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붓다|…… 혜천스님설교

2017. 12. 10. 12: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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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붓다

 


 

혜천(嵇瀳)스님의 일요강론 11월 5주차 불기2553년 11월 29일


 

참으로 오랫만에 스님의 강론을 업데이트 합니다.  교통사고를 핑계로 너무 바쁜 척 한 것 아닌가하는 게으름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간 수요일에 하는 경전공부는 이미 숫타니파타를 끝내고,  금강경이 시작된지도 벌써 11월 들어 4주차나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예전에 한 금강경 강의는 테이프가 있다면 없애고 싶으시다 할 정도로, 이번의 금강경 강론이 마지막 금강경 강의가 될 것이라고도 말씀하실 정도로 전면적으로 새로운 해설을 내리십니다. 요약하자면 지금의 불교는 부처님 입멸 후 정리되는 과정에서 바라문 출신의 가섭과 반대 진영의 아난 존자와의 논쟁에서 가섭의 승리와 아난의 양보(실제로는 패배)로 부처님의 오리지널 가르침이 훼손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주옥같은 강의는 강의에서 들으시고, 시간이 되는대로 제가 참석한 강의는 노트해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간 소원했던 점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번에 일요강론을 요약해 올리오니, 강론에 참석치 못한 선우님들에게 지혜의 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편의상 강의노트는 존대어를 생략하고 서술형으로 정리하였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선우님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다면 일요강론 원고 요약도 정기적으로 올려 볼까 합니다만, 일요일 아침 9시 참석이라는 것  자체가 미덥지 못한 제 신심으로는 여의치 못할까 두렵습니다.   

 

 

혜천(嵇瀳)스님의 일요강론(11월 5주차:불기2553년 11월 29일)


주제: 길 위의 붓다


세월이 참으로 빠릅니다. 11월을 헐었더니 벌써 마지막 주 강론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강론의 주제는 길 위의 붓다. 즉 路上의 붓다입니다. (정리자 주:근데 왜 途上이 아니라 路上일까? 道라는 한자어가 지닌 다양한 의미의 왜곡이 싫어서일까?)


문맹이라 함은 원래 의미로는 문자를 읽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로는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이 문맹이다. 우리는 이제 마음을 읽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마치 두더지의 퇴화된 눈처럼 심안이 퇴화되어 버렸다.


우리는 한 때 <그 때 그 사람>의 시대에는 아침을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의 확성기 소리에서부터 시작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 그 사람이란 박정희를 이름이다. 그가 심수봉이 강변가요제에 들고 나온 노래 <그 때 그 사람>의 얼마나 열렬한 팬이었는지는 그가 19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할 때 심수봉과 함께 있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일본어 나쓰메로는 흘러간 옛 노래 정도로 해석된다. 비록 ‘잘 살아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라는 <잘살아 보세>를 주창하던 이는 세월과 함께 그 때 그 사람이 되었지만, 잘살아보자는 정신은 사회 곳곳에 깊숙이 박혀 있다. 성공과 출세의 지향이 그것이다.


올리버 제임스라는 사람의 책 제목이기도 한 "어플루엔자(affluenza)"는 1970년대 초반 휘트만(F. C. Whitman)이 처음 쓰기 시작한 단어로 '풍요’라는 의미의 Affluence와 ‘유행성 감기(질병)’를 뜻하는 Influenza가 결합된 조어다. 우리말로 옮기면 부자 유행병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부자 유행병에 걸려 있다.


원래의 주제인 길 위의 붓다로 되돌아가 보자. 부처님의 삶은 길 위에서 시작해 길 위에서 끝을 맺는다. 게다기 부처님의 삶은 뺄셈(-)의 삶이다. 부처님의 삶은 덧셈이나 곱셈의 삶이 아니다.


언젠가 말한 혜월 스님 삶의 철학도 이러하다. 혜월은 무소유(無所有)와 천진(天眞)으로 생애를 일관하여 가는 곳마다 많은 일화를 남겼다. 1921년 61세의 혜월은 부산 금정산(金井山) 선암사(仙巖寺) 주지를 맡았다. 이때에도 그는 산지를 개간해 논을 만들려고,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를 팔아 그 돈으로 일꾼들을 고용해 밭을 일구었다. 이때 일꾼들이 그의 설법에 정신이 팔려 일이 진척되지 않아 겨우 자갈밭 세 마지기를 개간했을 뿐이었다. 이에 제자들이 혜월에게 "다섯마지기를 팔아 겨우 세마지기를 만들면 무엇합니까"라고 불평하자, 그는 "다섯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자갈밭 세마지기가 더 생겼으니 좋지 않으냐"고 대답했다.


알다시피 부처님은 원래 왕자 출신으로 삼시절, 즉 건기, 우기 , 여름에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누군가는 현대인의 새로운 카스트가 에어컨을 소유하느냐의 여부로 갈라진다고 우스개를 했다지만, 부처님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에서 태어났다. 실제로 미얀마에서는 건기의 탁발시 기온이 16도 정도로, 우리로 봐서는 시원한 기온에도 그들은 오리털 파카를 입고 탁발하기도 한다.

 

불교의 4대성지라고 일컬어지는 탄생지 룸비니 동산, 성도지 룸비니 동산, 초전법륜지 붓다가야, 열반지 쿠시나가라가 모두 길 위에서 이다.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셨다. 그 후 부처님은 정주(定住)하지 않고 길 위에서 끊임없이 설법하고 토론하였다. 보통 스승과  제자 사이 전승은 은밀하고도 배타적으로 이뤄지지만, 부처님은 수 백의 대중을 상대로 가르치는 걸 선택했다.


빔비사라 왕의 고백처럼 왕손은 왕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왕위 계승권을 버리고 행자가 되는 삶을 선택했다. 인도에서 역시 가장 중하게 여기는 것은 가계의 계승이다. 그래서 브라만의 유행기는 이런 가계계승의 의무를 다한 후에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가업을 계승하지 않음으로써 가업계승이라는 부채를 지녔지만, 그 부채를 갚지조차 않고 25세에 이른바 야반도두를 한 것이다. 아버지의 왕위 계승권을 이어받아 왕이 되는 것이 덧셈과 곱셈의 삶이다. 그러난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야반도주라는 것이 보통 빚을 떼어 먹거나 사랑을 위해 감행된다. 후자가 좀 더 후한 평가를 받지만 어쨌거나 야반도주는 본인의 입장에서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부처님은 왜 그 유명하다던 카시산의 비단을 벗어버리고 죽은 사람의 시신수습용으로 쓰이는 분소의를 입은 것일까? 비단 하면 항주 소주의 것이 유명해 다섯 겹을 입어도 여인의 유두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지만. 분소의는 인도에서 주로 행해지는 장례인 천장에서 유래한다. 시다림이라는 숲에 시체 버리는 행위이다. 우리말에 스님이 죽은 사람을 위한 추도기도 갈 때 시다림간다고 표현한다. 화장은 귀족들이나 하는 것이고, 일반 평민은 그저 이런 방식으로 장례가 이뤄진다. 그 옷을 입는다는 것은 시체에게서 그저 가져와 입으면 된다. 그 때 시체는 아무 말이 없다. 침묵은 동의이다. ( 일동 웃음).부처님은 침묵이 동의라고 말씀하시었다. 부처님은 왜 풍요로운 왕자로서의 삶, 왕위계승권의 의무를 저버린 채 길 위의 삶으로 대중과 함께한 것일까?  


인도에서 진리는 비의이므로 가까운 사람, 친척에게 전수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대중설법을 한다. 부처님은 출가 14년 만에 고향으로 귀향한다. 심지어 그는 이 방문에서도 이복동생인 난타와 아들 라훌라를 출가시킨다. 부처의 아내 야소다라는 아들 라훌라에게 “저 분이 너의 아버지이다. 유산을 달라하라”고 일렀다. 그러자 라훌라가 “저에게 물려 줄 유산을 주십시오”라고 하자 부처님이 대동한 사리붓다에게 “사리붓다여, 라훌라가 나에게 유산을 달라하니 주라”고 하였는데, 사리불존자가 머리를 깍으면서 그것이 유산이라고 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었다. 스승보다 제가가 뛰어나고, 부모보다 자식이 나아야 그 학문을 계승하고 은혜를 갚는다더니 사리불존자가 그러하다. 부처님이 제자 하나는 제대로 둔 것이다. 어린 라훌라 입장에서도 왕위계승보다 나은 선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린 왕은 그 왕조를 멸망케 한다. 고려말이 그러하고 조선 말기가 그러하다.


부처님은 50세 이후에 80에 이르러 쿠시나가라에 열반에 들 때까지,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에서 우기안거 즉 하안거 22회를 제외하고 모두 길 위에서 설법하고 토론하였다. 부처님은 뺄셈의 삶을 살았지만 진정으로 덧셈의 삶을 산 것이다.


현재는 성공을 약속하는 사람만이 지도자가 된다. 그러다보니 어플루엔자에 걸린 성격 이상자들이 지도자가 되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다. 정치지도자들이야 권력을 위해 그런다고 치지만, 요즘은 종교지도자들 마저 성공을 약속한다.  본 적은 없지만 <CEO 붓다>라는 책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예수를 믿으면 대박이 난다는 목사의 설교가 대표적인 예다. 1958년 서울 서대문구 대조동에서 5명의 신도로 출발한 순복음교회가 여의도에 자리 잡은 것은 1973년. 1985년 12월 신도 수 50만명을 넘어섰고, 1993년 2월 기네스북에 70만 신도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교회로 기록됐다. 예수 이래 제일 큰 교회로 기네스북에 오른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설교 요지는 성공, 부자, 돈이다. 기독교 정통파들은 그를 ‘사악한 자’라고 치부한다. 불교 역시 수많은 CEO 주지들이 물신풍조를 조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문맹인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현대인의 마음에 있어야 할 자리에 물질, 즉 돈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CEO 목사, CEO주지가 여기에 앞장서고 있다. 심지어 성녀로 알려진 테레사 수녀를 비판, 고발한 책 <마더 테레사 이상과 현실(자비를 팔다)>라는 책을 보면, 600만불의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해 돌보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지 않는 내용이 있을 정도이다.


부처님은 결코 그 어떠한 것도 소유한 적이 없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리셨다. 29세 이후 길 위에서 걷고 또 걸었을 뿐.  장사해서 이익을 남긴 적도 없고, 오직 손해만 보았을 뿐이다. CEO 붓다, 소유하는 붓다였다면 과연 오늘의 붓다가 있었을까?   


현대인은 숫자의 뺄셈은 알지만 인생의 덧셈을 배우지 못한다. 어플루엔자에 걸려 있으면서 다른 이들을 물들인다. 뺄셈이라는 백신을 맞아야 한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우울증, 강박증 같은 정신병을 많이 앓는다. 부처님은 소욕지족(所欲之足), 즉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뺄셈을 알아야 덧셈과 곱셈을 알 수 있다. 뺄셈을 해야 인격 장애자가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노상의 붓다, 붓다의 제자들이 노상의 붓다를 잊고 왕자인 붓다를 강조한다. 그들이 왕자이고자 하는 욕심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지울 길이 없다. 노상의 붓다라는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의무이자 부채이다. 그러자면 건강해야 한다.


부채를 갚기 위해 건강하고 축복된 삶을 살기를 부처님께 간절히 발원합니다. 

 

 

혜천스님 - 초기불교전공 흥천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