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의 종교학자들은 종교를 '신과 인간의 재결합'이라고 보던 종래의 기독교 신학적 정의를 반성하고, 보다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정의를 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시도 중에서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바는 종교를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이라고 보려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폴 틸리히( Paul Tillich)와 같은 저명한 종교학자는 '종교란 한 사회의 궁극적인 관심에 지향된 신념과 실천의 체계'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일본 태생의 종교학자 키시모도(Kishimoto)는 '종교가 다른 문화적 활동으로부터 확연하게 구별되는 가장 특질적인 것은 인생의 궁극적 의미와 생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한 사회의 궁극적 관심' 또는 '생의 궁극적 의미와 해결' 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상생활에서 우리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만나게 되는 문제들은 의식주에 관한 것이다. 의식주의 해결없이는 인간의 생존은 지속될 수 없으므로 가장 시급하게 그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와 경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의식주 생활을 보다 평화롭고 공평한 질서 위에 안정시키려는데에 목적이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도 물질생활을 보다 윤택케 하려는데 뜻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라는 것도 의식주의 보다 안전한 확보를 위한 투쟁사라고 볼만하다. 짐승을 사냥하여 고기와 가죽을 얻던 때가 수렵시대이며, 농사에 착안하여 보다 안정된 생활에 정착하게 된 때가 농경시대이다. 종족간의 치열한 물자 쟁탈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힘의 결속을 꾀한 곳에 고대 국가의 형성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역사 형성은 현대에도 그 기본 성격을 조금도 달리하고 있지는 않다. 국제간의 정치 경제적 이해타산이 충돌할 때는 언제라도 무력 충돌이 발발할 가능성을 안고 있으며, 세계 평화와 인류의 번영을 외치고 있는 강대국들이 한편으로는 무서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의식주에 관한 것이며, 이것이 모든 인간 문화의 바탕이 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학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문제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의식주에 관한 문제에 속한 것일까. 종교라는 현상도 애초에 인간 사회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그러한 문제와 전혀 무관한 것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종교는 다른 문화적 활동과는 전혀 각도를 달리하고 있다.
종교에서 관심하는 바는 인간의 생존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조건에서 지속해 갈 것인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 속에 던져진 덧없는 인간의 생존 그 자체에 눈을 돌려, 그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의식주의 확보를 위한 인류의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왜 오늘에도 그것은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을까? 살아보려는 인간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결국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생존은 도대체 어떤 의의를 갖고 있단 말인가. 우주의 배후에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수수께끼가 깃들여 있는 듯하다. 덧없는 인간의 생존 그 자체에 눈을 돌려 종교적 성찰은 이리하여 우주의 본질과 기원에 관한 문제로까지 심화된다.
현대 종교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궁극적 물음'이란 바로 이러한 물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주는 데에 그 특질이 발견되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독일의 종교학자 요아킴 바하(Joachim Wach)는 종교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궁극적 본질에 관한 것, 우주와 세계에 관한 것, 세계 속의 인간이라고 말하고, 신학(神學).우주론(宇宙論).인간론(人間論)의 셋이 모든 종교적 사유의 중심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불교도 종교라면 인간의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답변을 해주고 있을 것이다. 그 답변은 어떤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베풀어 주고 있을까. 이 소 책자는 인간의 궁극적 문제에 대한 불교의 그러한 답변을 우주론.인생론.생활론의 3장으로 갈라 간단히 소개하려는 것이다. 먼저 불교의 우주론부터 살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