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심문조(妙心文照) 선사는 송나라 때 운문종의 비구니 승려입니다.
지금의 복건성 천주인 온릉(溫陵) 출신으로 성은 동(董)씨입니다.
열일곱 살에 승려가 되어 선지식을 두루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마침내 감로중선(甘露仲宣) 선사에게서 법을 얻었습니다.
감로중선 선사의 생몰연대는 알 수 없지만, 혜림종본(慧林宗本, 1020~1099)선사의
법을 이은 것으로 보아 12세기 전후에 살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묘심문조 선사 역시 정확한 생몰연대를 알 수 없는데, 혜림종본-감로중선-묘심문조
선사로 이어지는 법맥으로 보아 대략 12세기 초중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속전등록>에 나온 내용을 보면 묘심문조는 감로중선의 유일한 법제자입니다.
당나라 때 고안대우 선사의 유일한 법제자가 말산요연 비구니 선사였던 것처럼
감로중선도 묘심문조 한 사람에게 법을 전했습니다.
감로중선은 법상에 올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멈춰라, 멈춰라. 갖가지 오묘한 법문이 모두 한 길로 돌아간다.
청산은 항상 있지만, 선지식(知識)은 만나기는 어렵다.
선지식(識)이 어찌 주인공(主人公)을 취하는 것만 하겠는가?" 큰소리로 불러 일렀다. "주인공아!" 다시 말하였다. "오늘 나 혼자 팔고 사고 다하는구나."
住住百千妙門同歸一路。青山常在知識難逢。爭如識取主人公。高聲召云。主人公。復曰。今日自買自賣。
-속전등록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다니면 언젠가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여러 곳을
다니기 쉽지 않았고,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습니다.
또, 안목 있는 선사를 만날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자신에게 없다면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선지식 만나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주인공아!’하고 불러 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밖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공입니다.
삶의 주인이고 세상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법을 깨달아야지 밖의 누군가가 주는 법은 진실하지 않습니다.
밖을 향해 찾기 이전에 법은 이미 완전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괴롭히며 찾느라 바쁩니다. 이렇듯 밖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는 것이, 찾는 마음을
완전히 멈추고 ‘주인공’ 한 마디에 문득 자기를 깨닫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아!” 이 한 마디는 자기를 찾는 부름이기도 하지만, 이 자체가 응답이기도 합니다.
혼자 팔고 사고 다하는 일입니다. 감로중선은 선지식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를 자각하라고
말했지만, 이 분은 다른 한 사람의 선지식이 되었습니다.
평강부(강서 소주) 묘심 비구니 자감 대사 문조는 온릉 사람이며, 동 씨이다. 17세에 득도하여 조사의 문(祖闈)을 두루 좇았다.
감로(甘露仲宣)에게서 등불을 얻었는데, 군수 진사석이 그 이름을 듣고 묘담암에
머물기를 청했다. 뒤에 다섯 번 도량을 옮겼으며, 선종을 위해 율종을 모두 혁파했다.
소주부의 비구니 사찰선림이 문조에 의해 실질적으로 시작되었는데,
태재 정거인이 아뢰어 법호와 자색 가사를 하사받았다.
平江府妙湛尼慈鑑大師 文照。溫陵人。族董氏。十七得度。徧迹祖闈。獲證甘露。郡守陳公師錫聞其名。命居妙湛。後五遷道場。皆革律為禪。吳中尼剎禪林寔始於照也。太宰鄭公居仁奏 賜號并紫方袍。
-속전등록
문조는 지금의 복건성 천주 출신이지만, 주로 법을 편 곳은 강서성 소주인 평강부였습니다.
감로중선에게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은 소주 군수 진사석은 평강부의 묘담암에
머물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그 뒤에 모두 다섯 곳이나 도량을 옮겨 다녔는데,
당시 율종이 주류였던 이 지역의 비구니 사찰을 선종으로 바꾸어 ‘마음을 가리켜 곧장
깨닫는’ 조사선의 방편을 펴는데 노력하였습니다. 강서성 소주의 비구니 선종 사찰은
실질적으로 묘심문조 선사에 의해 개창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태재 벼슬에 있던 정거인이 이를 높이 사서 황제에게 아뢰었는데, 황제는 자색 가사와
자감(慈鑑)이라는 법호를 내렸습니다. 당나라 이래 황제는 고승대덕들에게 금란가사
(金襴袈裟)와 여러 색의 가사를 하사하였습니다.
그중 자색 가사는 다른 것에 비해 등급이 가장 높은 가사입니다.
황제가 묘심문조 선사에게 최고의 예우를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묘심문조는 비구니 승려이지만 평강부에서 영향력 있는 선사였습니다.
당시 평강부의 비구니 사찰은 계율을 익히는 율종 계열이 많았습니다.
문조 선사가 몸소 깨닫고 보니 참된 공부는 계율을 익히거나, 경전을 배우는 공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깨달아 법안이 열리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런 안목을 바탕으로 율종 사찰을 선종 사찰로 과감히 개혁할 수 있었습니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신령스러운 근원은 움직이지 않으니 묘한 본체가 무엇에 의지하겠는가?
역력히 홀로 밝으니 누구의 찬란한 빛인가? 만약 진여실제를 말한다면, 미인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과 같다. 다시 조사의 뜻을 헤아려 생각하면, 바로 거울 속의 모습을
자기로 잘못 아는 것이다. 늙은 오랑캐가 49년 동안 꿈을 말한 것은 당장 그만두어라.
승당 속 교진여 상좌가 그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공안을 들어 보인 것인데, 기억하는가?” 한참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눈썹을 아끼는 것이 좋겠다.”
上堂曰。靈源不動。妙體何依。歷歷孤明。是誰光彩。若道真如實際。大似好肉剜瘡。更作祖意商量。正是迷頭認影。老胡四十九年說夢即且止。僧堂裏憍陳如上座為你諸人舉覺底。還記得麼。良久。曰。惜取眉毛好。
-가태보등록
본래면목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 모습의 본성은 한결같습니다.
이것은 옛날부터 전해진 것도 아니고, 지금 새롭게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미래로부터
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보고 듣고 느끼고 알 때 바로 한결같은 이 깨어있음입니다.
모든 모습이 이것에 의지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 떠오르는 생각,
느껴지는 감정이 이 한결같음에서 비치고 있습니다. 모습에 마음이 없다면, 바로 이 본래
마음 자체입니다.
모습에 마음이 가더라도 이것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우리 스스로 자각할 때는 마음이
어디에도 사로잡히지 않을 때 체험하게 됩니다. ‘언제나 이것 홀로 밝으니 누구의 빛인가?’
그 누구의 빛이 아닙니다. 누구가 빛이고 빛이 누구입니다.
이것은 임자가 따로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임자가 이것이고 이것이 임자입니다.
분별된 무엇이 아니니 있다고 할 수 없고 모든 분별이 여기서 나오니 없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대상을 인지하고 판단하기 이전에 이미 이것인데, 다시 이것을 생각한다면 멀쩡한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고, 거울 속 영상을 진실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눈앞에 저절로 드러나는 만물이 이것과 하나인데, 다시 마음을 내어 이것을 생각한다면
허상에 허상을 더하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사라지든 당장 이 자체이기만 하면
훤히 밝지만 일어난 일을 따라가며 판단한다면 꿈속에서 어두워집니다.
꿈에서 깨어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외우고 읽기만 하면 꿈 깨는 꿈을 계속 꾸는 격입니다.
선지식이 말이 되지도 않고 뜻으로 풀 수 없는 공안을 들어 보인 이유는 말도 되지 않고
뜻도 되지 않는 본래 마음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말을 다 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침묵으로서 몸소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말을 꺼낸다면,
거짓을 더하는 격이어서 눈썹이 다 빠져버리겠습니다.
묘심문조 선사는 깨달음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품고 눈 밝은 선지식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감로중선 선사를 만나고 그동안 찾아 헤맨 것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완전하게 갖추어진 본래 마음에 눈을 뜨고는 바른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 율종 비구니 사찰을 선종 사찰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깨닫고 여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깨어날 수 있도록 많은
도량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몸소 보인 공부와 행적에서 참된 보살도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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