과정에서도 변화하고 있지만, 생애 이전과 생애 이후에도 변화하여 형(形)과 자(姿)가 다르게 또는 같게 나타나는 것을 윤회라 한다.
우주 전체와 그 속에 내재하여 있는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
옛날 어떤 이교도가 스님에게 윤회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질문하는 예가 있었다.
그 사람은 전생에 있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으므로 전생이 없다 하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미래의 삶이 없는 내세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 스님은 이교도에게 묻기를 '당신은 지금 몇 살입니까'라고 물으니 '30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스님은 다시 묻기를 '당신은 열살 때의 일을 기억합니까?' '기억합니다.'
'5-6세 때의 일은 기억합니까?'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3세 때의 일을 기억합니까?'
'기억이 없습니다.' '2-1세 때의 일을 기억합니까?'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스님은 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당신은 1-3세까지의 삶이 없이 5세부터 기억하고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1,2,3세도 틀림없이 살았을 뿐더러 의식과 의지작용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당신이 전생에 대한 기억이 없을 뿐이지, 전생이란 과거는 있는 것입니다.
생(生)의 전도 전생이지만 살아 있는 현실에 있어서, 어제도 전생이며, 과거의 삶이 전생입니다.
당신은 지금 30세라고 했는데, 35세까지 살 수 있다고 자부합니까?'
'천재지변이나 불의의 사고가 없고 내 자신이 건강에 유의하고 매사에 유의한다면 그 이상 살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내생이란 미래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미래의 연속은 기억이나 사상을 초월해서 <당신의 행위에 의해서 결정짓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스님은 이교도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이나 물질이 아닌 것이나 형태와 모양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는 것으로 영원한 것이란 없다.
그래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다.
우리의 의식(意識)도 생각 생각이 다르며 시간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정신작용에는 생(生). 주(住). 이(異). 멸(滅)이 있고, 몸에는 생(生). 노(老). 병(病). 사(死)가 있고 우주 만물에는 성(成). 주(住). 괴(壞). 공(空)이 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무상(無常)인 것이다.
현대에 와서 심령과학이라고 하는 학설이 크게 대두되면서부터 인간의 무한한 능력의 개발이 인정되어 가고 있다.
생전의 집착에 의한 것이 사후(死後)에 나타나며, 요즈음 심령학에서 말하는 영매(靈媒)작용이나 엑토플라이즘(靈物質)이 인정되어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모든 것은 사자(死者)의 집착에 의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불교에서는 집착과 욕망을 버림으로써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에드거 케이시(Edgar Cayce)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이 있다.
'나는 양친 중 어느 분으로부터 유전을 받았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양친으로부터 유전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으로부터 받고 있는 것이지요. 양친은 당신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출현하기 위하여 통과한 강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라고 말하였다.
불교에서는 영혼(靈魂)이라고 하지 않는다.
세속에서 말하는 영혼은 불교에서 제 7식(第七識)을 말하는 것으로 전송식(傳送識), 말나식(末那識), 망상식(妄想識), 상속식(相續識), 무명식(無明識)등으로 불리고 있다.
윤회의 주체는 우리가 꿈을 꿀 때 꿈속에서 주인 노릇 하는 놈이 바로 <칠식(七識)이며 세속에서 말하는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칠식(七識)은 육식(六識)에서 작용하고 얻어지는 것이 잠재적으로 고착(固着)되어 사상(思想)이 굳어진 마음의 작용으로 행위에 의한 습기(習氣)로 전전상속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한 생의 삶이나 하루의 삶을 하루로 보지 말고 10년이나 백년으로 또는 그 이상이나 그 이하로 가정하여 본다면 어제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하였다고 오늘이나 내일 혹은 모레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하루를 십 년이나 백년으로 계산한다면, 도둑질이나 강도질한 돈으로 잡히기 전까지는 잘 쓰고 잘 입고 잘 놀아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에는 항상 쫓기듯이 살아갈 것이다.
이 쫓기는 듯한 마음의 연속이 칠식작용(七識作用)에 잠재하여 전전상속할 것이다.
그러나 며칠 몇 달 후 잡히면 그 사람은 감옥에서 몇 년을 구류로 살 것이 아니겠는가?
그 며칠을 몇 십년 혹은 몇 백년으로 본다면 윤회의 값도 몇 백년 후에 감옥에서 구류를 사는 것같이 고통이 수반될 것이고, 반대로 착한 일을 했을 경우 포상을 받는 것도 그 당일에 받는 것이 아니며 며칠 후에 받는다면, 그 며칠은 몇 십년 혹은 몇 백년으로 본다면, 포상 받기 전의 고생은 현실의 선행으로 보고 포상 받은 후를 내세 몇 십년 혹은 몇 백년 뒤에 윤회전생으로 칠식(七識)이 전전상속으로 즐거움을 본다면, 육도의 윤회와,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들이 현실에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8식, 제9식, 제10식까지 있으니 가히 우주 법계(法界)의 차원을 우리 범부로서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가을타는여자 / 노래:이봐요 가슴 타는 날에 잠못들고 이리저리 뒤척인것은 만지면 터질것 같은 그리움으로 가을타는 여자 인가봐~ 모든것이 채워져도 빈것같은 허전함이여 빨간 단풍잎 떨어진 길을 추억 밟으며 걸을때~ 치마자락 맴도는 한줄기 바람에도 가을은 아픔이더라~` 눈물 나는 날에 잠못들고 이리저리 헤메인 것은~ 만지면 터질것 같은 그리움으로 가을타는 여자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