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강설 1~4

2019. 6. 1. 16:4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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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강설 1

(1) 상당--1

 

 

상당(上堂)


강의 ; 임제록에 실려 있는 내용을 그 형식에 맞추어 분류하면 서문(序文)·상당(上堂)·시중(示衆)· 감변(勘辨)·행록(行錄)·탑기(塔記) 이렇게 여섯 종류가 된다. 상당이란 선지식이 특정한 날에 법상에 높이 올라 설법하는 것을 말한다. 결제나 해제나 그 외의 의미 있는 날에 총림에서 행해진다. 그르므로 법문의 내용도 가장 격이 높다.

 

시중이나 만참(晩參), 소참(小參) 같은 경우의 법문은 대종장이 행한 법문이라도 상당법어와는 그 격이 다르다. 법상에 높이 올라가서 법문을 할 때는 상당법문이 되므로 반드시 상당법문답게 종지(宗旨)·종풍(宗風)을 거량해야한다.

 

 

 

 

 

黃檗山頭에 曾遭痛棒하고 大愚肋下에 方解築拳이로다 
임제스님은 황벽스님에게 일찍이 매서운 몽둥이를 얻어맞았다. 
그리고는 대우스님의 옆구리에 비로소 주먹질을 할 수 있었다. 

강의 ; 번갯불 속에서 황벽스님은 불조의 용광로를 열어두었다. 임제스님은 처음으로 그 용광로에 들어간 것이다. 또 대우스님에게는 우주적 생명 대기대용(大機大用)을 들어보였다.


임제스님은 황벽스님의 회상에 가서 공부한지 3년 만에 수좌(首座)의 책임을 맡고 있는 목주(睦州)스님의 안내로 불교의 대의를 물었다. “불교의 분명한 대의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실인 황벽스님의 몽둥이가 날아왔다. 무려 20대나 얻어맞고 쫓겨났다. 이런 일이 세 차례나 있었다. 무려 60대나 신나게 얻어맞은 샘이다.

 
그리고는 황벽스님과는 인연이 없음을 알고 대우스님에게로 가게 되었다. 황벽스님에게 불교를 물으러 갔다가 얻어맞은 일을 대우스님께 모두 말씀드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렇게 때렸는가를 물었다. 그랬더니,

 
“황벽스님이 노파심으로 그대에게 그렇게나 친절하게 하였는데 여기까지 와서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묻는가?”라고 하였다. 
임제스님은 그 말에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는


“응, 황벽스님의 불법이 간단하구나[無多子].” 하였다. 그랬더니 대우스님은 당장에 멱살을 잡고 “이 오줌싸개 어린놈이 황벽스님에게서 쫓겨 와서는 방금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렇게 때렸는가?’라고 하더니 지금은 도리어 ‘황벽스님의 불법이 간단하다.’라고 말하는가. 너는 무슨 도리(道理)를 알았는가? 빨리 말해보아라.”라고 하였다. 그러자 임제스님은 대우스님의 옆구리에 주먹으로 세 번 쥐어박았다. 대우스님은 잡고 있던 멱살을 밀쳐버리고는 “너의 스승은 황벽스님이다. 나와는 관계없다.” 라고 하였다.


천하의 대선지식인 황벽스님은 불교를 물은 것에 대하여 몽둥이로 사람을 한 번에 20대나 후려쳤다. 세 번에 걸쳐서 무려 60대를. 그렇게 불교를 열어주고 보여주고 깨닫게 해주고 들어가게 하였다. 그 일에 대하여 “그토록 노파심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더란 말인가.”라고 하신 대우스님의 말씀은 더욱 숨이 막힌다.

임제록 2

임제록 2


(1) 상당--2

 

 

饒舌老婆는 尿牀鬼子라한대 這風顚漢이 再捋虎鬚로다 
말 잘하는 노파 대우스님은 “이 오줌싸개 어린 놈?이라 했고, 
황벽스님은 “이 미친놈이 또다시 여기 와서 호랑이 수염을 뽑고 있어!?라고 했다.


강의 ; 죄인의 목에 쉬우는 칼을 쉬운 격이다.
‘아직 불교에 있어서는 잠자리에서 오줌이나 싸고 남의 집에 소금을 얻으려 다니는 어린아이 같다.’라는 대우스님의 말씀은 그 표현이 너무 절묘하다. 그래서 ‘말 잘하는 노파’라고 했다. 임제스님에게 ‘오줌싸개’라는 애칭을 쓰는 것은 천하의 대우스님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임제스님은 대우스님과 작별하고 다시 황벽스님에게로 돌아갔다. 황벽스님이 말하기를 “너는 이렇게 왔다 갔다만 하니 언제 공부를 마치겠는가?” “저야 다만 스님의 간절하신 노파심 때문입니다.”라고 하고나서 인사를 마치고 옆에 서 있었다.


황벽스님이 묻기를 “어디를 갔다 왔는가?” 
“대우스님을 친견하고 왔습니다.”
“대우스님이 무슨 말을 하던가?” 
임제스님은 앞서 있었던 대우스님과의 일을 다 말하였다. 그랬더니 황벽스님은,
“어떻게 해야 이 놈 대우를 만나서 한 방망이 단단히 때려줄 수 있을까?”라고 했다.


“뭘 기다릴게 있습니까? 지금 바로 한 방망이 때려주시지”하고는 곧바로 손바닥으로 황벽스님을 후려쳤다. 임제스님의 영원한 참 생명, 우주적 생명을 들어 보인 것이다. 그랬더니, 황벽스님은 
“이 미친놈이 또다시 여기 와서 호랑이 수염을 뽑고 있어!?라고 했다. 
그러자 임제스님은 “할!” 하고 소리를 질렀다. 황벽스님의 불법을 간단하다고 말하던 자신은 그보다 더 간단하다.


황벽스님은 “시자야, 이 미친놈을 끌고 가서 선방에 쳐 넣어라.”라고 하였다.
임제스님이 호랑이 수염을 뽑은 솜씨를 독자들은 잘 살펴야할 것이다. 천하에 누가 또 호랑이 수염을 뽑은 사람이 있던가. “뭘 기다릴게 있습니까? 지금 바로 한 방망이 때려주시지”하고 곧바로 손바닥으로 황벽스님을 후려친 그 용기와 수단과 날랜 솜씨는 천하에 짝할 이가 없다. 더하여 “할”을 한 소식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말은 짧아도 사연은 길다. 이런 사연은 뒤편 행장(行狀)에서 잘 밝히고 있다. 임제스님의 마음과 그의 불교를 잘 이해하려면 이런 사연들을 익숙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반복해서 들으며 눈을 떠야 할 일이다.

임제록 3


(1) 상당--3

 

巖谷栽松은 後人標榜이요 钁頭斸地하니 幾被活埋로다
임제스님이 험한 골짜기에 소나무를 심은 것은 후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한 것이요,
또 괭이로 땅을 팠으니 황벽스님은 거의 산채로 생매장 당할 뻔했다. 

강의 ; 이 이야기는 임제스님이 소나무를 심을 때 황벽스님이 물었다.
“깊은 산에 이렇게 많이 심어서 무엇을 하려는가?”
“첫째는 산의 경치를 아름답게 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후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입니다.”하고는 괭이로 땅을 세 번 쳤다. 황벽스님이 말하기를, “비록 그런대로 괜찮기는 하나 자네는 이미 나에게 30방망이를 얻어맞은 꼴이다.”


임제스님이 다시 괭이로 땅을 세 번 치면서 “허 허”라는 소리를 냈다.
황벽스님이 “나의 종풍(宗風)이 너의 대에 가서 세상에 크게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물론 소나무를 심은 것이 후인들의 본보기가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후인들의 본보기가 될 소나무를 심은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임제스님의 불교인 것이다. 온갖 지엽은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드러내 보인 부처님과 조사들의 그 마음, 그 불교인 것이다. 오늘날 같이 불교에 거품과 방편설이 난무하고 있는 이즈음에 지엽과 가식이 전혀 없는 졸가리뿐인 이 올곧은 불교가 만고에 후인들의 본보기가 되리라는 것이리라. 임제스님의 그 깊은 은혜에 뜨거운 가슴으로 감사를 느낀다.


임제스님이 대중들과 함께 밭을 매는 운력(運力)을 하다가 황벽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괭이를 짚고 서 있었다. 황벽스님이 다가와서 말하기를, 
“이 녀석이 피곤한가?”
“괭이도 아직 들지 않았는데 피곤할리가요.” 그러자,
황벽스님이 몽둥이로 곧바로 한 대를 때리니 임제스님이 그 몽둥이를 붙잡아서 던져버리고 황벽스님을 넘어뜨렸다. 황벽스님이 유나를 불러 “유나스님, 나 좀 일으켜다오.” 
유나스님이 가까이 와서 황벽스님을 일으키면서 “스님, 이 미친놈의 무례한 짓을 왜 용서하십니까?”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황벽스님은 막 일어나자마자 도리어 유나를 때렸다. 그 때 임제스님이 땅을 파면서 “제방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대개 화장을 하지만 나는 여기서 산채로 매장을 한다.”라고 하였다. 크게 죽은 뒤 다시 살아나는 큰 생명을 보였다.


법을 거량(擧揚)하는 일도 이쯤 되면 누구나 혀를 내두르게 마련이다. 유나스님은 미친놈의 무례한 짓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누가 그 높은 뜻을 알랴. 황벽과 임제만이 느끼며 주고받는 진검싸움인 것이다. 불꽃을 튀기고 천둥이 치며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하며,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엎어지는 일이다. 천(千)이면 천, 만(萬)이면 만이 산채로 매장당할 상황이다.

임제록 4


(1) 상당--4

 

 

肯箇後生하야 驀口自摑하고 辭焚机案하야 坐斷舌頭로다 
황벽스님은 후생(後生) 임제스님을 인가하다가 갑자기 입을 스스로 쥐어박았다.
임제스님은 황벽스님과 하직하고 떠날 때 법을 전한 것을 증명하는 경상[机案]을 주어도 받지 않고 오히려 불사르라 하였다. 그러나 황벽스님은 가져가서 천하 사람들의 논란을 차단하게 하라고 하였다.

강의 ;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임제스님이 방 앞에 앉아 있다가 황벽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눈을 감아버렸다. 황벽스님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방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임제스님은 뒤따라가서 사과하였다. 그 때 수좌인 목주스님이 옆에 있었는데, 황벽스님이 “이 승려는 비록 후생이지만 <이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수좌스님이 “노스님께서도 아직 멀었는데 도리어 후생을 깨달았다고 인가하십니까?”라고 하니 황벽스님은 스스로 입을 쥐어박았다. 그랬더니 수좌스님이 “알면 됬어.”라고 하였다. 황벽스님이 수좌에게 점검을 당했다.


또 한 가지 특기할만한 사실은 임제스님이 황벽스님의 법을 받고 떠날 때,
“어느 곳으로 가려는가?” 
“하남(河南)지방이 아니면 하북(河北)지방으로 갈까합니다.
그러자 황벽스님은 곧 한 대 후려쳤다. 임제스님은 그 순간 황벽스님을 잡고 역시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다. 황벽스님은 크게 한바탕 웃고, 시자(侍者)를 불러서 스승 백장(百丈)스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선판(禪板)과 경상[机案]을 주었다. 그랬더니 임제스님은 시자에게 그것을 불태워 버리라고 하였다. 선판과 경상은 법이 아닌 가짜 물건이다. 가짜는 필요 없다는 식이다. 그 때 황벽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불태우는 일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너는 가져가서 뒷날 천하 사람들이 전법(傳法)의 문제에 대해서 시비할 때 증거를 제시하여 그런 논란이 없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어찌 되었든 이 이야기가 황벽스님의 부촉을 받은 것을 증명한 것이 되었다.


참으로 입제스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임제스님은 철두철미하게 적나라한 무위진인(無位眞人)으로 사셨고 무위진인으로 보여주었다. 스승과 이별하는 마당에서도 그렇게 활발발(活鱍鱍)한 무위진인으로 이별하였다. 전법의 증거가 되는 신표(信標)에 대해서도 철저히 형식이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무위진인이 존재할 뿐임을 확연하게 알려서 뒷사람들에게 진정한 본보기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