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불아카데미 선가귀감

2018. 4. 6. 23:4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당신이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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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리석은 자와 사귀지 않고 현명한 사람들과 사귀며 존경받을만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2 알맞은 장소에 거주하고 좋은 일에 힘써하며 올바르게 생활하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3 널리 배우고 좋은 기술 익히며 계율과 몸을 다스리고 말을 휼륭하게 하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4 부모님을 잘 모시고 배우자와 자식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일에 질서가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5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고 남을 돕고 바르게 행동하며 친척 간에 화합하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6 모든 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술을 매우 절제하며 덕을 쌓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ㄷ다.

7 탐진치로 물든 세상이지만 탐욕과 분노에 물들지 않고 마음을 안정시켜 흔들리지 않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8 마음을 억제하고 말을 조용하고 온화하게 하며 훌륭한 스님들을  찾아뵙고 지도 받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9 항상  겸손하고 존경하며 매사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알며 알맞은 때에 진리의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10 부처님의 법대로 마음을 다스리며 사성제에 확신을 가지고 실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 이것이 최상의 행복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길을 따르면 어디서든 실패하지 않고 모든 일에서  번영하리니

      우리들에게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행복이니라.



어느곳에 있든 실패하지않고

어느곳에 가든 평안하리니 최상의 행복

좋은 곳에 가고 좋은 곳에 있어야만나는 행복하다


믿음구족 계구족 보시관대함구족 통찰지구족(재물,명예,수명,천상)

불살생-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면 살생하지말고 방생하라

불투도-부자가 되고 싶으면 남의것 훔치지 말고 보시하라

불사음-존경받고 싶으면 사음하지말고 정행 몰바른 수행을 닦아라

불망어-남들이 믿게하려면 거짓말하지말고 진실한 말을 하라

믿음계율 복도닦기이다

마하는 큼이요

반야는 밝음이요

바라밀은 충만함이라

마하반야바라밀이 나요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나는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하다

가세가세 건너서 가세

애착하면 못가나니

몸과 마음 진짜 아니요

관찰자가 진짜 나라네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대면관찰 행복충만 아니가진못하리라 차차차


누가 나를 기쁘게해주기기를 기다리지말고

내가 먼저  나를남들을 기쁘게해주자




“그대는 이와 같이 자신을 닦아야 한다.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아는 것을 알기만 하리라.’ 라고.

이렇게 한다면, 그대는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때 거기에는 그대가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우다나 바히야경>

            

법화경의 팔대비유

 

약왕에게 말하노라. 내가 설한 경전 중에

이것저것 제쳐놓고 법화경이 제일이다.”

 

대승불교의 꽃 묘법연화경은 간단히 줄여 법화경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진흙탕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수면 위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과 같이, 혼탁한 세상 가운데서도 깨달음의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우리는 본래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중생은 없고, 다만 부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달과 같습니다. 때로는 초승달, 반달, 그믐달로 보이지만 달이 실제로 찌그러진 적은 없습니다. 달은 항상 보름달입니다. 다만 착시현상으로 초승달이나 반달로 보일 뿐입니다. 중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작고, 어둡고, 모자란 존재로 보일지라도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한 존재입니다.

법화경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쉽게 여덟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타는 집, 거지 아들, 약초, 화성, 옷 속 보석, 우물, 상투 속 구슬, 그리고 훌륭한 의사의 비유입니다.

불타는 집에서 놀이에 여념이 없는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준다고 한 것처럼, 여래는 중생의 아버지로서 일단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을 설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이요, 우리도 여래가 되어 중생구제에 전념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자신을 거지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구걸하지만, 실제로는 부처님의 아들딸입니다.

이렇게 법을 비 내리듯 차별 없이 설하지만 초목이 각자 근기대로 빗물을 받아들이듯이 중생들은 자기 깜냥대로 이해할 뿐입니다. 그래서 성불의 길이 멀고 험하다 생각해 엄두조차 내지 않습니다. 이를 위로하고자 변화로 된 성을 만들어 일시적으로 쉬어가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이미 엄청난 보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밖으로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지금 법화경을 만났다는 것은 방황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마치 우물을 파는데 젖은 흙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깨달음이 멀지 않았죠. 전륜성왕의 상투 속 구슬은 자신의 후계자에게만 주는 것처럼 법화경을 만난 이는 이미 부처님의 후계자입니다. 또한 훌륭한 의사가 약을 먹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타국에서 죽었다고 소문을 내어 약을 먹게 하는 것처럼, 부처님은 생멸하지 않습니다. 불생불멸의 경지에 계시면서 다만 중생교화위해 열반의 모습을 보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 세상 어떤 사람 법화경을 가진 자는 중생에게 내가 보낸 부처님의 사자로서

인간세상 보내어서 부처님일 하게 한다

.”

행불아카데미 당신이 행복입니다

- 강 의 계 획 서 -

1. 학습목표

건강이 으뜸가는 이익이요, 만족이 으뜸가는 재산이네,

신뢰가 으뜸가는 친척이요, 닙바나가 으뜸가는 행복이네.”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고 궁극적 행복으로 가는 두 가지 길, 관찰과 보시를 생활화한다.

 

2. 학습방향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사항을 차례차례 학습한다. 아울러 기본적인 불교의례를 몸에 익힐 수 있도록 한다.

1) 행복도 불행도 내 작품이다.

2) 내가 인()이요, 남이 연()이다.

3) 구걸하지 말고 창조하자.

4)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자.

5) 나는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이다.

6) 걸림돌이 디딤돌! 스트레스가 꽃을 피운다.

7) 모든 것은 한 때다. 걱정할 시간에 관찰하자.

8) 리셋! 크고 밝고 둥글게

9)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스스로를 비교하자.

10) 수행은 연습이요, 생활이 실전이다.

 

3. 교재 및 참고문헌

교재: 월호 저, 당신이 행복입니다, 불광출판사

부교재: 월호 편역, 본마음 참나, 도서출판 행불

           월호 저, 마하반야바라밀, 도서출판 행불

참고문헌: 월호 저,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불광출판사

            월호 저, 월호스님의 천수경 강의, 운주사

            월호 저, 행복도 내 작품입니다, 마음의 숲

            월호 저, 월호스님의 화엄경 약찬게 강설, 조계종출판사

            월호 편역, 붓다의 노래, 도서출판 행불

            월호 편역, 법화경 8대 비유, 도서출판 행불


4. 강의 및 실습일정: 개강 921()~종강 1214()

1: 강의계획 설명

2: 행불행자의 서원, 행복창조 10

3: ‘행복도 불행도 내 작품이다.’

4: 예불문, 삼귀의, 사홍서원

5: ‘내가 인이요, 남이 연이다.’

6: 108 참회발원

7: ‘구걸하지 말고 창조하자.’

8: 행불입문요점 강의

9: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자.’

10: 천수경요점 강의 

11: ‘나는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이다.’

12: 금강경요점 강의 

13: ‘걸림돌이 디딤돌! 스트레스가 꽃을 피운다.’

14: 묘법연화경요점 강의

15: ‘모든 것은 한때다. 걱정할 시간에 관찰하자.’

16: 화엄경 약찬게요점 강의

17: ‘리셋! 크고 밝고 둥글게

18: 붓다의 노래요점 강의

19: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20: 게송발표

21: ‘수행은 연습이요, 생활이 실전이다.’

22: 게송발표

23: 수계의식

24: 품계증 수여 및 종강


 

수능엄경강의 요약

 

* 수랑가마(Suramgama): 필경(畢竟) 견고(堅固)

 

첫째, 見道分; 七處徵心, 遣拂客塵, 歇卽菩提

* 추측하고 헤아리는 것은 너의 마음이 아니다: 認賊爲子

* 달마와 혜가의 대화: 覓心了不可得

* 너희들은 아난의 머리가 스스로 요동하였을지언정 보는 성품은 요동이 없었음을 관해야 하며, 또 나의 손이 펴졌다 쥐어졌다 했을지언정 보는 성품은 펴졌다 쥐어졌다함이 없음을 관해야 한다.

* 파사익 왕이시여, 쭈그러진 것은 변하는 것이요, 쭈그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기에, 변하는 것은 없어지겠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원래 생멸이 없어 항상한 것입니다.

* 오음· 육입· 십이처· 십팔계가 다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기고,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하게 없어지는 것이다. 자못 이 생멸거래가 그대로 본래 여래장으로서 상주묘명하고 부동원만한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지 못하고, 성품이 진실하고 항상한 그 자리에서 거래 미오 생사를 구하려하니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 무명을 쉬면 곧 보리(歇卽菩提), 수승하고 청정한 밝은 마음이 본래 법계에 두루 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니, 어찌 애써 수고로이 닦고 증득함을 빌리겠는가? (本無修證 因妄有修)

 

둘째, 修道分; 耳根圓通, 反聞聞性, 攝持軌則

* 아난아, 소리는 듣는 가운데 스스로 생멸이 있을 수 있으나 너의 듣는 성품은 소리가 생기고 소리가 멸하더라도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다.

* 대중이여, 아난이여, 그대들의 전도된 들음을 돌이켜 듣는 성품을 듣는다면(反聞聞自性), 그 성품은 바로 최상의 도를 이루게 될 것이니 원통의 진실이 이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부처님들의 한결같은 열반의 문에 이르는 길이어서 과거의 모든 여래도 이 문으로 이미 성취하셨고, 현재의 모든 보살도 지금 각기 원만하게 이 문으로 들어가며, 미래의 수행하는 사람도 응당 이러한 법문을 의지할 것이며, (문수보살)도 그 가운데서 증득했으니 오직 관세음 혼자만이 아니다.

* 만약 숙세에 습기가 있어 소멸하기가 어렵거든, 너는 그 사람에게 일심으로 나의 불정광명인 마하 실달다 반달라(大白傘盖)의 한없이 신비로운 이 주문을 외우게 하라.

 

셋째, 證果分; 十二類生, 五十七位

* 중생전도와 세계전도. 삼세와 사방이 화합하여 서로 거두어들이기 때문에 변화중생이 12종을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윤회하는 전도상을 의지하기 때문에 세계에 난생 태생 습생 화생 유색 무색 유상 무상 비유색 비무색 비유상 비무상이 있는 것이니라.

 

* 57: 간혜지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사가행 십지 등각 묘각

넷째, 結經分; 五種經名

* 대불정 실달다 반다라 무상보인 시방여래 청정해안

* 여래밀인 수증요의

* 제보살만행 수능엄

 

다섯째, 助道分; 五十辨魔

* 50辨魔: 수행하는 도중 오온이 녹아내리면서 생기는 50가지 경계

1. 色陰: 몸뚱이 착이 줄어들면서 벌어지는 열 가지 경계

2. 受陰: 감수작용이 예민해지면서 감정과 본능에 충실해지는 열 가지 경계

3. 想陰: 생각이 밖의 이미지에 애착하여 귀신 들리는 열 가지 경계

4. 行陰: 자신의 깜량으로 계교하고 헤아림으로써 편협한 논리에 떨어짐

5. 識陰: 인식작용의 한계에 머물러 불()지견을 열지 못함

 

* 이상의 50가지 현상에 대하여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짓지 아니하면 좋은 경계라고 할 수 있으나,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견해를 짓는다면, 곧 많은 마구니들의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理卽頓悟 乘悟倂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쉬는 것이 깨달음이다 <歇卽菩提>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

인간은 원래 병을 낫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의사는 내 안에 있다.

내 안의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병은

그 어떤 명의도 고칠 수 없다.

- 히포크라테스 -

 

 

 

 

 

 

 

 

대한불교 조계종 행불선원

 

 

능엄경에서는 '쉬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쉬는 것이 곧 깨달음일까요?

 

 

세상은 허공의 꽃과 같고, 그림 속의 떡과 같습니다.

 

이것들은 물론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없는 것이지만, 내 눈이 피로하니까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허공의 꽃이 실재한다고 보는 착시현상은 실재합니다.

 

이른 바 실체는 없지만, 현상은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착시현상을 쉬게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착시현상을 쉬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착시와 착각의 근본에는 '나'가 있습니다.

 

몸뚱이가 나라고 하는 생각, 분별심이 내 마음이라고 하는 착각이지요.

 

이러한 몸뚱이着과 분별심을 내려놓고 쉬는 연습을 통해서 최상의 휴식인

 

無我를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요?

 

 

구체적으로 다음의 6단계별로 강의 및 실습을 병행합니다.

 

첫째, 내려놓기

 

둘째, 하나되기

 

셋째, 바라보기

 

넷째, 넓혀가기

 

다섯째, 그려넣기

 

여섯째, 전해주기

 

 

첫째, 내려놓기

 

모든 존재는 변화하기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진다네.

일어남 사라짐이 사라진다면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네.

- 열반경 -

 

개요: 힐링의 첫째단계는 내려놓기이다. 만병의 근원인 몸뚱이 착과 번뇌 망상을 일단 내려놓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무아법을 익히고 통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해체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한다. 이렇게 관찰하면 그는 곧 육근(六根)을 싫어하고 육근을 싫어하기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애착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된다.

 

실습 1단계:

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가 아니다.

귀도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가 아니다.

코도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가 아니다.

혀도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가 아니다.

몸도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가 아니다.

뜻도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가 아니다.

실습 2단계:

108배와 함께 108참회발원을 시행한다.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심공부다. 지나온 과거를 참회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다짐하는 발원이야말로 마음공부의 시작인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점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내 몸은 얼마나 건강한가? 내 마음은 얼마나 건전한가?

몸소 108참회발원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본다.

 

 

둘째, 하나되기

불도를 배운다는 것은 나를 배우는 것이다.

나를 배운다는 것은 나를 잊는 것이다.

나를 잊는다는 것은 모든 사물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 정법안장 -

 

개요: 이 몸과 마음이 나라고 하는 분별심에서 벗어나면, 이 세상 모두가 나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조그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하늘에 떠가는 구름과 새소리, 물소리가 모두 나인 것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말의 참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분명하게 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중생이라 부르고 어느 때는 온갖 생물이라 부르는 것이 모두 중생이며 일체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온갖 존재가 그대로 불성이며, 그 온갖 존재를 중생이라 한다.

 

실습 1단계:

계곡의 물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며

푸른 산의 빛깔은 청정한 법신이로다.

밤새 외운 팔만사천게송을

훗날 어찌 남에게 전할 수 있으랴?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동화되는 상상을 한다. 풀, 나무, 숲, 구름, 하늘, 새소리, 물소리 등과 하나 되는 연습을 한다. 자신의 몸뚱이가 풀이나 나무의 형상이 되고, 풀이나 나무의 입장이 되어 사물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이 연습이 잘 되면 자연히 복식호흡을 하게 되고, 번뇌 망상이 점차 쉬어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실습 2단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자신의 육근을 발송한다. 내가 온 별로 나를 돌려보내는 것이다. 나는 과연 저 수많은 별 가운데 어느 별에서 왔을까? 자신의 별을 찾아 자신을 돌려보내고, 고향 별과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한다. 빛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셋째, 바라보기

 

몸과 마음을 관찰하지 않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몸과 마음을 관찰하며

하루를 사는 것이 훨씬 더 낫다.

- 법구경 -

 

개요: 그대는 이와 같이 자신을 닦아야 한다.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아는 것을 알기만 하리라.’ 라고.

이렇게 한다면, 그대는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때 거기에는 그대가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우다나 바히야경>

 

실습 1단계: 몸 보기

1. 자신의 아랫배를 관찰한다. 아랫배가 일어날 때 ‘일어남’, 사라질 때 ‘사라짐’이라고 복창한다. 이와 같이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에 대하여 다만 알아차린다.

2. 눈 귀 코 혀 몸을 지켜본다.

3. 볼 때는 ‘본다’고 알아차리고, 들을 때는 ‘듣는다’고 알아차린다.

걸을 때는 ‘걷는다’고 알아차리고, 멈출 때는 ‘멈춘다’고 알아차린다.

4. 유쾌하거나 불쾌한 기분을 느낄 때는 ‘느낀다’고 알아차린다.

실습 2단계: 마음보기

1. 자신의 마음을 코 밑에 두고 숨을 들이쉴 때 ‘들이쉰다’ 내쉴 때 ‘내쉰다’라고 복창한다. 길게 들이쉴 때 ‘길게 들이쉰다’ 길게 내쉴 때 ‘길게 내쉰다’라고 연습한다.

2.. 욕심이 일어나면 ‘욕심이 일어났다’고 알아차린다. 분노가 일어나면 ‘분노가 일어났다’고 알아차린다. 이처럼 탐욕, 성냄, 어리석음, 억울함, 두려움 등이 일어나면 다만 알아차릴 뿐, 더 이상 붙잡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3. 밖으로는 이러한 현상들을 관찰하는 카메라맨이 되고, 안으로는 있는 그대로 읊어주는 나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싥습 3단계: 남 보기

1. 몸과 마음은 순간적인 것이라 이미 사라져버렸거늘

지금 그대는 누구에게 화를(탐을) 내는가?

그에게 고통(기쁨)을 주려해도 그가 없다면

누구에게 고통(기쁨)을 주겠는가?

그대의 존재가 바로 고통(기쁨)의 원인이거늘

무엇 때문에 그에게 화를(탐을) 내는가?

2. 그대가 그에게 화를(탐을) 낼 때

무엇에 대하여 화를(탐을) 내는가?

눈에 대하여 화를(탐을) 내는가?

아니면 귀 코 혀 몸 뜻에 대하여 화를(탐을) 내는가?

육근의 무더기에 대하여 화를(탐을) 내는가?

 

넷째, 넓혀가기

 

살아있는 생명이면 어떤 것이건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누구도 남들이 잘못되기를 바라지 말라.

원한에서건 증오에서건.

 

어머니가 하나뿐인 자식을

목숨 바쳐 위험에서 구해내듯,

만 중생을 향한 일체 포용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지켜내라.

- 자애경 -

 

개요: 전 우주를 끝까지 모두 감싸는 사랑의 마음을 키운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를 넘어서 눈앞에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와 하나 되는 연습을 한다. 참다운 무아(無我)는 대아(大我)이다. 이른 바, 자신의 경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온 우주가 내 집이요, 모든 생명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실습:

나와 내 가족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그가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내가 미워하는 그가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서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하하하 웃으며 행복하기를!

지금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호호호 웃으며 행복하기를!

지금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깔깔깔 웃으며 행복하기를!

지금 서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껄껄껄 웃으며 행복하기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하하하 호호호 웃으며 행복하기를!

내가 미워하는 그가 어려움에서 벗어나 깔깔깔 껄껄껄 웃으며 행복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그가 어려움에서 벗어나 하하하 호호호 깔깔깔 껄껄껄 웃으며 행복하기를!

나와 내 가족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하하하 호호호 깔깔깔 껄껄껄 웃으며 행복하기를!

우하하하! 우하하하 하하! 우하하하 하하하하!

 

 

 

다섯째, 그려넣기

 

일체의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응당 법계의 성품을 관찰하라.

모든 것은 오직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마음은 마치 그림쟁이 같아서

능히 모든 세상을 그려내나니,

일체 존재가 이로부터 생겨나

무엇이든 만들어내는구나.

- 화엄경 -

 

개요: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본마음과 그냥 마음. 그냥 마음이라고 할 때, 대개는 분별심을 말한다. 이것은 나와 너, 선과 악, 사랑과 증오로 나누는 마음을 말한다. 본마음은 성품이라고도 하며, 나와 너를 분별하기 이전의 마음을 말한다. 위의 게송에서 말하는 마음은 본마음을 의미한다. 본마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마치 하얀 도화지위에 무엇이든 그리는 대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 분별심은 할 줄 아는 게 딱 한 가지다. 나누고 쪼개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능력한 분별심이 진짜 자신의 마음인 줄 착각한다. 그래서 소아(小我)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참 나는 무아(無我)요, 대아(大我)인 것이다.

 

실습 1단계:

몸은 내가 아니야

마음도 내가 아니야

성품이 바로 나야.

 

성품은 아프지 않아.

성품은 우울하지 않아.

성품은 쓸쓸하지 않아.

성품은 질투하지 않아.

성품은 괴롭지 않아.

 

성품은 건강해.

성품은 명랑해.

성품은 따뜻해.

성품은 함께해.

성품은 기뻐해.

 

실습 2단계: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한다.

그 소리를 듣는다.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

이 성품이 어떤 걸까, 어떻게 생겼을까?

관찰자를 관찰한다.

 

 

 

여섯째, 전해주기

만약 어떤 사람들이

항하사와 같은 수의 목숨으로 보시한다 할지라도

이 경중에 네 마디의 글귀라도 받아 지녀

남을 위해 설한다면 그 복덕은 훨씬 더욱 뛰어나다.

- 금강경 -

 

개요: 지나간 과거를 근심하지 말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

지금 이 순간에도 머무르지 않는다면

그대는 평화롭게 살아가리라.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놓친 것에 초점을 맞춘다. 멀리 있는 행운을 좇지 말고 가까이 있는 행복을 알아차리자.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자.

전할수록 알게 되고, 베풀수록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도 닦기와 복 닦기이다.

 

실습: 개인별 혹은 단체별로 게송낭송을 한다. 각자 저마다 좋아하거나 기억에 남는 게송을 선택하여 대중들 앞에서 암송하고, 이에 관해 3~5분 가량 설명한다. 이때 노래나 춤 등의 퍼포먼스를 곁들이면 더욱 좋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게송의 내용을 각인시킬 수 있다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전 우주를 그 높은 곳 그 깊은곳그넓은 곳,

끝까지모드를 감싸는 사랑의 마음을 키워라

미움도 적의도넘어선 잔잔한 사랑을

내종교를 믿는 사람이 어여뻐서 사랑

내종교를 믿지않는 사람도 가엾어서 사랑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도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통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고통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고통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행복하세요.

1. 행불행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문제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를 잘 보시고 네 가지 답변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 자가수도(집 자체에서 모터펌프를 사용해 지하수를 공급하는 장치)에서 흙탕물이 계속 나온다. 이에 대한 대처방안은?

1)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다.

2) 신에게 기도한다. 제발 맑은 물이 나오게 해달라고.

3) 흙탕물을 먹는다. 이것도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4) 근본원인을 찾아 해결한다. 맑은 물이 나올 수 있도록.

 

 자, 여러분은 이 가운데 어떤 답을 택하겠습니까? 한번 손을 들어보도록 할까요? 1번이 답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또 2번이 답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아님 3번이 답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마지막으로 4번이 답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2. 이 가운데 1번 답변은 바로 숙명론을 말합니다. 모든 일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지요. 모든 일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면 나의 노력이나 공부조차 부질없는 짓이 되겠지요.

2번 답변은 신의설(神意說)입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맑은 물이 나오려면 신에게 구걸해야 하는 것입니다.

3번 답변은 고행주의입니다. 고행을 통해서 업장을 맑힐 수 있다고 보는 견해지요.

 

 이상 세 가지 답변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겠지만, 정확히 불교는 아닙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네 번째 답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근본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게송이 이것입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

여래는 그 원인에 대해 설하신다.

원인이 소멸한 열반에 대해서도,

여래께서는 또한 설하신다.

 

3. 얼마 전 제가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이천 행불선원 수도에서 흙탕물이 나왔습니다. 이곳은 양수기로 지하수를 뿜어 올려 사용하고 있는 곳입니다. 처음에는 비가 많이 내려 그런가 생각했지요. 하지만 비가 그치고도 계속해서 흙탕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양수기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양수기가 설치된 통속으로 구멍이 뚫려져 땅 위의 흙탕물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구멍을 틀어막아 더 이상 흙탕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지나니 수도꼭지에서 맑은 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탁한 물이 나오는 원인을 알아내어 조치한 결과, 맑은 물이 나오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불교입니다.

 

4. 저도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겠지요. 무작정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거나, 부처님께 맑은 물이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부처님, 제발 맑은 물이 나오게 해주세요. 플리즈~.

혹은 탁한 물을 마셔가면서 이것도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마시다보면 업장이 다해 맑은 물이 나오리라고 막연히 믿고 있을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것은 탁한 물이 나오는 원인을 찾아내서, 그 원인을 소멸시켜 맑은 물이 나오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5. 대장경 천년의 해를 맞이하여 다채로운 축하행사가 펼쳐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축하는 경전을 현대적으로 풀이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시대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진정 경전을 살리는 일입니다.

 

모든 존재는 변화하기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진다네.

일어남 사라짐이 사라진다면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네.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행불행자여러분, 임진년이 밝았습니다. 묵은 해와 새해가 따로 없지만, 따로 구분해서 재발심하는 것은 진공묘유의 소식입니다. 금년에는 행불아카데미를 통해서 많은 분들께서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몸과 마음을 관찰하지않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몸과 마음을 관찰하며

   하루를 사는 것이 훨씬 더 값지다.'

 


<행불아카데미> 강의계획안

 

1. 학습목표: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봐야, 자신의 것은 반푼어치도 없네. 스스로 수행하지 않고서, 많이 듣기만 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다.” 한국불교의 전통인 선교겸수(禪敎兼修)의 가풍에 따라 이론과 실기를 병행한 수행교실을 연다. 참선의 목표이자 방법은 바로 견성(見性)에 있다. 성품을 보는 것이다. 이처럼 불교의 수행은 결국 ‘보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닦는다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몸을 보고 마음을 보며, 성품을 본다.

 

2. 학습방법: 한국불교의 전통인 간화선수행은 물론, 각각의 성향에 따른 다양한 수행방법을 공부하고 체험하도록 한다. 각각의 수행법에 대한 구체적 설명과 실습을 통해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수행이 되도록 한다. 저마다의 수행체험을 공고히 하고, 사회적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3. 학습내용: 초기불교의 명상법에서 참선에 이르기까지의 발달과정에 따라 크게 열 가지 주제로 나누어 총 40회에 걸쳐 강의 및 실습을 병행한다. 대체적 내용과 주요인용문헌은 다음과 같다.

 

1) 삼보에 대한 명상 ; 좌선의, 보배경, 빌라마경, 삼귀의, 오계

2) 몸 보기1·2·3 (부정관) ; 청정도론, 담장밖경, 늙음경, 화살경

3) 마음보기1·2 (수식관) ; 청정도론, 제행무상의 게송, 대념처경

4) 마음보기3 (자비관) ; 자애경, 행복경, 법구경, 천수경

5) 성품 보기1 (조사선) ; 육조단경, 금강경, 마조어록

6) 성품 보기2 (묵조선) ; 법화경, 육조단경, 정법안장

7) 성품 보기3 (간화선) ; 참선곡, 선가귀감, 능엄경, 선문염송

8) 행불수행1 (자기발견) ; ‘그릇이론에 의한 정예불자교육’

9) 행불수행2 (자기창조) ;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세어본 소만 존재한다’

10) 행불수행3 (수행불행) ; 십우도, 영화 속 불교여행, 스토리텔링

 

목 차

제 1강 좌선의

제 2강 붓다에 대한 명상

제 3강 담마에 대한 명상

제 4강 승가에 대한 명상

제 5강 삼귀의•오계 수지

제 6강 몸보기Ⅰ(무상관)

제 7강 몸보기Ⅱ(부정관1)

제 8강 몸보기Ⅱ(부정관2)

제 9강 몸보기Ⅲ(죽음에 대한 명상1)

제10강 몸보기Ⅲ(죽음에 대한 명상2)

제11강 마음보기Ⅰ(수식관1)

제12강 마음보기Ⅰ(수식관2)

제13강 마음보기Ⅱ(대념처경1)

제14강 마음보기Ⅱ(대념처경2)

제15강 마음보기Ⅲ(자비관1)

제16강 마음보기Ⅲ(자비관2)

제17강 성품보기Ⅰ-조사선1(육조단경)

제18강 성품보기Ⅰ-조사선2(육조단경)

제19강 성품보기Ⅰ-조사선3(금강경)

제20강 성품보기Ⅰ-조사선4(마조어록)

제21강 성품보기Ⅱ-묵조선1(법화경)

제22강 성품보기Ⅱ-묵조선2(정법안장)

제23강 성품보기Ⅱ-묵조선3(정법안장)

제24강 성품보기Ⅱ-묵조선4(정법안장)

제25강 성품보기Ⅲ-간화선1(참선곡)

제26강 성품보기Ⅲ-간화선2(선가귀감)

제27강 성품보기Ⅲ-간화선3(선가귀감)

제28강 성품보기Ⅲ-간화선4(선문염송)

제29강 행불수행Ⅰ(참회)

제30강 행불수행Ⅰ(발원)

제31강 행불수행Ⅰ(기도)

제32강 행불수행Ⅰ(참선)

제33강 행불수행Ⅱ(십우도1)

제34강 행불수행Ⅱ(십우도2)

제35강 행불수행Ⅱ(영화속 불교여행 1)

제36강 행불수행Ⅱ(영화속 불교여행 2)

제37강 행불수행Ⅲ(스토리텔링 1)

제38강 행불수행Ⅲ(스토리텔링 2)

제39강 행불수행Ⅲ(게송낭송발표 1)

제40강 행불수행Ⅲ(게송낭송발표 2)

그대여, 진정 행복을 원하는가?

 

행복은 붓다가 세상에 나심이요,

행복은 성스런 진리를 배움이며,

행복은 붓다의 제자들이 서로 화합함이라.

더욱 큰 행복은, 위의 셋이 잘 조화됨이라.

 

  누구나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아야합니다. 붓다, 담마, 상가, 이 셋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보배입니다.

  행복감을 가리키는 지수인 행복지수는 소유를 분자로 하고, 욕망을 분모로 합니다. 즉 행복지수 = 소유 / 욕망 인 것이지요. 이에 따르면, 사람들은 소유가 많아질수록, 또는 욕망이 적어질수록 행복감을 크게 느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는 첫째 방법은 소유를 늘리는 것입니다.

  소유를 늘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복(福)을 닦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부유해지려면 인색하지 말고 보시하라. 고귀해지려면 시기 질투하지 말고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라. 아름다워지려면 성내지 말고 자애롭게 대하라.’

이야말로 부귀와 미모를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비결인 것입니다. 베푸는 마음 연습하면 부자가 되고,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는 마음 연습하면 고귀해지며, 아름다운 마음 연습하면 아름다워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하여 아무리 소유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욕망이 남아있는 한 행복지수가 무한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 궁극적인 행복을 얻으려면 행복지수가 무한대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결국 욕망이 제로가 되어야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욕망을 제로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도(道)를 닦는 것입니다. 도의 핵심은 몸 보기, 마음보기, 성품보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마음을 관찰하며, 성품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물거품처럼 허무하고,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실체 없음을 깨닫는다면, 그는 능히 감각적 쾌락의 화살을 꺾으리니, 죽음의 왕도 그를 보지 못한다.’

  몸뚱이는 해체해서 보며, 마음은 묶어서 봅니다. 그리고 성품은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성품은 공(空)한 것입니다. 텅 비어 있기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합니다. 내 작품입니다.

 

   결국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비결은 무아(無我)법에 통달해야한다는 것이지요. 그나마 복을 닦거나 도를 닦는 것이 부질 있는 것이고, 그 외의 것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고 꿰뚫어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진짜 아버지인가? (발췌본)

1. 나는 꿈이 있죠

 

나는 꿈이 있죠. I have a dream

사랑할 노래가 있죠. a song to sing

노래를 부르면 뭐든 견딜 수 있죠. To help me cope with anything

동화의 마법을 믿기만 한다면 If you see the wonder of a fairy tale

미래는 우리의 것. You can take the future even if you fail

 

* 샘 카마이클, 빌 앤더슨, 해리 브라이트, 이 세 명의 남자에게 소피는 청첩장을 부친다. 엄마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셋이 모두 아버지 후보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십여 년 전 소피의 엄마인 도나는 샘 카마이클과 여름밤의 로맨스를 만들지만 샘은 약혼녀에게로 떠나버린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만난 빌 앤더슨과 사랑을 나누고, 다시 해리 브라이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세 남자는 모두 초대장을 받고 소피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리스의 아름다운 섬 칼로카이리로 오게 된다.

**

나는 서원이 있죠. I have a vow

사랑할 게송이 있죠. a chant to sing

게송을 외우면 뭐든 견딜 수 있죠. To help me cope with anything

자기창조의 마법을 믿기만 한다면 If you see the wonder of a self created

미래는 우리의 것. You can take the future even if you fail

 

불교에서는 꿈을 서원誓願이라고 말한다. 맹세의 바램인 서원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이자, 미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비결이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자는 과거 생에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여래가 되기 위한 십대발원문도 있다. 보현보살에게는 열 가지 행원이 있다. 승만부인에게는 10대 서원이 있으며, 위사카부인에게는 팔대서원이 있었다. 나의 서원은 무엇인가?

 

2. 누가 진짜 아빠인가?

* 엄마의 최초 연인이었던 샘 카마이클, 엄마에게 호텔을 물려준 소피아가 왕고모인 빌 앤더슨, 결혼식 비용을 대려는 해리 브라이트, 이 가운데 누가 진정 소피의 아빠인가? 만나보면 알 것 같았지만, 막상 대면해도 알 수가 없었다. 소피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아빠후보 셋을 다 불렀지만, 누가 진정 아빠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셋 다 자신이 소피의 아빠라고 생각하고 결혼 입장식에 손잡고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누가 진정 아빠인가?

**

사리자여, 말하노니 나도 또한 그와 같아

성인중의 성인이며, 이 세간의 아버지요,

일체 모든 중생들이 모두 나의 자식이라. (법화경 비유품)

 

불교에는 삼신불의 개념이 있다. 부처님에게는 크게 세 가지 몸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이 그것이다. ‘법을 보는 자가 나를 보고, 법을 보지 못하는 자는 나를 보지 못한다.’는 개념이 바로 법신불이다. 여기에서의 법이란 바로 연기법을 뜻한다. 즉 연기법을 보는 이는 법신불을 보는 것이요, 연기법을 보지 못하는 이는 법신불을 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육신은 라자가하에 계시면서 깃자꾸따산으로 광명의 모습을 나투어 왁깔리의 앞에 나타나셨다. 이렇게 광명으로 나투신 부처님이 바로 보신불이다. 이처럼 법으로서의 부처님인 법신불, 광명으로 나투신 부처님인 보신불, 몸뚱이로 나투신 부처님인 화신불, 이 셋 가운데 어떤 분이 진짜 부처님일까?

 

3. 나는 누구인가?

* 소피는 마침내 엄마 손을 잡고 결혼식에 입장한다. 그곳에서 20년 동안 기다려온 아빠가 3종 세트로 생기게 된다. 서로 아빠인 줄 알았던 세 남자가 각각 1/3짜리 아빠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소피가 진정 찾고자 했던 것은 아빠라기보다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결혼을 미루고 자기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

몸뚱이와 마음은 참된 것이 아니요, 마침내 허망한 연緣일 뿐이며,

본마음 참 나만이 청정하여 널리 끝이 없도다.

일천 강에 물이 있으면 일천 강에 달이 비치고

하늘 만 리 구름 없으면 만 리가 다 하늘인 것을. (금강경오가해)

 

화신은 몸뚱이요, 보신은 마음이다. 법신은 본마음 참 나를 말한다. 몸뚱이와 마음은 강물에 비친 달과 같으며, 본마음인 성품은 온 천지에 그득하다. 실체가 없이 허망한 몸뚱이와 마음만 부여잡고 허송세월할 것이 아니라, 본마음을 속히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신과 보신이 결코 소중하지 않다거나 필요 없는 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진정 필요 없다면 아예 나투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각각 1/3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도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성품에 대해서 각각 1/3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국 아버지 아닌 분이 없고, 나 아닌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4. 사랑의 마음을 키워라

그대 외로울 때, 연인이 떠났을 때

날 불러줘요.

기회를 잡아봐.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 할께요.

날 믿어 봐요.

실망 안 시킬게.

기회를 잡아봐. 기회를 잡아봐.

* 딸을 대신하여 결혼을 하게 된 도나와 샘.

모든 사람들은 행복에 겨워 춤을 추고 마침내 비너스의 샘이 터진다.

**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하나뿐인 자식을 목숨 바쳐

위험에서 구해내듯

만 중생을 향한 일체 포용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지켜내라.

전 우주를, 그 높은 곳

그 깊은 곳, 그 넓은 곳

끝까지 모두를 감싸는

사랑의 마음을 키워라.

미움도 적의도 넘어선

잔잔한 그 사랑을. (자애경)

 

부처님께서 사왓티에 계실 때, 오백 명의 비구들이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먼 길을 걸어 어느 숲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숲에는 목신들이 살고 있었다. 비구들이 우기 삼 개월을 여기서 지낸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목신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스님들이 여기에 머문다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나무에 올라가 지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지만 땅바닥에서 지내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이 스님들을 쫓아버릴 좋은 방법은 없을까?”

목신들은 낮에는 선방에서, 밤에는 잠자는 꾸띠에서, 또는 경행대 끝에서 목 없는 귀신이나 다리 없는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소름끼치는 귀곡소리를 질러대며 비구들을 놀라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구들은 기침과 재채기 그리고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결국 비구들은 부처님께 되돌아가 사연을 말씀드렸지만, 부처님께서는 되돌아가게 하셨다.

“비구들이여, 처음에 갈 때는 무기가 없이 갔지만, 이번에는 무기를 가지고 가거라.”

“부처님이시여, 무슨 무기입니까?”

“내가 새로운 무기를 주겠다. 이 무기를 가지고 가야한다.”

부처님께서는 자애경을 설하셨다.

비구들이 숲 밖에서 자애경을 합송하면서 숲으로 들어가자 숲속에 사는 목신들의 마음에 비구들에 대한 따사로운 감정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목신들은 몸을 나타내어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가사와 발우를 받아들었다. 비구들의 손과 발을 닦아드리고 사방에 호위를 서며 비구들을 보호했다. 비구들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주의 깊게 마음 챙기며 무상하고 괴롭고 고통스런 몸과 마음의 본질적 특성을 통찰하였다.

“이 몸은 부서지기 쉽고 실체가 없는 것이 마치 질그릇 같구나!”

부처님께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치 그들 앞에 앉아있는 것처럼 광명의 모습을 나투시고 여섯 색깔의 빛을 놓으면서 말씀하셨다.

 

이 몸은 항아리처럼 부서지기 쉬우니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굳건하게 지켜라.

지혜의 칼로 마라를 물리치고

물리친 뒤에도 굳건하게 보호하며

크고 작은 얻음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40)

이 설법 끝에 비구들은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

분노는 참으면 병이 되고, 터뜨리면 업이 된다. 바라보면 사라진다.

실상무상(實相無相)에 입각한 자비는 최상의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애삼매를 닦아야 한다. 자애삼매를 닦는 구체적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다운 모양은 고정된 모양이 없음을 터득한다.

그대가 그에게 화를 낼 때, 무엇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머리털을 대하여 화를 내는가?

아니면 몸 털, 손발톱, 이빨, 살갗을 대하여 화를 내는가?

오온의 무더기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몸과 마음의 존재는 순간적인 것이라 이미 사라져 버렸거늘,

지금 그대는 누구에게 화를 내는가?

그에게 고통을 주려해도 그가 없다면, 누구에게 고통을 주겠는가?

그대의 존재가 바로 고통의 원인이거늘 무엇 때문에 그에게 화를 내는가?

 

둘째, 본격적으로 자애삼매를 닦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자기 자신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눈을 감고 떠올린 자신의 모습을 향해 다음과 같이 반복한다.

내가 어려움(고통, 번민)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다음에,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했을 때를 기억해서 그 이미지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전면 1미터 앞에 나타나게 한다. 그 사람이 전면에 분명히 보일 때, 다음과 같이 그 사람을 향해서 자애심을 닦는다.

그가 어려움(고통, 번민)에서 벗어나기를!

그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이런 식으로 계속 자애심을 닦으면서, 중립적인 사람, 미워하는 사람들로 영역을 확장해나간다. 경계 허물기를 연습한다.

모든 남성(여성, 동물, 존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이 자리(서울, 지구, 우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셋째, 이상과 같이 자애수행을 닦으면 열한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편안하게 잠들고, 편안하게 깨어나고, 악몽을 꾸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간 아닌 자들도 좋아하고, 신들이 보호하고, 불이나 독이나 무기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마음이 쉽게 삼매에 들고, 얼굴빛이 밝고, 혼란 없이 죽고, 범천에 태어난다.

****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은 결국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하는 자가 용서받으며, 사랑을 베푸는 자가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인과법을 굳게 믿어야 한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것이 진리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등불을 받들어 공양을 올리면 여덟가지 공덕이 있다.

밝은 등불처럼 세상을 밝히고,

태어나는 곳마다 눈병이 생기지 않고,

천안통을 얻으며,

선과 악을 가리는 지혜를 얻고,

어리석음의 어둠을 없애며,

지혜의 광명을 얻고,

목숨을 마치면 천상에 태어나며,

열반을 빨리 얻게 되느니라."

 

또한 이렇게 설법하셨습니다.

"보시할 때 그것이 많거나 적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 원을 세우지 않으며, 믿는 마음도 없으면,

그 과보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정성껏 마음을 쓰고 차별을 두지 않으며

후세에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서원하면

그 과보는 훌륭한 것이다."

 

빈자의 일등으로 유명한  난타라는 여인도 구걸한 돈으로 기름을 사서 자신의 등을 걸면서 서원했습니다.

"저는 너무 가난하여 이 작은 등불로 부처님께 공양하나이다.

이 공덕으로 내생에는 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둠을 없애지이다."

 

이러한 서원의 힘으로 모든 사람의 등불이 꺼질 때 난타의 등은 꺼지지 않았으며,

마침내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등광불이라는 부처님이 되리라는 예언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등불을 공양올리며 반드시 서원을 세워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불교는 발원의 종교입니다.

행불행자 여러분!!!

다함께 진실의 맹세를 하고

삼보에 대한 명상을 외웁시다.

 

우리는 진실로 삼보에 귀의합니다.

이 진실의 맹세에 의한 초월적인 힘으로

지구촌의 재앙이 줄어들고 마침내 소멸하여지이다.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시며

바르게 모두 아는 분이시며

지혜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이시며

세상을 잘 아는 분이시며

가장 높은 분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이시며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며

깨달으신 분이시며

가장 존귀한 분이시다. 

 

법은

부처님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혜로운 자들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붓다의 제자들인 승가는

도를 잘 닦고

바르게 도를 닦고

참되게 도를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으니

곧 네 쌍의 수행자들이요

여덟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붓다의 제자들인 승가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전이다.

 

우리는 진실로 삼보에 귀의합니다.

이 진실의 맹세에 의한 초월적인 힘으로

지구촌의 재앙이 줄어들고 마침내 소멸하여지이다.

마하반야바라밀



신묘년 한해는 보배경을 틈나는대로 되새기시길 바랍니다.

     붓다 귀걸이, 담마 목걸이, 상가 반지로 장식하는 한 해 되시길...

 



[      *** 라따나숫따 : 보배경

 

 


여기 모인 모든 존재들

 

지상이나 하늘이나 어디에 있든지

 

기쁜 마음으로 정중하게 가르침을 경청하기를!

 

 



 

실로 모든 이들은 이 경을 경청하여

 

밤낮으로 제물을 바치는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게으름 없이 그들을 보호하기를!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어떤 재물이든

 

천상의 뛰어난 보배라도

 

여래와 견줄 수는 없으니

 

부처님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사끼야족 성자께서 삼매에 들어 성취하신

 

번뇌의 소멸, 집착 없음, 불사, 최상승법,

 

이 가르침과 견줄 것 아무것도 없으니

 

이 가르침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훌륭하신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청정한 삼매

 

즉시 결과를 가져오는 것.

 

그 삼매와 견줄 것 아무것도 없으니,

 

이 가르침이야말로 휼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사람들에 의해 칭찬받으시는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성자들

 

선서의 제자로서 공양 받을 만하여

 

그들에게 보시하면 큰 복덕 받으니

 

승단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확고한 마음으로 욕심 없이

 

고따마의 가르침에 열심인 이들

 

불사에 뛰어들어 목적을 성취하여

 

지복을 얻어 적멸을 즐기나니

 

승단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마치 인드라의 기둥이 땅 위에 서있으면

 

사방에서 부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성스러운 진리를 분명히 보는 이도

 

이와 같다고 말하노니

 

승단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심오한 지혜를 지닌 부처님께서 잘 설하신

 

성스런 진리를 분명히 이해하는 이들

 

아무리 게을리 수행할지라도

 

여덟 번째의 윤회를 받지 않으니

 

승단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또한 통찰지를 얻는 순간에

 

유신견, 의심, 계금취의

 

세 가지 법을 모두 소멸하고

 

사악처에서 벗어나

 

여섯 가지 큰 잘못을 짓지 않으니

 

승단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경구에 말하기를, 진리를 본 사람은

 

몸과 말과 뜻으로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어도

 

사소한 허물조차 감추지 못하니

 

승단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여름의 첫 더위가 다가오면

 

숲속의 나뭇가지에 꽃이 피듯이

 

닙바나에 이르는 위없는 법으로

 

이와 같은 최상의 이익을 가르치셨나니

 

부처님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으뜸이시며, 으뜸을 아시며

 

으뜸을 주시고, 으뜸을 가져오시는 분이

 

위없는 법을 설하셨나니

 

가르침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과거는 소멸하고 다음 생은 없으니.

 

마음은 다음 생에 집착하지 말고

 

번뇌의 종자를 파괴하고 그 성장을 원치 않는

 

현자들은 등불처럼 열반에 드니

 

승단이야말로 훌륭한 보배

 

이 진실에 의해 행복하기를!

 

 



 

이곳에 모인 모든 존재들

 

지상이나 하늘 어디에 있든지

 

신과 인간의 존경받는

 

부처님을 공경하여 행복하여지이다!

 

 



 

이곳에 모든 존재들

 

지상이나 하늘 어디에 있든지

 

천신과 인간의 존경받는

 

이 가르침을 공경하여 행복하여지이다!

 

 



 

이곳에 모인 모든 존재들

 

지상이나 하늘 어디에 있든지

 

천신과 인간의 존경받는

 

승가를 공경하여 행복하여지이다!

 

 

* 부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 관세음 어머니! 법륜을 굴리겠습니다.

 

* 부처님 아버지, 관세음 어머니! 형제자매들과 함께 행불하겠 습니다



영가 법어

 

이 자리에 계신 영가님들이여! 얼마나 좋습니까? 머리가 없으니 골치 아플 일도 없고, 배가 없으니 허기질 일도 없고, 다리가 없으니 관절염에 고생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몸이 없으니 더위나 추위를 느낄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프거나, 머리와 다리가 아프고, 더위나 추위를 느낀다면, 그것은 착각 때문입니다. 몸뚱이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아직 몸뚱이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따라 크게 외쳐 보십시오.

몸은 내가 아니야. 마음도 내가 아니야. 성품이 바로 나야.

성품은 아프지 않아. 성품은 허기지지 않아. 성품은 우울하지 않아.

성품은 건강해! 성품은 충만해! 성품은 행복해!

몸은 내가 아니야. 마음도 내가 아니야. 성품이 바로 나야.”

몸은 생노병사하고 마음은 생주이멸하지만, 몸과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는 관찰자는 불생불멸입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이 관찰자가 바로 성품인 것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다만 관찰할 뿐! 성품은 공한 것입니다. 텅 비었기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내가 선택합니다. 내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품을 원망과 한탄으로 채울 것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야 합니다. 다시 큰 소리로 따라 하십시오.

불보살님이 계신 도량에 와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나를 위해 공양을 올려주니 더욱 기쁘지 아니한가?

법문을 듣고 착각에서 벗어나니 더더욱 기쁘지 아니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을 수 있음에 더욱 감사합니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관찰할 수 있음에 더더욱 감사합니다.

원망과 한탄은 이제 그만!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3)”

이제부터 올리는 밥 공양과 법공양을 흔쾌히 받으시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연습하면, 불보살님의 가피에 힘입어 신속히 애착과 원망에서 벗어나 극락정토에 왕생하실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무르익은 황금 시절인연


할! 바람도 없는데 물결이 일어났도다-월호스님의 선가귀감 책

세어본 소만 존재한다-십우도 책

아바로키테슈바라 당신의 나의 연인-천수경


다같이 합장하고

마하반야바라밀10번


마하반야바라마밀을 염하고 들을때 이 성품이 어떤건가

어떻게 생겼을까? 행불하세요.

획기적인 마음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 선

구걸하고 헐떡이는 윤회 벗어나

무한 긍정의 절대사상이 선이다

조동종 정법안장(쇼보겐죠)-도오겐선사13c

보조국사 지눌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 "선문염송"

서산대사1579년 선가귀감  선집안의 본보기가 되는 글

평시와 전시

불살생-살생유택

도솔천에 가는 방법

지족

도닦기-공부/복닦기-공덕

서원세우기

극릭정토가는 방법

염불 도복 무아법

크고 밝고 충만하게 써나가는 방법(이론의 체화)

쉬는 것이 깨달음이다-행불명상

대면관찰 해탈의기쁨

스트레스가 꽃피우다 노우스트레스 노우프랙티스 노우프오그레스


한 물건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에서 말했다.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그리고는 주()를 달아 묻고 답했다.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면 한 물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름붙일 수 없고 모양그릴 수 없기에 어떠한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고, 어떠한 모양으로 그려도 상관없다. 하필 원상(圓相) 뿐이겠는가?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으며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다. 모든 모양이 원래 참다운 모양이니, 소 부처와 말 부처, 남자 부처와 여자 부처가 서로서로 빌리지 않고도 각자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사람들은 진리를 찾아 헤매지만 사실은 두두 물물이 진리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진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마치 바다 속의 물고기가 바다를 찾아다니는 것과 같으며, 허공을 나는 새가 허공을 찾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유롭게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처럼,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바로 지금 여기서 생명의 기쁨을 체험하면 그뿐이다.

불성은 은밀히 감추어진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 드러나 있는 현실이다. 오온 육근 십이처 십팔계가 불성의 드러남이다. 몸은 변화한다. 마음도 변화한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관찰자는 변화하지 않는다. 변화하지 않으므로 존재여부를 알 길이 없다. 존재여부를 알 길이 없으므로 몸과 마음을 드러내어 알게 한다. 불성이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하며, 변화하는 모든 것은 불성의 드러남이다.

걸어가면 걸어간다’, 머무르면 머무른다’, 앉았으면 앉아있다’, 누웠으면 누워있다’, 관찰하자. 태어나면 태어났다’, 늙어가면 늙어간다’, 병이 들면 병들었다’, 죽어가면 죽어간다’, 관찰하자. 이것이 몸에 대해 몸을 보는 몸 해탈이다.

탐이 나면 탐이 난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 근심 걱정이 일어나면 근심 걱정이 일어난다’, 관찰하자. 이것이 마음에 대해 마음을 보는 마음 해탈이다.

새해에는 몸과 마음 해탈하자. 관찰자로 살자.

대면관찰~해탈의기쁨!

 

 

붓다의 화두는 오직 늙고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이었다.

쾌락과 선정, 그리고 고행을 통해서는 결코 늙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체득한 붓다는 나무 밑에 앉아 늙고 죽음의 원인에 대하여 사유하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나오기 때문이다.

 

늙고죽음 왜 생겼나? 태어남이 있기 때문.

태어남은 왜 생겼나? 존재열망 있기 때문.

존재열망 왜 생겼나? 내것으로 취함 때문.

내것취함 왜 생겼나? 상대애착 하기 때문.

애착함은 왜 생겼나? 좋고나쁜 느낌 때문.

상대느낌 왜 생겼나? 서로접촉 하기 때문.

접촉함은 왜 생겼나? 여섯기관 있기 때문.

여섯기관 왜 생겼나? 몸과마음 있기 때문.

몸과마음 왜 생겼나? 나름생각 하기 때문.

나름생각 왜 생겼나? 의도적인 행위 때문.

의도행위 왜 생겼나? 밝지못함(無明) 때문이네.”

 

결국 늙고 죽음의 근본원인은 무아법에 밝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가 있기 때문에 나의 늙고 죽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늙고 죽음에서 벗어나려면 가 사라져야 한다.

원인을 정확히 알았으니 이제는 처방이 나올 순서이다.

그 처방은 바로 대면관찰이라는 네 알의 약이다.

 

무아법에 밝으려면 네 가지로 관찰하세.

몸에 대해 몸을 보고, 느낌 대해 느낌 보고,

마음 대해 마음 보고, 법에 대해 법을 보세.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불 구경하듯,

대면해서 관찰하되 닉네임을 붙여하세.”

 

네 알의 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능은 번뇌의 소멸과 관찰자 체험이다. 몸과 마음을 대면 관찰하니 고통이 사라지거나 누그러진다.

그리고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이 관찰자야말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인 성품인 것이다.

 

몸과 마음 변화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나,

관찰자는 여여부동 늙고 죽음 초월하네.

본래 해탈인 것이다. ~하하하하하!”

 

   

자신의 성품이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함을 알게 되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큰마음으로 웃으며 살면 될 뿐이다.

또한 스스로 결핍을 느끼지 않으니 더 이상 밖으로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그저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면 그만이다.

감지덕지인 것이다!!!

 


반야심경은 '모든 고통 사라지는 경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앞부분과 뒷부분에 모든 고통 사라진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맨 뒷부분의 주문을 오나가나 외우다보면

고통과 번민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을 이해하고 독송하기 편리하게 넉자배기로 번역했습니다.

그 효능을 직접 체험해보시기 바랍니다.

'가자 가자 건너가자, 완전하게 건너가자, 입자에서 파동으로!'

 

모든 고통 사라지는 경전

(위대한 지혜로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마음의 경전)

관자재- 보살이- 심오한- 지혜로서 피안으로 건너가기 수행할 때, 몸과 마음 텅 비었음 살펴보고 모든 고통 사라졌다.

사리자여, 물질은- 비어있고 텅빈 것이 물질이다. 텅빈 것은 물질과- 다름없고, 물질은- 텅빈 것과 다름없다. 물질은- 비어있고, 비어있음 물질이다. 느낌 인식 의지 기억 또한 다시 이와 같다.

사리자여, 모든 존재 비어있는 특징은- 생기지도 멸하지도 아니하며 더럽지도 깨끗지도 아니하며 늘어나고 줄어들지 아니한다.

사리자여, 그러므로 텅 비어- 있음에는 물질 없고 느낌 없고 인식 없고 의지 없고 기억 없다. 눈 귀 코 혀, 몸과 마음 또한 없고, 형상 소리 냄새와 맛, 감촉과- 대상도- 없으며-, 눈의 세계 내지는- 의식의- 세계까지 없느니라. 지혜 없고 무지 없고 지혜소멸 무지소멸 없으며-, 늙고 죽음 없으며-, 늙고 죽음 소멸 또한 없느니라. 고통 없고, 고통원인 없으며-, 고통소멸 없으며-, 소멸방법 없으며-, 지혜 없고 인식 없고 지켜봄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인식하는 그 자체도 없느니라.

보살은- 지혜로서 건너감을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지고 뒤바뀐- 마음 너머 니르바나 증득한다. 삼세의- 모든 부처 지혜로서 건너감을 의지하여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알아야- 하느니라. 지혜로서 건너감은 위대한-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위가 없는 주문이며 같음 없는 주문이며, 모든 고통 사라지고 헛됨 없어 진실하다. 지혜로서 건너가려 이런 진언 설했나니, 그것은- 이것이다.

가자, 가자, 건너가자! 완전하게 건너가자! 깨달음을 성취하자!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쌍가떼 보디 쓰와하!)



이와 같이 관찰하라!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여름이 간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다가서고 있습니다. 지금이 11월, 두 달 뒤면 내년이 되니, 『금강경』의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이 실감납니다.

‘일체 유위법’에서 유위법(有爲法)이라는 것은 무위법(無爲法)과 대조가 되는 말로서 애착으로 생겨난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여기서의 ‘법’은 법칙의 ‘법’이 아니고 ‘존재’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분석의 대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몸뚱이와 마음을 분석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분석해 보니까 75가지 구성요소(담마)로 나누어집니다. 담마를 한문으로 법이라고 풀이했는데,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를 말합니다. 우리의 몸뚱이든 마음이든, 지구든 우주든, 모든 존재들은 마치 몽·환·포·영과 같고 로와 전과 같다는 것입니다. 몽(夢)은 꿈이요, 환(夢)은 허깨비, 포(泡)는 물거품, 영(影)은 그림자이며, 로(露)는 이슬, 전(電)은 번갯불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존재는 몽(꿈), 환(허깨비), 포(물거품), 영(그림자), 로(이슬), 전(번갯불)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6가지의 공통점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간밤에 꿈을 꾸었다하더라도, ‘그 꿈을 내놓아 봐라’ 하면 밖으로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가슴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마디로 애매한 것입니다. 이렇게 실체는 잡을 수 없지만, 현상으로서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불교는 관찰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응작여시관! 금강경 사구게의 핵심으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인데, 여기서도 가장 핵심적인 한 단어를 뽑는다면 바로 관(觀)입니다. 관(觀)을 해야 합니다.

관(觀)이란 관찰하라는 말입니다. 잘되면 잘 되는대로 관찰하고, 안되면 안 되는대로 관찰하고, 성질나면 성질난다고 관찰하고, 우울하면 우울하다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차츰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몸뚱이가 죽더라도 “아무개 몸뚱이가 타고 있구나.” 하고 자신의 몸을 관찰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윤회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어나면 태어났다고 관찰하고, 늙어 가면 늙어간다고 관찰하고, 병이 들면 병이 들었다고 관찰하고, 죽으면 죽는다고 관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관’입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관찰에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진정 잘사는 삶인가? 부자가 되는 게 잘사는 것인가? 공부를 잘하는 게 잘사는 것인가? 진정으로 잘사는 것은 관찰을 잘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든 가난하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일이 잘되든 안 되든, 그냥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삶, 이것이 바로 잘사는 삶입니다.

관찰을 통해서 삶을 업그레이드upgrade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관찰하는가? 몸뚱이의 무상함을 관찰하고, 마음의 일어남・사라짐을 관찰하고 관찰자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계속 변합니다. 바람이 한 바탕 불면 낙엽이 후루룩 다 떨어집니다. 얼마 안가 완전히 다 떨어질 것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법문! 자연을 보고 있으면, 이보다 더 훌륭한 설법은 없습니다.

제행무상을 터득하게 되면, 제법(諸法)무아(無我)를 터득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열반(涅槃)적정(寂靜)을 터득하게 됩니다. 불교는 이 삼법인(三法印)의 도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출가는 제행무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뚱이는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고, 마음은 생겨나서 머물렀다 변화해서 사라지고, 우주는 형성되어 머물렀다 무너져서 텅 비게 된다는 이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한 마디로 변화가 진리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물은 다 변화하지만, 몸뚱이와 마음과 우주를 관찰하고 있는 이 관찰자는 상(常)・락(樂)・아(我)・정(淨)입니다. 이 관찰자가 불성(佛性)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열반경』에서, 불성은 ‘상・락・아・정’이라고 합니다. 몸뚱이와 마음과 우주는 다 변화하지만, 불성은 ‘상・락・아・정’이라는 이것이 바로 열반경의 핵심사상으로서 열반4덕( 열반의 4가지 덕성)입니다.

“불성은 항상하고, 불성은 즐거우며, 불성인 ‘나’가 있고, 불성은 청정하다.”

불성은 공성(空性)이고 자성(自性)입니다. 관찰하는 주인공 즉, 관찰자가 바로 불성입니다. 이 관찰자는 “다만 바라볼 뿐, 시비하거나 분별하지 않습니다. 나와 남을 가르지도 않고 선악과 이해를 나누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관찰자의 특성입니다. 관찰자는 다만 관찰만 할 뿐이지, 시비하거나 분별하지 않습니다. “아, 낙엽이 떨어지는 구나.” 하고 관찰을 할 뿐이지, 낙엽이 떨어지니까 “슬프다” 또는 “즐겁다” 이렇게 시비하고 분별하지 않습니다. ‘몸뚱이가 늙어가는구나.’ 이렇게 관찰을 할 뿐이지, 몸뚱이가 늙어가니까 “서럽다”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다만 관찰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관찰자의 삶은 평화롭습니다. 고통과 즐거움에 여여(如如)하게 대처합니다. 괴로우면 ‘괴롭다’고 관찰하고 즐거우면 ‘즐겁다’고 관찰할 뿐입니다. 관찰한다고 해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금방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괴로움이 여전히 생기고 즐거움도 여전히 생겨납니다. 그러나 괴로우면 괴롭다고 관찰하고 즐거우면 즐겁다고 관찰합니다. “몸뚱이가 아프다, 월호가...” 또는 “마음이 즐겁다, 월호가...” 하고 자신의 닉네임을 붙여서 관찰합니다. 월호 몸뚱이가 아프고, 월호 마음이 즐거운 것이지, 내가 아프고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월호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이는 것을 보기(見)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聞)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覺)만 하고 아는 것을 알기(知)만 합니다.” 견문각지(見聞覺知)! 시비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여여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육근(六根)의 작용을 그대로 관찰할 뿐이지, ‘나’라는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 거기에 ‘나’는 없습니다.” 내가 보는 것이 아니고 눈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듣는 것이 아니고 귀가 듣는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鼻・耳・舌・身・意)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눈은 보고(見) 귀는 듣고(聞), 그리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는 것(覺)입니다. 그리고 뜻으로는 안다(知)는 것입니다. 다만 육근의 작용이 있을 뿐, 거기에 ‘나’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만 관찰의 기쁨이 있을 뿐입니다. 지혜와 자비는 여기서 샘솟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지혜와 자비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관찰에 있다.

몸뚱이의 무상(無常)함을 관찰하고

마음의 일어남 ․ 사라짐을 관찰하며

관찰자(觀察者)를 관찰하는 것이다.

몸뚱이는 생(生)노(老)병(病)사(死)하고

마음은 생(生)주(住)이(異)멸(滅)하며

우주는 성(成)주(住)괴(壞)공(空)하지만

관찰자는 상(常)락(樂)아(我)정(淨)이다.

관찰자는 다만 바라볼 뿐!

시비하거나 분별하지 않는다.

나와 남을 가르지도 않고

선악과 이해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관찰자의 삶은 평화롭다.

고통과 즐거움에 여여(如如) 하게 대처한다.

괴로우면 ‘괴롭다’고 관찰하고

즐거우면 ‘즐겁다’고 관찰한다.

보이는 것을 보기(見)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聞)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覺)만 하고

아는 것을 알기(知)만 한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

거기에 ‘나’는 없다.

다만 관찰의 기쁨이 있을 뿐!

지혜와 자비는 여기서 샘솟는다.

‘묵은 나’를 보내고 ‘새로운 나’를 맞이하자!

일년 삼백 육십일이 오늘로써 끝나건만

열에 다섯 쌍은 참선하되 선을 알지 못하고(不知)

도를 배우되 도를 알지 못하는구나.(不識)

다만 이 부지불식(不知不識) 네 글자가

삼세제불의 골수이며, 팔만대장경의 근원이로다. <선요>

*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가서 선법을 전하고자 양 무제를 만났다. 양 무제는 불심천자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신심이 돈독하였다. 자신의 전 재산을 불사에 보시하는 데 썼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을 절에 헌납하여 궁중과 신하들이 거금을 주고 사가도록 하고, 이를 다시 보시에 쓸 정도였다.

그가 불교의 본고장 인도에서 온 보리달마대사를 만났다. 자연히 자신이 그토록 노력해온 보시공덕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짐이 오랫동안 사찰을 건립하고, 경전을 쓰고, 수많은 스님들을 양성하였노라.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는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

“이는 다만 인간과 하늘의 작은 과보를 받는 유루의 원인일 뿐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 듯하지만,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인가?”

“청정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해서 본체가 스스로 비고 적멸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간의 방법으로는 구하지 못합니다.”

무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성스러운 진리의 첫째가는 이치인가?”

“툭 트여서 성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모릅니다.(不知)”

"??"

* 한 스님이 있었는데 법달이라 하였다. 항상 『법화경』을 외워 칠년이 되었지만 마음이 미혹하여 바른 법의 당처를 알지 못하더니 육조대사에게 와서 물었다.

“경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대사님의 지혜가 넓고 크시오니 의심을 해결해주시기 바랍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이여, 법에 매우 통달해야 하거늘 그대 마음은 통달하지 못하였구나. 경 자체에는 의심이 없거늘 그대의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고 있나니, 그대 마음이 스스로 삿되면서 바른 법을 구하는구나. 자기 마음의 바른 안정이 바로 경전을 지니고 읽는 것이니라.

나는 한평생 동안 문자를 모른다.(不識) 그대는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나와 마주하여 한 편을 읽을지니, 내가 들으면 바로 알 것이니라.”

* 달마대사는 양 무제를 만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不知)고 했다. 육조대사는 법달에게 자신은 문자를 모른다(不識)고 했다. 그런데 이 부지불식이야말로 삼세제불의 골수이며 팔만대장경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강조하고 다녔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노상 그런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마침내 화를 내며 소크라테스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자기 자신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 나도 모르지.”

“그렇다면 우리와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네.”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나는 나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네. 하지만 그대들은 그것조차 모르고 있단 말일세.”

스스로 모르고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진정한 앎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모르는 것이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 수료화상이 문답하던 차에 마조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달마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마조스님이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말해 주리라.”

수료가 가까이 가자마자 마조스님이 가슴을 한 번 걷어차니, 수료가 자빠졌다가 일어나며 박장대소하였다. 이에 마조가 물었다.

“네가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웃는가?”

수료가 말했다.

“백 천 법문과 무량한 이치를 금일 한 터럭 끝에서 모두 알아차렸습니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달마조사께서 서쪽인 인도에서 동쪽인 중국으로 오신 까닭이 무엇인가? 이것을 마조스님에게 물으니 마조는 가까이 오라하고는 냅다 가슴을 걷어찼다고 한다. 이에 자빠졌던 수료가 일어나 박수를 치며 껄껄껄 크게 웃었다.

“우하하하하!”

*설봉스님께서 고산의 연(緣)이 익었음을 알고 하루는 홀연히 문득 가슴 잡아 주저앉히며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가?(是甚麽?)”

고산이 석연히 깨달아 마음 문득 쉬어지니, 오직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 뿐이었다.

설봉이 물었다.

“자네가 도리를 알겠는가?”

고산이 다시 손을 흔들며 말했다.

“화상이여, 어떠한 도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외에 어떠한 도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무엇인가?”

“하하하 웃으며 손을 흔드는 외에 어떠한 도리가 있겠습니까?”

*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환하여라.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그리고는 이렇게 송(頌)하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한 말들,

눈 푸른 달마스님이 봤다면 한바탕 웃었으리.

하하하!

그러나 필경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돌!

휘영청 달이 밝아 강산은 고요한데

한바탕 웃음소리 천지가 놀라겠네!

우하하하하! ’

* 수료화상도 웃고, 고산스님도 웃고, 서산대사도 웃었다. 깨달음을 얻어서 웃는 것인가? 웃어서 깨달은 것인가?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웃을 일이 생겨서 웃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먼저 웃음으로써 웃을 일이 생기게 만드는 것은 인생의 주인공만이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되자!

* 연말연시가 되면 송년 및 신년법회를 비롯해 각종 행사가 이어진다. 과거에는 망년(忘年)이라는 말을 많이 썼지만, 어감이 안 좋아선지 근래에는 송년(送年)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송년이 되었건 망년이 되었건 ‘묵은 해’를 보내거나 잊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정작 보내야할 것은 ‘묵은 해’가 아니다. 학명선사도 설하지 않았던가?

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뜬 구름 같은 인생 꿈속에 노닌다네.

결국 보내야할 것은 ‘묵은 나’인 것이다. ‘묵은 나’를 보내고 ‘새로운 나’를 맞이하는 것이야말로 연말연시의 가장 좋은 덕목이다.

‘묵은 나’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새로운 나’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모른다고 정확히 아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정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우하하하하!”


 

『大乘起信論』 요약문

 

Ⅰ. 진여에서 생멸을 드러내다

 

1. 한 마음

依一心法하야 有二種門하니 云何爲二오 一者는 心眞如門이요 二者는 心生滅門이라.

 

2. 한 마음의 두 가지 문

1) 진여문

心眞如者는 卽是一法界의 大總相法門體니 所謂心性이 不生不滅이니라. 一切諸法이 唯依妄念하야 而有差別하니 若離心念하면 則無一切境界之相하리라. 是故로 一切法이 從本已來로 離言說相하며 離名字相하며 離心緣相하야 畢竟平等하야 無有變異하며 不可破壞니 唯是一心일세 故名眞如니라.

 

2) 생멸문

心生滅者는 依如來藏故로 有生滅心하니 所謂不生不滅이 與生滅로 和合하야 非一非異니 名爲阿梨耶識이니라.

以依阿梨耶識하야 說有無明하니 不覺而起하야 能見能現하며 能取境界하야 起念相續할제 故說爲意니라.

 

3. 한 마음이 두 문을 통해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다

復次眞如自體相者는 一切凡夫聲聞緣覺菩薩諸佛이 無有增減하야 非前際生하며 非後際滅이니 畢竟常恒하야 從本以來로 自性滿足一切功德하니, 名爲如來藏이며 亦名如來法身이니라.

復次眞如用者는 所謂諸佛如來- 本在因地하야 發大慈悲하야 修諸波羅蜜하야 攝化衆生하며 立大誓願하야 盡欲度脫等衆生界하니라.

此用이 有二種하니 云何爲二오 一者는 依分別事識한 凡夫二乘心의 所見者를 名爲應身이며, 二者는 依於業識이니 謂諸菩薩이 從初發意하야 乃至菩薩究竟地히 心所見者를 名爲報身이니라.

 

 

Ⅱ 생멸에서 진여로 돌아가다

 

1. 그릇된 집착을 다스리다

對治邪執者는 一切邪執이 皆依我見하니 若離於我하면 則無邪執이니라 是我見이 有二種하니 云何爲二오 一者는 人我見이요 二者는 法我見이니라.

 

2. 보리심을 내어 나아가다

分別發趣道相者는 謂一切諸佛의 所證之道에 一切菩薩이 發心修行하야 趣向義故니라 畧說하면 發心에 有三種하니 云何爲三고 一者는 信成就發心이요 二者는 解行發心이요 三者는 證發心이니라.

 

1) 네 가지 믿음

信心이 有四種하니 云何爲四오 一者는 信根本이니 所謂樂念眞如法故요 二者는 信佛有無量功德이니 常念親近하야 供養恭敬하며 發起善根하야 願求一切智故요 三者는 信法有大利益이니 常念修行諸波羅蜜故요 四者는 信僧能正修行自利利他이니 常樂親近諸菩薩衆하야 求學如實行故니라.

 

2) 다섯 가지 수행

修行에 有五門하야 能成此信이니 云何爲五오 一者는 施門이요 二者는 戒門이요 三者는 忍門이요 四者는 進門이요 五者는 止觀門이니라.

 

3) 여섯 글자 염불

如來有勝方便하사 攝護信心이니 謂以專意念佛因緣으로 隨願得生他方佛土하야 常見於佛하야 永離惡道하나니 如修多羅에 說하사대 若人이 專念西方極樂世界阿彌陀佛하야 所修善根을 回向하야 願求生彼世界하면 卽得往生이라 하시니라.

 


2014년도 『圓覺經』 강의계획서

강사: 월호

 

1. 학습목표

『원각경』의 대지는 ‘단무명(斷無明) 현불성(顯佛性)’이다. 무명을 끊고 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끊고 드러낸다고는 하지만, 끊을 것이 없는 것이 무명이고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이 불성이다. 즉 무명은 본래 공한 것이며 불성은 본래 갖추어져있기 때문이다. 원각은 청정하며 무명은 허공 꽃(空華)과 같아서 본래 닦고 익힐 것이 없지만, 아직 이를 깨치지 못한 이는 여전히 닦아야 한다. 이른 바 허깨비로 허깨비를 닦는다(以幻修幻)고 하는 것이다.

 

2. 학습방법

* 경전 원문 위주로 새겨나간다. 주석은 부교재나 참고문헌을 참고하되, 필요한 부분은 원문을 공부한다. 논강을 통해 사전에 예습해옴으로써 수업시간에는 석사 이외에 내용을 반추할 수 있도록 한다.

* 요약문을 자주 읽어 가급적 외울 수 있도록 한다.

* 독해의 원칙을 준수한다. (있는 말 빼지 말고, 없는 말 넣지 말라.)

 

3. 주요 주제어

* 특히 다음과 같은 용어들을 확실히 이해하여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1) 此無明者는 非實有體라

2)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3) 四大各離하면 今者妄身이 當在何處오?

4) 當知身心이 皆爲幻垢니 垢相永滅하면 十方淸淨하리라.

5) 無邊虛空이 覺所顯發이라.

6) 始知衆生이 本來成佛이며 生死涅槃이 猶如昨夢이라.

7) 其能證者는 無作無止하고 無任無滅이라.

8) 身相屬四大하고 心性歸六塵하니 四大體各離하면 雖爲和合者오?

9) 如銷金鑛에 金非銷有며 旣已成金하야는 不重爲鑛이라.

10) 欲脫生死하야 免諸輪廻인댄 先斷貪慾하며 及除愛渴이라.

 

4. 교재 및 참고문헌

교재: 전해주 역, 『원각경』, 민족사, 2006.

부교재: 김탄허 현토, 『원각경』, 교림, 1994.

참고문헌: 김월운 주해, 『원각경 주해』, 동국역경원, 2003.

 

5. 강의 일정

1) 강의계획 설명

2) 요약문 독송 및 해설

3) 문수보살의 청법과 답변

4) 보현보살의 청법과 답변

5) 보안보살의 청법과 답변

6) 금강장보살의 청법과 답변

7) 미륵보살의 청법과 답변

8) 청정혜보살의 청법과 답변

9) 위덕자재보살의 청법과 답변

10) 변음보살의 청법과 답변

11) 정제업장보살의 청법과 답변

12) 보각보살의 청법과 답변

13) 원각보살의 청법과 답변

14) 현선수보살의 청법과 답변, 종강 및 책거리

 

6. 평가 방법 및 비중

* 수업기여도 30%

* 과제물 20%

* 발표 20%

* 대중생활 30%

 

 

 

『원각경』 요약문

 

 

1. 문수보살의 청법과 답변

여래께서 본래 일으키신 청정한 인지법행(因地法行)을 설하시며, 보살이 대승 가운데서 청정심을 발하여 멀리 모든 병을 떠나도록 설하셔서, 말세중생의 대승을 구하는 자로 하여금 사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一切諸如來- 從於本因地하야 皆以智慧覺으로 了達於無明하나니

知彼如空華하면 卽能免流轉이며, 又如夢中人이 醒時不可得이라

覺者如虛空하야 平等不動轉하니 覺徧十方界하면 卽得成佛道하리라.

 

2. 보현보살의 청법과 답변

이 원각청정경계를 듣고 어떻게 수행해야 되겠습니까?

若彼諸菩薩과 及末世衆生이 常應遠離幻하면 諸幻悉皆離하리니

如木中生火에 木盡火還滅이라 覺卽無漸次며 方便亦如是니라.

 

3. 보안보살의 청법과 답변

보살의 수행점차를 설하여주소서. 어떻게 사유하며 어떻게 머물러야 하겠습니까? 중생이 아직 깨치지 못하였으면 어떠한 방편을 지어야 널리 개오케 하겠습니까?

一切諸衆生의 身心皆如幻하야 身相屬四大하고 心性歸六塵하나니

四大體各離하면 誰爲和合者오?

如是漸修行하면 一切悉淸淨하야 不動徧法界하야 無作止任滅하고 亦無能證者니라.

 

4. 금강장보살의 청법과 답변

만약 모든 중생이 본래성불이라면 어째서 다시 일체무명이 있습니까? 또한 무명이 중생에게 본래 있다면, 어떤 인연으로 여래께서 다시 본래성불을 설하십니까?

譬如銷金鑛에 金非銷故有며 雖復本來金이나 終以銷成就요

一成眞金體하야는 不復重爲鑛이니라.

 

5. 미륵보살의 청법과 답변

중생이 여래의 대적멸 바다에 노닐고자 하면 마땅히 어떻게 윤회의 근본을 끊어야 하겠습니까?

一切諸衆生이 不得大解脫은 皆由貪慾故로 墮落於生死하나니

若能斷憎愛와 及與貪瞋痴하면 不因差別性하고 皆得成佛道하리라.

 

6. 청정혜보살의 청법과 답변

일체중생과 모든 보살과 여래세존의 증득한 바가 어떻게 다릅니까?

衆生爲解碍요 菩薩未離覺이며 入地永寂滅하야 不住一切相이요

大覺悉圓滿하야 名爲徧隨順이라.

 

7. 위덕자재보살의 청법과 답변

일체방편의 점차와 수행인이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까?

寂靜奢摩他는 如鏡照諸像이요 如幻三摩提는 如苗漸增長이요

禪那唯寂滅은 如彼器中鍠이니 三種妙法門이 皆是覺隨順이니라.

 

8. 변음보살의 청법과 답변

원각문에는 몇 가지 수습(修習)이 있습니까?

一切諸菩薩의 無碍淸淨慧- 皆依禪定生하나니

所謂奢摩他와 三摩提禪那라 三法頓漸修하야 有二十五種하니라.

 

9. 정제업장보살의 청법과 답변

만약 이 원각심이 본성청정이라면 어째서 오염되었습니까?

一切諸衆生이 皆由執我愛하야 無始妄流轉하나니

未除四種相이면 不得成菩提니라.

 

10. 보각보살의 청법과 답변

참선의 병(禪病)을 설하여주소서.

法中除四病이니 謂作止任滅이라.

 

11. 원각보살의 청법과 답변

어떻게 안거하며 이 원각의 청정경계를 닦아야 합니까?

先當結三期하야 懺悔無始業하고 經於三七日한 然後正思惟하라.

 

12. 현선수보살의 청법과 답변

이 대승의 가르침은 이름이 무엇이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하겠습니까?

是經諸佛說이며 如來善護持며 十二部眼目이라

名爲大方廣圓覺陁羅尼이니 現如來境界니라.

依此修行者는 增進至佛地- 如海納百川하야 飮者皆充滿이니라.


 

                

삶은 환타지다

 

근래에는 너도 나도 몸짱이 되려고 안달입니다. 몸짱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똥배가 들어가야 합니다. 다음 가운데 똥배를 들여보내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1)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똥배가 들어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다.

2) 신에게 기도한다. 제발 내 똥배가 들어가게 해달라고. 플리~즈.

3) 단식에 돌입한다. 피골이 상접할 때까지 굶는다.

4) 원인을 분석한다.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린다.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 4번이 정답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살고 있을까요? 자신의 행·불행을 숙명으로 여기거나, 신에게 구걸하며, 때때로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하려들지는 않는지요?

불교의 핵심은 인과설입니다.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어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숙명론도 아니요,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고 굳게 믿는 신의설(神意說)도 아닙니다. 또한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떠난 중도설인 것입니다. 알기 쉽게 똥배를 비유로 들었지만, 사실상 모든 게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염원하는 부귀와 건강, 그리고 미모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혜제일의 제자였던 사리자가 출가 이전, 길거리에서 앗사지 존자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좇아가 당신의 스승은 누구인지, 또 무엇을 설하는지 묻습니다. 이에 앗사지 존자는 간단한 게송으로 답변합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네.

여래께서는 그 원인에 대하여 설하신다네.

원인이 소멸한 결과에 대해서도

여래께서는 또한 설하신다네.

 

이 게송을 듣고 사리자는 곧바로 수다원과를 얻습니다. 그리고 이내 출가하여 3주 만에 또다시 부처님의 게송을 듣고 아라한과를 얻습니다. 단지 게송 한 구절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요. 이 외에도 게송 몇 구절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사례는 부지기수입니다. 오죽하면 『금강경』에서도 온 우주를 보배로 채워서 보시하는 공덕, 또는 갠지스강의 모래보다 많은 목숨으로 보시한 공덕보다 게송 한 구절 전하는 공덕이 훨씬 크다고 하였겠습니까? 게송이야말로 깨달음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주옥같은 게송들이 들어있습니다. 주로 『법구경』을 중심으로 해서 주제별로 게송을 엮어 놓은 것입니다. 예컨대, 근심 걱정을 없애주는 게송, 애착을 버리는 게송, 화를 다스리는 게송, 행복을 부르는 게송, 마음을 보는 게송 등입니다.

이 내용은 본래 불교TV에서 ‘삶은 환타지다’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것입니다. 주제별 게송과 이에 얽힌 스토리텔링, 그리고 현대적 교훈 등이 함께 녹아 재미와 의미를 함께 만끽할 수 있습니다.

 

매화의 계절을 맞아 이 책이 출간된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매화가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앙상한 가지에 가장 먼저 향기로운 꽃을 피우듯이, 우리도 역경을 극복하고 깨우침의 꽃을 피워낼 수 있습니다. 꽃이 먼저요, 잎이 나중인 봄꽃들은 우리에게 깨달음이 먼저요, 수행이 나중일 수도 있다는 중대한 교훈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몇 마디의 게송을 통해서 얼마든지 깨달음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입니다.

 

꽃은 피었다 지고 다시 피어납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정된 실체는 없지만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지고 다시 생겨납니다. 이른 바 삶은 환타지(幻)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아바타> 같은 환타지 작품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멋진 환타지영화로 꽃피울 것인가, 우울하고 기분 나쁜 공포영화로 만들 것인가? 스스로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 작품입니다.

 

끝으로 귀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주신 민족사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부처님께서 뚜짜(머리가 텅빈) 뽀띨라 대강백에게 읊어주신 게송을 스스로에게 들려주고자 합니다.

 

지혜는 수행에서 생기고

수행하지 않으면 지혜도 줄어든다.

이러한 두 길을 잘 알아

지혜를 키우고자 힘써 노력하라.

지리산 쌍계사 적묵당에서 뚜짜 월호 합장

“ALL OF THEM”

 

 

최근에 우리나라 여성과 프랑스 남성과의, 말하자면 국제 결혼식주례를 보게 되었다. 주례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불가에서는 흔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부부는 수백생의 인연(因緣)으로 만난다고 합니다. ()은 주관적 요인, ()은 객관적 요인을 말합니다. 내가 인이요, 배우자가 연입니다. 손뼉소리처럼 인과 연이 함께 충실해야 과()가 충실합니다. 결국 배우자 덕 보려말고 배우자가 내 덕 보게 하려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때,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반감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세상에는 네 가지 유형의 좋은 아내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어머니 같은 아내, 둘째는 누이 같은 아내, 셋째는 친구 같은 아내, 넷째는 하녀 같은 아내입니다. 그대는 이 가운데 어떤 아내를 바라는가요?”

이 질문을 했을 때, 신부는 친구 같은 아내라고 답하였고, 프랑스 신랑은 ‘All of them’이라고 답변했다. 이야말로 멋진 답변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어머니같이 감싸주고, 때로는 누이같이 세심하며, 때로는 친구같이 다정하고, 때로는 하녀같이 순종하는 아내야말로 모든 남성들의 이상일 것이다.

아울러 남편은 아내에게 존경심을 품고, 예절을 갖추며, 순결을 지키고, 가정을 맡기며, 때때로 장식품을 선물해야 합니다. 또한 사랑과 애착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구속하려드는 것은 애착(愛着)이요, 상대방이 해탈하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상대방과 충돌이 일어났을 때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탐욕이 일어나면 탐욕이 일어났다고 관찰하고, 성냄이 일어나면 성냄이 일어났다고 관찰합니다. 시기질투심이 일어나면 시기질투심이 일어났다고 관찰합니다. 이러한 마음들은 참으면 병이 되고, 터뜨리면 업()이 됩니다. 바라보면 사라집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숨을 관찰합니다. 마음을 콧구멍아래에 두고 숨을 들이쉴 때 들이 쉰다고 관찰하고, 숨을 내쉴 때 내 쉰다고 관찰합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마음이 차분해지면, 그때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결혼 생활입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핵물리학 박사인 신랑의 아버지는 짧은 시간에 불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무척 기뻐했다. 또한 신랑과 신부로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주례사를 해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하하하, 에펠탑이 있는 파리에서 주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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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個性)수행

 

생전에 경봉큰스님께서는 참선의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바보가 되거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참선은 무심공부요, 바보는 무심에 가깝기 때문이다. 석존 당시 쭐라반따까는 형의 권유로 출가하였지만, 사 개월이 지나도록 게송 하나도 외우지 못했다. 그는 과거 생에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머리가 모자란 비구를 멍청이라고 놀리고 조롱한 과보로 멍청이로 태어났던 것이다.

마침내 그의 형 마하반따까는 그에게 환속을 권했지만, 부처님께서는 그를 향실로 데려가 깨끗한 천을 주고 바닥을 문지르면서 라조 하라낭(때를 닦는다)’이라고 외우도록 하셨다. 천을 계속 문지르자 얼룩이 지면서 더러워졌다. ‘이 천 조각이 아까는 아주 깨끗했는데, 내가 이렇게 문지르자 더러워졌다. ,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것은 변하는구나!’ 그는 이러한 변화를 관찰하면서 지혜를 키워나갔다. 이를 아신 부처님께서는 광명의 몸을 나투어 말씀하셨다.

 

때는 몸에 낀 때만을 말하지 않네.

때는 탐욕의 다른 이름!

때는 분노의 다른 이름!

때는 어리석음의 다른 이름!

삼독(三毒)이 없는 청정한 여래의 교단에서

비구들은 마음의 때를 제거하며 살아가네.”

 

이 게송 끝에 쭐라반따까는 아라한과를 이루었다.

또한 발타라 존자는 평소 깨끗함을 좋아하여 틈만 나면 목욕을 했다고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목욕하는 그에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참된 목욕은 몸에 묻은 때를 씻는 것뿐 아니라, 마음속의 더러움까지 씻어내는 것이다. 목욕을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씻어야 한다.

 

 ‘내 마음은 늘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이 맑은 물로 그 모든 더러움을 씻어 내리라.’ ”

 

발타라 존자 또한 얼마 안 가 아라한과를 이루었다.

청소도 수행이고, 목욕도 수행이 될 수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개성에 따른 수행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종합비타민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이 스님에게 가면 금강경이 최고라 하고, 저 스님에게 가면 천수경을 하라고 하고, 또 다른 스님에게 가면 법화경사경이 최고라 하는데, 모두 다 할 수도 없고, 그 중 한 가지만 하려면 도대체 무얼 해야 합니까?”

사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불교는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모든 강물을 가리지 않고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칫 하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제 깜량 대로 이해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지요.

예컨대, 금강경이 비타민 C 라고 한다면, 천수경은 비타민 A, 법화경은 비타민 D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쓸모가 있는 것이지요. 금강경은 아상(我相)을 죽이는 가르침, 천수경은 관세음보살과 하나 되는 가르침, 법화경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입장과 상황을 잘 생각해서 그에 맞는 가르침을 선택해 꾸준히 공부하고 실천하고자 하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굳이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단연코 화엄경을 권합니다. 화엄경이야말로 종합비타민 같은 경전이지요. 화엄경의 엑기스라 할 수 있는 약찬게만 놓고 보더라도, 삼신불(三身佛)로부터 시작해서 문수, 보현, 관음, 미륵보살은 물론 수많은 보살과 성문, 그리고 39() 신중에 이르기까지 사부대중을 모두 포괄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재동자가 만난 선지식들 중에는 비구, 비구니는 물론 심지어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무렴족왕 내지는 사창가 여인인 바수밀과 이교도들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모두가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스스로에게 충실한 삶을 살면 그뿐입니다.

이 땅에 불교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것은 화엄사상의 덕입니다. 원효, 의상, 균여 같은 위대한 스님들도 모두 화엄종사였습니다. 화엄이 살아야 이 땅에 불교가 생동하고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해탈하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주례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내가 좀 중후해보이나 보다.”생각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늙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 다시 거울을 보기도 했다. 어쨌든 가까운 신도들의 요청이니 거절하기도 어려워 마지못해 자리를 빛내주게(?) 되었다.

한번은 우리나라 여성과 프랑스 남성과의, 말하자면 국제 결혼식주례까지 보게 되었다. 스님의 주례사? 어쩐지 어색한 듯하지만, 부처님 당시에도 스님들이 잔칫집에서는 <행복경>, 상갓집에서 <담장밖경>을 낭송해주었다는 데 힘입어 용기를 내게 되었다. 그때의 주례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불가에서는 흔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은 주관적 요인, ()은 객관적 요인을 말합니다. 내가 인이요, 배우자가 연입니다. 두 손바닥이 만나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인과 연이 함께 충실해야 과()가 충실합니다. 결국 배우자 덕 보려말고 배우자가 내 덕 보게 하려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때,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반감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세상에는 네 가지 유형의 좋은 아내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어머니 같은 아내, 둘째는 누이 같은 아내, 셋째는 친구 같은 아내, 넷째는 하녀 같은 아내입니다. 그대는 이 가운데 어떤 아내를 바라는가요?”

이 질문을 했을 때, 단상에 서 있던 신부는 친구 같은 아내라고 답하였고, 프랑스 신랑은 ‘All of them’이라고 답변했다. 이야말로 멋진 답변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어머니같이 감싸주고, 때로는 누이같이 세심하며, 때로는 친구같이 다정하고, 때로는 하녀같이 순종하는 아내야말로 모든 남성들의 이상일 것이다.

아울러 남편은 아내에게 존경심을 품고, 예절을 갖추며, 순결을 지키고, 가정을 맡기며, 때때로 장식품을 선물해야 합니다.”

이 말을 하자, 신랑은 또 선물해야 하나요?”라고 조크했다. 지금 결혼 예물을 주었는데, 또 주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남자에게 장신구는 단순한 선물에 불과할 수 있지만 여자에게 선물은 애정의 표현으로 느껴진다. 그러기에 여래께서 남편이 아내에게 이행해야 할 의무사항 다섯 가지 가운데에 한 가지로 꼭 집어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자와 충돌이 일어났을 때는 얼른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탐욕이 일어나면 탐욕이 일어났다고 관찰하고, 성냄이 일어나면 성냄이 일어났다고 관찰합니다. 시기질투심이 일어나면 시기질투심이 일어났다고 관찰합니다. 이러한 마음들은 참으면 병이 되고, 터뜨리면 업()이 됩니다. 바라보면 사라집니다.

이때 주의할 것은 가 탐욕 성냄 시기질투심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육근의 무더기가 탐욕 성냄 시기질투심을 일으키고 있다고 관찰해야 합니다. 육근(六根)이란 눈 귀 코 혀 몸 뜻을 말합니다. 이러한 여섯 가지가 모여서 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을 육근의 무더기로 관찰할 때 비로소 일어남 사라짐이 쉬고, 관찰자의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마음이 차분해지면, 그때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결혼 생활입니다.”

이렇게 주례사는 마쳤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사랑과 애착은 다르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가 되면서도 둘로 남아있는 상태여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면서 동시에 상대도 성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랑으로 행복해지려면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부터 키우라고 충고한다. 내가 필요해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정신의 응석일 뿐이다.

사랑에는 보호와 책임이 뒤따른다. 꽃을 아낀다고 하면서도 정작 물을 주지 않는 사람이 과연 꽃을 사랑하는 사람일까? 상대의 성장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야말로 사랑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결국 상대방을 구속하려드는 것은 애착(愛着)이요, 상대방이 해탈하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백년해로한 부부가 다음 생에서도 부부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부처님은 두 사람이 하나의 믿음을 갖고, 하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똑같이 보시하고 똑같이 마음을 닦는다면 다음 세상에서도 똑같이 한 마음으로 살아가리라.’고 답하셨다. 결국 부부가 함께 복 닦기, 도 닦기를 해야 백년해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해외 촬영이 있어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하게 되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는 격언과 같이, 과연 로마 시내에는 콜로세움을 비롯한 무수한 유적들이 산재해 있었다. 일요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앞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창문에 나타난 교황의 모습에 환호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거나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겸해 즐기는 모습이었다. 자유분방한 광장문화가 부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 번잡한 틈을 노려 소매치기들도 많다고 했다. 필자 또한 조그만 가방을 메고 길을 걷다가 갑자기 가방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얼른 돌아보니 이탈리아 사람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바로 등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해서 손을 거두며 뒤로 슬쩍 물러났다. 얼른 가방을 앞으로 메고 살펴보니 이미 지퍼가 반쯤 열려있었다. 다행이 없어진 것은 없었다. 잠깐 사이에 지갑과 여권을 분실할 뻔 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 이래서 알아차림이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 다른 곳에 한눈팔았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걸었다면, 가방이 가벼워지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온전히 걷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에 오기 직전 방문했던 대만의 자제공덕회에서 증엄스님을 친견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접빈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스님이 오신다고 해서 일어나 돌아보았다. 창문 밖으로 증엄스님의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가무잡잡한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위엄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걸어오는 모습이었다. 마치 허공을 내딛는 듯 우아한 걸음걸이로 아주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무언가 초탈한 느낌을 주었다. 백 마디 말보다 몇 발자국의 걸음이 더욱 인상적이었다고나 할까? 세계 최대의 구호봉사단체를 이끄는 힘이 걸음걸이에서 느껴졌다.

세상 어느 곳이든 재난이 있는 곳에 가장 먼저 출동해서 가장 나중에 철수한다는 자원봉사 민간구호단체인 자제공덕회는 말 그대로 자비로써 세상을 구제한다는 이념을 실천하고 있다. 미국의 9·11 테러 당시에도 가장 먼저 출동했다고 하며, 대만 중부지역의 지진피해 시에도 수많은 집과 학교, 심지어는 교회와 성당까지도 건립해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재난현장에 출동하거나 철수하는 비용은 봉사자들이 각자 스스로 부담한다고 하니 더욱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평상시에 지진이나 해일 등 재난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 이다보니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는 마음도 유별나다고 볼 수 있겠다. 아마 이번 네팔지진피해복구에도 앞장서 봉사하리라.

필자도 이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본받고자 지난 달 부터 이웃사랑 남산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둘째 주 일요일 오후에 장충단공원에 모여 남산 산책로를 함께 걷는 것이다. 이때 모여진 성금은 전액 이웃돕기에 희사된다.

이번 달에는 백 명 가량 되는 분들이 성금을 내고 함께 걸었다. 정신없이 빨리 걷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걷다보니 숲이 그대로 느껴졌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온전히 들리고 지천의 꽃과 나무들이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숨소리와 발바닥이 닿는 느낌까지도 온전히 와 닿았다. 아주 천천히 걷다보니 그동안에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까지도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다. 문득 바히야 경이 떠올랐다.

바히야는 본래 배를 타는 선원이었다. 어느 날 무서운 풍랑을 만나 배는 난파되고 동료들은 모두 죽었으며, 자신만 홀로 판자를 잡고 간신히 살아남아 항구 가까이에 표류해왔다. 망연자실한 바히야는 다 떨어진 옷 대신 나무껍질로 몸을 가리고 부둣가에 앉아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에게 푼돈과 먹을 것을 주었다. 그 와중에도 바히야는 옷을 주면 절대로 받지 않았다. 나무껍질로 몸을 가리고 앉아있어야 사람들이 더욱 많은 것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옷을 갖다 주어도 받지 않자, 결국 바히야는 사람들에게 도를 깨달은 아라한이라고 소문이 났다. 이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바히야에게 전생의 도반인 범천이 나타나 타이르며, 진정한 아라한이 현존해계심을 알려주었다. 이를 알게 된 바히야는 사왓티로 한달음에 달려가 부처님께서 탁발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부처님께서는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감관을 잘 제어하고 주의 깊게 깨어있으면서 걷고 계셨다. 다급한 마음에 바히야는 길거리에 선 채로 법문을 청해 듣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바히야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다음과 같이 법을 설하셨다.

바히야여,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인식하는 것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그대는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때, 거기에 그대는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이렇게 간략한 가르침을 듣고 바히야는 즉시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는 부처님의 모든 제자들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법을 깨달은 제자가 된 것이다.

견문각지(見聞覺知)하면서 단지 견문각지(見聞覺知)할 뿐이라면 고통은 소멸된다. 내가 견문각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견문각지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사라지므로 나의 고통이 더불어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다. 걸을 때는 걸을 뿐! 함께 천천히 걸으면서 마음공부도 하고 보시복덕도 지을 수 있다면, 이야말로 최상의 걷기가 아닐까?

시아버지의 어머니 위사카처럼

 

불이회 창립 40주년을 축하해 마지않습니다. 공자는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요,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이라 했습니다. 나이가 사십이 되면 더 이상 미혹되지 않으며, 오십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는 것이지요. 불이회도 사십이 되었으니 흔들림 없이 꾸준히 나아갈 것이며, 앞으로 부처님의 뜻을 더욱 잘 알고 발현하리라 생각됩니다.

리움미술박물관에서 몇 달간 불이회 강의를 진행하면서 현대의 바쁜 일과 생활 속에서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참가하고 경청하는 여러분의 모습이 무척 좋아보였습니다. 또한 불이상을 제정하여 한국불교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뜻도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보시복덕을 짓고 한편으로 마음공부를 하고자 하니, 그런 점에서 불이회 여러분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위사카 부인이 아닐까 합니다.

석가세존 당시 대부호의 딸이었던 위사카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갖춘 여인이었습니다.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란 머릿결의 아름다움, 입술의 아름다움, 치아의 아름다움, 피부의 아름다움, 젊음의 아름다움입니다. 복덕이 많은 여인은 머릿결이 공작의 깃털 같아서 풀어 내려뜨리면 치마끝자락에 닿고 그 끝을 살짝 올리면 하늘을 향하니, 이것이 머릿결의 아름다움입니다. 입술은 장미꽃처럼 붉고 가지런하며 키스하면 촉촉하고 부드러우니, 이것이 입술의 아름다움입니다. 치아는 눈처럼 하얗고 가지런하며 간격이 없이 촘촘하고 다이아몬드를 세워 가지런히 늘어놓은 것처럼 반짝거리니, 이것이 치아의 아름다움입니다. 피부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전단향나무나 화장품처럼 향기가 나고, 물에 젖지 않은 수련처럼 매끄러우며 백합처럼 희니, 이것이 피부의 아름다움입니다. 아이를 열 번이나 낳았어도 한 번도 낳지 않은 사람처럼 싱싱하니, 이것이 젊음의 아름다움입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갖춘 위사카는 시집가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려오는 공작새 모양의 장신구를 가져갔는데, 이 장신구를 만드는데 다이아몬드가 한 되, 진주가 세 되, 산호가 여섯 되, 루비가 여덟 되, 그 외에 일곱 종류의 보석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과거 생에 깟사빠 부처님 당시에 이십만 명의 비구들에게 가사와 발우를 보시하는 공덕을 지었기 때문에 이런 값비싼 장신구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인이 가사를 보시하면 미래 생에 값비싼 장신구를 얻게 되며, 남자들이 가사를 보시하고 미래 생에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면 가사와 발우가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녀는 역시 대부호였던 미가라 장자의 아들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미가라 장자는 본래 자이나교의 나체수행자들을 섬기고 있었지만, 며느리 위사카로 인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수다원과를 얻었습니다. 그는 환희심이 솟아올라 자신도 모르게 며느리 위사카에게 말하였습니다.

내 마음을 이렇게 기쁨으로 인도한 너를 이제부터 나의 어머니로 부르겠다.”

이렇게 해서 위사카는 시아버지였던 미가라(鹿子)의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그녀를 미가라 마따(미가라의 어머니, 鹿子母)라고 불렀으며, 그녀가 시주하여 기증한 사원을 녹자모 강당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원에서 위사카 부인이 나이든 여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절에 다니며 계율을 지킵니까?”

죽어서 천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입니다.”

이번에는 중년의 여인들에게 묻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잘 되라고 다닙니다.”

젊은 여인들에게 묻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아이를 빨리 임신하고 싶어서 다닙니다.”

이번에는 처녀들에게 가서 묻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혼기를 놓치기 전에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위사카로부터 전해 듣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윤회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히려 다시 태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구나.”

불교에는 천상으로 가는 길과 해탈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천상으로 가는 길은 계율을 지키고 보시복덕을 짓는 것입니다. 해탈로 가는 길은 법문을 듣고 마음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둘 다 잘 하면 금상첨화겠지요?

위사카 부인은 일곱 살에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수다원과를 얻었으며, 엄청난 금액을 시주하여 녹자모 강당을 지어 헌납하였습니다. 나아가 매일 자기 집에서 5백 명의 스님들께 공양을 올려 부처님으로부터 보시제일의 재가여신도로 불렸습니다.

여러분이 제2, 3의 위사카 부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시대 한국불교는 여러분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신속히 인과법을 확신하고,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불사를 짓기 바랍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불사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여러분이 꼭 해야 할 일입니다.

다시 한 번 불이회의 불혹을 경하하며, 모두가 위사카 부인과 둘이 아닌(不二) 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행불하세요!!!

놓아야 얻는다!

 

최근에 영국의 저명한 의류업체에 근무하는 한국인 여성이 휴가차 우리나라에 와서 상담을 청했다. 유럽에 건너가 디자이너로 근무한지 십여 년이 지났는데, 근래에 특히 정신적 번민이 심했다고 한다. 일천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유명 브랜드의 회사에 발탁되어 들뜨고 기쁜 마음으로 근무한 것도 잠깐, 동료 디자이너들과의 경쟁과 오랜 외국 생활에 지친 면도 있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창조적 디자인이 아니라 상업적 디자인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한껏 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점점 회사의 방침과 상업성에 자신의 창조성이 매몰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한 정신적 번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명상을 찾게 되었는데, 아직 정식으로 배운 바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간단한 명상법을 소개해주었다. 그것은 숨 보기이다. 마음을 코 밑에 집중하고 숨을 들이쉴 때 들이 쉰다’, 내쉴 때 내 쉰다고 반복해서 염하면 된다. 숨 보기 연습이 잘 되면, 마음이 코 밑으로 모이게 되어, 머리 아플 일도 가슴 아플 일도 배 아플 일도 없어진다. 마음은 집중하는 곳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상황을 종합해볼 때 가장 좋은 처방은 귀국이었지만, 본인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한 듯하였다. 어떻게 해서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잡다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만 하니,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명상을 통해 일시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 더 효과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가라앉힌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현재 상황에 대한 객관적 통찰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언을 해주니 자신은 거기까지 미처 생각지 못했으며,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명답이라고 하면서 좋아했다. 하지만 또 다시 고민이 하나 생겼다. 자신이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되어 아버지가 너무나 기뻐하고 지금까지도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니는데, 그런 아버지에게 큰 실망을 안겨드릴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근심이 해결되면, 또 다른 걱정이 생기는 게 인간사다. 그렇다면, 겉포장만 화려해 보이는 이 일에 계속 매달림으로써 아버지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인가, 아니면 한 템포 쉬어가면서 내실을 찾는 자신의 인생을 살 것인가? 스스로 결정해야할 일이다.

인도네시아의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손쉽게 잡는다. 발 빠르고 나무도 잘 타며 민첩하기 짝이 없는 원숭이가 왜 그리 쉽게 잡힐까? 한 마디로,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큰 나무나 단단한 흙더미에 작은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넣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숨어서 지켜보면 상황 끝이다. 원숭이는 구멍 속에 손을 집어넣어 음식을 꺼내려 한다. 하지만 음식을 손에 꽉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주먹이 구멍에서 빠져나오질 않는다. 심지어 사람이 다가가도 여전히 손을 움켜쥐고 있으니 소리만 지르면서 도망가지도 못한다. 끝내 음식을 포기하지 못한 원숭이는 손쉽게 포획되어 사람들의 음식이 되거나 팔려나간다. 천만다행으로 살아서 애완동물로 팔려가더라도 결코 자유는 없다. 모든 것을 주인님 뜻에 맡겨야 한다.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야한다.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처님은 포기의 달인이다.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세 가지를 포기했기에 위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는 쾌락을 포기했다. 태자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곧 왕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 자리를 포기하고 출가했다. 둘째는 선정을 포기했다. 출가 초기에 무소유처 선정과 비상비비상처 선정을 배웠다. 하지만 선정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과감하게 떠났다. 셋째는 고행을 포기했다. 싯다르타는 호흡을 멈추는 고행, 음식을 줄이거나 끊는 고행 등 극심한 고행을 6년 동안이나 하였지만, 결국 고행이 해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고행이 부질없음을 깨달은 싯다르타는 목욕을 하고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기운을 차린 그는 마침내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보리수 밑에 풀을 깔고 앉아서 늙고 죽음의 원인에 대하여 사유하기 시작했다.

늙고 죽음은 태어남이 있기 때문이다. 태어남은 생존에 대한 열망에서 온다. 생존 열망은 무엇이든 내 것으로 취하려함에서 비롯한다. 내 것으로 취함은 애착 때문이다. 애착은 느낌에서 온다. 느낌은 접촉으로 생겨난다. 접촉의 근원은 육근(六根)이다. 육근은 물질과 마음에서 분화한 것이다. 물질과 마음은 알음알이()에서 생겨난다. 알음알이는 의도적 행위의 결과이다. 의도적 행위는 무아(無我)에 대한 밝지 못함(無明)에서 생겨났다. 그러므로 무아에 대하여 밝아지면 결국 늙고 죽음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싯다르타는 쾌락과 선정, 그리고 고행을 과감히 포기하고, 늙고 죽음의 원인에 대한 사유를 통하여 해탈이라는 대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원숭이 해가 밝았다. 우리 모두 원숭이를 귀감삼아 놓을 건 놓아서 자유를 얻기를!



不爲也, 非不能也 

하지 못하는가? (해보지 않아서) 능숙치 않은 것이 아닌가?


붓다도 될 수 있는데 무언들 될 수 없으랴?
신도 인간도 축생도 될 수 있다.

내가 선택한다. 내 작품이다.


*나는 이거 못해! 라고 스스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안해 봐서 능숙치 않을 뿐,

마음먹고 연습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이것이 행불인의 신념입니다


싯다르타의 화두

_월호

 

   

싯다르타의 화두가 늙고 죽음의 문제였음은 출가 동기가 된 사문유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쾌락은 물론이고, 출가 이후 선정이나 고행을 통해서도 늙고 죽음을 벗어날 수 없음을 터득한 싯다르타는 마침내 늙고 죽음의 원인에 대하여 사유하기 시작했다.

 

늙고 죽음의 원인은 태어났기 때문이며, 태어남은 존재의 열망 때문이다. 존재의 열망은 내 것으로 취하려하기 때문이며, 내 것으로 취함은 애착하기 때문이다. 애착은 좋은 느낌 때문이며, 좋은 느낌은 접촉으로 생겨난다. 접촉의 근본은 바로 육근이며, 육근은 몸과 마음을 근본으로 한다. 이와 같은 몸과 마음을 받은 것은 나름 생각 때문이며, 나름 생각은 의도적 행위 때문이다. 의도적 행위는 밝지 못함 때문이다. 결국 늙고 죽음의 최초 원인은 밝지 못함으로 밝혀졌다.

 

무엇에 대한 밝지 못함인가? 무아에 대한 밝지 못함이다. 그러므로 무아에 밝아져야 더 이상 태어나지 않게 되고, 결국 늙고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무아에 밝아지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네 가지 관찰의 확립이다.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고,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관찰한다.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관찰하고, 법에 대하여 법을 관찰한다. 이것은 마치 거울 보듯이,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몸과 마음, 그리고 법의 성품을 대면해서 관찰하는 것이다.

 

예컨대, 닉네임을 붙여서 ○○라는 육근의 무더기가 늙어가고 있구나, 병이 들어 있구나, 죽어가고 있구나!” 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 되새길 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가 아니다. 다만 ○○라는 육근의 무더기가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이다. 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 현상을 관찰하고 있을 뿐! 이것이 바로 늙고 죽음으로부터의 벗어남이다. 해탈인 것이다. 우하하하! 기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결국 최상의 의사인 붓다의 처방에 따라 네 알의 약을 복용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그 효험을 주변에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싯다르타의 시행착오를 다시 답습할 필요는 없다. 쾌락과 선정과 고행을 놓아버리고, 다만 대면해서 관찰하자!

최고의 스트레스: 늙고 죽음

_월 호

 

 

* 늙고 죽음의 원인 분석: 진단

 

1. 늙고 죽음 왜 생겼나? 태어남이 있기 때문

2. 태어남은 왜 생겼나? 존재 열망 있기 때문

3. 존재 열망 왜 생겼나? 내 것으로 취함 때문

4. 내 것 취함 왜 생겼나? 상대 애착 하기 때문

5. 애착함은 왜 생겼나? 좋고 나쁜 느낌 때문

6. 상대 느낌 왜 생겼나? 서로 접촉 하기 때문

7. 접촉함은 왜 생겼나? 여섯 기관 있기 때문

8. 여섯 기관 왜 생겼나? 몸과 마음 있기 때문

9. 몸과 마음 왜 생겼나? 나름 생각 하기 때문

10. 나름 생각 왜 생겼나? 의도적인 행위 때문

11. 의도 행위 왜 생겼나? 밝지 못함 때문이네

12. 그러므로

 

(늙고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 무아)

 

무아법에 밝아지면 의도 행위 사라지고

의도 행위 사라지면 나름 생각 사라지고

나름 생각 사라지면 몸과 마음 사라지고

몸과 마음 사라지면 여섯 기관 사라지고

여섯 기관 사라지면 접촉함이 사라지고

접촉함이 사라지면 상대 느낌 사라지고

상대 느낌 사라지면 애착함이 사라지고

애착함이 사라지면 내 것 취함 사라지고

내 것 취함 사라지면 존재 열망 사라지고

존재 열망 사라지면 태어남이 사라지고

태어남이 사라지면 늙고 죽음 사라지네.

** 스트레스 벗어나기; 처방 (실습 내용)

 

무아법에 밝으려면 네 가지로 관찰하세. 네 가지가 무엇인가?

 

몸에 대해 몸을 보고, 느낌 대해 느낌 보고

마음 대해 마음 보고, 법에 대해 법을 보세.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불 구경 하듯

대면해서 관찰하되, 닉네임을 붙여하세.

 

가장 처음 호흡관찰, 들이쉴 때 들이쉰다, 내어 쉴 때 내어쉰다

걸어가면 걸어간다, 머무르면 머무른다, 앉았으면 앉아있다

누웠으면 누워있다, 늙어 가면 늙어간다, 병이 들면 병들었다

죽어 가면 죽어간다, 있는 대로 관찰하세.

몸뚱이는 변화해도 관찰자는 그대로네

 

두 번째는 느낌 관찰, 보기 좋고 보기 싫고, 듣기 좋고 듣기 싫고

향기롭고 냄새나고, 맛이 좋고 맛이 없고, 부드럽고 딱딱하고

좋은 느낌 나쁜 느낌 무덤덤한 느낌들을, 있는 대로 관찰하세.

세 번째는 마음관찰, 탐욕 성냄 어리석음

시기 질투 고와 락을 있는 대로 관찰하세.

 

네 번째는 법성 관찰, 여섯 기관 무더기가 꿈과 같고 허깨비와

물거품과 그림자와 이슬이나 번갯불과 같은 것을 관찰하세.

다섯 쌓임 무더기가 모두 공함 관찰하면 일체 고통 벗어나네.

가자, 가자, 건너가자 완전하게 건너가자.

모든 존재 변화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나

관찰자는 여여부동 늙고 죽음 초월하네.

모든 존재 본래부터 항상 자체 고요한 법

불자들이 행한다면 조만간에 부처되리.


짱구하실래요?

_월 호

 

 

 

바보 멍청이로구나! 소탐대실(小貪大失)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얼마 전 이천 행불선원에서 화엄경 약찬게 108독 철야정진을 하면서 과거에 대한 반성이 계속 떠올랐다.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참회꺼리들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필자의 닉네임을 바보 멍청이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면 대면(對面)관찰의 대상이 바보 멍청이가 되는 것이다.

 

바보 멍청이가 걸어가는구나. 바보 멍청이가 서 있구나. 바보 멍청이가 앉아있구나. 바보 멍청이가 누워있구나.”

 

그런데 이렇게 연습하다보니 좀 길기도 하고 다소 자학적인 면도 있는 듯하여 바보 멍청이대신 짱구로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짱구라는 말에는 바보 멍청이라는 뜻도 담겨있지만, 좋은 의미에서 개구쟁이’, 혹은 머리가 좋은 짱구박사라는 뜻도 있다. 단순하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해서 훨씬 나을 듯 했다.

 

짱구가 늙는구나. 짱구가 아프구나. 짱구가 죽는구나. 짱구가 보기 좋고, 듣기 좋고, 향기롭고, 맛이 좋고, 부드럽고, 뜻에 맞는다고 느끼는구나!”

 

이렇게 연습해보니 월호라고 이름 붙여 관찰할 때보다 훨씬 객관화가 잘 되었다. 아울러 부끄럽고 잘못되었던 일들이 떠올라도 짱구니까!’하면서 걸림 없이 지나갈 수가 있었다. 그래서 수행실습 시간에 다른 분들에게도 짱구라는 닉네임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른 바 짱구 하실래요?’가 된 것이다.

 

가 있으므로 나의 고통이 존재한다. 결국 나의 고통이 사라지려면 가 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대면해서 관찰하되, 닉네임을 붙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짱구가 탐을 내는구나. 짱구가 성을 내는 구나. 짱구가 시기 질투하는 구나. 짱구가 괴롭고 즐거워하는 구나.’

 

짱구의 몸과 마음은 변화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나, 관찰자는 여여부동 이다. 이른 바 저 언덕으로 건너가 강 건너 불구경 하게 되는 것이다.

꽃이 먼저 잎이 나중!

_월 호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이 스님에게 가면 금강경이 최고라 하고, 저 스님에게 가면 천수경을 지송하라고 하고, 또 다른 스님에게 가면 법화경사경이 제일이라 하는데, 모두 다 할 수도 없고, 그 중 한 가지만 하려면 도대체 무얼 해야 합니까?”

 

사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불교는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모든 강물을 가리지 않고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칫 하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제 깜량 대로 이해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지요.

 

예컨대, 천수경이 비타민 A 라고 한다면, 금강경은 비타민 C, 법화경은 비타민 D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쓸모가 있는 것이지요. 천수경은 관세음보살의 마음과 하나 되는 가르침, 금강경은 아상(我相)을 없애는 가르침, 법화경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입장과 상황을 잘 생각해서 그에 맞는 가르침을 선택해 꾸준히 공부하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굳이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필자는 단연코 화엄경을 권합니다. 화엄경이야말로 종합비타민 같은 경전이지요. 화엄경의 엑기스라 할 수 있는 용수보살 약찬게만 놓고 보더라도, 삼신불(三身佛)로부터 시작해서 문수, 보현, 관음, 미륵보살은 물론 수많은 보살과 성문, 그리고 39() 신중에 이르기까지 사부대중을 모두 포괄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재동자가 만난 선지식들 중에는 비구, 비구니는 물론 심지어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무렴족왕 내지는 사창가 여인인 바수밀과 이교도들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모두가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스스로에게 충실한 삶을 살면 그뿐입니다.

 

이 땅에 불교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것은 화엄사상의 덕입니다. 원효, 의상, 자장, 균여 같은 위대한 스님들도 모두 화엄종사(華嚴宗師)였습니다. 삼국통일의 원동력 또한 화엄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화엄이 살아야 이 땅에 불교가 생동하고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컨대 금강경에서는 만약에 몸뚱이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한다면, 그는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다.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눈앞의 현실을 벗어나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도리를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화엄경에서는 몸뚱이는 부처가 아니고 음성 또한 그러하지만, 몸뚱이와 음성을 떠나서 부처의 신통력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네.’라고 설합니다. 눈앞의 현실에 입각한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도리를 강조한 것이지요. 애착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을 놓도록 하는 것이 금강경이라면, 낙담과 절망에 떨어져 있는 이에게 희망을 주어 열심히 살도록 해주는 것이 화엄경인 것입니다.

 

칼로 비유하자면, 금강경은 사람을 죽이는 칼인 살인도(殺人刀), 화엄경은 사람을 살리는 칼인 활인검(活人劍)이라는 것이지요. 금강경은 아상(我相)을 죽여주고, 화엄경은 개성(個性)을 살려줍니다.

 

현대는 개성의 시대입니다. 각자 저마다의 개성을 살리되 서로 존중하고 융화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잡화엄(雜華嚴)의 세계인 것이지요. 화엄경의 본래 이름은 잡화엄경입니다. 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경전이라는 의미지요.

 

부처님 꽃은 무슨 꽃일까요? 연꽃일까요? 아니면 장미? 백합? 들국화일까요? 화엄경에서는 말합니다. 모든 꽃이 부처님 꽃이라고. 장미는 장미대로 들국화는 들국화대로 저마다의 멋과 향이 있습니다. 들국화는 장미꽃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장미는 들국화를 능멸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저 마다의 멋과 향을 한껏 피울 뿐입니다.

 

모든 생명은 이미 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행을 통해서 비로소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깨닫지 못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여여(如如)부동(不動)한 성품을 바라보는 경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품이 몸과 마음을 돌이켜보는 차원에 들어설 때, 각각의 개성(個性)이 그대로 불성(佛性)이라고 하는 화엄의 가르침에 대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는 꽃이 먼저, 잎이 나중인 도리를 설합니다. 꽃 중의 꽃은 웃음꽃입니다.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길까요? 웃을 일이 생겨야만 웃어야 할까요? 웃을 일이 생겨서 웃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웃음으로써 웃을 일이 생기게 만드는 것은 화엄의 이치를 터득한 이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하하!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졸음은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_월 호

 

졸음은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쉬어 가야할 현상이다.”

얼마 전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 위와 같은 글귀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 바 있다. 졸음은 생리적인 현상이기에, 억지로 참고 극복하려다 보면 오히려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말 그대로 10분 먼저 가려다 10년 빨리 가지 않으려면, 차라리 잠시 쉬어가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필자 또한 몇 년 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먼 길 출타하였다가 밤늦은 시간에 운전하며 돌아오게 되었는데, 절 근처 거의 다 와서 식곤증과 함께 졸음이 밀려왔다. 잠시 쉬어갈까 하다가 산길이 캄캄하기도 하고 얼마 남지 않기도 해서 억지로 졸음을 참고 운전하다가 그만 깜박 졸았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자동차가 오른쪽으로 기우뚱하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차가 커브 길에서 직진해가다가 오른쪽 바퀴가 하수구 쪽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자동차 옆구리를 하수구 옆 축대에 심하게 긁혀서 결국은 폐차까지 해야 했지만, 다행이 인명손상은 없었다. 맞은편에서 오는 다른 차들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는 운전하다 졸리면 무조건 휴게소나 공터에 차를 대고 다만 10분이라도 눈을 붙였다 가는 습관이 생겼다.

생각해보면 졸음 뿐 아니라 탐욕과 분노 또한 일종의 생리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억지로 끊고 없애려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런 면에서 탐욕과 분노는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활용해야할 현상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부처님도 애욕과 분노를 활용해서 도를 닦게 한 사례가 있다.

태자의 신분으로 있다가 결혼을 앞두고 얼떨결에 출가한 난타 비구는 아름다운 약혼녀가 눈앞에 어른 거려 도저히 수행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를 눈치 챈 부처님께서 어느 날 난타를 데리고 불이 타고 지나간 숲으로 갔다. 거기에는 화상을 입은 암컷 원숭이가 있었는데, 그 원숭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난타여, 저 원숭이와 그대의 약혼녀 중 누가 더 아름다운가?”

그러자 난타가 대답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약혼녀는 이 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인입니다. 어찌 저렇게 화상을 입은 원숭이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난타를 데리고 천상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는 아름답기 짝이 없는 오백 명의 여인들이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를 보고 다시 부처님께서 물었다.

저 여인들과 그대의 약혼녀 중 누가 더 아름다운가?”

부처님이시여, 저 여인들에 비하면 저의 약혼녀는 마치 원숭이와 같습니다. 이 오백 명의 아름다운 핑크빛 발을 가진 천녀들은 아름답고 귀엽고 사랑스럽기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뻐하라, 난타여! 그대가 열심히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다면, 오백 명의 아름다운 핑크빛 발을 가진 천녀들을 얻게 된다는 것을 내가 보증하노라.”

난타가 설레는 가슴으로 말했다.

부처님께서 오백 명의 천녀를 얻게 된다고 보증하신다면 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이에 다른 비구들은 난타를 일용직 잡부혹은 장사꾼처럼 천녀라는 대가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자라고 놀려대고 비난했다. 난타는 부끄럽고 창피하여 홀로 떨어져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으며, 결국 아라한과를 성취하게 되었다.

위와 같이 부처님은 무조건 애욕을 끊으라고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욕을 적극 활용해서 보증까지 서주며 결국 애욕이 쉬도록 하고 있다. 분노 또한 마찬가지다.

바라문 바랏와자는 불교도인 부인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 부처님께 찾아가 거칠게 항의하며, ‘무엇을 부수어야 편안히 살고 무엇을 부수어야 슬픔이 없는지를 물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답하였다.

성냄을 부수어야 편안히 살고 성냄을 부수어야 슬픔이 없네.

뿌리에는 독이 있지만 꼭지는 달짝지근한 성냄을 부수는 것을

성자들은 칭찬하나니, 성냄을 부수면 더 이상 슬픔이 없기 때문이네.”

이러한 응답에 감동한 바랏와자는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동생이 찾아와 부처님께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묵묵히 이를 다 듣고 난 부처님은 마침내 주인이 손님에게 차려준 밥상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이처럼 그대가 나에게 비난하고 화내고 욕하였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것은 도로 그대에게 되돌아갔다.”

결국 동생 또한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이렇게 셋째, 넷째까지 사형제가 모두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분노에 분노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활용하여 마음을 닦는 계기로 만든 것이다.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탐욕과 분노는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활용해야할 현상이다!’

부처님은 경계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셨는가?

 

월 호(행불선원장)

 

*불교에서 경계는 어떤 상황에 직면한 것을 말한다. 순경계는 자신의 뜻에 맞는 상황에 마주치는 것이고, 역경계는 자신의 뜻에 거스르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순경계가 유발하는 것은 애욕이며, 역경계가 유발하는 것은 분노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순경계와 역경계를 당하여서 부처님은 어떤 태도를 보이셨을까? 사실상 부처님에게 순경계와 역경계란 없다.애욕과 분노를 해탈하여 무아법에 통달하신 분이기 때문이다.다만 중생들의 입장에서 순경계와 역경계가 있을 뿐이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부처님의 태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1. 마간디야를 통해 본 순경계와 역경계

 

순경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애욕의 대상이다. 부처님은 애욕의 대상에 당면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셨을까?

나중에 꼬삼비국 우데나 왕의 왕비가 된 마간디야는 뛰어나게 아름다워서 어울리는 남편감을 구할 수 없었다.대부분의 상류층 자제들이 청혼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모두 거절하였다. 어느 날 부처님을 만난 그녀의 아버지는 드디어 자신의 딸과 결혼할 만한 배필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아내와 함께 부처님께 가서 자신의 딸을 데리고 가라고 청했다.이에 부처님께서는 과거에 마라의 세 딸들이 소녀의 모습과 중년의 갖가지 요염한 모습을 하고 와서 당신을 타락시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말씀하시고,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으셨다.


갈애, 혐오,애욕이라는 이름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세 딸을 보았어도 사랑하고픈 마음이 없었는데,

오줌과 똥으로 가득한 마간디야를 왜 원하겠는가?

그 더러운 몸에 나의 발바닥조차 닿지 않게 하겠네.

이 게송을 들은 마간디야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아나함과를 얻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마간디야는 자신을 오줌과 똥으로 가득한 더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발바닥조차 닿게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부처님께 증오심과 복수심을 품었다. 나중에 꼬삼비의 왕비가 된 마간디야는 부처님이 그 나라로 오시자 복수를 위해 사람들을 매수해서 욕설과 비방을 퍼붓도록 지시했다. 삼보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은 부처님께서 성 안에 들어오시자 부처님 뒤를 따라다니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난다는 차마 듣기조차 힘든 욕설을 듣고 부처님께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고 간청한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어려움이 일어나면 어려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어려움이 가라앉은 다음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는 여래를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에 비유한다.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참고 견디는 것처럼, 사악한 자들이 내뱉는 말을 참고 견디는 것이 여래가 할 일이라고 설하시는 것이다.

전쟁터의 코끼리가 날아오는 화살을 참고 견디듯이

나는 욕설을 참고 견디리라.

사람들은 대부분 도덕과 계율을 모른다.

사람들은 축제에 잘 길들인 코끼리만을 데리고 가고

왕은 길들인 코끼리만 탄다.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잘 참는 사람이

자신을 가장 잘 길들인 사람이다.

노새나 준마나 힘센 코끼리도 길들이면 훌륭하지만

가장 훌륭한 것은 자신을 길들이는 것이다. < 법구경320~322>

결국 자신을 잘 길들인 사람은 순경계에서든 역경계에서든 동요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이교도의 집안에 시집간 급고독장자의 딸 줄라수밧다가 읊은 다음과 같은 게송에 잘 나타난다.

 

세상 사람들은 이익이 있으면 우쭐대고

손해가 있으면 풀이 죽지만

그분들은 이익과 손해에 무관심하지요.

그런 분들이 저의 스님들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명성을 얻으면 우쭐대고

잃으면 풀이 죽지만

그분들은 명성을 얻고 잃음에 무관심하지요.

그런 분들이 저의 스님들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칭찬하면 우쭐대고

비난하면 풀이 죽지만

그분들은 칭찬하거나 비난받거나 똑같은 태도를 보이지요.

그런 분들이 저의 스님들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기쁘면 우쭐대고

괴로우면 풀이 죽지만

그분들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벗어난 분들이지요.

그런 분들이 저의 스님들이에요. < 법구경 304>

 

이 게송에는 여덟 가지 풍파,즉 팔풍(八風)이 잘 나타나있다. 이익과 손해,명성을 얻고 잃음, 칭찬과 비난,괴로움과 즐거움에 당면하여 결코 흔들림이 없는 것이 부처님의 제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물며 부처님이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

 

2.난타 비구를 통해 본 순경계의 활용

 

부처님께서 경계를 대하여 여여 부동하셨음은 많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자들을 대함에 있어서 순경계와 역경계를 잘 활용한 경우도 엿보인다.

태자의 신분으로 있다가 결혼을 앞두고 얼떨결에 출가한 난타 비구는 아름다운 약혼녀가 눈앞에 어른 거려 도저히 수행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알고 계신 부처님께서 어느 날 난타를 데리고 불이 타고 지나간 숲으로 갔다.거기에는 화상을 입은 암컷 원숭이가 있었는데, 그 원숭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난타여, 저 원숭이와 그대의 약혼녀 중 누가 더 아름다운가?”

그러자 난타가 대답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약혼녀는 이 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인입니다. 어찌 저렇게 화상을 입은 원숭이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난타를 데리고 천상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는 아름답기 짝이 없는 오백 명의 여인들이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를 보고 다시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저 여인들과 그대의 약혼녀 중 누가 더 아름다운가?”

부처님이시여, 저 여인들에 비하면 저의 약혼녀는 마치 원숭이와 같습니다.이 오백 명의 아름다운 핑크빛 발을 가진 천녀들은 아름답고 귀엽고 사랑스럽기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뻐하라, 난타여! 그대가 열심히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다면,오백 명의 아름다운 핑크빛 발을 가진 천녀들을 얻게 된다는 것을 내가 보증하노라.”

난타가 설레는 가슴으로 말했다.

부처님께서 오백 명의 천녀를 얻게 된다고 보증하신다면 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이에 다른 비구들은 난타를 일용직 잡부혹은 장사꾼처럼 천녀라는 대가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자라고 놀려대고 비난했다.난타는 부끄럽고 창피하여 홀로 떨어져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으며, 결국 아라한과를 성취하게 되었다.

위와 같이 부처님은 무조건 애욕을 끊으라고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욕을 적극 활용해서 보증까지 서주며 결국 애욕이 쉬도록 하고 있다.분노 또한 마찬가지다.

 

3.바랏와자 바라문형제를 통해 본 역경계의 활용

 

바라문 바랏와자는 불교도인 부인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 부처님께 찾아가 거칠게 항의하며, ‘무엇을 부수어야 편안히 살고 무엇을 부수어야 슬픔이 없는지를 물었다.이에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성냄을 부수어야 편안히 살고 성냄을 부수어야 슬픔이 없네.

뿌리에는 독이 있지만 꼭지는 달짝지근한 성냄을 부수는 것을

성자들은 칭찬하나니, 성냄을 부수면 더 이상 슬픔이 없기 때문이네.”

이러한 응답에 감동한 바랏와자는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이 소식을 들은 그의 동생이 찾아와 부처님께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묵묵히 이를 다 듣고 난 부처님은 마침내 주인이 손님에게 차려준 밥상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이처럼 그대가 나에게 비난하고 화내고 욕하였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것은 도로 그대에게 되돌아갔다.”


결국 동생 또한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이렇게 셋째,넷째까지 사형제가 모두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분노에 분노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잘 활용하여 마음을 닦는 계기로 만든 것이다.

 

*경허선사의<참선곡>팔풍오욕 일체경계 부동한 이 마음을 태산같이 써나가세라는 표현이 있다.순경계와 역경계의 여덟 가지 바람에 동요하지 말고 태산같이 여여(如如)하자는 뜻이다.부처님의 제자들이 이러할진대 부처님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부처님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자들을 교화함에 순경계와 역경계를 자유자재로 잘 활용하신 것으로 보인다.알고 보면 순경계가 역경계요,역경계가 순경계다. 또한 내가 있기에 경계가 있는 것이지, 내가 사라지면 경계 또한 사라진다.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애욕과 분노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활용해야할 현상이다.’


             청정도론>에서는 인간의 성향을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고 각각에 적합한 특성과 명상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일단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고 있는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을 기준으로 한다. 나아가 이러한 세 가지 성향의 초점을 전환했을 때, 탐하는 기질은 믿는 기질로, 성내는 기질은 지적인 기질로, 어리석은 기질은 꾸준한 기질로 바꿀 수 있음에 근거하고 있다.

 

탐하는 기질을 가진 자의 숙소는 더럽고 환경이 열악하며, 의복은 촉감이 꺼칠꺼칠하고 더러운 것, 음식도 맛없고 거친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된다. 행동거지는 서있거나 걷는 것이 좋고, 명상법은 부정관이 적합하다.

 

성내는 기질을 가진 자의 숙소는 잘 정리되고 깨끗하며, 의복은 촉감이 부드럽고 가벼우며 색깔이 고운 옷, 음식은 색깔과 향과 맛이 있고 영양분이 있고 원하는 만큼 충분한 것이 좋다. 행동거지는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것이 좋고, 명상법은 자비관이 적합하다.

 

어리석은 기질을 가진 자의 숙소는 사방으로 향해 있고 막히지 않고, 앉아서 사방이 확 트인 곳, 의복은 촉감이 부드럽고 가벼우며 색깔이 고운 옷, 음식은 색깔과 향과 맛이 있고 영양분이 있고 원하는 만큼 충분한 것이 좋다. 행동거지는 천천히 걷는 것이 좋고, 명상법은 수식관이 적합하다.

 

믿는 기질을 가진 자에게 적합한 사항은 성내는 기질을 가진 자와 같다. 더불어 삼보에 대한 명상이 적합하다.

 

지적인 기질을 가진 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없다. 더불어 죽음에 대한 명상이 적합하다.

 

꾸준한 기질을 가진 자에게 툭 트인 곳은 적합하지 않다. 숲으로 가려진 깊은 동굴이 좋다. 나머지는 탐하는 기질을 가진 자와 같다.

 

이상 여섯 가지 성향의 사람 모두에게 적합한 수행법이 있다.

그것은 모두가 이미 갖추고 있는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일으키기 이전의 본 마음 참 나를 체험하고, 앉으나 서나 오나가나 자나 깨나 관찰자의 입장에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며 살아가는 것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훌륭한 수행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참불선원 인문학강좌명쾌·호쾌·상쾌 <선가귀감>


 

바라보는 것이 수행인 불교
서구교육 익힌 이에겐 어려워
모든 존재 이미 걸림 없기에
화두 통해 본래면목 살펴야

 

오늘은 서산대사(1520~1604)<선가귀감(禪家龜鑑)>을 통해 설명한 ()’이 어떤 것인지 간단하게 얘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보통 선을 이야기하면 중국을 떠올리곤 하죠.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서산대사라는 특별한 선승이 계셨고, 이런 좋은 어록을 남겨주셨다는 게 고귀합니다.

그럼에도 <선가귀감>을 공부하는 사람이 드문 점은 안타깝습니다. 서산대사의 법명은 청허 휴정이고,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조직해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아는 사실입니다. 서산은 당시 묘향산이 서북의 명산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진 것입니다.

 

우선, 여러분의 근기를 파악하기 위해 준비한 게 있습니다. 여러분은 각자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얼마 전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서 정비소에 갔더니 사무실 옆에 적힌 내용인데요. 차주라면 꼭 해야 할 2가지와 하지 말아야 할 2가지입니다.

 

A(미리미리 관리)-최소비용(그린존)

B(때가 돼서 관리)-기본비용(블루존)

C(때가 지나 처방)-추가비용(레드존)

D(미루다가 수리)-최대비용(블랙존)

 

건강하고도 관련 있겠죠.

차에 관한 얘기지만 마음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존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음입니다. 어느 날 행불선원 근처를 지나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담벼락 틈을 비집고 핀 꽃 한 송이를 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걸 보고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꽃의 생명력’ ‘아름다움’ ‘밝고 환하다’ ‘참 애썼구나’ ‘열심히 살고 싶다등등 아주 다양하겠죠.

느낌을 얘기했을 뿐인데 사람마다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눈으로 보는 모습에 대해서 주로 나타나는데요.

 

이와는 달리 사진을 찍은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이 관찰자의 시각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지금 한 얘기는 참선의 시각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던진 서두입니다.

, 주와 객의 시각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관찰자의 시각으로 전환하는 겁니다.

 

불교수행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요.

첫째 몸 보기, 둘째 마음 보기, 셋째 성품 보기입니다.

 

따라서 불교수행은 보는 것이고, 이를 관찰하는 걸 명상이라고 합니다.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는 모습을 바라보는 관찰자와 그 관찰자를 관찰하는 것이 참선이고 견성(見性)이라고 합니다. 명상과 참선의 가장 큰 차이가 이것입니다. 명상은 한 가지를 계속 관찰하는 사마타와 여러 가지를 보는 위빠사나로 구분되죠. 하지만 참선은 관찰자를 관찰합니다.

그렇기에 참선문중에서는 견성도인이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참선은 목표도 견성이고, 방법도 견성입니다. 어찌 보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몸을 보고, 마음을 보는 것까진 이해가 되는데 성품은 도대체 어떻게 볼까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서양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분별적 사고에 익숙합니다. 관찰자는 분별 이전의 자리이기 때문에 익숙지 않은 것이죠. 그러나 알고 보면 이보다 쉬운 것도 없습니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는 관찰자를 일물(一物)이라고 표현합니다. 서산대사의 임종게로 알려진 시에는 이에 대한 관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공수래공수거 시인생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空手來空手去 是人生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 이것이 인생이다. 생은 어디서 왔으며, 죽음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그렇습니다. 대제국을 세웠던 알렉산더대왕도 죽을 때 자신의 손을 대중에게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결국 빈손이란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제 출가동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어느 날 젊은 지인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지인마저 돌아가셨죠. 그때 죽음이 먼 미래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오늘일 수도, 내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어디서 왔고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부운자체본무실 생사거래역여연(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태어난다는 것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남이며, 죽는다는 것은 한 조각 뜬구름 사라짐이네.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으니 생사의 오고감 또한 이와 같도다.

 

어느 날 저는 삼각산에서 참선을 했습니다. 출가 이전에 마음공부 하려고 어지간히 헤맸죠. 책도 읽고, 큰스님들 법문도 들었습니다. 그리곤 산속에서 참선한다고 가부좌를 틀고 죽어라 정진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더군요.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산꼭대기에 올랐는데 넓적한 바위가 있더군요. 그 바위에 대자로 누웠습니다. 화두고 뭐고 그냥 힘들어서요.

그렇게 쉬고 있는데 하늘이 정말 파랬습니다. 모처럼 마음이 편해졌죠. 근데 동글동글하고 아주 예쁜 구름 하나가 천천히 흘러오더군요. 그리곤 어느 순간 점점 흩어져 사라져버렸습니다. 그걸 보는데 어찌나 환희심이 나던지 콱 막혀 있던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웃음이 절로 나왔죠. 이 게송이 그때 마음과 참 닮았습니다.

 

독유일물상독로 담연불수어생사(獨有一物常獨露 湛然不隨於生死).

오직 한 물건만 항상 홀로 드러나 생사에 따르지 않고 맑네.

 

우리 몸뚱이는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하며,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하다고 합니다. 오늘의 여러분과 내일의 여러분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끊임없이 변화할 뿐입니다. 오로지 일물(一物)만 있을 뿐입니다. 조금 더 쉽게 얘기해보겠습니다.

 

(울림 주발을 치고) 지금 소리가 있나요? , 있습니다.

 (울림 주발을 잡고) 지금은 어떤가요? 소리가 없습니다.

(다시 울림 주발을 치고) 지금 소리를 듣고 있나요? 그렇죠.

 (울림 주발을 잡고) 소리를 안 듣고 있나요? 그렇지 않죠.

우리는 듣고 있기 때문에 소리가 없다는 걸 압니다. 즉 소리에는 생멸이 있지만 소리를 듣는 성품은 항상 존재합니다.

잘 때 꿈에서 볼 것 보고 들을 것 다 듣죠? 이것도 성품의 작용입니다.

 여러분이 잠들어도 성품은 잠들지 않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품은 관찰자입니다. 그리고 성품을 보는 게 생사를 넘는 것이죠. 몸뚱이는 죽고 살지만 그 성품은 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화를 내는 것도 내가 화를 내는구나가 아니라 월호가 화를 내는구나라고 봐야 합니다.

 

이제 <선가귀감>의 첫 대목을 보겠습니다.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 없다.

 

한 물건이란 뭘까요?

이를 두고 옛 어른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 부처님 나기 전에 의젓한 동그라미, 석가도 아직 모르는데 가섭이 어찌 전하랴?” 정답은 아니지만 쉽게 말하면 한 물건을 불성(佛性)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이유는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 명명하든 정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어떤 이름이든 붙일 수 있고, 어떤 모양이든 그려낼 수도 있겠죠.

 

우리는 흔히 일체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고 합니다[一切衆生悉有佛性].

내 몸이 있고, 그 안에 마음이 있고, 그리고 마음 안에 불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불성은 내 몸보다 클 수 없습니다. 불성이란 건 그렇게 작지 않습니다. 몸보다, 마음보다 큰 것이 불성이지만 이를 지니고 있다고 표현하다보니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겁니다.

 

몸을 닦지만 성품을 닦을 순 없습니다. 더럽혀지지 않아서 닦을 수 없는 겁니다. <반야심경>의 불구부정입니다. 이건 그냥 보면 되는 겁니다. 512처가 모두 불성입니다. 일체가 나이고, 불성인 셈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화두집인 <선문염송>의 제1칙이 도솔화두입니다. ‘세존께서 아직 도솔천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왕궁에 강림하셨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중생을 다 제도해 마쳤다. 이것이 무슨 소식인가.’

무슨 뜻인지 단박에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이것이 간화선의 특징이기도 한데요. 묵조선이 좌선을 중시한다면 간화선은 문답을 중시합니다. 그냥 앉아만 있다면 백년이 지나도 똑같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자기 고정관념으로 인해 말이죠. 간화선은 선지식이 답을 가르쳐주진 않지만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도록 합니다. 틀린 건 틀렸다고 알려주죠. ‘이뭣고화두 역시 같습니다.

 

도솔화두를 잘 살펴보면 부처님이 계시는 도솔천과 카필라성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말합니다. 출생 이전에 중생을 제도한 것은 시간적 걸림이 없다는 것이고요. 더 자세히 설명할 부분이 있지만 일단 선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선가귀감> 두 번째 대목은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이 일어남이다입니다. 역시 쉽게 이해되진 않습니다. 이는 한 물건으로 따졌을 때 사람마다 본래면목이 뚜렷이 이루어져 있기에 부처와 조사가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이 허망한 생각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감이 좀 오시나요?

다른 대목인 대장부는 부처와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해야 한다는 것 역시 부처와 조사에게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얽매여 걸림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참선은 정해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게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작 단계에서는 무언가 길을 열어줄 수 있을 만한 방법이 있어야 접근이 편하기

대비심 일으키기

 

 

몇 년 전 대만 성지순례 시 법고산사에서 기대비심(起大悲心)’이라는 현판을 보았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라면 일반적으로 관음전이나 원통보전등으로 써놓기 마련인데, 거기에서는 기대비심이라는 현판을 정면에 붙여놓았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첩경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사실 대자심보다 어려운 것이 대비심이다. 내 말을 잘 듣고 나에게 잘 하는 사람을 어여뻐서 사랑하는 것이 자심(慈心)이고, 내 말을 안 듣고 나에게 안 좋게 대하는 사람을 가엾어서 사랑하는 것이 비심(悲心)이다. 자심을 내기는 비교적 쉽지만, 비심을 내기는 어렵다. 더구나 원수까지도 크게 가엾이 여기는 대비심을 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보살의 진정한 수행은 대비심을 일으키는 데서 출발한다. 알고 보면 이야말로 분별심을 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대비심을 일으키는 연습을 한다.

예컨대, 남편은 아내에게 여보! 참으로 고생이 많소. 나보다 더 부유하고 훌륭한 배우자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았을 텐데, 생활에 바빠 애정 표현도 제대로 안 하면서 나름 잘 해주고 있다고 착각하는 나 같은 사람만나 고생이 많으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나는군.’이라고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당신! 참으로 고생이 많죠. 나보다 더 어여쁘고 지혜로운 배우자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편했을 텐데, 자식들 챙기기 바빠 제대로 살피지도 못하고 잔소리만 일삼는 나 같은 여자 만나 고생이 많으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납니다.’라고 하면 어떨까?

단지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넉넉해지고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또 대비심을 일으키면 바라는 마음보다 주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게 된다.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크게 가엾은 마음을 일으키니 저절로 환희심이 우러나고 두려움이 사라진다. 서로 부딪힐 일이 많은 현 시대에 꼭 필요한 수행이 바로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 아닐까?


 

관련

때문입니다


. 화두는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꼬꼬댁! 꼬꼬!

 

 

학명선사는 말했다. ‘묵은해니 새해니 구분하지 말게나. 겨울가고 봄 오니 해 바뀐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비록 나이 한 살 더 먹어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한다 해도 마음은 하얗게 변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음을 관찰하는 관찰자는 하얗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 감을 관찰할 뿐! 서산대사는 이렇게 설했다.

머리카락은 세어도 마음은 세지 않는다고 옛사람 이미 밝혔건만,

이제 막 닭울음소리 듣고 장부의 능사를 마쳤다네.’

원숭이해가 지나가고 닭의 해가 밝아온다. 새해에는 우리도 서산대사처럼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대장부가 해야 할 일을 마치기로 하자. 닭울음소리를 듣는 이 성품은 어떤 건가, 어떻게 생겼을까? 서산대사는 이어서 설했다.

홀연히 집안일을 깨치니 두두 물물이 다만 이것뿐!

수많은 보배 경전도 원래 이 하나의 빈 종이일 뿐!’

~하하하하! 꼬꼬댁! 꼬꼬!

오늘은 내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는 저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다만 관찰할 뿐!

새해에는 몸을 관찰하고 마음을 관찰하고 관찰자를 관찰하자. 관찰! 관찰! 관찰보다 더한 대광명이 있었던가? 몸과 마음은 일어나고 사라지나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관찰자는 항상 여여부동이다. 생기지도 멸하지도 아니하고, 더럽지도 깨끗지도 아니하며, 늘어나고 줄어들지 아니한다.

겨울은 겨울로서 절대이고, 봄은 봄으로서 절대이다. 묵은해는 묵은해로 절대이고 새해는 새해로 절대이다. 겨울이 변해서 봄이 되는 것이 아니며, 묵은해가 변해서 새해로 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밥 먹을 땐 밥 먹을 뿐! 잠잘 땐 잠잘 뿐! 묵은해는 묵은해답게 놓아버리고, 새해는 새해답게 맞이해서 살아갈 뿐!

행불(行佛) 연습

 

1. ‘마하반야바라밀을 구념심행(口念心行)한다.

* 다 같이 합장하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한다.(10)

*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고 들을 때, 이 성품이 어떤 건가?’

* 장궤합장하고 2회씩 주거니 받거니 한다.(시간에 따라 돌아가면서 반복)

* ‘마하는 큼이요, ‘반야는 밝음이요, ‘바라밀은 충만함이다.

마하반야바라밀이 나요,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나는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하다.’(3)

* 앉으나 서나, 오나가나, 자나 깨나, 죽으나 사나 마하반야바라밀

 

2. 대비심(大悲心)을 일으킨다.

* 나도 때때로 이렇게 힘든데,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육체적 고통, 또 그보다 더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 부처님께:

부처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보다 더 신심 있고 지혜로운 제자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기쁘셨을 텐데, 인과를 확신치 않고 복을 구걸하면서 여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은 저희를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함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제자 만나 수고가 많으시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 중생에게:

첫째, 중생들이 고독하여 의지할 데가 없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둘째, 중생들이 빈궁하여 곤란함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셋째, 중생들이 삼독의 불에 타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넷째, 중생들이 업보의 옥에 갇혀있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다섯째, 중생들이 번뇌의 숲에 막혔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여섯째, 중생들이 관찰법을 알지 못함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일곱째, 중생들이 선한 법에 하고자 함이 없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여덟째, 중생들이 부처님 법을 잊어버린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아홉째, 중생들이 생사의 물결에 따르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열째, 중생들이 해탈하는 방편을 잃었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냅니다.

 

부모님께:

부모님! 참으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보다 더 말 잘 듣고 효성스런 자식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셨을 텐데, 부모님 은혜는 아는지 모르는지 부모님 말씀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면서 근본을 무시하고 지엽에만 정성을 쏟는 저 같은 자식 만나 수고가 많으시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자식에게:

네가 고생이 많다. 나보다 더 부유하고 따뜻한 부모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공했을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따뜻한 사랑은 주는 둥 마는 둥,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이만하면 할 바를 다했다고 착각하는 부모 만나 고생이 많으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남편에게:

당신! 참으로 수고가 많죠. 나보다 더 알뜰하고 지혜로운 아내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편했을 텐데, 밖에서 어려움은 있는지 없는지 무관심하거나,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툭 하면 토라지는 나 같은 여자 만나 수고가 많으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아내에게:

여보! 참으로 고생이 많소. 나보다 더 넉넉하고 자상한 남편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생활에 바빠 애정 표현은 하는 둥 마는 둥, 아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때때로 버럭 성질내면서 나름 잘 해주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만나 고생이 많으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나는군요.

 

스님에게:

스님! 참으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나보다 더 공부 꾸준히 하고 말 잘 듣는 신도 만났으면 훨씬 더 전법을 잘 하셨을 텐데, 공부는 하다 말다 보시는 할까 말까 오락가락하는 저 같은 신도 만나 수고가 많으시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신도에게:

불자님! 참으로 고생이 많습니다. 나보다 더 지혜롭고 자비로운 스님 만났으면 훨씬 더 복과 도를 잘 닦았을 텐데, 때때로 변덕스럽기도 하고 신도들의 형편과 심중은 살피는 둥 마는 둥, 무정하고 고집 센 스님 만나 고생이 많으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나는군요.



 

크게 너그럽게

 

월호 (행불선원장)

 

마음에는 실체가 없다. 다만 작용이 있을 뿐! 그러므로 크게 쓰면 커지고 작게 쓰면 작아진다. 너그럽게 쓰면 너그러워지고 각박하게 쓰면 각박해진다. 크게 쓸 것인가, 작게 쓸 것인가? 너그럽게 쓸 것인가, 각박하게 쓸 것인가? 내가 선택한다. 내 작품이다.

새해에는 새롭게 대비심(大悲心)을 일으키도록 하자.

먼저 나도 때때로 이렇게 힘든데,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육체적 고통, 또 그보다 더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스스로 다짐하자.

그리고 부모님께 이런 마음을 다짐하자. ‘부모님! 참으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보다 더 말 잘 듣고 효성스런 자식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셨을 텐데, 부모님 은혜는 아는지 모르는지 부모님 말씀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면서 근본을 무시하고 지엽에만 정성을 쏟는 저 같은 자식 만나 수고가 많으시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나아가 자식에게 이런 마음을 다짐하자. ‘네가 고생이 많다. 나보다 더 부유하고 따뜻한 부모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공했을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따뜻한 사랑은 주는 둥 마는 둥,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이만하면 할 바를 다했다고 착각하는 부모 만나 고생이 많으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남편에게는 이런 마음을 연습하자. ‘당신! 참으로 수고가 많죠. 나보다 더 알뜰하고 지혜로운 아내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편했을 텐데, 밖에서 어려움은 있는지 없는지 무관심하거나,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툭 하면 토라지는 나 같은 여자 만나 수고가 많으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아내에게는 이렇게 마음먹자. ‘여보! 참으로 고생이 많소. 나보다 더 넉넉하고 자상한 남편 만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생활에 바빠 애정 표현은 하는 둥 마는 둥, 아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때때로 버럭 성질내면서 나름 잘 해주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만나 고생이 많으니 크게 가엾은 마음이 일어나는군요.’

중생에게는 열 가지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자.

첫째, 중생들이 고독하여 의지할 데가 없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둘째, 중생들이 빈궁하여 곤란함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셋째, 중생들이 삼독의 불에 타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넷째, 중생들이 업보의 옥에 갇혀있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다섯째, 중생들이 번뇌의 숲에 막혔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여섯째, 중생들이 관찰법을 알지 못함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일곱째, 중생들이 선한 법에 하고자 함이 없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여덟째, 중생들이 부처님 법을 잊어버린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아홉째, 중생들이 생사의 물결에 따르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며,

열째, 중생들이 해탈하는 방편을 잃었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을 냅니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크게 너그러운 마음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 이 사회가 좀 더 푸근해지기를!

 

감지덕지(感之德之)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더 이상 바란다면 그것은 도둑놈 심보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대로 무조건 감사합니다. 다만 감사의 보답을 생각할 뿐!

인간으로 태어나서 감사합니다. 불법 만나서 더욱 감사합니다. 정법 깨우쳐나가니 더더욱 감사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고 삼악도에 태어났더라면 불법 만나기도 어렵고, 만난다 해도 깨우치기 어려웠을 텐데.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불법 만나지 못했다면, 술에 취하거나 돈에 취하거나 신에 취해 살았을 텐데. 불법 만났어도 정법 깨우치지 못했다면 다만 기도나 하면서 복이나 구걸했을 텐데.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복된 윤회나 추구했을 텐데.

사리자 같은 지혜제일의 제자도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해탈의 첫 단계인 수다원과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붓다의 말씀이 실감이 납니다. 아마도 세 가지 낡은 믿음 가운데 하나에 치우쳐 있었겠지요.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있다는 숙명론이나, 모든 것은 신의 뜻에 달려있다는 신의(神意), 또는 모든 것은 우연일 뿐이라는 우연론에 빠져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살생을 하거나 남의 것을 훔치거나 삿된 음행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은 그저 숙명이거나 신의 뜻이거나 우연일 뿐이라는 무책임한 고정관념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제 이 세 가지 낡은 믿음에서 벗어나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는 인과설을 믿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진리를 믿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살생하지 말고 방생하라. 부자가 되려면 남의 것을 훔치지 않고 베풀어라. 존경받으려면 삿된 음행하지 말고 청정한 행을 닦으라. 신뢰를 얻으려면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는 붓다의 말씀을 믿습니다. 복을 받고 싶으면 복을 지어야함을 믿습니다. 복 짓는 비결은 베푸는 것이요, 그 가운데 법을 베푸는 것이 으뜸임을 굳게 믿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법륜을 굴리겠습니다. 행불(行佛)하겠습니다.


 

누가 묶었냐?

 

바람을 얽고 허공을 붙든다 해도

이 한 물건이야 어떻게 속박할 수 있으랴? -무의자-

 

자승자박(自繩自縛)입니다.

아무도 나를 묶지 않았건만 스스로 묶여있는 것이지요.

번뇌를 꽉 움켜쥐고서 내 것이라 생각합니다.

번뇌는 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면해서 관찰하면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닉네임을 붙여하면 훨씬 효과적입니다.

 

월호라는 육근(六根)의 무더기가 근심 걱정하고 있구나!

월호라는 육근의 무더기가 화를 내고 있구나!

월호라는 육근의 무더기가 늙어가고 있구나!

월호라는 육근의 무더기가 아파하고 있구나!

월호라는 육근의 무더기가 죽어가고 있구나!

 

육근이란 눈· · · · · 뜻을 말합니다.

근심 걱정하고, 화를 내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월호라는 육근의 무더기일 뿐!

정작 이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관찰자는 거기에 묶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사를 초월하고 현실을 담담히 지혜롭게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전해주는 것이 최상의 자비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방법을 통해 몸과 마음의 속박에서 해탈하기를!

 

온갖 티끌 숫자 세고, 바닷물을 다 마시고

허공무게 잴 수 있고, 바람 또한 묶는다 해도

이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네!

 

본래 해탈

 

깨달음은 태초에 완성되어있다. 어찌 닦아서 만들 수 있으랴? 닦아서 이루어지는 깨달음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닦는다는 것은 닦을 것이 없음을 알기 위함이며,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을 것이 없음을 깨치는 것이다.

번뇌는 본래 공한 것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불성의 드러남이다. 있는 것은 오직 불성뿐! 이렇게 보자면 오온, 육근, 십이처, 십팔계가 그대로 불성이다. 불성은 크고 밝고 충만하다. 그러므로 나는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하다. 시시때때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번뇌는 다만 크고 밝고 충만한 본심을 일깨워주는 방편에 불과하다. 작고 어둡고 결핍된 몸과 마음을 통해서 크고 밝고 충만한 성품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면관찰이다.

걸어가면 걸어간다고 관찰한다. 머무르면 머무른다고 관찰한다. 앉아있으면 앉아있다고 관찰한다. 누워있으면 누워있다고 관찰한다. 태어나면 태어났다고 관찰한다. 늙어 가면 늙어간다고 관찰한다. 병이 들면 병들었다고 관찰한다. 죽어 가면 죽어간다고 관찰한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무덤덤한 느낌이 일어나면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무덤덤한 느낌이 일어난다고 관찰한다.

탐욕심이 일어나면 탐욕심이 일어난다고 관찰한다. 분노심이 일어나면 분노심이 일어난다고 관찰한다. 시기질투심이 일어나면 시기질투심이 일어난다고 관찰한다. 걱정 근심이 일어나면 걱정 근심이 일어난다고 관찰한다.

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내가 아니라고 관찰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귀, , , , 뜻도 내가 아니라고 관찰한다. 결국 육근의 무더기가 내가 아니라고 관찰한다.

대면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능은 번뇌의 소멸과 관찰자 체험이다. 몸과 마음을 대면 관찰하니 고통이 사라지거나 누그러진다. 분리효과 때문이다. 그리고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이 관찰자야말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인 성품인 것이다. 모든 존재 변화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나 관찰자는 여여부동 늙고 죽음 초월한다.

본래 해탈인 것이다. 우하하하하하

~

행복도 내 작품이다!

 

1. 마하반야바라밀 10()

 

마하는 이요, 반야는 밝음이요, 바라밀은 충만함이다.

마하반야바라밀이 ,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나는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하다.’

 

2. 늙고 죽음의 원인은?

붓다의 화두는 오직 늙고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이었다.

쾌락과 선정, 그리고 고행을 통해서는 결코 늙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체득한 붓다는 나무 밑에 앉아 늙고 죽음의 원인에 대하여 사유하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나오기 때문이다.

 

늙고죽음 왜 생겼나? 태어남이 있기 때문.

태어남은 왜 생겼나? 존재열망 있기 때문.

존재열망 왜 생겼나? 내것으로 취함 때문.

내것취함 왜 생겼나? 상대애착 하기 때문.

애착함은 왜 생겼나? 좋고나쁜 느낌 때문.

상대느낌 왜 생겼나? 서로접촉 하기 때문.

접촉함은 왜 생겼나? 여섯기관 있기 때문.

여섯기관 왜 생겼나? 몸과마음 있기 때문.

몸과마음 왜 생겼나? 나름생각 하기 때문.

나름생각 왜 생겼나? 의도적인 행위 때문.

의도행위 왜 생겼나? 밝지못함(無明) 때문이네.”

 

결국 늙고 죽음의 근본 원인은 밝지 못함 때문이다.

무엇에 밝지 못함인가? 무아법에 밝지 못함이다.

 

나의 고통은 가 있기 때문이다.”

 

3. 무아법에 밝으려면 네 가지로 관찰하세.

 

몸에 대해 몸을 보고, 느낌 대해 느낌 보고,

마음 대해 마음 보고, 법에 대해 법을 보세.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불 구경하듯,

대면해서 관찰하되 닉네임을 붙여하세.”

 

몸과 마음을 대면 관찰하니 고통이 사라지거나 누그러진다.

그리고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이 관찰자야말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인 성품인 것이다.

 

몸과 마음 변화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나,

관찰자는 여여부동 늙고 죽음 초월하네.”

 

이 소식을 알게 되니 기쁘지 아니한가?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하하하하하!”

 

4. 대면관찰! 행복충만! 아니가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가세 가세 건너서 가세, 애착하면 못가나니~

몸과 마음 진짜 아니요, 관찰자가 진짜 나라네.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대면 관찰! 행복 충만! 아니가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차차차 (차차차)

 

자신의 성품이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함을 알게 되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큰마음으로 밝게 살면 될 뿐이다.

또한 스스로 충만하니 더 이상 밖으로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그저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면 그만이다.

감지덕지인 것이다!!!

여섯 가지 행복체험

 

마하는 이요, 반야는 밝음이요, 바라밀은 충만함이다.

마하반야바라밀이 ,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나는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작고 어둡고 모자라게 느껴지는 것은

진정한 마하반야바라밀을 체험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작음을 통해 , 어두움을 통해 밝음, 모자람을 통해 충만함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말한다.

만일 어떤 중생들이 보시하며 계율 갖고 인욕하고 정진하며 선정 지혜

법문 듣고 복과 지혜 닦았으면 이미 모두 성불했고, 흙을 모아 절 지으며

어린애들 장난으로 흙모래로 탑을 세운 이와 같은 사람들도 모두 이미

성불했고, 부처님 상 세우거나 조각해도 모두 이미 성불했고, 불상장엄

그릴 적에 제가 하나 남 시키나 모두 이미 성불했고, 아이들이 장난으로

붓이거나 꼬챙이로 부처모양 그렸어도 모두 이미 성불했고, 환희하여 노래

불러 찬탄하되 한마디만 하더라도 모두 이미 성불했고, 산란한 마음으로

한 송이 꽃이라도 불상 앞에 공양하면 모두 이미 성불했고, 산란한 마음으로 탑묘 속에 들어가서 나무붓다한번 해도 모두 이미 성불했고,

이런 법문 들은 이는 모두가 다 성불하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본래 성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한 고향 출신이며 본래 부처라고 하는 것이다.

수행이란 단지 리셋버튼을 눌러주는 것이며, 이것이 바라밀이다.

결국 보살의 육바라밀은 본래 부처지금 부처로 나타나는 수행,

즉 행불(行佛)이며, 바로 지금 여기서 충만한 행복을 체험하는 것이다.

 

육바라밀의 첫째는 보시바라밀이다.

구걸하는 마음 연습하면 거지 종이 되고,

베푸는 마음 연습하면 부자 주인이 된다.”

화를 잘 내는 이는 얼굴이 추하게 된다.

욕심이 많고 베풀기 싫어하면 가난하게 태어난다.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질투하면 비천하게 된다.’

두 번째는 지계바라밀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살생하지 말고 방생하라.

부유해지려면 훔치지 말고 베풀어라.

존경받으려면 삿된 음행하지 말고 청정한 행을 닦으라.

신뢰를 얻으려면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

지혜로워지려면 술을 절제하고 정신을 맑게 하라.’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우하하하하하~”

 

세 번째는 인욕바라밀이다.

화는 참으면 병이 되고 터뜨리면 업이 된다. 관찰하면 사라진다.”

몸에 대해 몸을 보고, 느낌 대해 느낌 보고

마음 대해 마음 보고, 법에 대해 법을 보세.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대면해서 관찰하되, 닉네임을 붙여하세

 

짜증은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는 받쳐서 무엇 하나?

인생 일장춘몽인데 웃기도 하면서 살아보세. 니나노~’

 

네 번째는 정진바라밀이다. 익은 것은 설게 하고, 설은 것은 익게 한다.

가세, 가세, 건너서 가세. 애착하면 못 가나~

몸과 마음 진짜 아니요. 관찰자가 진짜 나 라네!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대면관찰! 행복 충만! 아니가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다섯째는 선정바라밀이다. 마음공부의 삼 단계: 일심, 무심, 발심

첫째,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한다.

둘째, 그 소리를 듣는다.

셋째,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

여섯째는 지혜바라밀이다. 텅 비었기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

성불은 행불로부터!

바로 지금 여기에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자.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자.”

 

보시바라밀을 통해서 본래 충만함을!

지계바라밀을 통해서 본래 청정함을!

인욕바라밀을 통해서 본래 참을 자가 없음을!

정진바라밀을 통해서 더 이상 나아갈 바 없음을!

선정바라밀을 통해서 본래 고요함을!

지혜바라밀을 통해서 본래 밝음을! 체험하게 할 따름이다.

결국 여섯 가지 행복체험을 통해서 본래 부처를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