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게임이론…치킨게임 경쟁은 없다2017. 1.16~1.20 방송 모음

2020. 12. 13. 16:20일반/금융·경제·사회

728x90

1.16(월) -특검, 삼성 이재용 구속 의지 있는가…보도 행간을 보면

-[월요 경제학] 함정개임이론;치킨게임 경쟁은 없다

행동경제학 게임이론중 하나

함정게임이론 모델

예일대 경제학과 마틴 슈빅이 고안한 이론

경매게임

갑을병정이 모여서 경매를 하는 것

경매로 하는 물건이 현금 2만원

제일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이 경매를 가져가는 것은 다른 경매와 같아

2등으로 탈락한 사람은 써낸 금액을 주최측이 가져가

2등이면 홀라당 돈을 날리는 것이 독특한 규칙

나머지는 일반적 경매와 룰이 같아

처음에 갑이 1000원 부르면

을은 2000원

병은 3000원

정은 4000원

이 상태에서는 굉장히 큰 이익

갑이 18000원 불러 이때도 경매에서 이기면 이익

을이 19000원 이것도 이익

병과 정은 20000원 내고 20000원 가져오는 것이라 포기

문제는 갑 이미 갑은 18000원까지 부른 상태

이 상태에서 갑이 포기하면 게임룰 상 2등 탈락자가 돼

그리고 2등 탈락자는 18000원을 주최측에 내야돼

18000원을 생으로 날릴 수 없으니까 이 손해를 안보려면 경매에서 이겨야 돼

그래서 과감하게 20000원이라고 불러

20000원 얻기 위해서 20000원 부른건데

이겨봐야 땡전 한푼 안생기지만 그래도 2등으로 패하면 손해가 막심하니까

이겨야 되는 것

이제는 을이 고민이다

여기서 포기하면 을이 2등 탈락자가 돼

결국 을은 21000원 불러 1000원 손해지만 19000원 잃는 것보다 나아

이;번에는 갑이 똑같이 20000원 안날리기 위해서 22000원하고 불러

을도 23000원

여기서부터는 바보게임이 되는 것

누가 경매에서 이겨도 손해입니다

하지만 지면 더 큰 손해보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계속 베팅금액을 높이는 거에요

그,래서 이 모델을 함정게임이라도 부릅니다

다른 경매와 다른 건 딱하나

2등 패배자의 금액을 빼앗는 룰을 넣은 것 뿐인데

이 모델에 걸리면 경쟁자들은 영원히 손해를 보면서 바보짓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맥스 베이즈번이라는 심리학자가

이거 재미있다면서

자기학교 경영대생들을 중심으로 매년 이 실험을 해봤대요

이 교수는 학생들의 코 묻은 돈 17000달러 우리돈으로 2000만원 벌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어

이 게임은 주최하는 것만으로 주최측이 무조건 떼돈을 벌 수 있는 게임입니다

도대체 이 게임의 어떤 면이 게임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까가 오늘의 주제

이 게임이 다른 경매와 다른 점은

다른 경매는 이기면 돈을 가져가지만

경매에서 지더라도 기분은 나쁘겠지만 지더라도 손해는 안보죠

그런데 이 경매는 패자에 벌을 줍니다

패자에 벌을 준다는 규정 하나 넣으면 

사람이 패배하면 손해가 막심하기때문에

경쟁을 하면 할 수록 손해이고

돈은 전부다 주최측이 벌어간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이 경쟁을 못 멈취요

놀랍게도 이 함정게임은 자본주의 경쟁시스템과 굉장히 닮아있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렸을때부터 악랄한 경쟁에 내몰리는데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수학과외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우리 애들은 영어 과외라도 시켜야 돼

그러면 저쪽측 부모는 어 그래 그러면 우리는 수학에 영어에 과학 얹어

그럼 이쪽에서는 안되겠다 이겨야 돼

수학, 영어, 과학에 사회도 얹어

이렇게 얹다보니까 요즘은 줄넘기 과외가지 나오는 판

그런데 왜 이 바보같은 짓을 왜 하냐는 거죠

경쟁에서 이긴 사람

예를 들어서 과외를 많이 해서 서울대를 가면

경쟁에 승자가 되는 겁니다

서울대를 가게되면 승자에게 상을 주는 것

서울대를 가는 것까지만 하면

이렇게 경쟁이 과격해지지 않아요

아이고 저짓을 왜해

서울대 안가고 말지, 경쟁에서 지고 말지

하고 중간에서 포기를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한국사회는 승자에게 서울대라는 상을 주는 것 뿐만이 아니고

패자에게 벌을 줍니다.

그러니가 경쟁에서 패하면 못이겨서 서운하지만 손해보는 것 없어

일류대를 못가도 잘먹고 살수 있어

이렇게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면 경쟁해서 목숨걸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경쟁에서 지면 모든 걸 잃게 만드는 겁니다

좋은 대학 못 가잖아요 인생자체가 없어요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도록 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해요

그러니까 경쟁에서 지면 죽는데 어떻게 경쟁에 올인 안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이기려고 난리를 치는 거죠

이걸 북유럽국가들하고 비교해보면 간단합니다.

거기에도 경쟁이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에요

공부 잘하는 애들은 의사가 되거나 변호사가 되어서 조금 더 잘 삽니다.

하지만 그나라 사람들은 우리처럼 거기에 목숨을 안걸잖아요

왜냐하면 여유있고 욕심을 더 낸 애들은 공부 더 많이해서 더 잘겠지

하지만 나는 굳이 경쟁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경쟁에서 포기를 해도 벌을 받지 않아요

좋은 대학을 못 가도 다 인간답게 삽니다

이러면 경쟁의 강도가 비인간적으로 높아지지 않습니다

착취도 당하지 않고요. 우리나라하고 많이 다르죠

더큰 주제가 뭐냐면

저렇게 함정게임을 해서 경쟁에서 이겼어요

승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익을 얻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아까 보셨듯이 함정게임에서는 승자도 손해를 보는 거거든요

하지만 패자보다 손해를 덜 보기때문에 저 바보짓을 하는 거에요

예를 들면 어떤 부모들이 뼈빠지게 돈 벌어가지고

애들 체육과외까지 시켜서 학원까지 매일 운전해주고 난리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경쟁에서 이겨서 자녀를 드디어 일류대에 보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기뻐하는 거죠. 와~이겼다.우리애가 경쟁에서 이겼다

막 행복해해요. 돌아보면 뭐가 남습니까

벌어들인 평생재산을 애들 교육비에 다 날리죠

40대 가장들은 과외비 번다고 자녀들 영어시킨다고

엄마하고 애들을 외국에 보냅니다.

기러기로 외롭게 삽니다.

노후대비는 하나도 안되어 있죠

자기 인생이라는 거는 완전히 사라지죠

인생은 오로지 애들 교육이 되어버립니다.

조기유학비댄다고, 과외비 댄다고 야근도 자처하고

심지어 밤에는 대리운전기사한다고 직업 두탕 뛴다고 투잡족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겼어요

이기면 뭐하냐고요

인생을 송두리재 날리는데 ..

이게 함정게임에 말려들면 패자도 벌을 받고 승자도 손해를 봅니다.

이겨도 이긴게 아닌 거죠

그럼 누가 승자냐

이 게임에서 행복해하는 쪽은 딱 한곳입니다.

게임을 주최한 곳 자본입니다.

패자에게 벌을 내리는 시스템을 만든 곳이에요

이렇게 하면 직장인들은 돈 더 벌려고 악착같이 야근하죠

착취당하죠. 찍소리 못하죠.

괴외한다고 사교육시장쪽 돈 벌게 해주죠

자본은 정말 땡큐인겁니다. 이런 사회가요

패자에게 벌을 주는 시스템이 이래서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루저들, 패자들을 보호해야 됩니다.

경쟁에서 이기면 상을 줘도 돼요

그런데 경쟁에서 패했다고 벌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벌받으려고 태어난게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이 게임을 고안한 슈빅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함정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이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다'

참가하는 순간 끝이라는 거에요

이 게임에 아예 발을 들이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가 패자를 보호하는 사회를 만들어야할 분명한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경쟁에서 져도 죽여서는 안돼요

이런 세상을 만들어야 됩니다.

경쟁에서 지더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이게 마련이 돼야 이 지긋지긋한 함정게임이 끝이 납니다.

한국사회에 던지는 화두도 큰 이론

마틴 슈빅 교수가 고안한 함정게임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할 것이다

물론 슈퍼스타K처럼 자본이 경쟁의 무대를 만들어

허각만 부각되는 것 아닌

존박, 장재인 ...

경쟁이 재미를 위한 장치로 국한 될뿐

실제로는 모든 출연자들이 스타가 되고 대중의 관심을 타고

그걸 계기로 대중가수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는 이런식의 경쟁???

물론 사회주의를 만들자는게 아닙니다.

문제는 뭐냐하면 졌다고 죽여버리면, 졌다고 벌을 줘버리면

이기는데 목숨을 걸어야하기때문에 함정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생긴다는 겁니다.

검투사 같은 경우가 그런거죠

칼 들고 나타나서 상대가 죽을때까지 칼을 휘두르고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그림들 잔인무도한 사회가 되어버리죠

경쟁이 성장과 발전을 위한 동기부여의 장치, 재미를 위한 장치로

인식해야지 이걸 삶의 의미로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새해는 누구나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를 기원해봅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행복해질까 | 노오력의 경제학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치 이방인처럼 주변을 살폈습니다. 해외에 처음 나가면 외국인들을 구경하듯, 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한 공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대도시를 제외하면 흔치 않습니다. 꽉 들어찬 차량에서는 낯선 이의 날숨을 직접 들이 마셔야 합니다. 도시인들은

이렇게 끈끈한 관계로구나 생각합니다. 그 순간,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승객이 있으니, 다음 역 정차시, 응급 요원들의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작은 술렁거림조차 없습니다. 도시인들의 얼굴 표정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지하철은 녹조로 덥힌 한강을 지나고 있습니다. 맑게 갠 하늘 아래에서 녹색은 선명하지만, 시선을 두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노오력하는 사람들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의 삶을 예상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대략 절반은 정규직, 다른 절반은 비정규직입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도 받지 못합니다.

명절이면 정규직은 스팸햄을 들고, 비정규직은 식용유를 들고 퇴근을 할 것입니다. 차량 안의 절대 다수는 이름을 알듯 말듯한 중소기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다들 삼성, LG, 현대, SK를 다니는 지인들을 꽤 많이 알고 있지만, 이 차량에는 그런 대기업 사원이 한 명도 안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체 노동자 중에 중소기업의 노동자 비중은 80%가 넘고, 재벌 100대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 비중은 4%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종업원 300인 이상으로 정의되는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들과 비교할 때, 60%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다니는 이들과 비교한다면, 약 35%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앞에 서서 졸고 있는 이의 삶을 상상해 봅니다. 초등학생 때는 서울대와 비서울대 사이의 갈림길을 놓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합니다. 중학생이 되자 명문대와 비명문대, 고등학생 되자 인서울과 지방대의 갈림길을 두고 공부를 합니다. 조금만 참고 열심히 노력하면, 대학생이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견뎌냅니다. 대학생이 되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갈림길 앞에서, 학점 관리와 스팩 쌓기에 정진합니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더욱 현실적이고 두려운 선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림길입니다. 조금만 참고 열심히 노력하면, 대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뎌냅니다.

 

왜 노오력할 수 밖에 없는가

성공한 이들이 청년들에게 노력을 하라고 주문합니다.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를 비판하지 않고, 노력의 중요성만을 강조합니다.

기성세대의 조언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노오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경제학은 노력과 노오력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노력은 기대수익과 기대비용의 차이가 극대화되는 최적 수준입니다. 그러나 노오력은 그 이상의 수준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비용이 수익보다 큰 상황에서도 노오력을 합니다. 사람들은 언제 노오력을 할까요.

게임이론을 가르칠 때, 학생들과 간단한 경매 실험을 해봅니다. $20 지폐를 경매로 학생들에게 팔아 봅니다. 최고의 입찰가를 제시한 사람이 지폐를 갖게 됩니다. 일반적인 경매 방식과 다른 두 개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입찰가가 50센트씩 상승합니다. 둘째, 최고 입찰가를 제시한 사람만 아니라 차상위 입찰가를 제시한 사람도 입찰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갑이 $10을 제시하고 을이 여기서 포기하면, 갑은 $10을 지불하고 $20 지폐를 갖게 되고, 을은 자신이 직전에 제시했던 $9.5를 지불합니다.

그러나 을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입찰가 $10.5를 제시합니다. 포기하면 $9.5을 잃지만, $11을 제시해 이기면 $9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논리로 갑은 곧 $11를 제시합니다. 입찰 가격은 어느새 $19.5에 도달합니다. 갑은 $20을 제시합니다. 물론 이기면 이득이 0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19.5에 포기하면, 손실이 $19입니다. 이제 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을은 $20.5를 제시합니다. 이기면 50센트의 손해를 보겠지만, $20에서 포기하면 $19.5의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결국 입찰가는 $50불에 도달합니다. $20을 얻기 위하여 경쟁을 펼치고 있고, 각자는 매순간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게임을 펼치는 운명에 갇혀 있습니다. 이는 예일대 경제학과의 교수였던 마틴 슈빅이 고안한 함정게임입니다.

 

승자독식과 힐링 마케팅

함정게임에 갇힌 이들은 노오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힘을 내어 노오력을 해보지만, 점점 노오오력, 노오오오력을 펼쳐야 하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일반적인 경쟁과 달리, 함정게임이 지닌 두 가지 특징 때문입니다.

첫째, 승자독식의 경쟁 구조입니다. 아주 작은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됩니다. 효율적이고 정당한 경쟁 메커니즘에서는 각 사람이 능력과 노력에 비례해서 보상을 받습니다. 승자독식의 구조에서는 종이 한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승자와 패자의 보상 크기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둘째, 패자가 일종의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정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노오력을 펼칠 수밖에 없는 것은 단기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함정게임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처음부터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처벌의 크기는 노오력을 할수록 더 켜져 갑니다.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이 "패배는 죄가 아니요! 우리는 벌을 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란 말이요."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 때문일까요.

함정게임을 펼치는 학생들은 $20이 넘어서는 순간,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계속 입찰가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는 지켜보는 이들의 응원입니다. 마지막 두 사람이 남고, 다른 학생들은 환호를 보내며 승자가 되라고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노오력이 필요한 무한경쟁 사회에서 힐링과 희망 마케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함정게임은 노오력을 강요당하고 헬조선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승자독식의 구조를 바꾸고 패자들에 대한 처벌을 줄여보자고 제안하지만, 허락하지 않습니다. 입찰가가 오르는 것을 제가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처럼, 노오력이 늘어날수록 뿌듯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재수

인디애나 퍼듀대 경제학과 교수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jaesoo-kim/story_b_9367442.html?utm_hp_ref=korea

[출처] <연재기사>조금만 더 참으면 행복해질까 | 노오력의 경제학|작성자 송골매가슴털

 

 

 

 

 

 

지옥인 걸 알면서도... 서울 의대 포기 못하는 진짜 이유

[잡식성 책사냥꾼] 이완배 '경제의 속살'... 왜 우리는 입시에 목매는가

19.01.29 19:14l최종 업데이트 19.01.29 19:14l

글: 이용준(neias)

편집: 이주영(imjuice)

 

 

 
  <스카이 캐슬>은 입시지옥 레이싱의 주체가 학생뿐 아니라 엄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 JTBC

관련사진보기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이하 <스카이 캐슬>)이 역대 케이블 최고 시청률을 갱신 중이다. 'SKY 캐슬'은 극중 인물들이 사는 타운하우스의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 제목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입시에 목매야 할까? 대학은 인생의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에 어디에 있었는지가 이후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그럴까?

학벌에 대한 집착을 경제학적으로 보면 '신호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수많은 구직자들 중에서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부족할 마당에,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돼 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을 데리고 갑자기 농구팀을 만들어야 한다면, 코치는 키 큰 아이들을 위주로 팀을 만들 것이다. 큰 키와 농구 실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업무능력과 잠재력을 판단하는 변수다. 정말 상관관계가 성립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중고차나 보험 시장에서 발생하는 역선택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 중고차 구매자와 보험회사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모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보 수집에는 돈과 시간이 든다. 그래서 그들은 품질보증서나 건강검진 결과를 이용해 상대를 선별한다. 상대가 무엇을 조건으로 판단하는지 알게 되면, 이쪽은 최대한 그 조건에 부합해야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아니, 적어도 차별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양호한 건강검진 결과를, 구직자는 좋은 학벌을 확보하려 하는 것이다.

사실 학벌이 좋지 않다고 해서 회사에 못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타당한 의문이다. <스카이 캐슬>에서 묘사되는 입시지옥은 명문대에 들어가서 얻는 열매에 비해 너무 혹독하다. 왜 부모와 아이들은 입시지옥에 빠지는 걸까. <경제의 속살>(1권 '경제학 편')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자.

함정 게임

'함정 게임'은 예일대 경제학 교수 마틴 슈빅이 고안한 경매 게임이다. 일반적인 경매에서 차점자는 단지 경매 물건을 구입하지 못할 뿐, 추가로 손해를 입지는 않는다. 그러나 함정 게임에서는 다르다. 차점자는 자신이 입찰한 금액을 전부 몰수당한다. 낙찰자가 1000만 원을 불러 도자기를 낙찰받았다면, 바로 그 전에 900만 원을 부른 차점자는 자신이 부른 금액, 즉 900만 원을 몰수당한다.

마틴 슈빅 교수는 10달러짜리 지폐를 경매에 부쳤다. 이 물건의 가치는 당연히 10달러다. 1달러씩 호가가 올라간다고 가정하자. 일반적인 경매라면, 누군가가 10달러를 부르는 순간 경매가 끝난다. 승자는 10달러 지폐를 10달러 주고 산다. 9달러를 부른 차점자는 그냥 이익도 손해도 없이 낙찰에 패찰한다.

그런데 함정 게임의 규칙은 다르다. 10달러에서 경매가 끝난다면, 9달러를 부른 차점자는 9달러를 몰수당한다. 9달러를 손해 보는 것이다. 따라서 11달러를 불러 1달러를 손해 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이제 앞서 10달러를 불렀던 사람이 위기에 봉착한다. 10달러를 그냥 몰수당하느니, 12달러를 불러 2달러만 손해 보는 것이 낫다. 지옥을 향한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경쟁 사회의 큰 폐해가 승자독식의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패자에 대한 징벌이다. 일반적인 경매도 승자독식의 규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진짜 지옥은 차점자의 입찰액을 몰수하는 규칙, 즉 패자에 대한 징벌이 도입될 때 시작된다.
 

 
  <스카이 캐슬>의 극중 부모들은 자식을 서울 의대, 명문대에 가기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린다. (사진은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 스틸컷)
ⓒ JTBC

관련사진보기

 
재수, 삼수를 하면서도 명문대 입시에 목을 매는 이유는 명문대에 들어가서 얻게 되는 달콤한 열매 때문만이 아니라는 게 이 실험의 교훈 아닐까.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징벌 때문에 입시지옥을 2년, 3년 이어가는 것이다.

패자를 벌하지 않는 사회는 일반적인 경매와 비슷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북유럽과 같은 곳이 그렇다. 입시에 실패하면 기분은 나쁘겠지만, 다른 직업을 구해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대다수의 사회는 함정 게임이 지배하는 사회다. 패자에게 0이 아닌 마이너스의 손익계산서를 안기는 사회인 것이다.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함정 게임은 패자만 벌하는 것이 아니다. 승자도 손해를 본다. 앞에서 사례로 든 10달러 지폐 경매에서 승자가 20달러로 승리했다고 치자. 패자는 무려 19달러를 손해 보지만, 승자도 10달러짜리 지폐를 20달러나 주고 샀으므로 무려 10달러의 손해를 본다.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결과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SKY 캐슬'에 입성하지 못한 사람들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 역시, 얻은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모두가 손해를 보는 구조, 이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신림동 고시촌의 장수생들이 청춘을 다 바쳐 비효율적인 고시에 매달리는 이유는, 고시에 떨어지면 '인생의 패배자'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고시에 떨어져도 언제든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그들은 적절한 시기에 고시에서 발을 빼고 더 나은 일에 매진할 것이다. (194쪽)


패자에게 아량을 베푸는 사회는 과연 가능할까? 북유럽은 어떻게 지금의 북유럽이 됐을까?

생각의 틀을 바꾸자

 
  <경제의 속살> 1편 : 경제학편 표지
ⓒ 민중의소리

관련사진보기



<경제의 속살>은 기존 경제학이 가정하는 인간, 즉 이기적 인간의 모습을 논박한다. 도구는 행동경제학과 게임이론이다. 스탠퍼드 심리학과 교수 리 로스는 실험을 통해 프레이밍 효과를 증명했다. 리 로스는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눠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진행했다. 서로 격리된 두 사람이 상대방을 믿고 협력하면 둘 다 큰 이득을 얻지만, 상대방을 의심해서 자신만 빠져나가려 한다면 둘 다 큰 손해를 보게 된다.

한 팀의 학생들에게는 이제부터 '월가 게임'을 하겠다고 설명했고, 다른 팀의 학생들에게는 '공동체 게임'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월가 게임'의 결과는 일반적인 죄수의 딜레마로 수렴했다. 월가 딜러들의 무한 경쟁을 상상하며 게임에 뛰어든 사람들은 무려 70%가 배신을 택했다. 반면, '공동체 게임'에서 배신을 택한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생각의 틀, 즉 프레임을 바꾸자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 바뀐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균형점은 상호 배신이다. 그것이 전통 경제학에 따라 '합리적 인간'이 선택하는 결과다. '공동체 게임'이라는 이름만으로 사람들의 행동과 결과를 바꿀 수 있다니, 전통 경제학에서는 상상도 못할 결과다.

스위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영어나 산수를 가르치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기, 줄 서기, 다른 아이 괴롭히지 않기 같은 것을 배운다고 한다. 노르웨이 초등학교에서는 장래 희망을 이야기할 때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를 포함해서 이야기하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패자에게 벌을 주지 않는 북유럽 사회의 모습은 교육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북유럽 국가임에도, 스웨덴의 장기 기증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덴마크는 최하위 수준이다. 유럽에서는 운전면허증에 장기 기증 의사가 표시돼 있다. 덴마크에서는 운전면허를 발급받을 때, 장기 기증을 '원한다면' 박스에 체크를 해야 한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장기 기증을 '거부하고 싶은' 사람만 박스에 체크를 한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 교수가 찾아낸 해답이다.

<스카이 캐슬>의 극중 부모들은 자식을 서울 의대, 명문대에 가기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린다. 고통스러운 지옥 속에 살면서도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된다'는 믿음 하나로 버틴다. 그러다 누군가는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지옥불에서 살고, 다른 누군가는 지옥임을 깨닫고 탈출을 시도한다.

이 드라마가 던지는 화두를 잠시 생각해 보자. 패자를 벌하는 규칙을 당연시하는 사회는 승자에게도 손해를 끼친다. 남보다 조금 덜 손해 보기 위해 무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회. 얼마나 어리석은가.

 

 

 

1.17(화) -삼성전자 박상진의 자해 해프닝으로 본 재벌의 기만술

-블랙리스트 파문이 경제학적으로 특히 괘씸한 이유

1.19(목) -첫 반동분자로 나선 친기업 사법부…촛불 막진 못해

-김영란법이 비효율? 경제학이 사회 좌우 하면 안돼

1. 20(금) -조윤선 자백은 합리적 선택···구속해야 실체 드러나

-1998년 노무현 좌절시킨 보수언론···촛불 더 밝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