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빈주먹 / 몽지님

2019. 11. 10. 09:2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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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빈주먹 / 몽지님

세상은 빈주먹

옛날 어떤 마을에 욕심 많은 한 부자가 살았는데, 옛이야기를 좋아해서

자기 집에서 하룻밤 묵기를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대가로 항상 이야기를

하게 하였다. 어느 날 밤 한 나그네가 부자의 집에 묵기를 청하였다.

부자는 나그네에게 저녁밥을 대접하고 잠자리를 내어 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지나 정오가 다 되도록 부자의 집에서는

아침상을 내어 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그네가 아침을 주지 않는 이유를 묻자 부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녁밥에 잠자리까지 내어 주었으나 나는 아직 그 대가를 받지 못했소.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니 나그네께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아침상을 내어 오게 하겠소.”
나그네는 암만 생각해도 이야깃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길을 가다가 본 일이 생각났다.
“엊그제 일이었습죠. 한마을을 지나는데 마침 상여 하나가 나가고 있었지요. 무심히 보고 있는데 웬일인지 관 속에 있는 시체의 양손이 펴진 채 밖으로 나와 벌려져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상히 여겨 상여를 따르는 사람에게 연유를 물으니,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고 죽은 이가 말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디다.”
이 이야기를 들은 부자는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깨닫고, 그 후 자기 집을 찾는 손님들을 잘 대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부천시에서 전해내려오는 야사입니다. 사람은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 흙이 되고, 바람이 됩니다. 원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왔다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돌아가니 살아있는 동안 욕심부리지 말고 살라는 교훈으로 읽힙니다.
이러한 교훈은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가르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는데 여념이 없는 동안은 이 가르침을 상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와 닮은 가르침이 불교에도 있습니다. '빈 주먹(空拳)' 혹은 '스승의 주먹(師拳)'이라는 말이 있는데,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의 말과 행위에 무엇이 있는 게 아니라 모두 방편의 말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법을 깨닫고 깨달은 실상을 어떻게 대중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도저히 법의 실상을 가르칠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실에 눈을 뜨고 보니 세상만사 모든 만물이 빈 껍데기였습니다. 지금 버젓이 보이는 사물들, 들리는 소리들, 움직이는 사람들,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가 빈 껍데기임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내가 증득한 이 법은 매우 깊고 미묘하여 보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우며 분별하거나 헤아려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만약 이 법을 여러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분명히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공덕까지 쓸데 없어지고 이익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편이 낫겠다. '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공수래공수거의 빈손은 태어나고 죽을 때를 한정하는 얘기이지만, 불교의 빈주먹은 태어나고 죽을 때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까지 모두 아우릅니다. 어떤 경험을 하고 있든 삶의 순간순간 모든 것은 비었다는 진실을 석가모니는 깨달았고, 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칠 길이 막막했습니다. 지금 버젓이 존재감을 뿜어내는 눈앞의 사물들이 있습니다. 흥분을 하며 말하는 이웃들, 귀여운 목소리로 쫑알대는 자식들, 지저귀는 들새들, 녹음을 벗고 한창 알록달록한 옷으로 갈아입은 가을의 나무들, 손에 잡히는 딱딱한 컵이 모두 그 모습 그대로 있지 않는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몹시도 어렵습니다.
이것이 원래의 사실이었습니다. 과거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사람에 매이고, 사물을 탐하며, 원하는 사물과 상태를 얻으려고 평생을 바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빈주먹이고, 아무리 많은 재물을 얻어도 무늬만 그럴 뿐입니다. 마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어 아리따운 공주와 결혼하고 한 나라의 왕이 되어도 그게 빛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우리네 인생의 모든 순간이 마치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늘 빈손이고, 늘 빈주먹입니다. 죽을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닌 것이 지금 있는 그대로 그렇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릴 도리가 없어 침묵하려고 할 때 하늘의 신 범천이 수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납니다.
'부처님이시여, 하늘과 땅은 복이 없어서 이제 무너지려고 합니다. 이러한 때 그래도 삶의 먼지가 적어 번뇌가 엷은 사람이 있느니, 그들에게 가르치면 알아들을 것입니다.'
범천이 간곡히 법을 펴기를 청하자 석가모니는 분별심에 사로잡힌 정도에 따라 적절하게 방편의 말씀을 하여 분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지금 눈앞에 드러나는 모든 것이 그 모습 그대로 빈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받아들이더라도 이 사실이 자신의 현실에 그대로 녹아들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분별심에 사로잡힌 세월이 길고 깊기 때문에 이 분별심을 녹여내는 작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분별을 놓아버리게 하는 여러 가지 차선책이 제시된 것입니다. 수많은 가르침의 말과 실질적인 수행이 그것입니다.
이것이다, 이것뿐이다. 모든 것이 하나이다, 둘이 아니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다. 알아차려라, 놓아버려라, 받아들여라, 인연에 맡겨라, 빈손이다. 빈주먹이다,연기법, 사성제, 육바라밀,...
진정 모든 것이 있지만 어느 것도 없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도달하고 나면 어떤 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