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속살] 6월 4주차 종합편6월 22일 : 대니얼 카너먼의 '가능성 효과와 확실성 효과'6월 23일 : 센딜 멀레이너선의 '대역폭'6월 24일 : 재난과 연대의 복원

2020. 6. 26. 21:22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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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 대니얼 카너먼의 '가능성 효과와 확실성 효과'

6월 23일 : 센딜 멀레이너선의 '대역폭'

6월 24일 : 재난과 연대의 복원

 

4년 6개월 마무리

작은 그릇의 한계

 

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가능성 효과'와 '확실성 효과'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 정립한 이론

도박을 한다 가정

돈을 벌어야하는데 내가 도박에서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될까 잘 생각해보고 돈을 걸어야

도박에서 내가 이길 확률이 0%라면 아무도 돈을 안 걸어

도박에서 이길 확률이 1%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져

복권을 사는게 그런 것

당첨확률이 낮을 뿐이지 아예 없는게 아니므로

주류경제학에서 어떻게 설명하냐

만약 도박 이길 확률이 0%에서 1%로 늘려 1000명이 참여했다면

1% 늘릴 때마다 1000명씩 느는게 당연하다 봐

2%면 참여자는 2000명으로 늘어가고

3%로 높이면 3000명이 참여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승산을 50%로 높이면 5만명이 참여합니다

1%의 가치는 똑같다는 의미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아

0%에서 1%로 올리면 1000명이 느는데

1%에서 2%로 올린다고 새로 1000명이 늘지 않아

심지어 40%에서 41%로 올리면

참여자가 거의 없어

도박에서 니가 이길 확률이 40%야 말하는 것과

니가 이길 확률이 41%야 말하는 것과 큰 차이가 느껴지나요

40%와 41%는 아무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반면 똑같은 1%라도 니가 이긿 확률은 0%라고 말하는 것과

니가 이길 확률은 1%야 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달라

이길 확률이 아예 없는 게임에서

이길 확률이 생긴 게임

똑같은 1%지만 40에서 41로 오르는 것과

0에서 1로 오르는 것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

환자에게 치료약을 드리면서

돈 얼마 내시겠어요 물어봐

불치병에 걸려 살아날 확률이  0%인 환자에게

이 약 드시면 살아 날 확률이 1% 됩니다

얼마 내시겠어요 물어보면

백발백중 환자들이 거금을 다내

살 확률이 딱 1%인데도

이미 치료약이 있어

치료확률이 60% 됩니다

환자님 새 약이 나왔는데 

이 약을 쓰면 완치 확률이 60에서 61%로 높아집니다

얼마 더 내시겠어요

60이나 61이나 뭐가 달라요

고작 생존 확률이 1% 높여지는데 그거 갖고 돈을 또 받아요 안내요

당신이나 드세요 성질 내

사실 이건 정교한 계산이 아니죠

똑같이 1% 높아진 겁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걸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여

이것을 카너먼은

가능성 효과 'possibility effect'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수치라도

최초의 가능성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았던 일이'

단 1%라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할때

시작점에 매우 큰 가치를 둬

이번에는

확실성 효과'certainty effect'

똑같이 도박에서 니가 이길 확률이 99%야라고 말하는 것과

니가 이길 확률이 100%야 무조건 이겨

이것도 1% 차이인데

승산이 40에서 41로 올라가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

승산이 40에서 41로 오라가면 거의 안늘거나

늘었다 해도 조금 느는 정도인데

99에서 100으로 올라가면

참여자가 무한대로 늘어나

반드시 이기는 게임이니까요

예를 들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0억원을 유산으로 남겼어요

형제 자매끼리 상속분쟁이 벌어졌는데

변호사를 찾아갔더니

저한테 돈 맡기면 90% 승산이 있습니다

저한테 맡기세요 이렇게 권해요

비용이 얼만데요 물어보니

1억원이랍니다.

1억원을 내고 10억원원을 물려받는 게임이니 괜찮은 게임인데

문제는 이길 확률이 90%라는데 있어

매우 높은 확률이지만 장담할 수는 없어

다른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아 이건 무조건 이깁니다

저한테 맡기면 100% 승산 보장이라 고셔

변호사 비용은 얼만데요 물었더니

5억원이라고 합니다

아까는 1억이지만 승산이 90%지만

이번에는 5억이지만 승산이 100%

이걸 가지고 어느쪽을 선택하시겠어요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5억내고 100% 이기는 쪽을 찾아

승소확률을 90%에서 10%높이는데

무료 4억이나 더써

이 사람한테 두가지 선택권이 있어요

우리 로펌의 이류변호사는 승산이 40%인데 비용이 1억원인데

우리 로펌의 대표 변호사는 승산이 50%로 높아지는데 변호사 비용이 5억원이 들어요

이렇게 하면 대뜸 나오는 반응이

이 새끼들이 사기를 쳐

승률 40에서 50으로 올리는데 4억원이나 더 받아 쳐먹으려고 해 욕부터 나와

똑같이 10%인데 사람들에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돼

이게 바로 카너먼이 말하는 확실성 효과

반드시 이겨주는 것으로 만드는 마지막 1%에

사람들은 훨씬 큰 가치를 둔다

세상은 민중들의 뜨거움, 진보에 대한 열망으로 변하는 것

민중들의 뜨거움에도 선택이라는 게 있어

우리가 언제 가장 뜨거워질까요

첫째,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은 세상에서 사는데

변화에 아주 작은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첫번째 시작에서 매우 뜨거워져

둘째, 변화의 완성단계

저 마지막 한걸음 만 내딛으면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완성된다고 믿는 그 순간

확률을 완성하는 마지막 순간에 뜨거워져

문제는 그 두 사이에 낀 중간에 둔감해져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우리는

매우 절망스러웠죠

심지어 박근혜때에는 이원집정부제 이런거 하면서

박근혜가 종신집권한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태연히 나와

비상식적인 집단을 제어할 방법이 하나도 안보여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이 지지 않아

이러다가 보수가 영구 집권하는거 아냐

이런 두려움이 우리를 장악했던 시기

변화의 가능성이 0%로 보였어

이 절망스런 순간에는

사람들의 투쟁도 둔화 돼

포기하는 사람이 속촐해

2016년 겨울 첫번째 촛불집회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모이고

어 이거 세상을 바꿀수가 있겠는데

이 희망의 첫걸음

변화의 가능성이 막 보이기 시작할때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싸웁니다

몇년동안 참았던 울분을 다 터뜨려

이게 바로 가능성 효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기를 거대한 역사의 한 부분이라 볼때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을 내딛은 것일뿐

만약 언젠가 정말로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의 완성직전이 되면

 저 한발만 내딛으면 새로운세상에 도달할 수 있어

라는 때가 되면

또 우린 열정을 내지를 겁니다

진짜 한발만 더가면 완성이니까요

이게 바로 확실성 효과라는 겁니다

그런데 중간쯤 시기에는 열정이 식어

사실 세상의 변화는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은 좋은쪽으로 1%씩 바뀌고 있어

그 바뀌는 것에 사람들이 조금씩 둔감해져

1%의 변화가

0에서 1

99에서 100 이런 역사적 순간이 아니기때문에

첫출발이 아니고 역사적인 마무리 단계가 아니면둔감해져

런 중간의 시기를 투쟁의 버티기라 불러

변화의 가능성을 처음 봤을때하고는 잘 안불타올라

물론 우리가 앞으로 잘 진보해서

언젠가 99% 이르고

마직막 1%만 남겨지면 다시 불이 타오를 것

이건 버티기 단계에서

우리가 꺽이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

중간에 꺾이면 거기까지 가지를 못해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절감하면서

40에서 41로 변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며

그,래서 또 42를 향햐 투쟁하고

그래서 도 43을 향햐서 싸워나가는 열정을 유지해야 해

이게 없으면 대충 50% 언저리에서

변화가 꺾여

누차 말씀드리지만 이 사회의 기득권들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아

물론 우리는 사람입니다

첫걸음을 내딛을때의 열정을 늘 유지할 수는 없겠죠

그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들고

4개월 동안 주말을 바쳤을 때의 열정이 쉽게 회복되는 것이 아녀

삶속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손을 붙잡고

싸워나가면서

가야할 길을 계속 가야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제 겨우 첫걸음을

내디뎠을뿐입니다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을때까지는 아직도 먼길을

가야됩니다

2016년 겨울 전국을 지폈던

우리의 열정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9분 03초

6월 23일 : 센딜 멀레이너선의 '대역폭'

이직은 몰라도 영전(관직이나 공직에 나아가는 일)이란 표현은 

반노동적 표현, 모두의 노동이 소중

민중, 민주주의 세상 우리가 제일 높은 사람

지금 서있는 위치가 제일 행복한 사람

가장 믿었던 사람에 배신당했다고 하였는데

정말 많이 아프죠

많은 경우 배신에는 공통된 이유가 있습니다

선택권의 부족

물론 배신한 사람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배신을 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다만 이론적으로는 많은 경우

선택권의 부족이 배신이나 비정상적인 행동의 매우 중요한 원인

인도 출신의 천재 행동경제학자

시카고대 센딜 멀레이너선 교수는

선택권을 대역폭(bandwidth)이라 하는데

라디오 주파수처럼 사용가능한 주파수에서

제일 높은 주파수와 제일 낮은 주파수의 차이를  말해

대역폭이 넓을수록 채널 선택권이 많아져(FM의 경우 88에서 108사이)

대역폭이 좁으면 채널 선택권이 별로 없어

수도권에서 24개정도 방송국 가능한 폭

멀레이너선 교수는 사람에게도 이 대역폭이 존재한다고 봐

자원이나 재산 이렇게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돈

돈이 많으면 재산이나 자원이 많다 생각하는데...

멀레이너선 교수는 선택대역폭의 넓이가 돈 못지않은

인간의 매우 중요한 재산

선택권이 많은 사람은 훨씬 경제적으로 현명한 판단을 내려서

돈도 많이 벌고

미래도 훨씬 잘 대비하고

경제적인 풍요도 누려

심지어 머리도 더 똑똑해져

반면에 선택권이 없는 사람은

경제적 판단도 엉망이 되고

미래에 대한 대비도 안되고

슬픈 이야기인데 IQ도 낮아

멀레이너선 교수가 한 실험중에 놀라운 실험은

빈곤한 사람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목숨거는 거 외에는

아무런 다른 선택권이 없는 사람들이

선택권이 많은 사람들

이거 안해도 굶어죽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했을때

IQ가 낮다는 것

심지어 똑같은 사람인데도

본인 한명의 IQ를 측정해도

제 삶의 선택권이 넓었을 때

대역폭이 넓을때 측정했던 IQ와

이거 외에는 먹고 살길이 없는 상태

아무런 삶의 선택권이 없을때의 IQ가

다르다는 것

뒤쪽 후자가 훨씬 IIQ가 떨어진다는 것

이말을 잘 해석해야

가난한 민중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가 많아

멀레이너선이 자주 드는 예는

빈곤국가 농민들에게

무료로 비료나 농약을 나눠줄 때도 있고

무료로 예방접종을 해줄대도 있어

그런데 빈곤국 농민들이 이걸 안한다

얼마나 바보같냐는 거죠

무료인데 비료도 받아가고

농약도 받아가고 주사도 맞아야죠

왜 안하느냐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바빠 죽는 삶이기때문

삶의 대역폭이 좁은 사람은

생존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바람에

짬을 내서 한 4km걸어서 무료예방접종을 맞는 다는 걸 상상못해

이걸보고 비열한 시장주의자들은

저렇게 무식하니 가난하지 비아냥거리는데

멀레이너선은 웃기지 마라는 것 이게 반대라는 것입니다

무식하니까 가난한게 아니고

가난하니까 합리적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져

원인과 결과가 반대라는 거에요

예를 들자면

삶에 대역폭이 있는 사람

방송에 찬재적인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을 꽃피울 열정과 노력이 있어

이런 분들은 공중파에서 방송을 하다가도

어라 이 자식들이 이런 부당한 일을 하네

알았어 그럼 그만둘께 이 선택이 가능해져

공중파가 아닌 유튜브나 팟캐스트에서

공중파보다 훨씬 뛰어난 품질의 방송을 만들고 있어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공중파에서 방송을 하는데

이걸 그만두면 아무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

이 공중파에서 방송하면 돈도 좀 벌고

생활수준이 많이 높아져

이런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춥고 배고픈 시절로 못돌아가

그런데 방송을 금나두면

도저히 지금 수준의 생활이 영위가 안되잖아여

그러면 삶의 대역폭이 확 좁아져

이러면 방송에 목을 걸어

이쯤되면 이 사람들은

평소의 신념, 의리, 가치 이런게 싹 사라져

나 어떻게 하면 다음 개편 때 살아남지

이 생존본능만 남아

이 선택권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 여부는

멀레이너선에 따르면

정말로 돈에 못지 않은 매우 중요한

인간의 자원이자 재산이라는 것

대한민국 민중들은 얼마나 넓은 대역폭을 가지고 살아갈까요?

진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선택권이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별로 없는 것 같죠

청소년기에는 대학가야지 강요를 받았고

대학가면 취직해야지 강요를 받았고

취직하면 생존해야지 강요를 받았고

50대면 노후대비해야지 강요를 받았고

은퇴하면 먹고 살아야지 강요를 받아

죽음을 향해가는거지 삶을 사는게 아니다

이런 삶에 무슨 선택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다른 나라라고 안그러겠어 라고 

반론하시는 분들이 있어

그래서 세계적인 경제학 보고서를 인용해보겠습니다.

매년 3월 UN에서 세계 행복보고서라는 걸 발표해

행복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조넷 헤일리 교수의 지도아래

2012년 부터 세계 150여개국의 행복경제학 순위를 발표하는 보고서

경제학 보고서간운데 가장 중요한 보고서

행복경제학 순위가 매겨지는데

여섯가지 개별항목을 합산해서 점수를 계산해 결정

각 개별 여섯가지의 순위와 점수도 따로 발표가 돼

freedom to make life choices

자주적인 삶의 선택권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삶의 선택권을 가질 자유

이게 멀레이너선이 말하는 삶의 대역폭

우리에게 얼마나 선택권이 있냐를 물어

이걸 매년 측정

올해에도 154개국을 측정해서 순위를 매겨

UN이 발표한 삶의 대역폭 순위

대한민국이 총 154개국 가운데 몇위했을까요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의 가난한 나라들이 다 들어가 있어

빈곤으로 굶어 죽는 나라들이 쌔고 새

전쟁난 나라, 내전으로 고통받는 나라도 있어

당연히 이런 나라들보다는 높아야 될거 아닙니까

총 경제규모로 10위꿘

1인당 GDP로 28위 경제대국인데요

몇 등이냐 ? 154개국중에 무려 141등

충격받고 쓰러져야 정상

전세계 경제학자들에 물어보십시요

이 수치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다

1인당 GDP 28위 선진국 대한민국 민중들의

삶의 대역폭 순위

삶을 선택할 수있는 자주적인 삶의 선택 순위가

꼴찌에서 14번째입니다

우리보다도 이 선택의 대역폭이 좁은 나라가 13개 밖에 없습니다

이걸 누가 설명할 수있겠습니까?

이 분야에서 우리와 경쟁국가들

우리 언저리에 있는 국가들이

예멘, 튀니지, 사드, 레바논, 아이티, 알제리,

남수단, 아프가니스탄 이런 나라들입니다

심지어 브룬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스와질랜드, 토고

몬테네그로, 세네갈, 몽고, 가봉, 지니, 말리 이런 나라들은

우리보다 순위가 높습니다

짐바브웨라는 나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물가상승으로 유명한 나라

지폐 한장이 100조짐바브웨달러가 풍선껌 하나 못사

3경5천조로 1달러와 교환

이 나라의 자주적인 삶의 선택 순위가

119위입니다 우리보다 22계단 높아

이 나라 국민들은 우리나라 국민들보다

훨씬 더 자신의 삶의 선택할

풍요로운 권리를 가지고 있어

우리가 집바브웨를 비웃고 낄낄거릴 처지가 아닌겁니다

저에게 니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인간으로 태어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강력한 복지국가에서

사는게 내꿈이다

이 꿈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는

우리 민중들에게

삶의 선택권

더 넓은 대역폭을 줘야

그거 아니면 굶어 죽어 라고 위협하는 사회에서는

우리는 더 합리적인 선택을 못하게 되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식도 버리고

가치도 버리고

우정도 버리고

연민도, 우정도, 연댜도, 사랑도 쉽게 버리고

나만 살겠다는 사회를 만드는 것

부디 우리 민중들에게

삶의 선택권이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141위하고 앉아있으면 안되는거죠

우리에게는 다양한 대역폭이 있어야하고

이 일을 하다가 실패해도 죽지 않는 다는

확신과 보장이 있어야

우리가 만드는 복지 국가가

우리 민중들에게 더 다양한 기회를

좀 더 다채로운 표정 다채로운 생기를 부여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40분 02초

6월 24일 : 재난과 연대의 복원

방송은 본업이 아니다 글을 쓰는 가지에게는...

부연설명하면 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걸 잘 압니다

2014년 민중의 소리 입사 이후로

기사조회수가 줄고 있어(10만에서 1만클릭 잘 안나와)

오디오와 비디오 변신 노력중

자연스럽게 저물어가고

자연스럽게 퇴물이 되고

자연스럽게 퇴장하는게 

가장 자연스럽다 생각해

물론 민중의 소리는 언론매체니까

오디오와 비디오에 걸맞는 시대 발맞춰야

새시대에는 새시대에 걸맞는 역량을 가진 기자들이...

샬롯에게는 다섯명의 제자가 있다-다음 웹툰 강추

목소리가 아닌 글로 만나뵙기를

지금부터는 재난과 연대의 복원이라는 주제로

찰스 아이젠스타인이라는 저술가가 있어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해

굉장히 따듯한 경제학적 시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상가

이 사람이 최근 블로그에

대괸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새로 왕을 즉위하는 사람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행사

영어로는 묘한 다른 뜻을 가지고 있어

coronation  

코로나가 영어로 완관 월계관이란 뜻이 있어

로마에서 장군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개선하면서

막 대중들 환호를 받을 때 원계수로 된 관을 쓰는데

머리에 쓰는 관이 코로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젠쉬타인은

물론 코로나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겠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대관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해

예언하는 글을 써

"코비드-19는 우리의 관점을 넓힐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생명을 더 신성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죽음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젊은 사람이건 늙은 사람이건

아픈 사람이건, 건강한 사람이건

모든 개개인을 신성하고, 소중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여기라고 한다

우리 서로를 돌 보는 것에 대해 진지해지자

우리 모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함께 기억하자

전 세계에서 연대와 협동의 소식이 들려온다

어떤 사람은 곤경에 처한 낯선 사람 열명에게

100달러씩을 보내고 있다고 전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던킨도너츠에서 일했던 내 아들은

사람들이 평소보다 다섯배 넘는 팁을 줬다고 말한다

의사들, 간호사들 그리고 필수 인력들은

공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한다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위험에 던진다

레베카 솔릿이 자신의 책

'지옥에서 건설된 파라다이스'에서 적었던

재난은 종종 연대를 해방시킨다

수면 아래에서 일렁이던 훨씬 더 아름다운 세계는

그것을 붙잡고 있었던 시스템이

느슨하게 풀릴 때마다 불쑥 물위로 나타난다"

낙관적이고 아름다운 글

찰스 아이젠쉬타인은

코로나 19의 거대한 재난속에서

인류가 연대의 새세상

희망을 꽃피우고 있다고 묘사를 하는 것

우리는 평소에 잘 몰랐던거죠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그렇게 설쳤기 때문입니다

주변사람 돌아보지 말라고

너 혼자 잘먹고 잘 살라고

남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제거하라고...

그게 자본주의에서 도덕이고 선이라고 가르쳐

그런데 바이러스가 덮치면서

이 시스템이 느슨해진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연대와 협동이라는 이름의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이 수면위로

불쑥 나타났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저 사람이 아프건 말건

나랑 뭔 상관이야 였는데

이제는 저 사람이 아프면

이게 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줘

예전에는 나한테 물건을 배송해주는 노동자가

감기에 걸렸건 말건 나한테 뭔상관이냐였는데

이젠 그 노동자의 건강이 나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또한 알게 돼

더 정확히 말하면 솔직히 예전에는 배송노동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고

2500원 내면 온 세상 물건이 다 내앞으로 탁탁 배송되었는데

이제는 그분들이 없으면 이 격리의 세상속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래서 아이젠쉬타인이 말하는 겁니다

어던 사람은 곤경에 처한 10명에게

모르는 사람이에요

모르는 사람에게 100달러씩을 보내고 있더래요

아이젠쉬타인의 아들도 던킨도너츠에서 일하는데

평소보다 다섯배 넘는 팁을 받는 다는 겁니다

나를 치료해준것도 아닌데 24시간 마스크를 쓰고

환자를 돌보는 헌신적인 의사들과 간호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막 생기잖아요

솔직히 우리 평소에는 정은경이라는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몰랐어요

질병관린본부가 뭐하는 부서인지 몰랐어요

지금은 정은경 본부장의 짧은 단발머리가 

눈물날 정도로 고마운 겁니다

물론 저는 아이젠 쉬타인의 이런 시각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는 생각합니다

코로나가 이런 인간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킨 건 아니죠

길 가다보면 다들 마스크 썼는데 혼자만 마스크 벗고

침 찍찍 뱉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고요

대중교통 탔는데 마스크 좀 쓰세요 말하면

막 쌍욕하고 폭력 휘두르는 또라이들도 있어

하지만 제가 아이젠 쉬타인에 동의 할 수 있는

하나의 부분은 아이젠쉬타인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매우 분명한 이유를 하나 찾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코로나가 처음에 창궐했을때

극복하기 진짜 어려웠을 때

제 페북 친구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배송하시는 노동자분들께 수줍게 마스크를 건네요

그리고 그 글을 공유합니다

저도 요즘 밤에 산책을 하는데

아무 이유없이 한달 전부터 경비 서시는 노동자분들께

음료수를 하나씩 사드리고 있습니다

이것도 아무 이유가 없어요

고작 그 음료수 1000원자리입니다

왠지 그러고 싶어지는 겁니다

아이젠 쉬타인 아가 그 블로그 글에서

에베타 솔릿이 자신의 책

'지옥에서 건설된 파라다이스'에서 적었던

재난은 종종 연대를 해방시킨다

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 등장한 레베카 솔릿 이 사람은 

굉장히 진보적인 사상가입니다

이 책 '지옥에서 건설된 파라다이스'

영어 원제가 

A Paradise built in hell

이 책이 한국에 번역이 돼 있습니다

번역 제목은 '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제목입니다

이 책의 주제는 세계적인 재난이

인간의 연대를 얼마나 복원하나

이걸 실증적으로 취재를 한 책입니다

솔릿은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캐나다 무기수송선 폭발,

멕시코 시티 대지진, 9.11테러,

뉴올리언즈 허리케인재난 이 다섯가지

재앙사례를 분석합니다

솔릿의 취재 결과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 대재앙속에서 비로소

서로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하더라

자본주의에서 감춰줬던 본능이 개어납니다

이타주의와 연대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기억을 한번 꺼내보겠습니다

꺼내기 힘든 기억입니다만

우리도 역시 일상 어딘가에

재난이 시작되었을때 놀라울 정도의 연대의 본능

깨우친 적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그렇죠

그제서야 비로소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심지어 일본이 그렇게 미워도

일본에서 대지진 났을 때

성금을 다 보냅니다

그래서 솔릿은 이 현상을 

재난은 종종 연대를 해방시킨다고 표현

재난속에서 우리는 연대감을 복원한다는 뜻이죠

물론 아이젠쉬타인이나 솔릿의 낙관주의를

100% 동참하지는 않습니다

재난이 인간의 나쁜 본성을 자극하기도 하죠

그리고 과거에 말씀드린 것처럼

재난을 탁 맞으면 사람들 머리가 새하야진다

이때 자본주의가 그 위에 자기들이 원하는 세상을

맘껏 그리기도 해

이게 나오미 클라인이 말하는 '쇼크독트린'인데

예를 들어 IMF이후에 한국이 갑자기 공동체가 박살나고

돈돈거리는 세상이 되고

이게 IMF가 설계한거라는 겁니다

카트리나 이후에 뉴올리언즈 일대 공교육이 박살이 나고...

자본주의는 재난 패닉을 이용해서

돈을 맘것 벌 수 있는 세상을 설계해버립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 달려있다는 겁니다

쇼크독트린

자본이 재난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세상을 건설한다는

나오미 클라인조차 

재난 이후에 우리가 어떤 세상을 건설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세상은 매우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연대의 세상이 도리 수있다고 말합니다

왜 그러냐?

재난은 옛 질서를 무너뜨리기때문입니다

우리도 코로나 사태 이후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되어

경험을 해보니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은 너무 중요해

택배노동자들은 더 안전하게 배송할 수 있어야 해

지금처럼 이동이 불가능한 시대에 

식량은 아무때나 시카고 곡물시장에서

수입할 수 있으니까 농업은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이런 개소리는 집어치우자고

우리는 적어도 최소한의 식량자급을 위해

우리 농민들을 보호해야 해

그 어떤 재난에서도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이웃까지 모두 안전하게 보호받았으면 좋겠어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물론 코로나가 아이젠쉬타인이 말하듯

새로운 세상을 여는 대관식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어

그런데 우리가 

비로소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중요한 계기를 찾았다는건

분명한 거 같아요

도일린의 말처럼

과연 재난이 무너졌던 사회적 연대를 복원할 수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의 답이 예스였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안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도 농민도 자영업자도 가사노동자도

퇴직자도 학생도 어린이도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모두 국가의 보호아래 안전하고 건강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서로를 더 소중히 여기면서

서로의 안녕을 뜨겁게 기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