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무너뜨린 옛 질서, 그 위에 세워야할 진보의 세상•2020. 3. 24

2020. 3. 25. 19:47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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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속살] 무너진 옛 질서 위에서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지


에 관한 이야기

금은 미국 사회가 공고한 양당체제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이 번갈아 집권

이변이 없는 한 정덩 8년 집권 어려워

1980년부터 12년간

레이건*아버지 부시가 연이어 집권한 게

최근 12년 집권의 마지막

빌 클린턴 8년, 공화당 아들 부시 8년,

민주당 버락 오바마도 8년

1970년대 공화당 리처드닉슨

대선에서 두 번 이기고,

1977년 민주당 지미 카터가 정권 탈환

이런 식으로 미국은 계속

민주당과 공화당이 번갈아 집권

그런데 원래부터 이랬느냐, 아니야

휘그당, 연방당, 민주 공화당 등 있었던

건국 초기 지나고

양당체제 얼추 성립된 19세게 후반부터

그야말로 공화당 세상

1896년 이래 1900년 선거부터 2연승,

1904년부터 3연승,

1905년부터 4연승

16년 동안 공화당 집권

1912년 민주당 정권 되찾아 오는데

민주당 순수하게 실력으로 이겼다기보다

여당이었던 공화당 둘로 쪼개져 어부지리승

공화당 분당으로

민주당 겨우 16년만에 한 번 이겨

그런데 여세 몰아 1916년부 터 2연승

1920년, 1924년,1928년 공화당 3연승

3연승에서 거의 더블스코어 승리

9번 선거서 7번 이겼으니 공화당 세상

1928년 선거 기점으로 전제 완전 역전

이때부터 30년은 거꾸로 민주당 세상

1932년 선거 사회주의자 소리 들었던

쌩 아웃사이더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선

이 사람 1936년, 1940년, 1944년 전승

미국 최초 4선 대통령 돼

심지어 루스벨트 임기 중 사망

1948년 열린 대선에서 다시 민주당이 이겨

미국 사상 전무후무 대선 5연승 기록

이후 2차 세계대전의 여파

1952년, 1956년 전쟁 영웅

아이젠하워 앞세워 공화당 이겨

그리고 1960년, 1964년 선거에서

민케네디가 민주당이 또 연승

루스벨트 이전 9번 대선 공화당 7승2패

이후 민주당이 되레 7승2패로 압승

20세기 초반 공화당시대 저물고

20세기 중반 민주당 세상이 열린 것

이 놀라운 대역정의 기점이 바로

루스벨트의 등장이지만

더 중요한 배경 바로 1929년 대공황

대공황 이전까지 경제학은 고전학파 장악

시장이 제일 중요하고,

기업만 잘 돌보면 무조건 장땡

즉 공화당의 세상

그런데 대공황 벌어지면서

공고했던 옛 시대 질서 한 방에 박살

루스벨트 이후 민주당 시대

경제학에서는 대번영기라고 평가

이때 미국 경제 눈부신 발전

이게 1980년 레이건을 앞세운

신자유주의 등장으로 허무하게 붕괴

정치학자 크리스티 앤더슨의 책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이철희 의원 번역으로 더 유명

대공황을 기점으로

미국의 진보가 공화당 어떻게 극복하고

압도적 다수가 됐느냐 자세히 서술

앤더슨 분석은 대공황이라는 재난이

옛 질서를 허물고

완전히 다른 세상 열어

특히 앤더슨 주목한 부분은

대공황으로 공화당 지지자들,

민주당 지지자로 돌아선게 아니고,

무당층,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

대거 새롭게 민주당 지지자 됐다는 것

경제가 한번 망해보니까

평소 정치가 내 관심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민중들

정치가 진짜 내게 중요한 일이라고

각성하기 시작했다는 것

앤더슨, 이를 '비면역 유권자'라고 불러

이미 특정 정당 강력히 지지하는

기존 유권자가 아니고,

정치에 아무 관심이 없던 사람들,

투표해봐야 나 먹고 사는데

아무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실직 당하고 죽음 위기에 내 몰려보니

복지가 중요하고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사실 깨달아

그런데 이때 루스벨트라는

영웅이 그 길을 제시

그래서 충격적 재난을 겪은 사람들

투표를 잘 하면 내 삶이 바뀐다는 걸

몸으로 체험

이 경험기 가진 새로운 유권자들

민주당 시대 경제학 용어로

대번영기 열었다는 것


진보적 사상가

나오미 클라인

'쇼크 독트린'이라는 이론이 있어

엄청난 재난이 벌어지면

사람들의 뇌가 백지가 된다는 게

쇼크 독트린 이론의 요지

큰 충격 받으면 망치로 머리 맞은 것처럼

과거의 질서를 다 잊어버린다는 것

그런데 이때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기가 아주 좋아

사람들 생각이 백지가 됐으니

클라인이 드는 대표적 예

1998년 우리나라가 겪었던 외환위기

클라인의 관점은 한국의 회환위기는

월가가 조작한 것

미국과 율버의 신자유주의자들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침략하고 싶은데

한국의 전통적 사고가 너무 공고했다는

사실 우리나라가 동동체성도,

투쟁심도 매우 특별한 나라

노동 투쟁도 많고, 가족주의도 강하고.

돈보다는 명예, 협동 이런 기질 다분

유행했던 드라마도 전우너일기,

한지붕 세가족 등

이런 류의 공동체 문화 많아

이걸 깨야 신자유주의가 돼

이기심, 개인주의, 오로지 돈만 하는

의식이 심어져야 돼

이때 월가가 택한 방식

한국에 외환위기와 국가부도라는

어마어마한 외부충격을 주는 것

물론 클라인 주장이 100%  맞다고

생각하지 않아

한 가지 확실히 동의할 수 있는 건,

국기부도 사태는 한국 국민 정서를

새하얀 백짓장으로 만들었다는 점

2002년 비씨카드 광고 카피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그 전까지 '한국 사회가 부자되세요'

이런 말 공개적으로 하는 사회 아니야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 많았겠지만,

돈이 유일한 가치관은 아니었어

그런데 외환위기와 국가부도 겪은뒤

사회가 완전히 돈 돈 거리는 세상이 돼

충격으로 뇌를 백지로 만들고,

그 위에 신자유주의라는 이기심의 세상이

훡휙 그려져 버린 것

이건 엄청안 위기가

안 좋은 세상으로 전이된 경우

반대의 경우도 있어

떠올리기조차 처참한 기억이지만,

세월호 사건

신자유주의로 찌들어 개인주의로 살던

민중들 머릿속을 백짓장으로 만들어

나만 승진하고 나만 내집 사면 돼

생각했던 많은 민중들이,

'와 이명박 박근혜가 만든 세상이 이거야?"

'공공, 안전, 다 시장에 맡기고

돈돈 거리면서 살았더니

그 결과가 이거라고?' 뇌 완전 리셋

우리는 공공 지켜야 하고,

정부는 국민 생명 최우선으로 해야하는

그때 확 박혀버려

우리는 촛불혁명에 나섰고,

지금 세계적으로 모범이 되는 방역 국가

클라인은 "세상의 변화는

비둘기처럼 천천히 다가오지 않는다...

...기존 질서가 완벽하게 허물어지는

대재난이 닥쳤을 때

비약적으로 세상이 변한다...

다만 그 변화가 좋은 쪽일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는 것"

백지위에 뭘 그리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것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세계적 바이러스 대란으로 기록될 것

사람들 삶의 규칙을 산산조각 내고 있어

이 엄창난 재난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있어

공고해 보였던 자본주의적 옛 질서

얼마나 빨리, 신속하게,

허무하게 무너지는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라?

세계적인 지성들 20년 전부터

헛소리하지 말라고

내내 떠들었던 이야기인데

아무리 떠들어도 안 깨지는

거대한 질서

그런데 지금 어떤가?

이탈리아 정부가

국적 항공사인 알리탈리아

국유화 선언

우너래 국영회사였는데

2008년 이탈리아 정부가

10억 유로 받고 민영

그런데 12년 만에 다시 국유화 추진

왜냐? 항공업이 시민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기반산업이라는 걸

이제 깨달은 것

스페인, 개인병원을 비롯해

모든 영리*비영리 민간병원

일시 국유화

일시적이긴 하지만 개인병원까지 국유화

의사, 제약회사, 의료기기 제조회사 전부

정부 통제를 받아야 돼

빨갱이 나라도 이런 빨갱이 나라가 없어

1년 전만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

엄청난 재난을 맞은 지금

이걸 빨갱이 사회주의 정책이다라고

비난하는 사람 없어

빌더 블라지오 미국 뉴욕시장 방송 출연

"미국 검사키트*산소호흡기가 너무 부족

의료용품 생산 공장과 산업 국유화해야"

뉴옥은 월가의 상징이라구요.

신자유주의의 심장부에서

시장이 의료용품 산업 국유화 주장 펴

프랑스 제정경제부 장관

아예 "금융시장 위기에 대기업 지원위한

모든 수단 사용준비 돼 있어"

"재자본화, 지분 매입,

필요하다면 국유화라는 용어 쓸 수도"

코로나 때문에 기업 무너질 지경이니까

국유화할 수도 있다는 것

우리로 치면 정부가

삼성 현대차 국유화 하겠다 이런 말

어렸을 때 사회주의 국가들

빨갱이라고 욕하는 교육 받으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예!

"저 빨갱이 새끼 배급제 한다"

배급제는 사회주의 조롱할 때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

그런데 지금 그걸 우리가 하고 있어

마스크 5부제

1년 전만 해도 이 정책이 가능할 리 없어

지금은 5부제에 대한 선호도 매우 높아

미래통합당 일부 골 나간 의원들

빨갱이 국가 배급제와 뭐가 다르냐,

이딴 헛소리를 하는데 씨알도 안 먹혀

옛 질서, 옛 사고방식,

옛 고정관념이 싹 사라진 것

10년 넘게 기본소득을 지지했지만

이 논의가 이렇게 급속도로

최근에 확산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한국 약국 앞에 일주일에

두 장의 마스크 줄 서서 배급받는 모습

아무 거부감 없이 수용될 줄 몰랐어

우리의 뛰어난 공공의료체계가

세계적인 선망 대상이 될 줄도 몰랐어

코로나가 시장이 모든 것 좌우한다는

호나상에 사로잡혔던 인류 전체의 뇌를

완전히 리셋해 버렸어

어떤 나라에서 코로나 검사 한 번 받는데

100만 원이 넘게 들고,

구급 헬기 부르면 3000만 원을 내야하며

오바마 케어했는데도

여전히 2750만 명의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미국

그 미국, 한국을 부러워해

그 어떤 나라가 감히 국민 건강 문제를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하겠는가?

코로나 사태가 인류에게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는 건

더 말할 필요가 없어

하지만 대재난이 벌어지면

옛 질서는 삽시간에 무너져

그리고 백지의 세상이 열릴 것

그 백지의 세상위에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인류의 운명이 달라질 것

1929년 대공황이라는 비극 딛고

미국 30년 동안 복지의 시대 열어

지금이야말로 시장만능론

머리에서 깨끗이 지울 기회

든든한 공공정책 기반으로,

국민 건강, 안전, 생명,

인권, 복지 건설되는

새로은 세상 꿈꿔야

부디 우리가 이 어려움 잘 이겨내고,

하얀 백지 위에

정말 안전한 세상을 그려나가기를




재난이 무너뜨린 옛 질서, 그 위에 세워야할 진보의 세상


 

어렸을 때 반공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비효율성을 강조하며 들었던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대목은 “그들은 생필품을 배급받기 위해 매일 줄을 늘어선다”는 것이었다. ‘배급제와 길게 늘어선 줄’은 시장의 효율성을 무시한 사회주의를 조롱하는 최고의 무기였다.

그런데 그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은 5부제 날짜를 기다리며 1주일에 두 장의 마스크를 얻기 위해 아무 불평 없이 줄을 선다. 돈을 더 준다고 더 많은 마스크를 살 수도 없다. 시장의 효율성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갔고, 마스크 앞에서 온 국민은 평등해졌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미래통합당 일부 의원들이 “이게 빨갱이 나라의 배급제와 뭐가 다르냐?”는 멍멍이 소리로 관심을 끌려 하는데,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불쌍할 정도다. ‘배급제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멍청한 짓’이라는 수십 년 된 옛 관념이 설 자리는 한 뼘도 없다.

공적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인 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공적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인 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김철수 기자

세계적 저술가이자 진보적 사상가인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재난이나 전쟁 같은 엄청난 쇼크는 사회의 모든 것을 백지 상태로 리셋(reset)시킨다”고 주장한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뇌는 오랫동안 믿었던 과거의 질서와 고정관념을 단번에 잊어버린다. 백지 상태의 뇌는 새로운 사상을 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재난은 낡은 세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도약의 방아쇠가 된다.

그 도약의 방향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클라인에 따르면 비열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재난으로 백지화된 민중들의 뇌에 “신자유주의만이 세상을 극복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라고 속삭인다.

그래서 클라인은 1998년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겪었던 외환위기도 월가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사건이라고 확신하는 인물이다. 국가 부도라는 강한 외부 충격으로 국민들의 생각이 백지가 되면, 신자유주의자들은 “외국자본과 시장주의로 극복해야 한다”라며 새로운 사상을 주입한다. 그게 우리가 겪었던 국가부도 사태의 본질이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백지 위에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복지강국이라는 멋진 미래를 그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인류 진보의 놀라운 계기가 된다. 클라인에 따르면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 1929년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대공황이 그것이다.

미국의 진보, 다수파가 되다

현재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적당히 번갈아 집권하는 나라다. 1970년 이후 대선에서 3연승을 거둔 경우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를 앞세워 1980, 1984, 1988년 연거푸 승리를 거머쥔 공화당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어떤 당도 대선에서 3연승을 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지난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가 예견됐던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마저 뜻밖의 패배를 당하면서 민주당이 노렸던 ‘3연승의 꿈’을 날렸다.

그런데 미국 정치 구도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양당제가 얼추 정립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압도적인 공화당의 세상이었다. 1896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공화당은 1908년 선거까지 내리 4연승을 거뒀다.

1912년부터 8년 동안 민주당에 정권을 내줬지만 공화당은 1920년, 1924년, 1928년 선거에서 다시 3연승으로 기세를 올렸다. 특히 이 3연승 기간 동안 표 차이는 거의 더블스코어로 벌어졌을 정도였다. 9번 대선에서 공화당이 7승 2패를 차지한 것이다.

그런데 1929년 대공황 이후 전세가 역전됐다. 이때부터 30년은 미국 진보의 전성기였다. 1932년 선거에서 ‘사회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던 아웃사이더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공화당의 4연승을 저지했다. 그리고 루스벨트는 1936년, 1940년 1944년 선거를 석권했다. 루스벨트 혼자서만 4연승을 거둔 셈인데, 민주당은 루스벨트 사망 이후 첫 대선(1948년)조차 승리하며 전대미문의 5연승을 달성했다.

1952년과 1956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전쟁 영웅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를 앞세워 2연승으로 반격했지만 1960년과 1964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또다시 연승으로 이를 되갚았다. 대공황 이전 민주당은 9번 선거에서 2승 7패로 참패했는데, 대공황 이후 9번 선거에서는 7승 2패로 세상을 장악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크리스티 앤더슨(Kristi Andersen)은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재난이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옛 질서를 허물고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었다”고 분석한다. 이 새로운 세상을 연 주인공은 무당층, 즉 정치에 아무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먹고 살기 바빠서 투표를 해 본 적이 없던 사람들(앤더슨은 이들을 ‘비면역 유권자’라고 부른다)에게 대공황은 ‘정치가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구나’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실직을 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내몰려보니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루스벨트는 이 백지 위에 기존 질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그려 나갔다. 한 때 진리로 여겨졌던 고전학파의 논리(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미국은 이후 30년 동안 각종 복지제도를 도입하며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 즉 ‘대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신자유주의는 진짜로 망했다

2016년 영국 국민들이 브렉시트를 선택하고 미국 국민들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를 지도자로 선출했을 때, 자유무역을 앞세웠던 신자유주의는 망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시장주의자들은 여전히 시장만능론의 끈을 놓지 않았다. 본질적으로는 망했는데, 현실에서는 시장만능론이 악다구니를 쓰는 기묘한 동거가 4년 가까이 이어진 셈이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치면서 신자유주의는 진짜로 망했다. 이 전대미문의 재난은 공고해 보였던 자본주의의 옛 질서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신속하게, 그리고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를 잘 보여줬다.

이탈리아 정부가 16일 국적 항공사인 알리탈리아를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알리탈리아는 원래 국영회사였는데 2008년에 이탈리아 정부가 10억 유로를 받고 민영화한 기업이다. 그 회사가 12년 만에 다시 국유화의 길을 걷는다. 항공업이 시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반산업이라는 사실을 이탈리아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스팔란차니 병원 입구에 "다 잘 될 거야"(Andra tutto bene)라고 쓰인 무지개 그림이 걸려 있다.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스팔란차니 병원 입구에

 "다 잘 될 거야"(Andra tutto bene)라고 쓰인 무지개 그림이 걸려 있다.ⓒ뉴시스

스페인 정부는 16일 개인병원을 비롯해 모든 영리·비영리 민간병원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하는 충격적 조치를 취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개인병원 의사를 포함해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제조회사 모두 정부 통제를 받아야 한다. 1년 전이라면 “스페인이 빨갱이 나라냐?”라는 십자포화를 맞았을 정책인데, 재난을 맞은 지금 이 정책을 그렇게 비판하는 이는 극소수다.

빌 더 블라지오(Bill de Blasio) 미국 뉴욕시장은 15일 「MSNBC」 방송에 출연해 “미국의 검사키트, 산소호흡기가 너무 부족하다. 의료용품을 생산할 수 있는 중요한 공장이나 산업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뉴욕은 월가의 상징이다. 신자유주의의 심장부에서 뉴욕시장이 의료용품 국유화를 주장한다.

프랑스 재정경제부장관은 17일 “금융시장 위기에 흔들리는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그것을 재자본화, 혹은 지분매입이라고 불러도 좋고, 필요하다면 국유화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로 치면 정부가 “삼성전자나 현대차를 국유화 하겠다”는 말이다.

이 모든 일들은 ‘옛 질서’라는 사고의 틀에서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옛 질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우개로 박박 지워지는 중이다.

당분간 그 어떤 나라에서도 코로나 검사 한 번 받는데 수백 만 원이 들고, 구급 헬기 한 대 부르면 3,000만 원을 내야하며, 오바마 케어를 실시했는데도 여전히 2,750만 명의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미국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나라는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해있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도 한 푼도 내지 않고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인류에게 거대한 불행이라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하면 옛 질서는 삽시간에 무너진다. 그리고 백지의 세상이 열린다. 그 백지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서 인류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이라는 비극을 딛고 미국이 30년 동안 복지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지금이야말로 시장만능론을 머리에서 깨끗이 지울 기회다. 강력한 정부의 든든한 공공정책을 기반으로 국민의 건강, 안전, 생명, 인권, 복지가 최우선 가치로 인정받는 새로운 세상을 그려야 한다. 부디 우리가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그 백지 위에 멋지고 안전한 복지국가를 그려나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