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경 강의 19~20회

2023. 6. 18. 13:5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원각경

728x90

원각의 경지는 어떤 경지인가?

밝고 청정하고 자비롭다

집착,번뇌, 크고 작은 괴로움 완전히 벗어나 있다-어둠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남

무명을 끊는 것

무명이 실체없음을 깨닫는 것

무명이 사라진다

무명이 사라지면 몸과 마음이 사라진다

깨달아도 마음을 쓰고 있다

반야심경의 무는 실체가 없다는 뜻

존재하지만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연으로 화합되어서 아주 없진느 않다

박수소리-소리는 존재하지만 실체없다

몸과 마음은 무명에 의지해 조작된 것으로 본다

육신과 인식작용 대상세계-무명에 의해서 조작되어

자아와 세계의 창조주는 궁극적 실재에 의해서 혹은 초월자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중생들의 어리석은 마음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다

중생의 마음은 알고 느끼는 역할뿐만 아니라 자아와 세계의 창조주적 역할

마음에 의해서 뭔가를 만들어가는 주체자

마음이 짊어지고 있는 무명이라는 존재에 의해서

몸과 마음이 나타난다

12연기-무명,행식,명색육입

정신과 물질 세계 모두 무명에 의지해

따라서 무명이 사라지면 몸과 마음이 사라진다

고통속에 시달리는 몸과 마음도 사라진다

몸과 마음이 사무치게 내가 아니요

내가 없다는 인식을 통달하게[ 돼

무아지견은 다시 무명

지견은 불생-금강경

지견을 일으키지 않는다

수행을 할수록 깨달았다는 견해마저도 버려야 된다

깨달았다는 생각은 새로운 무명속에 갇혀 사는 것

중생의 무명

보살의 무명

마음은 인식작용

마음의 뜻은 ?

마음은 분별에 뜻을 두고 있다

분별하는 일은 마음밖에 안한다

분별할 줄 아는 것은 마음이다

불별심은 무명이다

조건으로 일어난 무명이다

무명이 사라지면 마음도 사라진다

마음이 사라지면 원각은 뭔가?

원각은 마음인가? 마음이 아닌가?

원각은 마음일수도 마음이 아닐 수도

왜냐하면 원각은 분별을 떠나 있기때문

마음은 분별의 뜻 분별에 의미를 두고 있는데

원각은 분별을 떠나 있어 그러나 원각은 마음이 아니다

마음이 아니면 어떤 인식작용도 없는가?

깨달은 분은 나무를 봐도 나무를 모르고 꽃을 보아도 꽃인줄 모르는가?

깨달은 분은 완전한 분-사물을 다 인식

마음이 없어져 마음을 그대로쓴다

인식을 한다고 해도 틀리고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틀린다

원각은 뚜렷하게 인식을 하면서도

모든 것을 분별하고 다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느낌과 인식과 분별을 뛰어넘어 있다

중생의 분별을 초월(포월)느끼지만 초월을 표현이 아닌 증득해야하는과정

불성은 유무가 아니다

분별을 뛰어넘어 있다

원각은 이름도 끊어지고 개념도 끊어지고 형상도 끊어져

중생의마음은 두가지로 이루어져

1. 언아화되어

2. 개념을 가져

3. 감정을 가져

아버지 하면 아버지라는 얼굴이 떠올라

아버지를 보면 아버지라는 분별이 생겨

문자로 언어올 생각

언어가 계속 흘러가고 있어

개념화 도어 있고

덧붙여 감정을 가지고 있어

언어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흘러가

원각은 감정도 이름도 개념도 달라붙지 않아

개념을 상이라고 해

색수생행식의 상

범소유상 개시허망

나무 하면 나무가 연상

자동차하면 자동차 연상(이미지)

분별과 개념과 감정으로 이루어져

원각은 그게 없고 순수무잡하다

중생의 마음과 대비시켜 마음이 없다고 하는 것

마음이 없지만

마음이 달라붙어 치우쳐가지고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닌

6근과 6경

인식기관과 인식대상

인식의 세계를 만들어

감정과 개념과 분별을 끊임없이 창조 만들어내거 응한다

컵을 들면 컵이라는 인식이 발생

인식을 하고 있는 원각이 있다

감정과 인식과 개념불러일으킨느 작용과 함께 초월한 원각이 함께한다

원각은 털끝과 같은 한법도 전혀 달라붙지 않아

아주 청정해

청정하지만 중생들의 인식작용을 불러일으켜

원각은

청정의 측면에서 보면 있는게 아니고

작용의 측면에서 보면 없는게 아니다

원각은 일체법을 초월해 있지만

근과 경을 통해서 근경식계

감정,인식, 개념들은 늘 있다

범부들은 분멸하는 마음에 살고 불성을 지니고 있음에도ㅓ 마음밖에 알지 못해

깨달은 분들은 분별하고 헤아린느 마음에 깃들어져 있는

밝고 청정하고 뚜렷한 원각이 함께한다(체와 용이 함께한다)

알고 보고 행하는 모든 것들이 청정해져

청정하면 괴롭지 않아

괴로움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탐진치로 발생해

괴로운 마음은 탐내는 마음,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수반해

탐진치의 마음에 의지해 과로움이 나타난다

마음이 청정해지면 탐진치가 사라지므로 괴로움이 사라진다

청정하면 자유로워져

보고 듣는 경계에 자유로와져

대상이 눈앞에 나타나고 귀에 들린다 할지라도

깨달은 \분은 가기에 혹란을 ㄹ당한다거나 묶인다거나

빠진다든가 조종당하지 않ㄴ느다

움직이는 마음속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있어

두가지의 마음이 아니고

하나의 마음속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근본으로 하고있어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있어 움직인느 마음이 나온게 아녀

움직이는 마음 그대로가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다

현재쓰고 있는 마음 그대로가 불성입니다

현재의 마음이 원각이에요

그런데 왜 원각인줄 모르는가 무명때문이다

어리석음 때문이다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으나

중생들이 원각, 불성을 모르므로

구분해서 설명하다 보니

하나의 마음이 청정한 측면을 지니고 있고 더러운 측면을 지니고 있어

부처님처럼 탐진치가 없는 마음이 있고

중생처럼 탐진치가 있는 마음

중생은 탐진치가 없는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

탐진치가 없는 원각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모든 이름을 떠나고 개념을 떠나고

분별을 떠나서

청정할 뿐 만 아니라 움직임이 없어(부동)부동하지만

인연을 만나면 움직여

원각은 부동이며 동이다

중생의 마음은 6근을 가지고 있으면

6경을 만나면 끊임없이 사물을 접수해

눈으로 뭔가 계속 봐야하고

귀로는 뭔가 계속 듣고 있어야 돼

코도 항상 열려있어

입도 열려있어

몸도 마음도 다 열려있어

열려있다는 건 늘 활동하고 있다는 것

중생의 마음은 항상 인연과 함께있어

태어나면서 죽을때까지 인연과 함께해

인연과 함께 한다는 건 마음이 끊임없이 움직일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움직인느 마음속에 움직이지 않는 원각이 있어

원각은 한번도 고정된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아

깨끗하다는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아

깨달았다면 깨닫는 순간부터 죽을때까지 계속해서 인식을 해

원각은 자기자리를 지키지 않고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어

원각은 한번도 부동하지만 부동한ㅁ 자리를 고집하고

1초도 머물지 못해

부동함에도 불구하고 부동한 자리를 고집햐서

동의 작용, 움직인느 작용을 그친 적이 없어

원각이 연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진실에 있어서는 움직인적이 없ㄱ다는 거에요

불교의 요지를 알고자 한다면 이와같은 가르침이 필요

여:한결같음

래는 왔다

여는 진리 자체를 가르김

래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몸을 나툰 것

진리로부터 온자:부처님

여체는 나고 죽음이 없고 청정한 깨달음의 경지-원각의 경지

래용=부처님이 대자대비 일으켜 중생들에게 나타나

원각은 부처님의 성품을 감추고 있어-여래장

부처님의 마음을 감추고 있는 머금고 있는 장은 저장한다는 의미

부처님의 깨달음을 저장하고 있는 마음-원각

여래장은 원각의 다른 말

원각과 똑같은 의미

마하반야, 불성, 진여심,법계,정토,청정심,묘각심

원각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 용어들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기때문이며

무명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무명에 의해서 중생심이 일어나고 사라져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꺼져

감정이 일어나면 감정이 꺼져

분별이 일어나면 분별이 꺼져

중생들의 의식활동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꺼지고 사라져

한치도 머물지 못하고 생멸을 계속해

원각은 그런 생멸의 과정이 사라져

원각은 진여라고 말해

진은 참되다

여는 한결같다

진은 허망함을 떠났다

여는 생멸을 떠났다

마음은 분별하니까 뭔가를 안다

나무를 보고 나무라고 아는 것

꽃을 보고 꽃이라고 아는 것

분별에 들어가

원각은 그것이 끊어져

원각은 지식도 감정도 없고 느낌도 없어

원각은 중생들의 식심으로 파악할 수 없어

원각에 묘를 붙여

묘할 묘

중생의 경험으로 알 수없다

중생의 판단력으로 파악이 안돼

정은 정미하다,세밀하다

명은 밝다는 뜻

중생의 분별을 뛰어넘은  매우 정미롭고 깨끗하고 밝은 성품

순수무잡한 것-알거나 조잡하지 않아

오온

사대

공견식

부처님의 눈에는 원각에 의지해서 나타나

세계는 원각의 펼침이다

하나의 법인 원각만이 존재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는 법계다

소승법은 5온12처18계

무명을 끊어야 되고

무명의 실체없음을 알아야되고

몸과 마음의 실체없음을 알아야 되고

깨달음의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된다

원각은 모든 분별과 모든 감정과 모든 개념을 초월해 있다

초월가운데에서도 연을 따라 조건을 따라 끊임없이 작용한다

꿈속에서도 사랑도 있고 마음도 있고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나도 있고 너도 있고

모든 게 길흉화복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지만

깨고나면 없다

중생의 삶은 무명의 꿈놀음이다

무명을 깨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있는 줄로만 안다

몸도 있는 줄 알고

나도 있는 줄 알고

이 세계가 있는 줄 알고

남편도 있는 줄 알고

자식도 있는 줄 알고

길흉화복이 있는 줄 알고

행복과 불행이 있ㄴ느 줄 알고

전부 있는 줄 아는데

원각을 깨치고 나면

모든 것들이 다 꿈과 같은 것이다

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중생의 행복과 불행 괴로움 자체도

실로 있는 게 아니다

뭐가 만들었ㄴ느가? 무명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무명이 고락을 만들었다는 것

중생의 무명이 고락을 만들었다는 것

본래는 없는 것을 중생의 무명이 만들어 놓고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꿈꾸는 사람이 꿈에서 꿈을 꾸는 줄 모르고 속는 것

무명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아와 세계에 대해서

거대하게 속고 있어

똑똑한 사람은 잘난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게송은 중송

 

 

보현보살장

대승경전에 등장한느 모든 보살들은 부처님의 권화보살

원각안에 담겨져 있는 충만되어 있는공덕들

중생들에 펼쳐보이기 위해 여러가지 방편으로 지어낸 보살

부처의 깨달음속에는 크나큰 지혜가 있어

지혜를 문수보살로 인격화

중생의 행위는 자기자신과 자신이 아끼는 권속들 식구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로 행동해

원각을 깨달으신 부처님은

그 행위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에게까지 미쳐

큰 지혜가 완전한 행위로 이어져

그 행위를 보현보살로 불격화

사랑을 우주적으로 불격화

지장보살-중생을 제도하고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깨달음속의 크나큰 원을 불격화 시킨 것

대승보살들을 다양한 신으로 보아서는 안돼

보살들은 각각 다른 특징이 있어

기도하면 따로 역할에 따라서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고 믿고 있어-망견

문수가 지장이고 보현이고 관음이다

천수경에 나타나는  많은 부처님도

하나의 원각에서 나타나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거대한 무수한 작용들이다

무수한 씀슴이를 말한다

아내고 어머니이고 딸이고 신도이고 손님으로 불린다

한 사람이 여러가지 용도에 따라서

각각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이름이 나타나 지만

보살님은 어디까지나 한 사람이 한느 것처럼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근원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깨달음입니다

하나의 깨달음속에서 수많은 불보살들이 나타난 거기 때문에

갈라져서 여럿으로 나뉜것으로 보여

탱화등에서 나뉘어진 이전의 본질을 봐야, 근본을 봐야

보현보살은 지혜제일인 문수의 행위로 보아야

문수는 부처님의 깨달음지혜

무명은 비실유체-원각만 존재

중생은 원각을 망각해

몸과 마음으 ㄹ집착하다 보니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다 보니'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마음이 무명이 되어

무명이 되다보니

몸과 마음이 나가 아닌 성품인 원각을 배신해보려

본래는 원각의 마음이 있는 것인데

원각의 마음을 중생들이 등지고

몸과 마음을 분별하는 마음

6근과 6경에 의지해서 나타나는 분별하는 마음을 나로 삼은 것

나로 삼으며 청정한 원각을 망각해보려

무명때문에 중생이 태어나

무명때문에 몸을 받아야 되고

나고 죽음을 끊임없이 계속 해야돼

몸뚱아리는 무명때문에 받게 돼

끊어 없애야할 원흉으로서의 무명도

깨달음의 입장에서 보면 무명이 환법, 환상과 같아

허깨비 실로 있는게 아니라는 것

대승에서 무명을 끊는 다는 것은

무명이 본래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세속에서 가정생활하면서도 원을 놓치지 말아야

수행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틈틈이 수행시간을 내어

깨달음을 추구하고자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어야

그런 열망을 가진분이 많음에도

그 열망을 점화 시켜주미 못해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작은 깨달음을 말할뿐이지 

원각을 중심으로하는 가르침들이 드물어

둘로 나누어 중생의 마음를 털어 부처님의 마음으로 바꾸겠다하지만

어리석음은 본래 없다

마음의 본성을 깨닫고 보면 차별이 없다

무명의 허께비

무명허깨비에 의해서 만들어진 몸과 마음도 허깨비

깨달음은 뭔가

몸과 마음이 허깨비라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 것

환은 무아라는 뜻

무명은 곧 무아

무명은 실체가 없는 것

몸과 마음도 실체가 없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실체가 없는 호나과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 환으로서 환을 닦는가?

몸이 환이라면

수행도 환이다

수행은 뭘로 하는가?

몸과 마음으로 한다

1.몸과 마음이 허깨비라면 수행도 허깨비짓, 헛짓아닌가?

두번재는

수행을 해서 무명이 사라졌다면

다 사라졌는데 깨달은 놈은 누구인가?

깨달은 경지가 허깨비?

그러면 깨달을 열망이 일어나는가?

개닫고 싶은 생각이 듭니까?

깨달음인 줄 아는 주체는 역시 러깨비 아니냐?

허무에 떨어질거아니냐

무명에 사로잡힌 존재인지 몰라

중생의 병폐는 자기가 똑똑한 줄 알아

뭔가 알고 있다고 하는 것

지혜의 출발은 어리석다는 것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해

수행한느 사람은 내가 어리석다는 것을 인정하게때문에 수행을 하는 것

지혜롭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수행할 필요 없어

소크라테스ㅡ=-너 자신을 알라 여기에 생략된게 있어

너 저신의 무지(이리석다)하다는 사실을 알라

세상의 모든 걸 다 알아도

자신의 무지를 바로보고 무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현자라고 할 수 없어

무명속에 빠져 사는데 그 무명에 의해서 일어나는 온갖 망상속에 지내

그 망상을 벗어나 어떻게 원각에 들어가는가

불교 가르침의 촛점은 고통으로 부터 벗어나고 자유로워지는가이다

깨달음은 해탈이다

해탈을 통해 괴로움으로부터ㅏ 벗어나 기쁜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가?

무명이 변한 것이 번뇌

무명이 정신적으로 변한 것이 번뇌

무명이 현상화된 것이 몸

중생의 몸은 뭐가 머무르는 곳인가?

로병사가 머무는 곳이다

중생의 몸은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모여 있는곳

몸뚱아리는

늙음이 깃들여져 있고

병이 깃들어져 있고

죽음이깃들어져 있어

몸은 늙고 병들고 죽음이 모이는  곳이고

마음은 번뇌가 모여있는 곳

무명이 비물질로서 물질이 아닌 정신으러 나타난 것이 중생들의 수만가지 번뇌이고

무명이 형상화된 것이 물질화된 것이 몸입니다

몸과 마음이라는 것이 무명이 변화된 것이다

이걸 환화라고 해

번뇌,몸 ,마음 세계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여래의 원각묘심에서 나왔느니

허공꽃이 허공에서 생긴 것과 같다

무명이 나온 곳을 말한 것

소승법 초기불교에서는 무명이 나온 곳을 제대로 밝히고 있지 않아

무명의 근원이뭔가?

무명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해

쌍윳다니까야는 무명이 번뇌로부터 나왔다고 해

번뇌는 무명에서 나왔는데

무명은 번뇌에서 나왔다?

무명은 어뚬쪽을 강조

어둠에서 어둠이 나왔다는 거에요

중생은 본래 어두운 존재로 보고 있어

어둠에서 출발해 어둠으로 계속 윤회하는 것을 중생의 구조로 봐

소승의 인생관은 부정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어

중생은 부정한 존재 인생은 괴롭고 어리석고 답답하다

원각경에서는 원래 너희들이 본래 부처님과 같은 자유인이야

부처님과 같은 청정한 자야

부처님과 같이 고통을 벗어난 행복한 자야

중생은 본래부터 자유로운자이고 청정한 자이고 행복한자라고 가르쳐

이걸 원각묘심이라고 말해

원각에서 원은

모든 근심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는 뜻

각은 무명이 아니라 어둠이 아니라 밝음이라는 뜻

모든 생명의 본래 모습은 

고통을 받는 듯하고 나고 죽음속에 빠져 있는듯하지;만

본질에있어서는 부처님과 같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존재라ㄴ느 것

대승에서는 중생을 대긍정으로 보고 있어

본래 밝은 곳으로부터,밝은 존재였는데  중생이 어두워졌지만

그러나 어둠은 있지 않다는 거에요

중생의 모든 환화가 원각묘심에서 나왔다

중생의 모든 번놔와 망상과 근심들이

그속에 곧 원각

원각이 따로 있고 망상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번뇌망상이 원각임을 깨닫는 것

망상이 원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중생의 번뇌망상은 그대로 정화가 되어버려

깨달으면 정화가 돼

깨달으면 번뇌가 번뇌가 아니게 되어

번뇌가 부처님 마음으로 바뀌게 되어

못깨달으면 번뇌는 계속해서 번뇌이지만

망상은 계속해서 망상이고

악업은 계속해서 악업인거에요

무명으로 말미암아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죄업이 일어나

원각을 깨닫게 되면 번뇌,망상, 죄업은 사라져

그래서 대승에서는 깨달아라고 하는 것

마음의 본성으로서의 원각을 깨닫는 것

원각에서 허깨비 같은 무명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실상에서는 원각이 무명을 일으킨 적이 없어

원각은 망상의 의지처가 되지만

원각은 망상을 일으키게 한적이 없어

무명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사라지더라도

원각은 무너지지 않는다

무명은 무너지는 것

중생의 마음은 수행하면 다 사라져

몸과 마음도 사라져

몸과 마음이 실체없음을 깨닫는 것

수행자들의 공통 체험담은

몸과 마음이 없어졌어요

명상하면 몸과 마음이 없어지는 상태가 와

명상하는 도중에 몸과 마음이 귾어져 몸마음이 인식되지 않는 것

몸사라짐 공부

몸과 마음이 존재하긴느 하는데

몸과 마음이 나와 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후자가 정법에 가까워

몸과 마음을 ㄷ그대로 두고ㅓ

몸과 마음 이대로가

나도 아니고 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몸과 마음이 나라는 것은 관념인 것

무명이 시킨 것

나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식,생각이 만든 것

몸과 마음이 나라는 것은 생각놀음이지 

몸과 마음은 자아도 아니고 자아의 것도 아니다

아도 아니고 아소도 아니다

나도 아니고 내것도 아니다

수행에서 깨닫게 되면 맨 먼저 확인 되는 것이

몸과 마음의 무아성을 보게 돼

몸과 마음의 무아성을 깨닫게 되면

몸과 마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돼

몸과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살지 않아

삶과 죽음, 늙고 병듦과 죽는 것에 대해서 공포심을 느낀다든가

절망감을 갖는다든가 슬픔을 갖는다든가 이런 것들을 일으키지 않아

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죠

몸과 마음을 나로 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우리가 불행하다고 하고 왜 슬프다고 하는가

몸과 마음을 나로 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불자들이 정법에 들어와서 바른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나가 아니라고 생각해야해

몸과 마음이 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거야 말로

바른 견해입니다

수행은 여기로부터 출발하는데

수행을 해서 무명도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실체가 없어 사라져버려

모든 것은 다 사라지더라도

깨달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불교에서 움직임을 말할 때에는

무엇과 연결된 용어냐?

움직임과 연결된 용어가 있어

움직임을 한자로 동이라고 해

나고 죽음은 사람에 한정될 것이 아니다

육신도 나고 죽어

마음도 나고 죽어

한생각이 일어나면 사는 것이고 한생각이 사라지면 죽는 것

숨을 거두는 것만이 죽음이 아니라

삶과 죽음은 지금 이 순간에 있다

호흡 하나 들어가 다시 태어나고

호흡 하나가 나오는 것이 죽는 것

눈 깜박임도 태어남과 죽음이 잇어

5장6부가 움직이는 자체도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

태어남과 죽음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순간에 몸이 새롭게 태어나고 죽어

마음도 새롭게 태어나고 죽어

이세상의 모든 물질들도 계속해서 생멸작용을 해

나고 죽어

탁자도 풍화작용에 의해서 나고 죽어

이러한 나고 죽음이 없다는 뜻

동은 나고죽는다는 뜻이고

원각경에서 나고 죽음이 없다는 뜻은

생멸이 끊어졌다는 뜻

무명이 생멸합니다

무명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중생의 정신이 생멸

무명이 형상화된 몸이 계속해서 나고 죽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면에 의해서 나타나고  하나라도

태어나면 머물지 못하고 1초도 영원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라져 버려

일어나면 사라집니다

태어나면 죽습니다

이와같은 생멸작용이 무명의 근본으로 하고 잇는데

이런 무명명이 끊어지면

태어나고 죽음이 없는 자리로서의 원각이 나타난다

원각을 깨달으면 나고 죽음이 없어

무명이 무명에 의지해서 생멸이 나타났는데

무명이 실체가 없어

무명이 가짜

무명이 본래 없는 존재라면

나고 죽음도 없ㄱ어

무명은 나고죽음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데

그 무명에 의지해서 중생들의 정신활동과 육체가 나타나고 세계가 나타났는데

중생의 나고 죽임이 사라져버리면

무명에 의지해서 나타난 정신활동,육체 이세계도

나고 죽음이 없어집니다

원각의 경제에서 볼 때는 

중생의 나고 죽음이 곡 나고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어서 묘한 것

무명의 상태에서 보면 실제로 나고 죽음이 실재하지만

실제 존재한느 것 같지만

무명이 실재하지 않기때문에

중생의 본래 나고 죽음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승에서 바라보는 대승의 법성이에요

소승불교에선느 무명을 강조하다보니

몸과 마음 세계는 끊임없이 생멸하난 존재로 바

생각한느 존재를 벗어나서 따로이

부처님의 열반의 세계가 있다고 보는 것

그렇지만

대승에서는

나고 죽음을 초래케 하는

이 무명 자체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가짜라는 사실, 환상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음으로써

몸과 마음과 세계 역시도

나고 죽음이 없는

본래의 움직임이 없는 경지를 머금고 있다고 선언해

중생 이대로가 해탈이라는 거에요

중생 그대로가 생멸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고 죽는 몸과 마음 이대로가

나고 죽음이 없다는 거에요.

나고 죽는 이 몸을 떠나서 따로이

나고 죽음이 없는 영생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못난 모습, 중생의 못난 모습을 버리고ㅓ

성스러운 부처님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고

못난 모습 이대로가 부처의 모습이란 것

고통스럽다 몸부림치고 화가 난다고 괴로워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환란을 받는다

그런데 이와같은 환란은

중생들이 무명을 알지 못하고

무명이 실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바로 깨닫지 못했기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 > 원각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각경 강의 21~22회  (0) 2023.08.28
원각경 강의 16~18회  (0) 2023.05.26
원각경 강의 13~15회  (0) 2023.04.29
원각경 강의 10~12회  (0) 2023.03.26
원각경 강의 7~9회  (0) 2023.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