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수심결2. 마음닦는 길을 잃는 세 가지 경우

2022. 9. 21. 19:4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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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기의 마음이 참 부처이다

슬프다!
요즘 사람들은 어리석어
길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어
자기의 마음이
참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밝은 성품이
참다운 진리인 줄을 모른다.

진리를 구하려 하면서도
높은 성인(聖人)들만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부처를 찾으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관하지 않고
먼 곳에서만 구하려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 밖에 진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소견에 굳게 집착한 채
불도(佛道)를 구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몸을 불사르고 팔을 태우며,
뼈를 부수어 골수를 내
피를 먹을 삼아 경전을 쓰고,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눕지도 않고 항상 앉아 선정을 닦고,
뿐만 아니라
모든 대장경을 다 읽고,
온갖 고행을 닦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단지 고생만 할 뿐
아무 이익이 없는 어리석은 일이다.

다만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을 알면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진리를 구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의 중생(衆生)을 두루 살펴보니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을 갖추고 있다
'
라고 하셨으며,
또 '일체중생의 갖가지 허망된 생각이
모두 여래의
원만히 깨달은 묘한 마음[如來圓覺心]
에서 일어난다
'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이룰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오직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또한 마음을 닦은 분들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수행할 사람도
마땅히 이러한 진리를 의지해야한다.

바라건대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마음 밖에서 진리를 구하지 말라.

마음의 성품은 깨끗하여
번뇌 망상에 물들지 않아
본래부터 스스로 원만히 성취된 것이니
다만 망령된 생각만 여의면
곧 그대로가 부처인 것이다.

 

길을 잃는 것은 딴짓해서 딴거에 혹해서 그런 것

주로 길을 잃는 곳 3가지

1.외경

2.육신

3.불성

깨닫기 전에는 길을 잃을 수도...

이럴 경우 외경, 남탓을 안하고 

너의 마음이 흔들렸고

다른 곳에 촛점이 사로잡혀 어리석은 행동을 하려한다고 질타

모든 문제는 외경으로부터 일어나는게 아니다

층계스펙트럼이 있다

자신의 주의력(사띠)이 얼마나 바깥에 있는가!. 마음에 있는가!

얼마나 바깥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안으로 들어와 있은가!

수심결의 마음 닦는 방향성은 자신의 주의력을 안으로 돌려야 된다는 것

우리는 대부분 바깥경계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그래서 행복의 원인도 외경에 있다 생각하고 

고통의 원인도 외경에 있다고 생각하는거죠

그런데

주의력이 안으로 들어가면 

진정한 행복의 원인을 발견하게 됨은 물론이고

어리석은 행동들을 안할 수가 있게 돼

 

<슬프다, 요즘 사람들은 길을 잃은 지 오래되어

자기의 마음이 참부처인지 알지 못하고

자기의 성품이 참진리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진리를 찾으면서도 멀리 성인들에게만 미루고

부처를 찾으면서도 자기의 마음을 관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수행자들인데

길을 잃었다는 것은 

마음에서 찾는다라는 걸 모르거나

마음에서 찾는다라는 걸 아는 데 마음을 잘 못보겠으니까

어쟀든 보이는 데로 갈려고 다른 개념을 만들어서 딴데로 도망가는 사람들

 

처음에 마음은 육신을 통해 경험의 그림자로 마음을 볼 수 있어

아직 마음의 본체를 못보는 거에요

마음의 꼬랑지만 보고 쫓아가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을 못봐

 

눈에 보이는 대상은 잘보이니까 어리석어져 이게 외경

여기에는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조차도

마음을 보려하는데 마음을 못찾겠으니까

마음에 어떤 개념을 만들어 이게 마음이다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게 마음이다

그러머 이건 마음이에요? 개념이에요? 개념

그렇지만 개념은 보이죠

그걸 마음이라고 퉁치고 그걸 마음이라고 생각을 하고

덥석 믿어버리고 아니면 자기를 설득해서

이게 마음이다해서 마음 볼 생각은 안하고 길을 잃어 버리는 거에요

 

그래서 마음을 보아야겠다는걸 아예 모르는 경우가 있고

마음을 보려고 하다 개념을 만들어 그 개념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 거에요

이유는

자기의 마음이 참부처인지 알지 못하고

자기의 성품이 참진리인지 알지 못한다

 

부처님이 깨닫고 보니 이전의 중생이 부처로 보인다

중생은 묘하게 합리적 이래서 저래서 갖가지로 중생이다 주장

부처님은 그래도 부처님이다라고 한다

이런 경우 그냥 자기 자신의 망상에 귀의하는거에요

진정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지 않는 거에요

우리가 길을 잃는 근본 나는 부족하다 생각하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부족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까

이 얼마나 황당한얘기인가 이게에요

왜 우리는부족한 사람이냐 이거에요

부처님은 확실히 모든 중생이 법왕자다 얘기하셨어요

그래서 명칭을 불자! 내 아들이다. 법왕의 아들이다

그렇지만 자기 고집 중생상을 가지고

나는 부족하다 생각하고

나는 더 필요하다 생각하고

나는 왜 못한다 생각하고

그 모든 좌절과 자존감을 낮추는 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에 빠져드는가

모든 근본은 중생상에서 나오는 거에요

나는 중생이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거로는 부족해요. 충분해요

자꾸 바깥에 거지같이 구하러 다니는거에요

법화경에 왕(장자)의 아들이 있었어

이 아들을 갓난쟁이때 잃어버려 못찾아

기어서 거지소굴로 들어가 20년을 살아

자기 왕자인줄 알아요 거지인줄 알아요

20년후에 왕자를 찾았어요

그런데 왕이 쫓아가 너 내 아들이다

왕자가 믿어요 안믿어요

자기는 거지래요

자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거지래요

자가는 못한대요 부족하대요 배운 것도 없고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거지래요

언제까지 거지로 살거냐 이거에요

충분한 교육을 받으면서 중생상이 사라지기 시작하는거에요

그러면 자기가 왕자임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수행의 시작이에요

수심결의 시작은 이때부터에요

중생상이 약해지고 사라질 때부터에요

거지왕자가 아니라 왕자가 되는 순간부터

왕자가 되었어요. 핏줄이 고귀해요.

갖출걸 다 갖추었어요

어릴 때 왕자가 똥싸면 눈치 봐요 안 봐요.

안봐요.

똥쌌다고 누가 천박하다 때리고 이러지 않거든요

고귀하니까.

물론뒤에가서 욕은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 자존감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거지왕자이기때문에

무엇인가를 얻으러 다니는 거에요

이 여정을 멈출 수가 없는 거에요

얻으러 다닌다 누구한테?나한테 얻어요 바깥에서 얻어요

그러니까 외경을 쫓는거에요

그러니까 마음을 보기로 한 걸 잊어버리는 거에요

외경에. 또는 육신에. 또는 불성이라고 하는 개념에

법상이죠 법상에 끊임없이 딴데를 보는 거에요

왜냐하면 나는 부족하니까

이게 근본적으로 해결이 안되면

잠재적으로 길을 벗어날 수 밖에 없는 시한폭탄입니다

그냥 벗어날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왜냐하면 거지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얻어야 되니까. 더 있어야 되는거에요.

 

중생상이 근본이 되어서 얻어야 얻으러 길을 벗어나는 거에요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가

벗어난다는 건 어디로 갔다는거고 마음에서 벗어난 거죠

그럼 수행의 성취가 없죠. 행복해지는 성과가 없게되는거죠

잠깐 일어나는 쾌락은 있을지몰라도 근본적으로 성과는 없죠

잘 안되니 잃어버린 바깥대상을 탓합니다

그 바깥대상은 아무것도 안했어요.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기를 찾아와 뭘 얻겠대.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안되니까 원망하고 가요

아들 딸들도 얼마나 억울하고

부모님도 얼마나 억울한가

아들 딸들은 오라고 한 적 없거든요

부모님한테 자기를 요구하고 기대하라고 얘기한 적 없어요

부모님들이 혼자서 기준을 정하고 목표를 정한 다음에

헌신하고 애를 써요 하기는 하는데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헌신을 하는거에요

그래놓고 안되면 원망을 해요,너때문이라고. 청천벽력 같은 얘기죠

스승한테가서도 똑같고

어디 레슨 받아가서도 똑같고

전부 똑같은 거에요

여기 가면 얻을 줄 알았는데 잘못되었다 말이에요

열쇠는 여기 놓고 저기 발보인다고 저기 간거에요

저기서 찾으려고 하니 찾아져요 안찾아져요

안찾아집니다. 그럼 저기가 문제에요. 자기가 문제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때문이란 걸 꿈에도 생각못하니까

저기 있는 그 사람을 원망하는거에요

우리는 끊임없이 삶을 살아가면서

어릴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윤회세계가 끝날때가지

남한테 누명을 씌우고 살아가는거에요

 그러니까 누가 자신한테 누명 씌운다고 억울해 할 거 없어요

자기는 그거보다 천배 만배 십만배 백만배 무량하게 항상 누명을 씌우고 살았어요

원망할 게 뭐있어요. 다 그러고 사는건데

이게 중생의 본질이에요.

아에 중생의 습관이라 말이에요

악질적 왜 안잡아가나 몰라

스님들끼리 이러면 아예 상종을 안해요. 거래를 안해요.기본적인 수행자 마인드가 아니기때문이에요

아무리 큰 일로 남하고 엮여도

그건 누구 문제라고 생각을 하냐면 내문제라고 생각하는게 기본이에요

그래서 저사람이 나에게 잘못했어요 남들이 보기에

그래서 제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는거에요

그래서 그 남이 나한테 사과를 하잖아요

저는 굉장히 의아해 할 거에요

아니 왜 사과 하냐고 그게 내문제인데

이건 그냥 내가 소화하지 못한건데

이걸 왜 당신이 사과하냐고

그래서 경전에 그런 말들이 자주 등장을 해요

당신도 자우로워졌다고

그건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 방향성을 찾아내지 못하면 문제해결은 없어요

그래서 남탓을 하면 중생상이 강해집니다. 이게 악순환이에요

우리가 왜 길을 벗어느냐면 중생상 때문이에요

 

부처님께서 환속하려하는 비구스님한테 한 설법이에요

 

삿된 생각에 휘둘리고 애욕이 넘쳐

세상은 아름답다 착각하는 사람에게

갈애는 더욱 자라나

자신을 점점 더 옭아맨다

삿된 생각을 이겨내는 것을 즐거워하고

마음 챙기며 부정관을 닦는 이는

갈애를 없애고 마라의 얽매임을 끊어버린다-법구경-

 

여기서 마라는 여인이 아니라 그여인에 사로잡힌 자기 번뇌를 말하는거에요

화를 내는 사람은 이미 화나 있어서 화내는거에요

이 사람 조심해야 되어요

직상상사를 대하는 조언을 하나 해주자면

직장 상사가 있어요

그런데 아침에 들어 오는데 기분이 굉장히 나빠보여요

그러면 첫번째로 만나면 안돼요

이 사람이 아침에 오다가 접촉사고가 난 거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상당히 기분 나쁘게 한 거에요

그래서 화가 확 나서 왔어요 지금

그래서 첫번째 온 사람이 아무리 일을 잘해서 왔어도

이것밖에 못하는냐는 얘기;와 성격에 따라서 거친 말들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웬만하면 첫번째는 피하는게 좋겠죠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첫번째 들어가야 돼요

직장상사를 어떻게바라봐야 될까요

아 너무 예뻐요 한다면

이 사람은 누구든 걸려봐라 누구든 들어오면 

화낼 대상이 필요한데

너무 예뻐요 그러면 어떻게 해석을 해서화를 내냐면

지금 나랑 장난하나 하고 화를 내요

나를 놀리냐 하고 화를 내겠죠

상사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화를 내겠죠

이 사람은 지금 화를 낼 대상이 필요한 거거든요

이럴 경우엔느 어떻게 하냐면

그 분한테 인식을 시켜줘야 돼요

어떻게 인식시켜줘야 되냐면

혹시 오늘 기분 나쁘신 일이 있었느냐고

그럼 어떻게 되냐면

자기가 지금 기분이 나쁘다라고 하는 걸 인정하는 인지를 해요

그래서 잘해왔는데 자기가 화내면 자기는 어떻게 되는 거에요

화난 걸 뒤집어 씌우는 사람이 되는거죠

그래서 그 사람이 절제력이 없어서 화를 낼지는 모르지만

절제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되도록이면 화를안낼려고 하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일을 바라보게 돼요

객관화 시켜 주는 거에요

말단이라 그렇게 느껴요. 화는 보통 제일 만만한 사람핱테 내잖아요

그래서 몇년은 버텨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대부분 자기안에 원인이 있기때문에

그 상황에 끌려가서 시달리고 문제를 증폭시키는 거지

자기 안에 원인이 없으면 상황에 끌려갈 이유가 없어요

자꾸 바깥의 것들을 구하는 습관이 있으니까

저게 아름답다

저게 좋은거다

저게 가치있는거다

온갖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가지고 곁눈질을 하는데

그렇게 하면 길을 벗어나는 건 시간 문제에요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밖에 진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소견에 굳게 집착한 채 불도를 구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몸을 불사르고

팔을 태우며 뼈를 두드려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전을 쓰며 눕지않고 언제나 앉아

좌선하며 하루에 아침 한끼만 먹으며 

나아가서는 모든 대장경을 다 읽고 

온갖 고행을 모두 닦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짓는것과 같아서

단지 수고만 더할 뿐 아무 이익도 없다>

 

원하는 걸 찾으려면 예를 들어서 원하는게 물이에요

그럼 어디가서 찾아야 돼요 마음에서 찾아야 돼요

물있는데 가야돼요 물있는데 가야죠

다리가 부러졌어요 편해지고 싶으면 마음에서 찾아야 돼요

의사선생님한테 가야 돼요 의사선생님한테 가야 돼죠

이 상황은 물을 찾고 다리 고쳐주는데를 찾는거죠

마음 닦는 비결이라고 하는 건 마음을 찾아 마음의 본질을 보고 행복해지겠다는거에요

구하는바가 물찾는 것하고 같아요 달라요

찾는 것이 있는 곳으로 가라 이거에요. 그곳으로 가라 이거에요

그런데 마음 닦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몸을 불사릅니다

팔을 태워요. 팔을 자르기도 해요, 손가락 자릅니다.

그리고 뼈를 두드려가지고 골수를 뺀대요

이건 고행을 한다 이거에요 어떤 사람은 피를 촥 내어서

피를 받아가지고 사경을 하는거에요. 어떤 사람은 눕지않고 

언제나 좌선하며 장좌불와를 하는거에요

어떤 사람은 아침 한끼만 먹어요. 저정도 많이 하는데

나아가서는 모든 대장경을 다 읽고

온갖 고행을 다 닦는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 사람이 마음을 보는 것이다라는걸 모른다면

모래를 사람아서 밥을 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가 그 비유에요

여기는 어둡고 저기가 밝다고 쳐요

열쇠 여기서 잃어 버렸어요 그럼 여기서 찾는가? 저기서 찾는가/

여기서 그런데 안보이잖아요.  그렇죠 불찾아와야죠

 불 찾아오는게 마음을 밝게 만든다 이거 아니에요

마음에서 잃어 버렸으니까 그걸 수행이라고 하는거에요

그 과정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글 쓰는게 전공이라면 글쓰는게 쉬울까요. 마음 밝히는게 쉬울까요

마음 밝아지는게 쉬워요

그낭 딱 테크닉을 놓고 볼때 마음 밝아지는게 훨씬 쉬워요

글 쓰는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마음 밝아지는게 훨씬 쉬워요

얼마나 쉽냐면

부처님께서 눈 있는자 누구나 다 와서 봐라

제한조건이 얼마나 쉬워요. 눈만 있으면 되는데

그런데 이 쉬운 걸 왜 못하냐?

첫번째 어디서 하는지 모르고 두번째 자꾸 벗어나니까

그래서 그 핵심에는 중생상이 있다 이거에요

이 근본이 이 사람의 가치체계를 흔들어 놓는거고

잘못된 가치체계를 만들어 놓는거고

인생의 길을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드는거고

자기를 올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공통주제가 

나는 누구인가?

나를 찾겠다가 아니라 나의 본질은 어떤가 이걸 보겠다는 거죠

 

마음밖에서 찾는 방향성을 가지고는 원하는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

자기는잘 가고 있다 착각하니 도반과 같이가야 길을 잘못 들었구나를 안다

 

<다만 자기의 마음이 무엇인 줄 알면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구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게서 말씀하시기를

일체 중생을 두루 살펴보니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으며

또 일체 중생의 가지가지 허망한 생각이

모두 여래의 원만히 깨달은 묘한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이룰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바로 불성으로 도망가는 함정에 빠져요

중생상을 만드는 온갖것들

부정적인 면들 잘 적고 긍정적인 표현은 못적는다

이성의 장점을 적으라면 잘 적어

이 태도는 자존감을 낮춘다

일상생활은 중생심을 쓰고 살아가

중생심이 불성임을 인정안한다

부처님이 불성이 있다하니

중생심이 있고 불성은 가려져 있다생각 그래서 불성을 찾아야 한다며 개념화하는게

여래장 사상이에요

그런데 이것도 외부에서 찾는거에요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으며

또 일체 중생의 가지가지 허망한 생각이

모두 여래의 원만히 깨달은 묘한 마음에서 일어난다

는 중생심=불성인데

불성이라는 개념화에 빠지면 중생상과 다른 불성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빠져

여기서 진리 찾아 떠나요, 이게 바로 이데아를 찾는 겁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이 변화하는 세상과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중생심을 올바로 바라보면 불성이고

중생심을 잘못 바라보변 중생심이다

잘못바라본다는 의미는

중생상을 가지고 바라보면 중생심이고

중생상이 없는 상태에서 중생심을 바라보면 불성이다

믿고 바라보면 부처님이다

수행은 중생상 없애는게 수행

욕심에 가득찰 수 있고 질투하고 짜증이 나고 수치심이 있고 죄책감이 있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다 있을 수 있죠

반면에 좋을 수도 있죠 행복할 수도 있죠

그 뒤범벅 자체가 불성이라 이거에요

그걸 봐야 뭐에 물드는 줄 알고

그걸 없앨거 아니에요

그러나 불성을 쫓으면 자기 마음을 안보고 개념을 본다 자기마음을 안본다는거에요

일단 마음을 봐야 뭘 교정해야되는지를 안다

거지 왕자가 왕자라고 받아들었어요

그럼 곧바로 왕자로서의 능력은 안생깁니다

왕자에 어울리지 않는 거지의 습관을 버려야 될거 아니에요

이런 과정을 거칠지

아니면 끝까지 거지라고 하면서...지낼지

 

거지왕자의 두가지 길이 있는데

자기가 거지라고 우기거나

왕자임을 받아들이거나

수심결에서는 거치라고 우기는 것을 우치라고 해

거지라고 우기고 아무리 고행하고 수행을 해도 자기의 본질을 찾아서 깨달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거지의 습관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자임을 받아들이고 명확하게 확신하면

이걸 돈오라고 합니다

깨달음의 순간은 한순간이에요

그리고 왕자에 안어울리는 거지습관을 닦는 걸 점수라고 합니다

자기 자화상을 거지로 볼 것인가? 왕자로 볼 것인가?

이걸 알아야 수행을 올바르게 할 수 있다

그래서 화를 내면 부처님이에요 아니에요

화내는 부처님

친구가 자기가 잘되면 질투를 해요

질투하는 부처님

불성의 상에 사로잡혀 이런 분이 부처님이다 집착착각하고 있는거에요

불교가 흥미로운 점은

항상 진리를 적용할 때 시쳇말로 누구부터 까고 들어가냐면

교주부터 까고 들어가요

이게 불교의 특징이에요

금강경에서 무상반야의 진리로 1번 빳따로 부처님의 육신을 적용합니다

남들부터 파하고 들어가는게 아니에요.누구부터냐 부처님 본인부터 파해요

가장 강력한 집착부터 파하고 들어가는거에요

 

수심결은 원래 간화선 수좌들을 위항 법문

간화선 수행을 안하더라도 3대요건을 알아둘 필요가 있어

간화선은 3가지 힘을 강력하게 써

3가지가 다 감정

간화선은 되게 감정적

예의바르게 절하기도 하지만 발로 차버리기도

스승이 들어와 묻기도 전에 뺨을 때리기도

간화선이 감정을 쓰는 수행이기 때문에

그래서 간화선은 폭발적인 힘이 있어

감정 3가지를 씁니다

1.대신심-내가 이미 완전히 부처님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라는것(탐의 당기는 에너지 전환)

그래서 내마음 밖에서 전려 다른 걸 구할 필요가 없다라는것에 대한 확고한 신심

2.대분심-77일이면 바보도 깨닫는데 아직도 못깨달았냐 77년이 지나도 못깨닫겠네

자꾸 건드려 화가나죠 화를 낸느게 아니라 자신한테 돌려서  내가 드러워서 깨닫는다

내가 드럽고 치사해서 깨닫는다.그러면 이를 악물고 한느거에요(진의 밀어내는 에너지 전환)

3.대의심- 그리고 간화선에서는 궁금증을 활용합니다. 의문 대의정(치의 드문드문한 에너지 전환)

그중에서 대신심은 필수감정 저게 돈오의 근본이므로

자기 자신이 중생으로 고정되어 있는게 아니라 부처님 말씀처럼 이미 완전한 부처님의 성품을 갖추고 있다라는 것

그래서 더 이상 밖에서 얻을 필요는 없다는것

이미 가지고 있는 걸 발견하는 수행이에요

그러면 멀리 갈 필요없어요

안보여도 그냥 마음 보면 돼요 이게 근본이라는것

 

1장의 마지막 문장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오직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또한 마음을 닦은 분들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수행할 사람도 마땅히 이러한 진리에

의지해 할 것이다.

바라건대,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밖에서 찾지말라

마음의 성품은 깨끗하여 본래부터 스스로 원만한 것이니

다만 망녕된 생각만 여의면 곧 그대로 부처이다.>

 

우리는 대신심을 가져야 아니면 안보여

근야 탁 믿고 시작해야

부처님과 나와 마음이 똑같다라는 걸 이야기 하셨다는 걸

다른데 구하러 갈 필요 없이 마음을 보면 된다라는 걸 일단 믿고 시작해야

마음만 구하면 된다고 하면

함정이 있는데 마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모든 게 마음이다라는 감각을 잡으셔야합니다

착각하면 안되는게 절 보시는게 아니라 마음(보이는 마음)을 보시는거에요

따라서 다른 절에가셔서 마음을 보는 것이면 상관없음

그래서 관점이 안으로 들어가면 전부 마음을 보고 있는겁니다

 

마음닦는 비결에 2가지 닦음의 길이 있다

1. 방향을 아는것=목적을 아는것이고 목적을 위해서 어디서 공부해야되는지를 아는 것. 뭘 봐야 되는지를 아는것

 마음을 알고자 하는것. 마음에서 닦아야 . 마음을 봐야

목적을 분명히 아는것(정견)

2. 주의력 사띠 수행을 해야- 마음이 중요함을 알지만 자구 바깥으로 갈수도 그래서 주의력수행해야

자신의 경함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띠 수행 필요

그래서 정견과 깨어있음의 2가지 합쳐졌을 대 마음닦는 비결이 자신의 수행텍스트로 선택될 수가 있다라는것

 

결국 회광반조를 기억하셔야

광-주의력 주위력을 안으로 돌려 마음을 반조 비추어 봐야한다

출처없는 게송

 

<네게 한권의 경이 있으니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펼쳐서 한 글자도 없으나 

항상 큰 광명을 나툰다>

 

이 경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보면 여러 진리가 담겨 있어요

그렇게 자신의 사띠가 안으로 들어갈 때

찾고 싶은 것을 안으로 들어가서 찾기 시작할 때

우리는 발광을 할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되는지와 회광반조를 실제로 이루어내는 사띠의 힘을 같이 키워 나갈 수 있는

수행을 잘 이어나가시기를

어디로 헤매지 마시고 자신자신에게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라는걸 명심

수심결이 끝날때쯤 나름대로 확고한 흔들리지 않는 수행처가 마음에 생기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