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두 눈을 통해 모든 대상(것, 현상, 존재)들이 끊임없이 보여집니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억지로 대상들을 보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보여지는 이 작용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저절로 보여지는 작용을 '보는 작용', '보는 놈',
'첫 번째 자리에서 본다', 혹은 '있는 그대로 본다', '분별없이 본다',
정견(正見)한다', '중도로 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첫번째 자리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있는 그대로 보일
뿐이지만, 사람들은 대상이보여지는 곧장 그 대상에 대해 자기식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해서 그 대상에 이름을 지어 붙이고
대상을 이것으로 저것으로 나눠서 구분하고 구별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식으로 대상을 나눠서 구분하고 구별하는 이것을 '분별해서 본다',
'의식으로 본다', '안식으로 본다',
두 번째 자리에서 본다,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 왜곡해서 본다,
있는 그대로를 자기식대로 해석해서 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자리에서 이 세상 모든 것(대상, 경계, 현상, 존재)를 분리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작용을 곧 말이라는 방편을 사용해서 표현하자면 불성의
작용이고, 자성이 보는 것이며, 부처로써 보는 것입니다.
첫 번째 자리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자리에
떨어져서 대상을 해석하고 분별하고 좋은 것 나쁜 것으로 나눈 뒤에,
좋은 것은 갖고싶어 하고 싫은 것을 멀리하고 버리려고 애쓰기 시작하는
등의 취사간택심(取捨揀澤心)이 시작되면서, 본래 부처였던 우리가 곧장
중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온갖 괴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취하고 버려야 할 일들이
생겨나고, 얻지 못해 괴롭고 거부하지 못해 괴로워 하는 등의 온갖 문제가
생겨납니다. 대상은 있는 그대로일 뿐이지만, 사람들의 분별, 중생심,
견해가 대상을 좋은 것 나쁜 것으로 분리 분별하고 그 분리 분별이 옳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중생이 중생인 이유입니다.
첫 번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이 세상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본래부터 이미 완전한 자리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은 대상을 볼 때 첫 번째 자리와 두 번째 자리 중 어디에 계십니까?
-법상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