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과 대열반

2007. 6. 9. 13: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법화경·관세음보문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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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품>법화경은 보살을 교화하는 부처님 최상승 법문이다. 욕계 색계 무색계 부처님께 안온 자가 없다. 그리고 성문 연각 정도는 말해줘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 묻지도 않는데 뜻이 깊고 묘해서 이해 못한다고 은근히 힘 주시나요? 그러자 증상만 도를 깨친 척 잘난 척 똑똑한 척 공주인 척하는  5,000 대중이 못본 척하고 자리를 떴다.

 

여기서 방편을 말하신다. 쥬스가 술이되고 술이 식초된다. 식초를 주스만큼 많이 먹을 수 있나?

약이 쓴데 달게 해서 먹이면 방편이다. 거짓과 거짓말은 다르다. 거짓말 해서 살생을 막을 수 있다면 거짓이다. 방편이란 이정표 같은 거다. 부처님은 일부러 거짓말로 중생을 인도한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세상사 독 아닌 것이 없고 지혜로운 자는 세상사 약 아닌 것이 없다. 인생을 거북이 토끼 비유로 많이 든다. 비상식적이다. 어떻게 거북이가 이길 수 있나? 진지함이다.  중생들이 가지가지 욕망으로 집착하므로 방편과 가지가지 인연과 비유로 설하신다. 인도에 가면 티코도 크게 보인다. 모두 상대적이다.

 

<비유품>부처님은 일대사인연으로 오셨다. 늙고 죽는 일이 없으면 오시지 않으셨다. 나의 법은 나고 죽고 병들고 죽는 것을 여위고 열반에 들게하기 위함이다. 장자 얘기로 비유한다. 불난 집 아이들이 삼독오욕 장난에 빠져있다. 장남감으로 구하고 이런 일이 허망한 것이냐고 묻는다. 수레는 안줘도 그만이다. 목숨을 구했으니 일불승의 수레를 타기만 하면.

 

초등학생에게 인생무상 얘기하면 되나? 설법도 모두에게 똑같이 통용시키면 유위법이다. 안주하고 타성에 젖어버리면 한 걸음도 진전이 없다. 의심은 무지에서 생긴다. 부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의심한다. 화두는 큰 번뇌로 작은 아픔을 없애는 것이다. 큰 걱정 생기면 작은 걱정은 근심도 아니다. 부처님 설법은 헛점이 없다. 거칠지 않고 막힘이 없다. 자연스럽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했지만 부처님은 사랑해야할 원수는 없다고 했다. 예수 당시 얼마나 원수가 많았으면 사랑하라 했겠나? 원수는 전부 내가 만드는 거다. 틱낫한 스님은 화내는 마음이 있다면 연민의 마음도 있다고 했다.

 

<방편품>에선 성문 연각 보살 3승이 있나요? 오직 1불승 이지만 방편이라. 3승이 소승법을 즐겨 생사에만 탐을 낸다. 소승으론 중생제도 못한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소승으로 교화한다면 간탐에 떨어지니 옳지 못하다. 때가 되어 지금에야 대승법을 말하는 것이다.

 

<신해품> 색성향미촉 누추한 빛을 탐내지 말라. 만일 탐내고 애착하면 곧 불에 타게 된다. 우리는 삼계의 불타는 집에서 동서로 뛰어다니느라 큰 고통을 당한다. 성문은 고제로 연각은 12연기로 보살은 육바라밀로 신지행득한다. 여기서 50년간 집 나간 아들 방편으로 다시 집에 데려오는 비유를 하신다. 결국 아들이 보물창고를 보게 하지만 마음이 용렬하여 열반의 하루 품삯만 받고 만족하여 대승의 참뜻을 구하지 못한다.

 

진리를 보고 머무르면 소승이요 진리를 보고 행하면 대승이다. 상구보리를 했으면 나를 위해 쓰지 말아야 한다. 아지랭이 찾아 이 산 저 산 떠돌다가 지친 몸 끌고 집에 돌아오니 내 집 마당에 있다. 숭산이 현각에게 손 가락 펴 보이며 몇 개냐고 묻는다. 빨리 말해라! 사량 분별하지 말고! 

 

<약초유품> 무엇이 열반이고 대열반인가? 여기서 분명히 설법하신다. 열반이란 부처 성품은 보지 못하고 번뇌만 끊은 상태다. 깨끗하고 안락하지만 상일성과 내 마음대로 하는 주재성이 결여되어 있다. 상일성과 주재성이 있어야 대열반이 된다. 그래서 깨닫고 나도 수행을 계속하는 것이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아도 부처 성품을 닦아야 한다. 멸도가 다 아니며 오직 행할 바는 보살도 뿐이다.

 

모든 약초가 있어 모두 한 비로 적시지만 저마다 성품에 따라 차별이 있다. 우리는 서로 서로의 종자가 되어야 한다. 종자와 열매는 같다. 열매를 따야 씨앗을 얻는다. 도인과 정신 이상자는 좋고 싫은 게 없다. 시선이 정지되는 곳이 없이 모든 걸 통과한다. 차이점은 한 사람은 땅을 짚고 넘어지고 한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났다.

 

사람들은 죽어야 열반을 얻는줄 안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말한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다만 그 것 뿐이다. 단 한 번으로 모든 고뇌를 끊어버릴 수 있다면 죽음이야 말로 진정한 삶이 완성되는 것이다. 수행이란 깨달음의 완성이다. 죽음의 가치를 삶의 가치로 전환하는 노력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열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있다. 그 것은 비극이다.

 

이상 정우스님 법화경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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