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10. 09:0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외로움이라는 내면의 문제 해결을 위해
바깥에서 누군가를 찾지 말라.
외로움을 거부하지 말고, 잠시 외로움과 함께 있으라.
홀로 존재하는 외로운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라.
외로움을 느낄 때면 외로움을 없애 줄 대상을 찾아 나선다. 내면의 문제를 이성 친구가 없는 탓으로 돌린다. 끊임없이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나 모임을 찾는다. 바깥에서 외로움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완벽한 대상을 찾음으로써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언제나 문제는 그 안에 답이 있다. 문제 속으로 뛰어들어 보라. 외로움, 결핍감을 거부하지 말고, 없애려 애쓰지 말고, 오히려 잠시 그것과 함께 있어 주기를 선택해 보라. 잠시 몸서리치게 외로워해 보라. 결핍된 채로 있어주라.
그런 감정들은 경험되기 위해 올라온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거부하면 감정적 상처만 안고 눌려 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함께 있어주기를 선택할 때, 그 문제와 직면할 때 모든 문제는 제 스스로 답을 찾아낸다. 이미 문제 안에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365일, 눈부신 하루를 시작하는 한마디] 중에서
죄의식에서 벗어나라.
죄의식에 묶인 마음이
유일한 죄다.
우주에
선악의 심판관이 있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죄의 과보를 통해 깨달을 뿐,
죄의식에 사로잡히지는 말라.
죄의식에서 벗어나면 죄는 없다.
당신은 언제나 용서받고 있다.
이 우주에 심판관은 없다. 신이나 부처가 우리의 행실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심판해서 지옥에 쳐 넣는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오직 유일한 심판관은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죄의식에 사로잡혀 없는 죄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 스스로 빠져 들어갈 뿐이다. 물론 심판하는 자는 없지만 인과응보의 법칙은 있다.
선을 지으면 복을 악을 지으면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그 인과응보는 에너지 균형의 자연 법칙일 뿐 심판이 아니다.
악의 과보를 받는 이유는 그 과보를 통해 깨달으라는 것이다. 더 이상은 악을 저지르지 말라는 배움의 공부 과정인 것이다.
삶을 통해 깨달을 지언즉죄의식으로 스스로를 얽어매지는 말라. 당신을 응징하거나, 단죄하는 절대자는 없다.
당신은 언제나 용서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 스스로 죄의식을 뒤집어쓰지만 않는다면, 당신은 언제나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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