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9. 01:45ㆍ일반/금융·경제·사회
권력, 자본 그 어떤 것도 사람과 공동체에 앞서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고 싸우자
대내외적으로 너무 뛰어난 기자 윤영찬
노동의 힘은 멈춰세울 수있는 힘에서 나온다-사측은 노동과 노조를 분리
어머니, 죽어가는 동지 눈물이 흘리지 않는 세상을 빨리 만들고 싶고
죽어가는 동지의 눈물에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고
오늘의 주제 현상유지 편향
그에 앞서 손실회피성향
주류경제학에 따르면 사람이 너무 정교한 존재여서 손실이건 이익이건
닥 그 돈의 액수만큼 반응해야 정상이라고 보는 것
사실이 아닙니다
인간이 그렇게 정교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실제로 이익과 손실을 놓고 보면
사람은 이익보다도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걸 손실회피성향이라고 말을 합니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대니얼 카너먼은
이걸 직접 비교한든 상대적으로 비교하든
손실은 이익보다 커보인다
플러스 기대치 또는 경험치와
마이너스 기대치 또는 경험치 사이에
이 같은 비대칭성에는 진화의 역사가 담겨있다
위협을 기회보다 더 절박하게 보는 생물은 생존과 번식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이익보다 손실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대충 어느정도 손실이 이익보다 크게 생각하냐면
여러 실험으로 통계를 내보면 약 2배정도입니다
예를 들어서 주식 투자를 했는데
주식이 20% 오르잖아요
별로 안기쁩니다
그런데 내가 산 주식이 20% 떨어지잖아요
돌아버리는 겁니다
우와 내 피같은 돈이 없어졌어
아픔이 너무 커
이 아픔을 상쇄하려면 내 주식이 40% 올라버려야
그 만큼 이익보다도 손실에 사람이 예민하게 반응해버려
왜 강아지가 자기 집앞에서 싸우면 이길가요?
국산으로는 똥개 이렇게 말하는데
똥개라는 표현을 안 좋아해서 강아지도 자기 집앞에서 싸우면 이긴다
이게 그냥 속담이 아닙니다
실제로 생물학자들이 연구를 해보면
모든 동물의 영역 다툼에서는 홈그라운드에 있는 동물이 훨씬 유리합니다
실제로 그래요
왜 그러냐면 자기 집앞의 강아지는 자기 영역을 지켜야되기때문에
자기집을 잃는 건 손실이죠 무지하게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반면에 공격을 하는 애는 남의 영역을 얻으려는 애죠
얻으려는 자의 절박함보다 지키려는 자의 절박함이 2배정도 더 커요
그래서 모든 동물이 홈그라운드에서 강한 겁니다
돈 핼콕 같은 행동 생태학자는 이걸 실제로 정의로 만들어
어떤 영역을 점령한 텃세동물이 경쟁자의 도전을 받으면
거의 항상 주인이 이긴다 그것도 단 몇초안에 유명한 정의로 나와
그래서 보수는 절대로 얕잡아 볼 수 없다
걔네들 허접해보여도 기득권이라는 밥그릇을 뺏으려고 들면
무지하게 악다구니를 쓰고 싸우는 겁니다
잃는 걸 견디지 못하는 거죠 목숨걸고 사우는 거죠 그래서 얕잡아 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새로 얻는 기쁨보다도
뭔가를 잃는 것을 더 위협적으로 생각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냐
이게 오늘 주제인 현상유지 편향입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잃는 아픔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때문에
아휴 지금 이대로 살아 이런 성향이 생깁니다
아까 카너먼의 손실회피성향에 대해서
이런 비대칭성에는 진화의 역사가 담겨있다
위협을 기회보다 더 절박하게 보는 생물은 생존과 번식 가능성이 높다
사바나의 연약한 동물이었던 인류는
어떡해든 포식자들의 위협을 피해서 살아남아야됩니다
그래서 가장 살아남는 좋은 방법은 늘 물 마시던 곳에서 마시는 겁니다
늘 과일 따던 곳에서 따는 겁니다
누군가 부족원중의 한명이 우리 한번 저 산을 넘어가봐요
저기에도 맑은 물이 있을지 모르고
더 싱싱한 과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부족원들이 반대를 합니다
왜요? 지금 안전하잖아
여기가 검증 되었잖아
만약 거기 갔는데 사자가 나타나면 어떡해
겁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전하고 검증된 일만 그대로 합니다
살아온 길 그대로 고수를 하죠
이게 바로 생존을 위한 현상유지 편향
이걸 실제로 마케팅에도 굉장히 많이 사용을 합니다
한번 변하기가 어렵지
한번 변하면 그대로 가려고 합니다
요즘 유튜브 프리미엄 이런거 광고많이하죠
1개월만 무료체험해보세요
무료체험하면 그 다음달부터 돈내게 되어있어요
처음에 그 체험으로 넘어가는게 어려워요
탁 넘어가면 사람은 그냥 하더던대로 쭉가게 되어 있어요
현상유지를 늘 기본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보수가 항상 유리합니다
변화하려는 마음과 지키려는 마음이 붙으면
두배정도 지키려는 힘이 강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이게 얼마나 골치거리이겠습니까
함께 싸웁시다 말을 해야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겁을 먹습니다
그거하면 내가 가진게 사라질텐데요 이거죠
잃는게 두려운 겁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잃을 까봐 두려워하는게 별거 아닌 경우가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냥 놓으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잘 못 놓아요
손실 회피성향때문에
중부담 고복지를 위해서
우리 세금 좀 더 냅시다 말하면
아니 싫어 내가 세금 더내야돼
이런 답이 나오죠
내 통장에서 빠져 나가는 돈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냥 지금대로
실제로 계산해보면
세금을 더내서 중부감 고복지국가 되어보면
내가 낸 세금보다도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이 더 많은데도
당장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게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개혁가들을 보면
행동경제학이 이론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인간이 직감적으로 인간이 이런 성향이 있다는 걸 눈치를 챈거 같아요
운동을 하려고 보니까
사람들이 너무 두려워한다는 거죠
뭘 두려워하는지를 잘 보면 내가 지금 가진 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겁니다
아만 아상 아집
그래서 천재적인 운동가들은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굉장히 자극적인 선동구호를 만들어 냅니다
역사적으로 투쟁에 관한한 선동적인 구호를 꼽으라면
단연코 이걸 꼽는데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리자는 상상을 학자죠
마르크스에 대한 호불호를 더나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마르크스를 옳었던 글렀던 자본주의를 무너뜨려보자는 상상을 해본다는건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인류역사상 가장 거대한 상상을
하면서 제일 필요했던 건 사람들이 자기 의견에
동의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같이 싸웁시다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안따라와요
손실회피성향대문에 두려워하는거죠
그래서 마르크스가 그 심리를 파악해서
엄청난 어조로 선동을 합니다
이 선동이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 맨 마지막 문장입니다
노동자가 혁명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입니다
저는 이대목을 촥보고
나중에 행동경제학을 공부해본다음에
아 마르크스가 이미 오래전에 행동경제학을 개척했구나 이 사람이
손실회피성향과 현상유지편향을
정확하게 꿰둟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데
내가 가진 것을 잃을 거다라는 두려워한다는 거죠
그러니 거기다 대고 외친겁니다
너희들 잃을 거 별거 없어
별거 아냐
그러니까 집착하지 말고
니가 싸워서 얻을 것을 봐
이렇게 선동하는 겁니다
심리적으로 대단한 선동이죠
아가 사랃들이 얻을 것과
잃을 것을 비교를 해보면
잃을것에 대해 두배정도 가중치를 둔다고 말씀드렸죠
마르크스는 어떻게 말하냐면
두배 내가 그정도면 꼬시지도 않아요 여러분
여러분 잃을 건 고작 쇠사슬 뿐이구요
얻을건 무려 전세계라구요
이렇게 비교를 해서 꼬시는 겁니다
공산당 선언 맨 마지막 문장은
아마 무시하게 선동적이고 굉장히 파워가 있는 문장이죠
제가 아까 브리핑 초반에 어머니라는 노래 가사를 들려드렸는데
어머니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모순의 거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버리고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덩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나간다
아, 우리의 승리
죽어간 동지의 뜨거운 눈물
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려움 없이 향해 나가리
어머니 해맑은 웃음의 그날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은 민중가요' 어머니'의 가사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가사 맨 마지막에 보면
두려움 없이 싸워나가리
이게 우리의 목적인 겁니다
이거하면 두려워요
저거하면 잃을게 너무많아 겁을 먹거든요
그래서 노래를 보면
죽어간 동지의 뜨거운 눈물이 나오고
어머니의 해맑은 웃음이 나오는 겁니다
이걸 생각해보면
우리가 두려움은 좀 줄일 수 있거든요
저는 그때 이 노래들으면서
웬만하면 가족을 건드리지말자는 생각도 한 적도 있었어
이게 뭐 어머니까지 등장할 일이냐
죽어간 동지 노래부를때마다 너무 힘들더라구요
정말로 두려움 없이 싸워나가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은 부문 감정의 북돋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이게 어렵다는거죠
현상유지 편향이 생각보다 강하니까요
무섭거나 주저할때에는
세상이 다 연결되어 있는데
세상은 우리가 같은 시대에 연결되어있는 것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혼자서 해봅니다
그리고 지금 이완배라는 사람의 삶이
과거에 돌아가신 투사들이나 열사들의 생명위에 서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이건 엄연한 팩트이기도 해요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누군가가 과거에 목숨을 걸고 싸운길이 아니었다면 어덯게 있었을까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에 살 수 있는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던 수많은 독립투사들 덕분인거고
우리가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여러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이유는
전태일 열사가 몸에 불을 붙이고 돌아가셨기때문이구요
우리가 지금 1인1표제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건
박종철 열사가 고문에서 돌아가셨기때문이구요 이한열 열사가 돌아가셨기때문입니다
강경대 열사가 박승희 열사가 김영균열사가 강기훈 열사가 돌아가셨기때문입니다
지금 이 삶을 안락하게 누릴 수 있는 건
조금 겁이 남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의 삶은 그분들의 생명위에 서있다라고요
이러면 겁이 덜 납니다
두려움을 훨씬 더 덜쳐버릴 수있습니다
방송초창기 연대라는 단어를 쓰면서
진자 조심스러웠어
사람들이 연대라는 운동권틱한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겁이나
지금은 연대라는 단어를 써도 자연스럽게 받아주시고 토닥여주십니다
사회적 연대가 우주처럼 펼쳐진 이 세상이 꿈이다
라는 말도 너그럽게 받아주셔서 할 수 있습니다
해방이라는 단어를쓰면 어떻게 느겨지십니까?
어머니라는 노래 들려드릴때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덩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나간다라는 대목이있어
해방이 쓰기가 어렵고 무시시한 단어가 아닙니다
저는 해방이라는 단어를
굴레나 속박이나 두려움이나 생존에 대한 걱정에서부터
해방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해방
굴레나 속박 생존에 대한 걱정,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사회를 꿈꿉니다
그리고 그해방된 사회를 위해서 우리의 다리가 저절로 덩실
달려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해방된 사회를 위해서 함께 사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두려움을 떨치는 건 어렵습니다
그 공포를 내려놓으면
속박에서 벗어난 해방된 세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두려움 없이 다 나은 해방의 세상을 위해서
함께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두려움 속박에서 해방된 세상에서 다시 만나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경심 교수님이 영장실질 심사에서 구속 판결 난 이후
슬프고 우울해서 힘도 빠지고 조금 지치신 분들이 보여서 이거 들으시고 힐링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어제 딴게에 링크 올렸는데요
링크 걸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안 들으시는 것 같아서 걍 제가 타이핑 쳐서 글로 옮겼습니다~
귀로 듣는게 100배는 더 좋지만 시간 없으신 분들은 텍스트로 읽고 힘 좀 내시면 좋겠습니다!
다들 잘 주무시고 내일 여의도에서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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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제는 몇 번 소개시켜 드린 적이 있는데 행동경제학의 손실 회피 성향이라는 겁니다. 최근 6월에도 황교안 대표 행동 분석하면서 이 이야기 한번 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좀 다른 각도에서 적용을 해 보겠습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익이나 손실은 정확하게 그 돈 액수가 주는 만큼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여러분들께서 만원을 공돈으로 얻으시면 기쁘죠? 이게 얼마만큼 기쁘냐? 만원만큼 기쁘다는 겁니다.
근데 이걸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우시다면 이런 방법을 사용해보시면 됩니다. 제일 쉬운 방법은 내가 만원을 잃었을 때 슬픔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고 슬픔만큼 만원을 얻었을 때 기쁜 겁니다.
왜냐하면 만원이라는 돈의 액수가 주는 행복이나 슬픔은 특정인간마다는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에게는 항상 일정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전제 자체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전 재산이 얼마정도 되십니까? 각자 전 재산들이 다 있으시죠? 꽤 되는 분들부터 얼마 안 되시는 분들도 있고 자연스럽게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평가를 위해서 그 전 재산을 다 건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제가 지금 던지는 질문에 대해 전 재산을 전제로 생각을 해 주셔야 됩니다.
예를 들어 내 전 재산이 1억쯤 된다는 분이 있으시면 지금부터 저하고 내기를 합니다.
반반짜리 내기입니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여러분이 이기시고, 뒷면이 나오면 제가 이깁니다. 그런데 거는 액수는 여러분들의 전 재산입니다. 예를 들어서 1억원의 재산을 가지신 분들은 앞면이 나오면 제가 1억원을 드릴 겁니다. 그런데 뒷면이 나오면 여러분들은 전 재산을 저한테 주셔야 됩니다. 굉장히 간단한 게임이죠. 이 게임이 끝나고 나면 여러분들의 전 재산은 두 배로 불어날 수도 있고 알거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게임을 하자고 하면 참여하시겠습니까?” 가 질문입니다.
실제 행동경제학의 실험에서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이 실험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뭔 택도 없는 소리냐?”. “그 미친짓을 누가하냐?” 이렇게 답을 합니다. 매우 공정한 게임이긴 하지만 2분의 1의 확률에 내 인생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뒷면이 나오면 갑자기 알거지가 되는거죠. 이럴 수는 없다고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통계적으로 보면 매우 공평한 게임이죠. 확률은 어차피 50대 50입니다. 그리고 오가는 돈도 정확하게 똑같고요. 만약에 주류경제학의 전제가 옳다면 이 게임을 거부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1억을 얻는 기쁨과 1억을 잃는 손실이 똑같고, 그 확률은 5대5니까요. 해볼만한거죠.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이런 미친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게임을 조금만 바꿔 보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전 재산을 거시는데 1억원을 가지신 분은 1억원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1억 2천만원을 걸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와 이기시면 1억 2천을 가져갑니다. 대신 지시면 1억원만 내시면 됩니다. 하시겠습니까?
살짝 고민되시는 분들도 있고. 대번에 고개를 절레절레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게임은 무조건 해야 됩니다. 통계학적으로요. 확률적으로는 앞면 나오나 뒷면 나오는 확률이 오대오지만 받을 수 있는 돈이 1억 2천만원으로 많으니 무조건 덤벼드는 게 이익이죠. 하지만 실제로 이 게임을 제안해 봐도, 지금 몇 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는 것처럼 쉽게 도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역시 50대 50의 확률에 내 인생을 걸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 되면 이제 주류경제학자들의 전제가 박살이 나기 시작하죠. 이익의 크기와 손실의 크기가 정확히 그 액수에 비례한다는 얘기는 완벽하게 헛소리가 됩니다. 우리가 이 게임에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익이 주는 기쁨보다도 손실이 주는 슬픔이 훨씬 큰 겁니다. 그래서 행동경제학자로서는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노만은 새로운 실험에 돌입합니다. 과연 이익과 손실이 주는 격차가 어느 정도여야 비등해질까요? 대략 1.5배에서 2.5배정도 나옵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조금 다르지만 내가 얻는 이익이 슬픔에 비해서 1.5~2.5배 사이 정도 돼야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을 합니다.
내기를 하면 잃을 때는 1억원, 받을 때는 2억원정도 되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최소한 받는 금액이 2억 5천정도는 돼야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을 하죠. 이런 현상을 행동경제학에서는 손실 회피 성향이라고 합니다. 사람은요. 자기가 얻는 이익에 비해서 손실에 훨씬 예민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동전던지기 내기가 아니고 현실로 적용이 되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를 탄생시킵니다.
보수가 진보보다 훨씬 더 유리한 싸움을 하는 배경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요. 진보가 보수에 비해서 우월할 때도 있지만 통칭 인류의 역사를 보면 항상 보수가 우월한 싸움을 대부분 하죠. 진보는 늘 보수에 도전을 합니다. 그래서 진보가 역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때 혹은 승리했을 때를 보면, 이건 진짜로 수많은 사람들이 깨지고 목숨을 잃고 희생을 해서 잠깐 5년. 10년정도 집권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조금만 약해지면 금방 보수가 다시 집권을 합니다. 보수가 진보보다 집권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겁니다. 이건 우리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억울한 일이잖아요. "왜일까요?" 라는 질문에 대해 행동경제학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사람들은 역사가 진보하거나 변화해서 얻어지는 이익보다도. 세상이 변해서 내가 잃게 되는 손실에 훨씬 더 예민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노먼은 이 손실회피성향이야말로 사람들이 현재 현상을 유지하려고 하는 성향으로 직결이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현실이 변화를 해서 내가 가졌던 만원을 잃더라도 그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만 오천원정도 된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사람들은 내가 지금 잃는 만원의 가치를 2만원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걸 못 잃겠다고 버티는 겁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현상이 벌어지죠.
카노먼 책에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누군가가 한쪽은 자기 것을 지키려고 싸워요. 한쪽은 그것을 빼앗으려고 싸워요. 양쪽 힘이 비슷합니다.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백발백중 지키려는 쪽이 이깁니다. 왜냐하면 빼앗으려는 쪽은요 싸워서 빼앗으면 이익을 얻지만 빼앗기는 쪽은 지면 손실을 입습니다. 그런데 빼앗기는 쪽이 느끼는 손실에 대한 상실감이 이긴 쪽, 즉 빼앗는 쪽이 이익으로 얻는 기쁨보다도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누가 더 절박하게 싸우겠습니까? 당연히 지면 잃는 쪽이 훨씬 더 절박하게 싸우는 겁니다.
현실로 보면 이런 겁니다.
참여정부 때 사학법 개정같은 거 한번 보십시오.
김용민 : 사립학교법 개정, 말하자면 사립학교에 개방형이사를 둠으로서 이사회에서 지들끼리 그냥 담합하고 이러는 거 못하게 감시하는 한 사람을 두자는 거
그렇죠. 훨씬 엄정한 감시체제를 두자는 거였죠. 이게 2005년에 법이 개정이 됐습니다. 근데 기억나시죠?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사학법 개정은 진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그 개정이 잘 유지됐으면 우리 온 국민이 얻는 이익이 막대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2005년에 열린우리당 주도로 법이 개정되자마자 사학 재단쪽에 있는 그 반대 투쟁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한번 기억을 되살려 보십시오. 박근혜도 맨 앞에 섰었죠. 진짜 목숨걸고 싸우러 나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김용민 : 박근혜가 촛불 들었으면 말 다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청중 : (웃음)
그 장외투쟁은 걔네들한테는 진짜로 물러서면 죽는다는 절박한 투쟁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결국 2007년에 사학법 개정이 거의 무산되는 방향으로 법이 재개정이 되죠. 지금 문재인정부가 다시 하려고 하는데, 제가 장담하는데 이거 건들이는 순간 또 한 번 목숨을 건 보수세력들의 투쟁이 시작될 겁니다. 그런데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사학법이 개정됐을 때 우리 민중들이 얻는 이익이 사학법 개정으로 그들이 입는 손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커요. 그런데 막상 양쪽이 길거리에서 투쟁으로 붙어보면 어느 쪽이 더 절박하게 싸우나요? 잃는 것이 많은 쪽이 훨씬 더 절박하게 싸웁니다. 그래서 참여정부 때 그 개혁은 결국 2년 만에 무산으로 돌아가고 말죠.
종부세 논쟁도 비슷한 겁니다. 종부세 부과하면요 우리들이 얻을 이익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근데 싸움을 해보면 기득권의 저항이 엄청나다는 걸 정말로 느끼게 되죠. 모든 싸움은 그렇습니다. 이기면 뭔가를 얻는 쪽보다 지면 뭔가를 잃는 쪽이 훨씬 더 절박한 겁니다. 그래서 세상이 진보하기가 어렵습니다. 동물세계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카노먼 책에 있는 대목을 한 대목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을 포함해 동물은 이익을 얻을 때보다 손실을 막을 때 더 열심히 싸운다. 텃세를 부리는 동물의 세계에서 이 원칙은 애초의 주인이 성공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이 상황을 관찰한 어느 생물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영역을 점령한 동물이 경쟁자의 도전을 받으면 거의 항상 기존의 주인이 이긴다. 그것도 대부분 몇 초안에.
인간세계에서도 개혁을 시도 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대개 개혁은 거의 항상 다수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소수에게 불이익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이익을 받는 쪽이 정치적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익을 받는 쪽보다 더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행동할 것이고 그러다보니 결과가 그들에게 이롭게 편향된다. 손실회피는 기관에서든 개인의 삶에서든 현재상태에서 최소한의 변화만을 이끌어내는 막강한 보수주의의 힘이다.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지배하는 보수쪽의 저항은 그 보수세력들을 무너뜨리고자하는 진보세력의 개혁의지보다도 원천적으로 훨씬 강한 겁니다. 게다가 사회라는 운동장 자체가 보수쪽으로 기울어져 있죠. 그러니까 이 싸움은 번번이 진보의 패배로 돌아갑니다. 여기 모인 김에 명성교회 세습반대 투쟁도 한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교회가요. 세습을 합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옳으냐? 그르냐? 논쟁할 필요조차 없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논리적인 논쟁이 필요한 영역이 아닙니다. 1분 만에 토론이 끝나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명성교회 수많은 교인들은 왜 이 상식의 편에 서지 않고 이 반대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까요? 그 부당한 세습을 깨고요. 상식으로 돌아갔을 때, 교회가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사회적 이익이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그 길에 나서지 못하죠. 왜 일 것 같습니까? 사람에게는 변화를 통해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한 막연한 공포같은게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김삼환 목사 섬기고 그 목사가 이야기 하는 대로 아멘 할렐루야 하고 사는 게 편한 거예요. 세습에 반대하고 상식의 편에 서는 순간, 수십년째 유지되어 왔던 교회의 질서가 무너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누렸던,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교회에서 누렸던 기득권의 안전함이 사라지죠. 이게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세상에 모든 영역이 그렇습니다. 조금만 바꾸자고 이야기해도 이건 뭐 진보건 보수건 똑같습니다. 나의 무엇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순간 못 견딜 정도로 저항이 강력해지는 겁니다. 이 간단한 상식조차도 교회에서 상식으로 통용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죠. 그래서 아까 카노만이 이야기 했던 대로 손실회피성향이라는 것은 기관에서든 혹은 개인의 삶에서든 똑같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최소한의 변화만을 이끌어내는 막강한 보수주의의 힘이 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 되게 많이 드리는데요. 역사적으로는 단판 승부를 벌이면 불리합니다. 실제로 승패를 계산해보면 우리가 훨씬 많이 집니다. 숫자로 한번 계산해 보십시오. 이걸 인정해야 됩니다. 이걸 인정안하면 현실이 너무 슬퍼집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정의를 위해 싸웠는데 어제도 졌고 오늘도 집니다. 내일도 질 것 같아요. 이러면 너무 슬프죠. 활동가 분들이 지치시는 이유가 그겁니다. 한 두번 져야죠, 한 두번
뭐 싸울 때마다 지니까 너무나 힘이 드는 겁니다.
김용민 : 그래서 저기 저 민중당 하다가 저기 민자당 넘어간 사람들이 김문수, 이재오 이런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선천적으로도 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한데...(웃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이 싸움은 우리가 불리한 지형이고 대부분 우리가 진다는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고 심장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연이은 패배에 대부분 실망하고 절망하죠. 그래서 제가 주변 분들과 술 마실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자꾸 지니까 우리들만의 무기가 있어야 된다고요. 어차피 집니다. 지는데 지치지 말아야 됩니다. 그리고 질 때마다 서로를 보고 토닥토닥 격려해줄 수 있는 연대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손도 내밀고요 힘내시라고 격려도 하고요. 다음에는 이길 수 있어 라고 토닥여주는 그 힘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10번 싸우면 9번 지는 지형이기 때문입니다. 힘들어서 8번째에 포기하면 세상은 변하지 않지만 그걸 이겨내고 10번까지 도전할 수 있으면 한번은 이기거든요. 그리고 대부분 역사의 진보는 그 한 번의 승리에서 이뤄지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현대사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매번 졌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요. 우리의 4.19혁명이 성공으로 돌아가지 않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광주의 그 수많은 민주 영령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던 그 투쟁도 현실적으로 5년 10년 내에는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87년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가 돌아가시고 그 거리를 가득 매웠던 싸움도 결과적으로는 노태우가 집어가죠. 91년 그 수많은 분들이 몸에 불을 붙이고 싸우면서 투쟁을 했을 때도 결국은 졌습니다. 싸움이란 게 그런 겁니다. 져요, 자꾸, 하다보면 계속 집니다.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보수세력들의 기득권의 힘이 너무 강하기도 하고, 애초에 경기장 자체가 기울어져 있기도 해서 대부분 이기지 못하는 경우로 귀결됩니다. 그런데요. 안 지치고 계속 계속 계속 싸우다보면 한번은 이깁니다. 만약 우리가 2016-2017년의 싸움 중에 힘들다고 지쳐 포기했으면 오늘 지금 이 세상을 맞이하지 못하는거죠.
질 때마다 질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요. 빼앗기기 싫은 놈들의 그 거친 저항과 기득권이라는 건 어마어마하게 강한 거라고요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격려하는 겁니다. 지치지 마시라고요. 다음에 한 번 더 싸워보자고요. 제가 방송에서도 이런 말씀 한번 드린 적 있습니다만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속의 이야기는 넘버쓰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송강호씨가 마지막 작업들어가기 전에 부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오늘은 무대뽀 정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 무대뽀 정신, 최영의라는 분이 계셨어. 전세계를 돌면서 맞짱을 뜨신 분이지. 그 양반이 소뿔도 여러 개 아작 내셨지. 그 양반 스타일이 이래. 너 소냐? 너 황소? 나 최영의야 하고 소뿔 딱 잡아”
그 다음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존나게 내리치는 겁니다. 존나게요.
언제까지요?
소뿔 빠개질 때까지요. 이거 소뿔 빠개지는거요. 한번 치면 안 깨집니다. 내 손만 아픕니다. 그런데 민주시민에게는 존나게 내리치는 힘이 필요합니다. 내리치다가 아픈 분들 만나면 치료와 함께 도와주고요. 괜찮다고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는 격려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게 우리가 이 불리한 지형에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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