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공간, 존재의 노예로 살 것인가?/ 릴라님

2018. 11. 25. 11:0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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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공간, 존재의 노예로 살 것인가?/ 릴라님

의도적인 수행은 끝이 없는 길이지만,
문득 깨달음은 가야 할 길이 사라지는 전환입니다.

의도적인 내려놓음은 내려놓아야 할 대상이 끝없이 드러나 막막한 길이지만,
문득 깨달음은 분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본래 존재가 아님을 깨달아

저절로 가로막힌 시야가 환히 밝아지는 전환입니다.

의도적인 고요는 마음을 추스르고 안정을 시켜 특정한 자세와 상태를 만들어 들어가는

것이지만, 문득 깨달음은 모든 산란한 것들이 본래 고요한 본성임을 깨달아

온갖 들고 나는 일과 삶과 죽음 가운데 아무 일이 없어지는 전환입니다.

의도적인 닦음은 닦아야 할 대상을 조금씩 제거할 수는 있으나,

닦는 주체의 힘을 강화시키고, 닦는 행위의 결과를 자신의 업적으로 저장하게 되어

더욱 자신의 존재를 강화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문득 깨달음은 기존에 저장했던 것이 흔적 없이 사라짐은 물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경험되는 삶에서 아무런 흔적도 남겨지지 않는 대전환입니다.

의도적은 추구는 추구하는 자인 나를 인정하고, 추구할 곳인 세상을 인정한 가운데

펼쳐지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추구하더라도 나와 세상의 이분법은 영원히 남아있어

결코 나와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의 길입니다.
그러나 문득 깨닫는 것은 나와 세상이 동등한 하나여서 지금의 나와 지금의

이 세상 그대로 존재하는 일이 아님을 아는 전환입니다.

깨달음에 대한 추구, 노력, 조작은 모두 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시작됩니다.

깨달음을 자신의 업적으로 이루려는 시도이자,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을 회피하는

전략입니다. 나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나를 더욱 강화시키고, 강화된 나는

더 많은 적을 만들어 내며, 더 많은 투쟁을 불러옵니다. 이것은 참된 길이 아닙니다.

참된 깨달음은 나를 넘어서는 것이며, 내가 해체되는 것입니다. 

 이분법적 세계가 아닌 나와 세계가 본래 평등한 하나임이 밝아지는 일입니다.

진정한 자유의 길은 나를 돌아보지 않은 것이고, 나의 생각이나 느낌, 나의 욕망을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나와 나의 행위에 의지하지 않으면 오히려 세상은 내가 알고 있던 세상보다

더 맑았고, 더 드넓었고, 아무런 차별이 없으며, 어둡고 밝은 것이 모두 하나의 밝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늘 그러했던 것이지 깨달아서 변화된 세계가 아닙니다.

판단, 추구, 상상, 노력, 욕망을 믿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을 믿지 않는 곳에서 가만히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펼쳐지는 곳에서 가만히 마음의 눈만 뜨십시오.

그곳은 바로 지금 이곳이고, 그곳은 바로 지금 이 움직임입니다.

그곳은 모든 시간과 공간과 존재가 교차하는 곳이자,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이면서,

그것들의 존재감을 잃는 곳입니다. 이것은 존재이기도 하고 시간이기도 하고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존재도 아니고 시간도 아니고 공간도 아닙니다.

여기가 그곳이고, 그곳이 이 순간이며, 이 순간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시공간, 그리고 그 속의 존재들이 나뉨 없이 하나입니다.

모든 존재는 이것의 얼굴들입니다. 모든 시간은 이것의 활동성이며, 모든 곳은 이것의

안내 표지판입니다. 이것이 자각되고, 이것이 전부임을 영혼 깊이 받아들일 뿐

달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간, 공간, 존재의 노예로 살 것인가, 그것과 하나가 되어 자유를 누릴 것인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7080 애달픈 노래모음] - 비가(悲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