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불거불래|******@불교의우주론@

2018. 7. 8. 14:56일반/생물·과학과생각

728x90

<27>불거불래

- ‘간다’‘온다’동작부정 불확정성 원리와 연관-
- 운동속성·작용실체 직관에 의해 파악돼야 -

오늘은 팔불중도 중에 하나 남은 불거불래(不去不來)에 대하여 생각하여보자. 이를 中論 제2장 관거래품(觀去來品)의 첫번째 게송에서 살펴보겠다.

“이미 지나간 것에는 간다는 것이 없으며, 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에도 간다는 것은 없다. 이미 지나간 것과 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을 떠나 지금 지나가는 것에도 또한 간다는 것은 없다.”(己去有無去 未去亦無去 離己去未去 去時亦無去)이 게송은 과거와 미래, 현재에 대하여 간다는 작용이 불가득(不可得)임을 논증하고 있다.

과거에 이미 간 것에나 미래에 아직 간 일이 없는 것에는 간다는 동작이 이미 완료되었거나 그 동작이 실현된 일이 없기 때문에 간다는 작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현재 지나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은 간다는 작용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용수보살은 이마저 부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청목 스님은 지금 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미 반은 가고 아직 반은 가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작용마저도 이미 간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을 떠날 수는 없다는 내용의 주석을 하고 있다. 동작을 관찰하는 사람은 자신이 현재 지나가고 있는 작용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이미 방금 지나간 과거의 동작을 파악하고 사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불거불래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과 가고 옴이라는 운동을 다루고 있다. 이를 물리학과 연관시켜 생각해 본다면 운동과 운동의 속성 혹은 자성이라는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뉴턴의 고전 물리학의 내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현대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에서의 불확정성원리와 연관되는 내용이다. 양자역학이나 불확정성 원리의 기본적인 의미는 다음에 살피기로 하고 오늘은 이의 운동과 관련된 부분만을 생각하여 보자.

고전 물리학은 거의 기본적으로 어떤 물체의 속성이라는 것을 상정한다. 그리고 그 속성은 물체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서 언제고 우리가 측정하기만 하면 알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는 고전 물리학에 불확정성의 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양자역학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물체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관념이 언제나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확정성 원리를 직선 운동에 대하여 적용하면 삼차원 공간에서의 운동 속도의 세 성분을 명확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운동하는 물체의 운동 속성은 원리상 완벽하게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양자역학은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적으로 불거불래의 의미를 살펴 본다면 물체의 운동 속성조차 파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운동하는 작용의 실체를 가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문제는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을 수반하지 않고서는 논의 될 수 없는 것이므로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오늘은 불거불래와 관련하여 제논의 화살의 문제만을 생각하여 보도록 하자.

위의 게송은 “날아가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라는 제논의 운동 부정론과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논의 논의는 베르그송이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개념적인 사유에 의해 시간과 운동을 공간화시킴으로써 시간적인 운동을 정지 상태로 환원한 다음, 이 정지 상태라는 부분을 모아 시간과 운동을 재구성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에 제논의 역설이 갖는 모순이 존재한다. 따라서 진정한 운동이나 시간은 순수지속으로서 사유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해서만 알려진다고 베르그송은 말하였다.

용수보살 또한 추상적 사유와 판별에 의해 성립되는 유자성론이 갖는 오류를 불거불래로 지적함으로써 분별과 집착을 떠난 철저한 공관에서 운동을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무분별과 무심의 경지이다. 그래서 과거심과 현재심과 미래심이 불가득이라고 하였다. (金銅經 一體同觀分) 여래는 오지도 가지도 않는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