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2. 19:1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균형자이신 붓다
혜천(嵇瀳)스님의 일요강론 (1월 5주차: 불기2554년 1월 31일)
오늘 강연의 제목은 균형자이신 붓다이다.
균형(均衡)의 한자는 균(均)자는 고를 균, 형(衡)자는 저울대 형자로, 저울대처럼 치우침이 없다고 할 때 균형이라고 표현한다. 부처님께서는 균형자이시다. 그래서 오늘 강연 제목을 균형자인신 붓다로 정한 것이다.
공자는 이상주의 국가의 표본을 주나라에서 찾고 있었는데,이는 논어에서 말하였던 공자의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주나라는 하(夏)와 은(殷)나라를 본떴으므로 문물제도가 빛났다. 나는 마땅히 주나라를 따르겠다. ”노나라를 주나라로 만들고 싶은 것이 공자의 정치이념이었고,정치가로서 공자가 꿈꿨던 이상적인 인물은 주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이었던 주공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산둥성 제령도의 문상현(汶上縣)을 가리키는 중도의 지방 장관으로 있던 공자는 사공(司空)이란 높은 벼슬로 영전된다. 사공은 육경 중의 하나로 국토를 다스리는 일을 맡는 중요한 자리였다. 비로소 중앙의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셈이었는데,‘공자가어’에 의하면 공자가 사공이 된 뒤로는 노나라의 삼림과 강물,호수와 고지대와 저지대의 평야가 모두 제대로 잘 다스려져 각각 그곳에 맞는 식물과 동물들이 잘 자랐다고 한다. 그 후 기원전 498년 공자 나이 54세 때에 다시 사구(司寇)라는 더 중요한 벼슬에 등용되었는데,정치에 입문한 지 불과 3년 만에 형옥을 다스리는 관리인 사구라는 직책으로 발탁되었음은 공자의 황금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더구나 사구라는 벼슬은 지금의 대법원장 겸 법무부장관의 직책에 해당하는 중요한 자리로서 사구가 된 공자는 옥송(獄訟)의 판결을 내리기에 앞서 항상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구가 된지 오래지 않아 소종묘를 죽이는 일을 한다.
공자가 그를 처단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댄다.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의 죄가 있다. 절도죄 따위는 거기에 끼지도 못한다. 첫째는 머리가 빨리 돌면서 마음이 음험한 것이다. 둘째는 행실이 한쪽으로 치우쳤으면서도 고집불통인 것이다. 셋째는 거짓을 말하면서도 달변인 것이다. 넷째는 추잡한 것을 외고 다니면서 두루두루 아는 것이 많아 박학다식해 보이는 것이다. 다섯째는 그릇된 일에 찬동하고 그곳에 분칠을 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중에 하나라도 있다면 죽여도 된다. 그런데 소종묘는 이 죄악을 두루 겸했다. 어찌 죽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자] 그러나 소종묘가 죽임을 당한 것은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그가 진보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소종묘가 기존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세상 사람들을 동요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불평, 불만을 갖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공자는 기존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그것은 바로 노나라이다. 기존의 질서는 어느 시대에나 있다. 기존의 질서란 힘있는 자들이 힘을 잃지 않는 질서를 말한다. 힘 있는 자들은 기존의 힘이 없어지는 질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 바로 공자는 힘있는 자의 집단을 대변하는 대변자였던 것이다. 소종묘는 힘 있는 자의 집단에 반항하였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대결은 공자가 사구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종묘를 죽임으로써 끝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기도할 때, 서원(誓願)을 세우고 발원(發願)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냉정한 의미에서 서원과 발원이라는 것이 부처님께서 나를 편들고, 편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직 나만을 편들어 주길 원하는 것이 서원, 발원인 것이다. 마치 공자가 힘 있는자들의 편을 들기 위해 그걸 비판한 소종묘를 죽이는 것과 같다. 공자가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그가 편들기를 했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기득권자라는 구분보다는 이 구분이 더 옳다. 공산주의를 하겠다던 러시아, 즉 소비에트 연방도 결국 힘 있는 자들의 잔치로 끝났고, 북한 역시 가진 자들의 정권이다. 김일성, 김정일도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더욱 잔혹했다. 모택동 역시 자기는 주지육림에 빠져 살면서, '이왕 가난할 바에는 모든 사람이 가난한 것이 낫다"고 했다. 모택동의 시절에 중국인민이 5,000만이나 굶어 죽었다. 어느 시대에도 힘 있는자와 힘 없는 자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힘 없는 자들은 굶어 죽어 나가도, 힘있는 자들은 비만을 고민한다.
우리는 편 맺기, 편 가르기, 편 들기에 익숙하다. 정의, 신의, 도덕을 이야기 하지만, 정작 그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 기준은 없다. 나와 가까운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일 뿐이다. 얼마 전에도 한 말이지만, 도덕에는 기준이 없다. 즉 그 기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고사에 의하면 왕이 편애하는 신하가 있었다. 마치 왕과 동성애자가 아닐까 하는 정도의 오해를 살 정도로 임금과 신하는 가까왔다. 과일이라도 먹는 날에는 그 씹어먹던 과일의 반쪽마져도 왕에게 바칠 정도였는데, 이에 데해 왕은 네가 나를 끔찍히도 사랑해서 이렇게까지 하는구나라고 여겼다. 사냥이라도 갈 때면 이 신하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텐트에 미리 들어가 왕의 잠지리를 덥혀 놓았다. 왕 역시 이 때는 네가 내 몸이 차가울까 미리 덥혀 놓았구나라고 칭찬했다. 마치 우리들도 사랑에 빠지면, 너 아니면 안되겠다며 자살소동을 벌이다가도, 몇 년 후 그 사랑이 식으면 "내가 그 땐 미쳤지!"라고 한다. 이처럼 임금의 총애가 식은 후 그 임금은 " 저 자는 자기가 먹다 남은 과일을 내게 주고, 사냥 갔을 때도 잠자리에 먼저 들어 나의 잠자리를 더렵힌 자이니, 저런 신하를 살려 둔다면 어떤 자가 충성을 하겠는가? 목을 베어 죽이라"고 하였다. 전에는 상을 받은 바로 그 일로 오늘은 벌을 받고 죽는다.
우리는 언제나 편 들기에 익숙하다. 공자님 같은 분도 기존의 이익에 편들지 않는다고 소종묘를 죽였다. 기독교의 인격신 역시 말할 나위가 없다. 어느 날 야훼는 자기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세에게 그 부족을 몰살할 것을 명하였다. <민수기>에는 신이 모세를 시켜 미디안인들을 공격하도록 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의 군대는 순식간에 모든 남자들을 살해했지만 여자와 아이들은 죽이지 않았다. 병사들의 이 자애로운 행동에 분개한 모세는 남자들과 처녀가 아닌 여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남자를 알지 못한 여자 아이들은 너희를 위해 살려 두어라”. 결국 자신들의 신을 위해 다른 부족을 몰살하는 것이다. 공자가 힘있는 자의 편을 들어 소종묘를 죽이고, 야훼가 자신의 신을 믿지 않는다고 부족을 죽이라 지시한 것은 양아치나 논두렁 깡패의 짓과 다를 바 없다.
조선시대 최고의 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임상옥이 죽기 직전에 ‘재상평여수(財上平如水) 인중직사형(人中直似衡)’이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뜻의 이 말은 그의 상업철학을 잘 보여준다. 즉 재물은 흐르는 물과 같고, 사람의 곧기는 저울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균형자이시다. 균형자는 물과 같다. 편 들지도 않고, 편 가르기도 하지 않는다. 물은 빈 곳을 찾아 채운다. 나의 빈 곳을 채우는 분이 부처님이다. 나의 빈 곳이라고 내가 원하는 것과 부처님이 빈곳이라 여기는 것이 다를 수 있다. 나는 나의 빈 곳이 재물이라고 여기지만, 부처님이 채워야 할 것은 텅빈 머리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나는 밥을 원하는데, 부처님은 지혜가 비었다고 지혜를 줄 수 있다. 우리는 저에게 지혜를 주십시요라고 기도하지만, 부처님은 우선 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라 여겨, 재물을 줄 수도 있다. 그러면 왜 나와 부처님이 원하는게 같지 않은가? 그것은 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루가 6장의 “가난한 자는 복 받을 것입니다. 천국이 그들 것입니다”라는 예수의 말은 마태오 5장에서는 “마음으로 가난한 자는…”으로 돼 있다. ‘마음’의 히브리어는 ‘레브’다. 그런데 레브는 특정 맥락에서 모세 오경 또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토라’의 은유적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마음으로 가난한 자’라는 말은 토라 공부 때문에 가난한 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전념하여 돈벌이에 급급하지 않아 구차한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마음이 가난한 자’로 옮기는 건 의역(의도적 오역?)이다.
우리는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임상옥은 사람의 곧기가 저울과 같아야 한다고 했다. 저울은 기계이다. 그래서 저울은 기계적 균형을 유지한다. 내가 말하는 부처님의 균형은 기계적 균형이 아니다. 부처님이 말하는 균형은 빈 곳을 채워주는 것이다. 내가 빈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부처님이 비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나의 눈으로 부처님을 보고, 부처의 눈으로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균형이다.
우리는 언제나 나의 눈으로 본다. 부처의 눈으로 나를 보지 못한다. 금강경 강의 종강 때 얘기했던 '나의 눈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나를 보라'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유럽의 격언에 '법을 경직되게 적용하면, 감옥밖에 사람없다'는 표현이 있다.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감옥에 사람들이 넘쳐 흐를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균형을 물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물은 빈 곳을 채울 뿐, 그 빈곳이 어떤 것인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마음이 없다.
붓다란 부동심이자, 금강심이다. 부동심이란 흔들리지 않는 마음, 금강심이란 불변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왜 균형감각을 유지하지 못하고, 편들고 또는 편들기를 바랄까? 공자가 소종묘를 죽이고, 기독교가 한 부족을 몰살하고야 끝이 날까? 그 이유는 부동심과 금강심이 없어서이다. 나와 가깝다고 상과 이익을 주고, 나와 멀다고 벌과 불이익을 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부동심이다. 부동심이 곧 금강심이다. 우리는 초심과 종심이 다르다. 초심이란 처음에 뭘 하겠다는 생각이고, 종심은 그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호랑이를 잡겠다고 기세등등하게 뒷산을 오르지만, 나중에는 땅거미만이 지길 기다리다가 집에 돌아온다. 제나라 사람처럼 호랑이를 잡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집을 나섰는데, 막상 호랑이 만날 일이 두려우니 저녁이 되길 기다리다 집에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고전에 '제나라 사람처럼'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이는 용법이다. 맹자에서인가 나오는 얘기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매일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오자 청와 첩이 묻는다. 매일 누구에게 그런 술대접을 받는지 묻자 귀인을 만나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아내는 소일 수 없다. 아내가 죽을 때까지 속일 수 있다면, 성인은 못되어도 대인 쯤은 될 것이다. 매일 이런 대접을 받는 남편이 궁금해 어느 날 아내는 미행을 하게 되었는데, 상가집이나 묘 쓰는데 가서 구걸해 술을 먹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실을 확인한 이들이 이 날 집안에서 울고 있는데, 그 날도 저져때가 되어 돌아온 남편은 내가 귀인을 만나 귀한 대접을 받았노라고 교만을 떤다. '제나라 사람인 주제에'는 이런 상황을 두고 고전에서 자주 인용하는 표현이다.
중요한 것은 초심과 종심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동심, 금강심이다. 고행제일주의, 명상만능주의, 제식만능주의, 주력만능주의는 부정되어야 한다. 이런 부정을 하고 난 후 피팔라 나무에 앉는 그 순간의 고타마 싯타르타는 이미 부동심이자 금강심이다. 그는 깨달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가 과거의 습(習)을 일시에 쓸어버리고 보리수좌에 앉는 순간 부동심이자 금강심이다. 여러분이 부동심과 금강심을 지닐 수만 있다면, 즉 초심과 종심을 같이 한다면, 초심처럼 종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적어도 부처님 다음 자리 정도에는 앉을 수 있다. 초심과 종심을 같게 유지하는 것이 균형이다.
우리는 초심이 너무 무거워 신들조차 들 수 없다. 그러나 종심은 너무 가벼워 봄날의 민들레 홀씨같다. 아니 더 가볍다. 초심과 종심을 균형있게 하는 것, 처음과 끝이 같은 것이 부동심이며, 금강심이다. 부처님은 초심과 종심이 같았을 뿐이다. '부처님이 보리수좌 아래서 명상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한 마디로 멍멍이 소리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변화 즉 사고의 전환이다. 고행제일주의, 명상만능주의, 제식만능주의, 주력만능주의는 부정하고 보리수좌에 앉는 순간 붓다는 과거의 습을 버리고 생각을 변화한 것이다. 거기서 깨달을 것은 없다. 붓다가 보리수좌에서 명상수행을 통해서 깨달았다는 주장은 사악한 견해이자 붓다에 대한 비방이다. 붓다가 보리수좌에 앉는 순간이 초심이며, 쿠시나가라에 입멸할 때가 종심이다. 부처님이 45년간 설법을 했다지만, 물리적 시간의 의미는 없다. 다만 초심과 종심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같다.
우리는 스스로 불교도라고 하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모른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부처님은 균형자이다. 물처럼 빈 곳을 채운다. 부처님은 우리를 편들어 주지 않는다. 부처님이 우리를 편들어주는 순간 붓다가 아니며, 우리를 편들어 주는 순간 금강심과 부동심도 없는 것이며, 우리를 편들어주는 순간 초심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편들어 달라고 한다.이 때 편들어 준다는 것은 마치 엄마가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는 것과 같다. 아이가 운다고 무조건 젖을 물린다면 엄마는 사표를 내야 한다. 아이는 때에 따라 배고프지 않아도, 똥오줌을 싸서 또는 기분에 따라서 아니면 날씨에 따라서도 울기도 한다. 심지어는 심심해서 울 수도 있다. 아이를 여럿 키운 경험많은 엄마들은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일급 면허 전문가들이다.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미안한 얘기지만 말한다고 모두 말이 아니다. 그저 말로 끝나는 말일 뿐이다. 주희의 표현을 빌리자면 혹세무민의 소리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동양에는 자유인은 오직 한 사람 뿐, 나머지는 모두 노예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헤겔의 이 말을 반박하고 나섰지만, 사실 헤겔이 정곡을 찌른 것이다. 자유인은 왕 하나 뿐 나머지는 노예인 역사였다. 맞는 말이다. 아이가 운다고 무조건 젖을 주는 것, 징징대고 기도하는 것은 나를 노예 취급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이르기를 '개에게 돌맹이를 던지면 돌덩이를 물고, 사자에게 돌맹이를 던지면 사람을 문다'고 했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고, 우리를 편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를 노예 취급하는 것이자 개 취급을 하는 것이다. 능숙한 엄마는 함부로 젖을 주지 않는다. 왜 우는 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보 엄마는 책을 본다. 그 책에는 배고프면 또는 오줌을 싸 자리가 축축하면 운다고 되어 있다. 이런 일화가 있다. 너느 날 딸이 출산을 위해 친정엄마에게 찾아가는데, 짐이 한트럭이나 되었다. 그 짐은 모두 육아 관련 책이었다. 친정 엄마는 딸이 매일 책을 본들 애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의문이다. 어느 날 새벽에 아이가 잠을 자지 않고 운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책에는 그 이유가 나와 있지 않다. 결국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그렇다. 책을 찾아 본다고, 그 아이가 책대로 커주는 것이 아니다. 혹 기계 인간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부처님도 징징댄다고 채워주지 않는다. 부처님은 빈 곳이 있으면 채워준다. 그래서 균형자이신 부처님이다. 부처님이 균형자인 이유는 부동심과 금강심이 있기 대문이다. 초심과 종심이 같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만약 금강심과 부동심이 없어도, 초심과 종심만이라도 같다면 부처님 그 다음 자리에는 앉을 수 있다. 그것이 균형이다. 우리는 도를 깨우치겠다고 분주히 명상센터로 달려가지만, 특별히 따로할 명상은 없다. 밥먹고, 앉고, 젖을 물리고 하는 일상이 그대로 명상이다. 왜? 부처님이 특별히 명상을 통해 부동심, 금강심을 얻은 것이 아니고 과거의 나, 즉 나의 습을 쓸어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산대사의 시로 잘못 알려진 야설(野雪)이라는 시는 김구 선생이 붓글씨로 쓴 것도 있고, 김구선생을 따르는 백기완 선생, 김대중 대통령이 즐겨 인용하하기도 했다. 다음은 야설이란 시의 전문과 해석이다. 야설(野雪)
눈 길 뚫고 들길 가도 (눈밟고 들 길 걸어가노니) 穿雪野中去 (踏雪野中去) 모름지기 어지러이 가지 못하네不須胡亂行
오늘 아침 내 발자국이 今朝我行跡 마침내 뒷 사람의 길이 될 것이니 遂爲後人程
그러나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남의 발자취를 발으면 안된다. 부처님이 여시어경에서 ‘어떤 사람이 내 가사자락을 붙들고 내 발자취를 그림자처럼 따른다 할지라도 만약 그가 욕망을 품고,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그릇된 소견에 빠져있다면 그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나 또한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법을 보지 못하고 법을 보지 못한 자는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의 발자취를 밟고. 밟으려하고. 밟으면 안된다. 오직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걸으면 된다. 오직 스스로의 판단과 힘으로 걷는 인간이 필요할 뿐이다. 흉내내는 원숭이는 필요없다. 이 집단이 동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여러분 스스로 힘으로 발걸음을 걸어야 한다. 이것이 초심이자 종심으로 가는 길이다. 부처님은 나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라 하지 않는다. 천연지성 즉 남을 흉내내지 않는 것이 천연지성인데, 천연지성을 가지라. 오직 항상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몸짓으로 걸어야 한다.
부처님 법안에서 중히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기(根機)이다. 중국 명나라 중기 유학자 이며 양명학의 개조인 왕양명은 선비가 찾아와 공부를 청하면 도우(道友)인 당감천(湛甘泉)을 소개하면서, 당감천 선생은 위대한 성인이니 그 분께 배우라고 보냇다. 당감차은 우쭐했으나, 사실 왕양명은 근골이 뛰어난 제자만 자기 제자로 삼은 것이었다. 즉 좋은 쌀만 고르고 쓸모없는 돌을 당간찬에게 보낸 것이었다. 왕심재(王心齋)·전서산(錢緖山)·왕용계(王龍溪)등과 더불어 탁오 이지 같은 사상가가 이 양명학파에서 나온 이유가 다 거기에 있다. 요새는 많이 모으는 것을 중시하지만, 많이 모이고 또 많이 모은다고 기뻐할 것 없다. 그 중 눈 밝은 이, 금강석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 부동심이 되고, 금강석이 되는 것이다. 붓다가 남의 발자취를 밟지 않은 것은 과거의 습을 끊었기 때문이다. 균형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남의 발자국을 밟으려 해서는 균형을 잃는다. 균형을 잃으면 공자나 야훼와 같다. 붓다는 균형자일 뿐이다. 균형이라는 나의 눈으로 붓다를 보고, 균형이라는 붓다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 균형이다.
오늘 강연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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