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이 자네 별 인가? / 전강 선사

2017. 10. 22. 21:1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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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이 자네 별 인가? / 전강 선사 

 
작야월만루 [昨夜月滿樓]하더니
창외노화추 [窓外蘆花秋]로다
불조상신명 [佛祖喪身命]한데
유수과교래 [流水過橋來]로구나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 오는구나.



나, 전강의 오도송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묘법이요,
온 법계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하고 일체가 유심조(唯心造)이다.
그러나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또한 얻을 수 없다는 마음도 없다.


내가 25세 때 덕숭산 금선대에 계신
만공 스님을 처음 찾아가서 예배하니 나에게 묻기를
 "심마물(甚麽物 )이 임마래(恁麽來)오?" 하시었다.
내가 다시 예배하니,
또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어?" 하시었다.
이번에는 내가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니
만공 스님은 그만 얼굴을 찌푸리시면서
"허! 저렇게 주제 넘는 사람이 견성했다 해.?
네 습기(習氣)냐,
체면없이 무슨 짓이냐?" 이러시고는
그 다음부터는 나를 보시기만 하면 비웃으며


"저 사람, 저런 사람이 견성을 했다하니

말세 불법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번번이 조롱을 하시었다.

나는 차츰 불안해지다가 분심이 났다.
선지식이 저러실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몸은 극도로 쇠약하여 핏기가 하나도 없어

앉으면 잠이 와서 앉지도 못할 정도로 바짝 말랐다.
그래서 운동대를 붙잡고 서서 '에라! 한바탕 해봐야겠다.
그까짓 놈의 몸은 하다가 죽으면 그뿐이지.'하고
나는 만공 큰스님의 말씀을 믿고 그 회상에서 하안거 중

판치생모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하다가
반 철이 지날 무렵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 의지(馬祖圓相公案 意旨)'가 확 드러났다.


그 길로 조실 방에 들어가 보월 스님 앞에 원상을 그려 놓고
묻기를 "마조원상 법문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入也打 不入也打)]고 하였으니 조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이르시겠습니까?" 하니, 보월 스님은 곧 원상을 뭉개셨다.

나는 보월 스님께 말하되
"납승을 갈등 구덩이(葛藤과臼) 속에 죽이신 것입니다.
마조방하(馬祖棒下)에 어떻게 생명을 보존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보월 스님의 대답이 떨어지기 전에 문을 닫고
만공 스님 처소에 와서 다시 묻되,
"마조원상 법문을 보월 스님께 물었더니 원상을 뭉개었습니다.
이렇게 그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였더니,
만공 스님은 도로 나에게 묻되
"자네는 어떻게 이르겠는가?" 하시었다.
내가 답하되,
"큰스님께는 이르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더니,
만공 스님이 주장자를 초안이에게 주시면서
"자네가 묻게" 하시니
초안 스님이 주장자로 원상을 그리고
"입야타 불입야타(入也打 不入也打)" 해서,
내가 초안이를 보고 여지없이 일렀다.

그러나 학자를 위해서 설파하지 않는다.


만공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면서 점검하시되,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誰知更有夜行人)" 하셨다.

그런 다음, 만공 스님과 한암 스님과의 서신문답과
기타 중요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를 낱낱이 마치고 떠나려고 할 때, 

만공 스님께서 물으시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했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시니

 내가 곧 엎드려서 허부적 허부적
땅을 헤집는 시늉을 하니 만공 스님께서
 "옳다. 옳다!(善哉善哉)" 인가하시고
곧 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지어 주시되,


불조미증전 [佛祖未曾傳]이요
아역무소득 [我亦無所得]이라
차일추색모 [此日秋色暮]한데
원소재후봉 [猿嘯在後峰]이로다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이날에 가을 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제방 선덕(諸方禪德)들은 한 번 착안해 볼지어다.
우리 부처님께서 출가하셔서 여러 유명한 선인들을 차례로 찾아서
도를 물었으나,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으로
극과(極果)를 삼으므로 구경(究竟)의 생사해탈법이 아님을 알고
선인의 처소를 떠나셨다.
이것이 바로 출가의 진면목이다.


참선법을 닦는 대중들이여!
저 비상비비상처정 따위를 얻고서
부처님의 정법을 증득하였다고 하지 말라.
더욱이 입을 벌려서 학자를 속인다면 그 죄는 더욱 크리라.
자기나 눈이 멀지언정 어찌 남까지 눈 멀게 하겠는가.
그러니 이런 선병(禪病)에 걸린 자는 모름지기
눈밝은 선지식을 찾지 않는다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게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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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 큰스님의 소개]
전강 스님은 1898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나이 16세 되던 해인 1913년 유기 행상을 하다 만난
한 스님과의 인연에 의해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출가 이후 피나는 수행과 정진을
계속하던 스님은 도반이었던 사미승이 갑작스럽게 죽자
‘삶의 허망함’을 깨닫고 이 때부터 만공 스님으로부터
‘無’자 화두를 들고 구도의 길에 오르게 된다.

이후 직지사에서 6년 간의 고행과 당대 선지식이었던 제산·용성·
만공 스님 밑에서 정진을 계속한 끝에 1921년 23살 되던 해
마침내 깨달음에 경지를 얻게 된다
이십대에 깨달음을 얻은 스님은 이후 운수행각을 하며 당대의 선지식인
혜봉·혜월·용성·한암·금봉·만공 스님 등을 찾아 수많은
선문답을 통해 그의 철저한 견성을 인가 받았다.
특히 스님은 1923년 그의 나이 25세 되던 해 덕숭산 금선대에서
만공 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고 선종 77대 법맥을 잇는
대선사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근대 선종의 중흥조였던 경허 스님의 오도송에 대해서도
허물을 지적할 정도로 선지가 밝았던 스님은 지혜 제일이라는

명성을 날릴 만큼 대중들에게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날카로운
선지의 법문으로 제방의 눈푸른 납자들에게 지혜의 등불을 밝혀줬다.

33세에 통도사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 수도암 선원 등
전국의 선원에서 조실을 역임하며 후진을 양성하던 스님은
1962년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화선원)을 건립하고 주석하면서
송담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남기기도 했다.

현대 한국 선종의 혜맥을 이은 전강 스님은 1975년 1월 13일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세수 77세, 법납 62세로 좌탈입망했다.


 - 전강 대선사 / 前용화선원 조실 -




 라이브 음악 모음 10곡




01, 미소


02, 연인들의 이야기


03,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04, 그리운 얼굴


05, 긴머리 소녀


06, 통나무집


07, 꽃반지 끼고


08, 저 별과 달을


09, 그저 바라만 볼수 잇어도


10,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