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뭣고 / 대원스님

2019. 7. 21. 20:2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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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뭣고 / 대원스님


 이 도리는 어떤 모양과 언어를 떠난 세계인데,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없다는 것인가?

그게 어디에 있는가?
 [대중] 여기에 있습니다.
 [스님] 여기에 있다 하면 벌써 그건 여기라는 이름과 모양에 떨어진 거다.
 그걸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가 없고, 보려고 하면 볼 수가 없으니,

만약 찾아서 본다면 눈과 귀가 멀어져 없어질 것이다 라고 했다.
 노자는 ‘무위자연지도(無爲自然之道)’라는 말로 표현 했지만,

부처님은 이것이라고 규정지어서 고착화 시키지를 아니했다.

부득이 말을 하자면 이름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위없는 최상의 진리)라고 하였다.
 그럼 그것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나에 대한 존재를 확연하게 보고 이런 것이구나 하고

나름대로 확신해서 확정을 지어야 하지 말로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우리가 보고

이거다 저거다 말을 할 수가 있다.
 근래 물리학자들이 힉스입자를 발견했는데, 힉스입자를 발견한 이걸로 끝이고

앞으로 더 이상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또 앞으로 연구하면 그 이상의 것이 나올 수 있다.

 그 나오지 않은 것은 지금 말을 할 수 없고 모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불성이라는 천진본원자성을 전연 모르는 상태이다.
 여기는 말과 글로 배우는 자리가 아니다.
 부처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기 위해서 공부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이다.

염불, 관법, 주력, 화두참선, 그중에 화두참선이 최고라고 한다.
 천진불이 집 속에 앉아있다고 할진대, 삼세제불도 미치지 못하고,

역대조사도 얻을 수가 없고, 천하의 노화상이 횡설수설하고 별 소리를 다 해도

 말로 이렇다고 붙일 수가 없다. 오직 자기가 깊이 증득해야 비로소 얻는다.
 그래서 여러분이 실지로 증득해 보려고 여기 온 거다.

이 세상의 유위의 학문을 떠나서 무위의 세계, 그 세계가 어떤 건가,

그 세계가 어디에 있느냐를 찾는 거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 하셨다.
 그러나 노자는 ‘무위자연지도가 무위자연지도가 아니라 그 이름이 무위자연지도이다’

 라는 말은 안 했다. 그냥 하나로 귀결지어서 ‘무위자연지도’ 라고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가장 높고 성인중의 성인이라고 한다.
 나와 여러분이 상대해서 말을 하자니, 뭐라고 소개를 해야 되는데,

이름도 모양도 없어서 말을 할 수 없다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말 안 하는 것을 이상하다, 희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천한 범부이고,

말 안한 것을 보고 계합해서 아는 사람이 있다.

 말로 규정을 지어주어야 인식하고, 말로 해주는 걸 바라는 이는 범부다.
 형이상의 세계를 깨달은 이는 내가 여기 들어와서 법상에 앉을 필요가 없이

그 전에 다 통한다.
 내가 여기 와서 앉아있는 거는 여러분이 지금 뭔가를 나한테 바라고 있어서다.

말로 대답해 주고 뭔가 이야기를 해주겠지 하고 어떤 지식으로 인식을 해서

알아보려고 하는데, 그러는 것을 수 천 번 해봐야 중생심만 자꾸 늘어나고 키워진다.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이건 말과 지식, 인식으로 알 것이 아니고

실질적인 체험을 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와서 말을 듣는 거는 하근기라서 할 수 없이 바른 길로 잘 인도해 주는

말을 듣고 이렇게 공부해야 되겠다 는 마음을 내어서 하기 위한 것이다.
 모양과 언어를 뛰어난 세계를 알았다면, 내가 어떻게 하던, 여기에 오던 안 오던

‘OK!’ 하고 계합이 된다.
 그래서 오늘 들었지만 다 소용없는 소리라는 거다.

다른 데 가서 딴말을 물으면 또 거기서 막힌다.
 여러분의 중생심을 무너뜨려서 항복 받아야지 그것 가지고는 십만팔천리로 거리가 멀다.
 왕대밭에 왕대가 나오듯이 깨닫는 공부를 해서 나라는 존재가 뭔지를 확실히 봐야 된다.


(190515 학산대원스님 소참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