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불구부정|******@불교의우주론@

2018. 6. 24. 15:43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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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불구부정

- 육근의 판단은 시간·상황따라 달라지는것 -
- 무집착 상태서 보면 일체가 차별없는 경지 -

지금까지 우리는 중론에서의 八不 중에 不生不滅, 不常不斷, 不一不異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하나 남은 不去不來를 다음 번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불구부정(不垢不淨)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기로 하겠다.

불구부정이란 우리 오관의 감각적인 판단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우리에게는 안이비설신의의 6근이 있고 이에 해당하는 감각이 나타나, 깨끗하고 더럽다든가 아름답고 추하다는 여러 감각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데 반야심경에서는 왜 불구부정이라 하였는가. 음식맛을 예로들어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어떤 특정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가 배부른 상태라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대단한 고욕이 될 수도 있고, 또한 그가 그 음식에 몹시 체하기라도 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그 음식을 꺼려하게 될 수도 있다. 더우기 그 특정한 사람을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이 특정한 음식이 맛있다는 감각은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대상에 대한 혀의 감각이라고 하는 것이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에 따라서도 또한 달라진다.

아름답다거나 깨끗하다는 감각이 앞에서 예로 든 혀의 감각보다 보편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구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오랜 옛날부터 특정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아주 독특한 감각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우리는 썩은 음식을 냄새 맡기도 싫어한다. 이는 썩은 음식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신체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 몸이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터득하였고, 이 정보가 우리의 감각에 각인된 결과이다. 파리라는 곤충에게 이 썩은 음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상이 될것이니 이 음식 자체가 꺼려해야 할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음식이 더럽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면 파리도 또한 인간과 같은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끗하다거나 더럽다는 명칭은 인간이라는 특수한 존재가 그 대상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각 기준으로 이름지어 평가하는 것 뿐이니,이러한 감각은 인간존재에서 있어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구속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속을 벗어나 무애자재한 경지에서 살펴본다면 깨끗하다거나 더럽다는 것은 그 설자리를 잃게 된다. 박테리아의 예를 들어 다시 살펴보자. 우리는 음식이 상하는 것을 싫어하며 따라서 음식을 상하게 하는 박테리아와 같은 것을 싫어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박테리아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란 부패가 없는 세계이니 이는 고생대의 식물에서부터 암모나이트와 공룡은 물론이고 가까운 우리의 선조까 지 그 모든 시체가 널려있는 참으로 참담한 세계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찮은 것으로 무시하는 박테리아조차 이 세상의 모든 생물 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박테리아 때문에 봄이면 파란 새싹이 돋아나는 푸른 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먼지의 예를 하나 더 살펴 보자. 일상 생활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 먼지 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먼지가 공중에 있으므로 해서 공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하여 비가 내리게 된다. 따라서 푸른 풀이 돋아나고 생명이 살아가는 데 더 없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먼지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세계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존귀하지 않은 것 이 없다.

우리가 우리에게 부여된 어떤 특수한 감각이 전부인 줄로 알고 아름다움이나 깨끗함을 논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온 무명에 사로잡 혀 있음으로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무명의 구속에서 해탈하여 무심과 무집착의 경지에서 모든 것을 관 조하며 포용한다면 깨끗하다고 가까이 하고 더럽다고 멀리할 것이 없으며, 아름답게 보인다고 존귀하게 대하고 더럽게 보인다고 비천하게 대할 것이 없 게 된다.

이것이 일체에 걸림없이 자재한 관자재보살이 반야심경에서 전식득지(轉識得智)를 위하여 우리에게 베푸는 만법평등의 가르침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