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디에 있나?

2007. 6. 9. 12: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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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디에 있나? 부처가 아난에게 말했다.

너의 그 분명하게 아는 마음이 몸 안에 있다면 비록 손톱이 자라고 털이 자라고 맥박이 뛰는 걸 보지 못해도 오장 육부쯤은 잘 알아야 한다. 만약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달라 서로 관계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는 걸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이며 깨달음이 몸에 있다면 마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물질>은 대상에 대한 어떠한 앎의 기능도 갖고 있지 않다. 몸은 물질과 정신의 두 개의

서로 다른 모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몸의 고체성은 물질의 모임에 포함된다. 시체의 물질적 요소들은 물론 살아있는 몸의 물질적 요소들도 앎의 기능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살아있는 몸의 물질적인 요소는 대상에 대한 앎의 기능을 갖고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지금 대상을 아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물질에 의존해서 나오는 정신의 요소이다. 이 것은 마음이라고 불리며 마음은 대상에 의지한다. 마음은 또한 생각이나 의식으로 불린다. 그러므로 마음은 물질에 의존해서 일어난다.

 

눈에 의존해서 봄<안식>이 일어난다.

만지고 보고 맛보는 감각들이 바로 정신의 요소이다. 또한 정신에 의존해서 의식<생각 관념 상상 등>이 생긴다. 이는 모두가 정신의 요소이다. 마음은 일반적으로 대상을 아는데 반하여 물질은 그 것을 모른다. 실제로 보는 것은 집 안의 창문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라고 묻는다면 창문 자체는 밖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오로지 사람만이 밖을 본다.

 

바라봄에는 물질<눈>과 정신<봄>이라는 두 가지의 다른 요소가 있다. 물적인 요소인 눈과

시각적 대상은 대상을 아는 어떠한 능력도 갖고있지 않은 반면 정신적 요소인 봄은 시각적 대상과 그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람은 마음을 자아<에고> 살아있는

존재 개체에 속하거나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보는 것이 나다 또는 나는 보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견해나 믿음은 자아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

삭카야-디티<sakkaya-ditthi 유신견>를 부른다. 명상자는 몸을 구성한 육체적 정신적 과정

즉 보고 듣고 느끼는 등의 모든 행위를 항상 주시 또는 관찰에 의해서 유아견에서 자유로울 때까지 수련해야 한다.

 

마음을 관찰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있다. 마음은 1.멀리 떨어진 대상을 쫓아다닌다.

2.보고 듣고 만지고 아는 3개 또는 4개의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고 하나의 마음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것은 잘못된 견해다. 마음은 실체가 없으며 형태도 없다. 만약 대상을 아는 것이 마음이라고 설명한다면 우리는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마음은 의근과

몸에 있는 감각기관에 의존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이 것을 어두운 방<육체>에 머문다고

말한다. 주시하라. 마음은 끊임없이 생기지만 주시하는 순간 대개 사라진다.

만약 수행자가 이 마음을 제어한다면 그는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이상 마하시 사야도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