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파불교의 역작 삼세양중인과 [원빈스님의 4대 연기설 3강]

2022. 9. 27. 00:4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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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파불교의 역작 삼세양중인과 [원빈스님의 4대 연기설 3강]

윤회의 원인과 소멸 방법

진리는 4성제-고와 고의 원인과 멸과 고에서 벗어나는 방법

초기불교에서 어리석은 것,진리를 모르는 것-4성제 모르는 것

4성제는 3생의 윤회 설명 미약-지극히 현생적

윤회에 대한 교리는 12연기

4문 유관상을 통한 노사의 고통에 대한 해결 위해 출가

성도일 전날 12연기에 대한 순관과 역관

노사의 고통은 태어났기대문 이런식으로 원인 추적

현상계-시간의 흐름(연기설), 공간의 변화(실상론)

현상변화의 원동력 업에 따라 변하는게 업감연기설

공업->기세간

불공업->중생세간

중생세간의 고통과 행복의 문제-고통의 생성과 소멸

노사의 고통으로 나아갈 것인가? 노사의 고통을 거둘 것인가?

3도연기(혹업고의 악순환)

혹업고의 흐름이 만들어져 있어 고통은 멸하지 않는다

양중-12연기중 혹업고 2번 순환

인과-인은 혹과 업, 과는 고

3세의 윤회를 설명

찰나생멸은 12연기가 한찰나에 일어난다는 의미

식-모태에 태어안 첫마음 식

혹업고의 1순환
혹업고의 고통의과는 식~수까지=현생의 과
혹업과의 2순환=현생의 혹업

부처님 당시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이 왜 생겼는지 어떻게 소멸 되는지 촛점

부파불교-연기설의 범위가 넓어져

진여-있는 그대로 보는 세계(본명자리)

무명-있는 그대로 못보는 것

있는 그대로 못보는 어리석음으로 행=업이 생긴다

업이 생기면 업력의 흐름이 남아 또 하나는 업력의 흐름이 나라고 집착하는 무명

무명과 업력이 새로운 삶을 받는게 식(잉태)

명색=수상행(명)+색=뭉뚱그려 놓은 몸과 마음

육입-명확한 몸과 마음

6근이 자리잡아 태어나 세상을 촉한다(유아기)

촉하면 느낌이 생겨(소년기)

손녀기를 거쳐 나름대로 갈애가 명확해져

갈애가 발전하여 취착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애보다 강렬해진게 취

취를 가지고 업(유)=존재열망을 지으면

업이 쌓여 그 다음생의 원동력

무명(자의식)과 업이 샇여 

과거의 삶은 감각기관과 촉수애취를 무명으로 퉁친 것

미래에도 같은 과정 반복(대표적이되  반복적이지 않은 명칭)

윤회의 주체는 나(자아)

실체는 첪지만 있다는 생각으로 윤회

무명(애,취)은 업의 흐름을 나라고 생각하는 마음

업의 흐름은 작용이고 경험인데(끊임없이 이어진다)

무아를 만나면 해탈, 자아라는 무명을 만나면 윤회

허상의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 무명

이 자아를 유지하고 싶은 게 갈애이고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게 무명

내가 있다는 그 생각으로 윤회

그 착각이 사라지면 윤회는 끝난다

윤회의 주체는 나지만 이 나의 실체는 없다

실체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윤회하나

윤회의 주체는 나

윤회의 원동력은 업

윤회는 생멸인데

생먈의 무한한 이어짐이 윤회

생멸=윤회

생멸의 2가지

찰라생멸(찰라에 생멸이 이어지는 것=찰라윤회)과

1기 생멸(몸의 생멸이 그 기간 동안 보존되는 것=한생=생사윤회)

결국 윤회는 생의 문제

왜 태어나는지 보면 그 태어남속에 나라는 주체는 있는지 아니면 온전히 다른 문제인지

나라는게 반드시 있어야 태어나는지

다른 것만 잇어도 태어나는지?

태어남의 직접원인은 나인가? 업인가?

업이다

모든 것은 조건과 인연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연기법칙에서 볼 때 태어남은 나가 아니라 업이라는것이다

나라는 주체는 12인연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경험은 우리의 노병사는 나로 인해서 일어나는게 아니라

그저 업이다 또는 업의 원인인 번뇌

굳이 나라고 할려면 업의 연속성에 따른 경험을 나라고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경험을 하는 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게 무명

이 무명이 있는한 윤회는 끝나지 않는다

무명은 나인가 경험인가? 경험이다

행이라는 업은 나인가 경럼인가? 경험이다

앎이라는 식은 나인가 경험인가? 경험이다

몸과 마음이라는 경럼의 대상과 근간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나는 아니다

육입 경험의 문 경험이다

촉수애취유생노사 모두 경험이다

부처님이 자아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건 

몸과 마음이 실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아닌 것

몸과 마음을 통해 경험하는 업의 흐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삶이 이어진다

그 속에 무명이 자아에 대한 집착인데

자아가 있다 생각하고 자아에 집착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잘못된 관념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있는 그대로는 그것과 다르다는것)

몸과 마음이 없다라는 말은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연기적으로 존재한다

연기?

1.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일어났다

2. 상호 연결되어 있다

연기의 직접적인 설명이 제행부상과 제법무아

연기적이다

1. 끊임없이 변한다

2.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존적으로 존재한다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만 생각

공성이다.연기적이다라는 말은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가 아니다

있다 없다가 아니라 연기라는 단어를 받아들여야

존재한다가 아니라 연기하다

분필이 연기한다는 동사를 받아들여야

사람들이 연기한다를 못받아들여 연기적 존재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역설적으로 잘못된 모순인 것이

존재라는 의미는

1. 영원하다

2. 독립적이다

즉 연기와 존재는 반대되는 말이다

연기라는 정의 개념을 받아들여야

삶과 경험이 이어지는건 존재때문이 아나라 연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