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내가 어제의 너이니 / 벽암 스님

2017. 10. 14. 21:3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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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가 어제의 너이니 / 벽암 스님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여
자정기의(自淨其意)면
시제불교(是諸佛敎)라.”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여
스스로 마음을 맑히는 것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이라고 했습니다.
악한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 일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상처를 주는 그런 일만 악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일은 모두 악한 일입니다.
마음으로 지은 죄도 죄업이 되는 이치도
결국 생각으로 마음을 흐트리기 때문입니다.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한다는 것도
반드시 눈에 보이는 선행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맑게 하는 일이면
모두가 착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맑은 마음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면
그 자리가 바로 부처의 자리이니 어디가서
따로 부처의 진리를 물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줄기 흐르는 냇물도
우리에게 소중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으니
다만 눈 밝고, 마음 밝은 사람만
그 가르침을 새길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묘향산 계곡에서 마음을 맑히고
사는 지혜를 생각한 뒤로 나는 될 수 있는대로
좋은 생각 좋은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남과 다투고 시비하며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은
'나'라는 부처를 죽이는 일이라 생각하니
시시비비에 휘말리는 일도 조금씩 줄어 들더군요.

흔히들 계정혜(戒定慧) 3학을
불교의 기본 가르침이라 말하는데
나는 그 가운데서도 혜학이 으뜸이라 봅니다.
진리의 자리에서 으뜸과 버금을 따질 것은 아니지만
굳이 따진다면 지혜가 없이는 계율도 지킬 수 없고
정진의 힘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럼, 그 지혜는 어디서 나오느냐.
바로 맑고 맑아 하염없는 마음에서 나오는 겁니다.
일순간 혼탁 해지더라도 얼른 다시 맑아질 수 있는
그 마음 자리에서 지혜가 솟아나고
그 솟구치는 지혜의 힘으로 살아갈 때
계율도 잘 지키고
어떤 일을 만나도 열고 닫음이 명확해집니다.

정진의 문에 들어서도
태산같이 의연한 진리의 자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청정심이 곧 부처인 겁니다.
보현사에서의 공부는 불전의 한량없는
바닷물을 맛보는 계기이면서 몰려오는 서구정신과
학문의 첫 물을 맛보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것은
출가한 사람이 보듬고 살아야 할 마음 보따리를
잘 꾸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6년 시절을 마치고 남으로 내려와 해방을 맞았습니다
스물 여섯의 어린 나이로
청와대 뒷편 자하문고개에 아담한 절 하나를 지었습니다.
자명사라 이름한 절이었는데
시절 인연이 맞지 않아 절을 통채로 헐어내야 했습니다.

68년도에 일어난 김신조 사건을 잘 아실 겁니다.
그때 자명사 앞 뒷길이 온통
공비들과 경찰이 접전을 벌이는 전투장이 된 겁니다.
그 사건 이후 바로 북악 스카이웨이가 열리고
그 와중에 절 땅이 정부에 수용되어 떠나야 했던 겁니다.
그런 연유로 절을 헐고 이듬해에 지은 절이
지금의 도봉사이니 이곳에서 30년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당시의 도봉사는 서울에서도
먼 절이었는데 지금은 서울 속의 절이 되었습니다.
나날이 넓어지는 서울땅은
나날이 분주해지는 세상살이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늘어나고 집이 늘어나고 자동차가 늘어나며
서울땅도 넓어졌지만 늘어나지도 넓어지지도
않은 것은 인간의 양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늘어나거나 넓어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찌들리고 삭막해져 오그라드는 것이
양심이란 두 글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도덕심의 붕괴는 넓어지는 서울땅 만큼이나
인간 정신을 공허하게 합니다.

나는 도덕이 붕괴되면
인간도 붕괴된다는 것을 늘 강조합니다.
인간 도덕심의 가장 근본은 효도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빨간크레용 5곡 ( 88년)



1.촛불 밝힌 밤에
2.비오는 밤의 연가













3.저기 저멀리
4.님의 정
5.그게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