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기' |…… 혜천스님설교

2018. 9. 25. 18:1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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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하기

2555년 3월 20일


 

 

오늘 봄비가 내리지만, 마음은 환하다는 느낌입니다.

오늘 강론의 주제는 '공감하기'입니다.

 

부처가 이땅에 오신 이유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땅에 행복이 가득했다면 왜 오시겠는가. 아픔과 고통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이땅에 오신 것이다.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하신 전도의 말씀이 '중생의 평화와 안락, 이익을 위하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중생의 아픔을 공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방법으로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환자의 병 증상에 따라 치료약을 준다는 것으로 잡화점을 연상하면 될 것입니다. 몇 천만원 명품에서부터 천원짜리 물건들이 모두 갖추어져 고객의 필요대로 꺼내 처방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의 아픔을 공감한다고 하였는데, 이 중생의 아픔은 다 다른 증세를 갖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 다른 아픔마다에 적절한 치료약을 주는 것이어서, 대기설법이라고도 합니다. 이는부처님이 "중생과의 공감하기를 배우고, 숙달하고, 기억하라...., 이는 청정한 삶의 근본이니라."라고 말씀하신데 기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정한 삶은 수행이고, 기도이며, 경전인 셈입니다. 그리고 네가지 공감하기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첫째로 자애로 공감하기, 둘째로 아픔을 공감하기, 세째로 기쁨을 공감하기, 넷째로 차별없이 공감하기... 입니다. 이 네가지가 청정한 삶을 살아가는 근본이 되겠습니다.

 

부처님이 부처이신 이유는 이 네가지를 중생과 공감하고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도 이런 문제에 대해 부처님과 공감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세상은 나와 너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부처는 자애를 갖고 너를 공감하고, 너의 아픔과 기쁨을 차별없이 공감하라고 하셨습니다. 일본지진 사태로 일본은 지금 패닉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원자로 폭발을 두고 제2의 체르노빌 사태라고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자원을 하고 있습니다. 딸이 만류를 해도 '내가 죽어야 할 곳은 후쿠시마 원자로'라고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이미 죽을 각오가 돼 있다'라고 하면서 처음 50명에서 지금은 180명정도로 늘어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애로서 공감하는 것입니다.

 

아마 원자로가 터지면 자기가족, 친지 등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KTX 기관사가 졸도를 해서 누군가 세워야 하는 형국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반면에 자기 가족, 이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폭주하는 KTX 열차를 세워야 합니다. 누군가는 달아오르는 원자로를 냉각시켜야 하는데 이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가능합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종교학자인 칼 암스트롱은 '자비는 종교의 근본'이라고 하였읍니다. 자애로움은 남의 아픔을 공감하는 바탕위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고통받고 있는 중생이 있기때문에 오셨다라고 하였읍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중생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온 것이기도 합니다. 얼마전 일본지진을 두고 모 대형교회 유명목사가 신의 징벌이라 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1755년 포루투칼과 스페인, 아프리카 북서부 지대에 강도 9에 이르는 지진이 일었습니다. 리스본 인구 25만중 7만명 정도가 목숨을 잃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날이 마침 천주교 축일인 만성절이어서 운집한 군중들의 피해 가 컷고, 아프리카의 모르코, 서인도 제도까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를두고 프랑스 신부들이 '리스본 사람들이 신에 대한 신앙심이 부족해서 그것에 대한 징벌'이라고 했습니다. 어디서 들은 얘기이지요. 철학자 볼테를는 이를 '도대체 신은 스스로 만든 피조물의 평안조차 마련해주지 못한다'는 조롱조의 얘기를 했습니다. 신에 대한 조종詩이지요.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이웃입니다. 단순히 일본만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었다고 보면 이는 오해입니다. 우리도 일본에게 고통을 주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점에서 파키스탄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무하마드 알리 지나'의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지나의 비서관이 보고를 합니다. '이것이 기쁜일인지, 슬픈일인지 모르겠으나 인도의 간디가 암살을 당했다'는 전언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지나는 한참을 가만히 앉았다가 '내가 간디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다니....'

 

간디와 지나는 앙숙중의 앙숙이어서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로 분리시킨 실력자들임. 인도 독립운동의 두 축이었는데 지나의 둘째부인이 이슬람교도였다는데 간디와의 갈등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두 나라로 분리되게 된 것입니다. 간디와 지나는 어떤 공식적인 직책도 맡지 않았지만 둘 다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운명의 라이벌 관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비서관에게 '간디도 힌두교도의 총에 맞았다면, 나도 이슬람교도의 총에 맞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하며 '경호원을 세우게'라는 명을 내립니다. 그렇짐반,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라이벌이 있어야 공감이 되는 것인데, 그것이 없어 병에 걸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생각할 줄을 모르게 됩니다. 중국의 고전에 보면 '어떤 사람이 권력자의 측근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권력자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어린 사슴을 포획하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돌아오는데 어미 사슴이 계속해서 울며 따라오자 그 사람이 새끼사슴을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 온 권력자는 그 어린 사슴을 찾습니다. 이에 어미사슴이 울어 새끼를 풀어주었다고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그집에서 쫒아내 버립니다. 세월이 지나고 그 권력자의 아들이 글을 배울 때가 되자 좋은 스승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하다가 그 권력자는 그 먼저 쫒겨난 측근을 자기 아들의 스승으로 모셔옵니다. 그러자 주위에서 그 사람은 당신을 배신한 사람이라고 하자, 그 권력자는 '그는 사슴의 아픔조차 참지 못하였으니 장차 내 아들의 아픔을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아마 그는 내 아들을 위해 정성을 쏟을 것이니, 그보다 훌륭한 스승은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무언가 대장은 달라도 이처럼 다른 모양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적어도 고난에 빠진 사람에게는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고난에 빠지지 않았다고 해서 다음날 누가 그렇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는 '우리나라는 지진이 없어 얼마나 다행'이냐고 기고만장 했다지만, 우리나라도 지진 기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동냥을 주지 못하더라고 쪽빡을 깨서는 되겠습니까.

 

그러고보니 태백의 '황지'연못에 얽인 전설이 생각납니다. 옛날 황지 연못이 있던 자리에 천석지기 황부자 집이 있었답니다. 강원도 천석꾼은 별로 없는데, 감자나 조를 그렇게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양반이 엄청나게 인색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스님이 탁발을 하러 오자, 이 부자가 곡식대신 바랑에 소똥을 하나 가득 담아 주었다고 합니다. 이를 본 며느리가 시아버지 모르게 몰래 곡식을 퍼다 주자, 그 스님은 '비가 억수로 오고 천둥번개가 치거든 아이를 업고 무조건 동해바다쪽으로 달려라. 그리고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 뒤를 돌아 보아서는 안된다'라는 다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진짜로 엄청나게 큰 비가 천둥번개와 함께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며느니는 스님 말이 생각나서 아기를 업고 호산쪽을 향해 뛰다가 통리 쪽에 이르자  뒤에서 시아버지가 '아가야 나 살려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아보니 그 부잣집이 연못으로 변했고, 이 며느리도 아이를 업은채 바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기를 업고 뒤를 보는 듯한 바위가 있다고 합니다. 어느 곳이나 전설과 신화는 이유없이 만들어지거나 전승되는 것은 없는 법입니다. 설사 적선을 못해도 해악을 끼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 내가 편안하더라도 내일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 중기 때 명문 중의 명문인 김안로는 학창의를 입고 유관을 쓰고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남자들도 반할 정도로 잘 생겼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눈을 뜨면 요사한 기운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아들이 중종의 사위가 되었고, 그 자신 좌의정이 되었을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권력에 집착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윤원형이 자기의 누나의 힘을 빌려 김안로를 처형해 버립니다. 천하의 김안로도 그것도 자기 아들의 결혼식 날, 금부도사에게 체포되어 참수된 것입니다. 아들 결혼식의 초례청에서 잡혀 그 같은 일을 당하니 얼마나 처참한 일이겠습니까. 이처럼 남의 아픔을 배우고 익히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의 아픔도 공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존재가 묘해서, 자기와 함께 눈물을 흘린 사람은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현대심리학에서도 입증됐다고 하는데, 기쁜 일로 함께 즐거워한 사람은 금방 잊는 반면 함께 부등켜안고 운 사람은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감성의 동물이고 그 감성은 여러가지로 복잡합니다. 그래서인지 남의 성취를 공감하기 어렵나 봅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불편하다는 속담은 서양에도 있는 모양입니다. 내가 기쁨이 있을때 타인으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의 기쁨을 진실로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질투심 때문입니다. 조선조에도 한 집안에서 자식 세명이 다 출세하는 것은 꺼려했습니다. 선조 때 민순이라는 선비가 선 악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고 합니다. 이를 들은 율곡은 '대인에게 죄를 받으면 요직에 나가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소인에게 질시를 받으면 멸문을 당한다'고 하며 이를 경계함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답니다. 실제로 정조 때 소론이었던 이성원(?)은 영의정을 지냈고 동생이 이조판서를 맡자 같은 소론에서도 반발했다고 합니다. 이는 부당인사로 국정을 농단할 것이라는 항의였습니다. 이는 형제를 같은 청의 요직에 두지 않는다는 것으로 상피제도인 관례라고 합니다. 어쨌든 기쁨을 공감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습니다.    

 

그리고, 차별이 없음 입니다. 같은 류는 끌어 당기고, 다른 류는 밀어 냅니다. 이는 차별없이 공감하기가 어려움을 뜻합니다. 사실 위에서 얘기한 4가지 공감은 하나로 묶여진 것입다. 자애심으로 묶여 있는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폭력없이 인도를 통일하고 해방시켰습니다. 이러한 간디의 노선은 지금도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비폭력 노선이 성공한 것은 인도 사람들의 공감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아힘사'라고 '불살생'을 말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기본적 사고입니다.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모두 이 비폭력, 폭력적 살생과 선을 긋고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디의 투쟁방식이 인도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국민과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처음부터 간디의 노선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관된 노선으로 성공에 이른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조문객을 기록했다는 간디의 장례식도 시사하는 바가 큼니다. 이처럼 공감하기는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기본조건이자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품이기도 합니다. 이는 또한 청정한 삶의 전제 조건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공감하기를 통해 행복해집니다. 인간은 결코 혼자 행복할 수 없습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백이과 숙제는 불의 하다며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먹고 삽니다. 그렇지만, 그 고사리인들 무왕의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이와 숙제도 존재하는 한 대상(고사리)이 함께해야 합니다. 사벽의 대화란 책에도 석우라는 수행승이 3년 내내 도토리를 삶아 먹는 얘기가 나옵니다만, 인간은 대상에 의지하지 않고는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부처님이 공감하기를 말하는가 하는 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대상과 자애로움으로 공감하라... 하다못해 식물도 사랑으로 키우면 건강하게 잘 큰다고 합니다. 식물도 애정을 갖고 키우면 더 싱싱하다고 하는데 하물며 인간이겠습니까. 내가 나를 위해서, 내 행복을 위해서 대상과 공감하지 않는 이상, 대상도 나와 공감하지 않습니다. 인간세계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교환 원리입니다. 내가 주면 상대방도 내게 주는 것입니다. 사랑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일본에 '척수'공안이 있습니다. 양손을 부딪치면 소리가 나지만 한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서는 국민이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가고 불평을 했습니다. 중생의 아픔과 공감하지 못하는 부처님은 없습니다. 중생과 차별없이 공감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부처가 설사 있다 한들 나와는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내가 지금 열흘을 굶었는데 옆집에서는 쌀 썩는 냄새가 난들 나와 무슨 공감이 있습니까. 중생과 공감하기 때문에 부처님입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 공감하는 사람은 그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관계가 없습니다. 이 공감하기를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잘못 인식하는 것이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실천하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인데, 이를 내가 행복해지면(돈이 많아지면) 자비로운 일을 베풀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내가 공감하는 자비를 베풀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처님도 코시나가르에서 열반하시기 전에 "아난다여, 사리나무에서 꽃이 피고, 천상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더라도 이는 참다운 공양이 아니다. 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고 실천할 때 이것이 진정 나를 위하는 것이다. 방일하지 말고, 노력해라"라는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대상과 공감하였습니다. 그의 기쁨, 성취, 아픔을 공감하고 그가 내 적이 됐든, 동지가 됐든 자애로운 마음으로 공감을 배우고 숙달하고 기억하면 그 사람은 바로 부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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