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불일불이|******@불교의우주론@

2018. 6. 16. 21:10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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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불일불이

- 수소 산소와 물의 관계 연기에 의한 성립 보여 -
- 원인과 결과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중도의 입장 -

중론에는 불일불이와 관련되는 게송이 여러 군데에 나온다. 대표적인 것만을 우선 살펴보자. “원인과 결과가 동일하다는 것은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가 다르다면 이러한 일도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원인과 결과가 동일하다면 능생(能生:생겨나게 하는 것)과 소생(所生:생겨나는 것)은 동일한 것이되며, 원인과 결과가 다르다고 한다면 원인은 원인이 아닌 것과 동일한 것이 될 것이다.”
세존 이래의 상활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하여 중론의 사상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이 게송의 의미를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세존은 “세계는 상주하는가 아니면 무상한가?” 혹은 “영혼은 육체와 동일한가 아니면 다른가?”등의 질문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가 열반에 이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본다면 이런 형이상학적인 탐구는 필연적으로 경험적이고 상대적인 견해에 집착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질 것이기 때문에, 석존은 무기에 의하여 언설로는 이룰 수 없는 중도의 진실 즉 언설불가득공(言說不可得空)의 진실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석존 면후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등에서와 같이 세계는 상주한다는 등의 견해가 불교 내부에서까지 융성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용수는 사성제(四聖제)와 연기설을 근간으로 하는 붓다의 중도사상을 반야공의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재구성하여, 외도의 견해를 그 근거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논파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용수보살이 중도사상을 주창하게 된 동기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용수보살은 위의 게송에서와 같이 자신의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일은 거의 없이, 외도의 견해를 주제로 설정하고 이를 비판하여 이러한 견해가 잘못된 것임을 밝히는데에 중론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는 물론 외도 사상의 잘못을 지적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상승 진리의 진실한 뜻은 어떠한 언어적 표현으로도 온전히 나타낼 수 없고 따라서 언어적 표현으로는 훼손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릇된 견해만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ㅡ’의 사상이란 원인과 결과가 같다는 인과동일의 입장이며 ‘異’의 사상이란 원인과 결과가 다르다는 인과찰별의 입장이다. 이러한 일이(一異)의 입장은 유자성론(有自性論)의 과실 이다. 사물이 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면 원인과 결과 혹은 능생과 소생의 존재성이 동일하든가 아니면 다르다는 그릇된 견해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그릇된 견해는 과거 어떤 특정한 시기의 인도에서만 가능했던 거이 아니다. 우리들이 붓다의 진실한 가르침을 이어가 지 못한다면 언제고 쉽게 품을 수 잇는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 간에도 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원인과 결과는 연기론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용수보살은 이를 능동적으로 생 겨나게 하는 것으로서의 능생과 수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으로서의 소생 즉 능 소의 관계로 파악하면서 이 관계를 불일불이(不一不異)라고 하였다. 이를 원 자의 세계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수소 원자 두개와 산소원자 하나가 결합하 여 물 분자를 이룬다. 수소 기체란 아주 가벼운 것으로서 이를 이용하여 과 거에는 비행선을 제작하여 하늘에 뛰우기도 하였었다. 산소란 생물이 호흡하 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특히 식물은 이를 이용하여 광합성을 하면서 생물계 전체에 먹이를 제공한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물을 이룬다는 관계에서 본다면, 수소와 산소는 물 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므로 능생이며 물은 수소와 산소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므로 소생이 된다. 물로 여기서의 능생이나 소생이라는 위치는 관계의 틀 속 에서만 파악되는 것으로서 이러한 관계는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어서 이를테 면 광합성에서는 물이 능생의 위치를 갖게 된다.

중론에서의 중요한 테마는 이 능생과 소생의 관계가 불일불이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지만 물의 성질이 수소와 산소의 성질과 동일할 수는 없으므로 불일이다. 그러나 수소와 산소를 떠나서는 물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일례로 수소의 질량과 산소의 질량을 합한다면 물의 질량과 같 은 것이 되므로 수소, 산소와 물 즉 능생과 소생이 전혀 관계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불이이다. 따라서 이들의 관계는 서로 연기에 의하여 성립 할 뿐이요 그러므로 각자는 독립적으로 전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존 재하는 무자성적인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의 세계에서도 이에 관한 실례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사실은 모든 것이 그 예가 된다고 해야 맞는 말 일 것이다. 용수보살은 이를 불과 섶이라는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만약 불이 섶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불과 섶은 동일한 것이어야 하는 데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며, 불과 섶을 다른 것이라고 한다면 섶이 없어도 불 은 존재하여야 하는 데 이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중론 제10장 과연 가연품 제1계 참조). 불일불이 역시 연기 무자성의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음악/When You Told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