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짐을 버려라

2017. 12. 17. 15:4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728x90


오래된 짐을 버려라


가진 것이 너무 많아
하나씩 하나씩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정리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해 오다
이제서야 묵은 일을 시작해 본다.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은
정말로 꼭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말하는데,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 속에 들기가 어렵다.

나는 때때로 간디가 말한
‘욕망이 아닌 필요에 의한 삶’에
내 소유물들을 대입시켜 보곤 한다.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욕망의 소산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필요'의 범주에 들어있는 것인가가 보인다.
'최소한의 필요'가 아닌 것들은
대개 욕망이 개입된 것들이기 쉽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다 보면
모든 물질마다 제각기 독특한
분별과 집착이 따르게 마련인데,
대부분 그로 인해 첫 생각 정리 대상이었던 것들이
다시금 '소유'의 범주로 슬그머니 들어오기 쉽다.

그래서 정리할 때는
마음을 잘 비추어 보아야
그 분별에 속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조금만 방심해 버리면
그놈의 분별과 소유욕의 불길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때때로 가지는 이런 정리의 시간이
내게는 일종의 삶의 점검의 때이기도 하다.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무게가 얼마 만큼인지,
그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인지
아니면 필요 이상으로 넘쳐나는 것들인지를
수시로 확인해 보는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다.

내가 이런
정기적인 정리와 버림의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출가에 있다.

오히려 출가를 결심하는 일은 쉬웠다.
오래 전부터 언젠가는 떠날 것을 예감했기에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 출가를 결심하고 집에 들어와
그간의 자취 생활에서 모아 놓았던
온갖 짐들을 정리하는 작업,
그 작업이 내겐
더욱 출가의 의미를 심어 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막상 집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려다 보니
모든 물건 하나하나마다
제각각의 애착과 추억들이 떠올랐다.
‘이건 누가 선물해 준 것이고,
이건 정말 어렵게 돈을 모아 산 것이고,
또 이건 내가 정말 아끼던 거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것인데’ 하는 등의 생각들이 떠오르며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홀가분하게 가려던 마음에
자꾸만 제동이 걸리는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것들 하나하나에
독특한 애착과 추억들이 함께 담겨 있기에
물건 하나를 정리하는 일은
그에 따른 애착과 추억들까지도 함께 버리는 작업이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면서 순간 내 마음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것이 출가구나.
작은 것 하나 하나에도
이렇듯 특별한 애착들이 서려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이러한 정리의 과정,
작은 것에서부터 집착을 버리는 과정,
비움과 나눔의 과정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출가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면서 또 다른 소유물들이 생겨나고
짐짝처럼 쌓여만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그 첫 마음을 떠올린다.
출가는 한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 해나가는 것이다.

매 순간 비움과 나눔의 정신이
내 안에 깃들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출가의 의미다.
그간에 쌓여 있는 짐을 보며
하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고 자위하며 살았지만
때때로 정신을 차리고 내 방 안을 되돌아보면
아차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초심으로 돌아가
정리의 작업, 출가의 작업을 시작해 보곤 한다.

요즘에 있어 내 정리에 가장 큰 장애물은
책장 가득 쌓여 있는 책들이다.
좋은 지식을 많이 쌓도록 해 주는 것이 양서가 아니고
마음을 비우도록 해 주는 것이 양서라고
내 입으로 얘기하고 다니면서도
정작 그 책들은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곤 했다.

처음 은사스님을 떠나 올 때
책이라고는 고작 두어 권이 전부였는데,
절에서 주지 소임을 살면서부터 쌓여간 책이
이제는 다른 절로 이사를 갈 때
차를 불러야 할 판이 되었으니
어지간하게도 쌓아뒀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지난 해 절을 옮길 때는
대대적인 정리 작업에 착수를 했다.
몇 십 박스나 되는 양의 책을 모아
인연 닿는 꼭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내고 나니
한결 짐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 그때 그 책’ 하고 펼쳐보고 싶은 책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이면에 홀가분한 존재감이
더 깊게 자리하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이 이와 같다.
많이 버리면 버릴수록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불편해지겠지만
너무 편리함만을 따르면
도리어 집착심만 커 갈 뿐이다.
참된 공부는
불편함을 이겨나가는 그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옛 선사들의 말씀을 되새길 일이다.

어디 그 뿐인가.
짐짝처럼 난잡하게 쌓여 있는 짐들은
그대로 우리의 마음 살림살이를 내비춰 준다.

쌓여 있는 것들이 많으면
그만큼 우리의 정신도 단정해질 수 없다.
쓰지 않고 쌓아두기만 한 짐들은
탁한 에너지 장을 형성하고
그것은 그대로 우리 마음을 탁하게 만들곤 한다.

꼭 필요한 것이
꼭 필요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말끔히 정리된 공간에서
비로소 맑고 향기로운 향내가 피어나오고
청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오래도록 한 공간에 머물다 보면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그 연유이다.

소유물이 줄어들고,
그 소유물들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수록
그 정신 또한 맑게 비워지는 것이다.
버릴 때는 어려워도 시원스레 버리고 나면
버린 만큼 자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지게 마련이다.
이런 자유로움은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것이지만,
또 누구나 한번의 '무소유'를 실천함으로써
쉽게 얻을 수도 있다.

누구나 이따금 한 번씩은
이런 정리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기적으로 이런 버림의 실천을 행하는 것도 좋겠다.
이렇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사거나 거저 얻게 될 때라도
함부로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훗날 버릴 것을 생각하므로
소유의 굴레 속에서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말로만 수행이 아닌
실질적인 무소유 방하착(放下着)의 수행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방안을 한번 휘휘 돌아보라.
방안 곳곳 집착과 욕망의 소유물들이 넘쳐난다.
지금 그 안에 살고 있는 나는
그 소유물들에 소유당하며 휘둘리고 있지 않은가
그로 인해 조금의 편리함은 느끼겠지만
도리어 더 큰 살뜰한 행복감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겨울 눈꽃이 이 산사를 또 뒷산 자락을
한창 투명하게 물들이고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피어오른 눈꽃의 고요한 잔치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아름다움이란
아마도 무소유에서 오는 호젓한 평화로움일 것이다.

지난 가을,
화사하게 이 산사를 물들였던 단풍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며 홀로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왠지 모를 안쓰러움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일 뿐,
때가 되어 나뭇잎을 떨군 나뭇가지는
홀가분한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낙엽을 다 떨구어 낸 무소유의 호젓한 가지만이
한 겨울 그 어떤 추위에도
결코 시들거리지 않고 우뚝 솟아
그 텅 빈 가지 위로
아름다운 꽃눈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 또한
때가 되면 훌훌 털어 버리고 일어나야
그 텅 빈 무소유 안에서 새로운 삶의 향기로움을
다시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이 겨울,
내가 소유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또 나를 소유하고 있는 이 모든 소유물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