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의 비유

2007. 6. 9. 13:2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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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은 안정이다. 공포가 없어 안온하다. 동무가 없다. 근심과 기쁨이 없다. 두려움이 없다. 티끌이 없다. 때가 없다. 참 보배다. 금강병처럼 깨지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이 빚을 지면 그로 인해 그들에게 얽매이거나 매를 맞거나 무수한 괴로움을 받지만 해탈은 빚을 지지 않는다. 독기가 소멸된다. 해와 달이 중생을 핍박하지 않듯 핍박이 없다. 동하지 않는다. 희유하다. 물 속에서 연꽃이 피는 건 희유하지 않지만 불 속에서 연꽃이 피면 희유한 일이다. 참 해탈은 곧 여래며 여래는 곧 법신이다. 나지 않음이 없다. 비고 고요함이라 이름하며 결정되지 않음이 없다.

 

물질적인 것은 천하에 다 허망한 말이다. 만들어진 건 모두 허물어진다. 옷도 벗어 손에 들면 짐이 된다. 욕심도 위선도 집착도 다 놓아라. 번뇌망상 사라져야 근심걱정 사라지고 근심걱정 사라져야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진다. 고행으로 과거 번뇌는 없앨 수 있지만 지금 일어나는 번뇌는 무엇으로 녹일 건가?   

 

해탈은 헤아릴 수 없다. 바닷물 같이. 넓고 크다. 한량없는 과보가 있다. 가장 높다. 허공 같이 높아 견줄 수 없다. 지나갈 수 없다. 사자 있는 데 모든 짐승이 지나갈 수 없듯. 위가 없다. 위 없는 위 무상상이다. 북쪽이 동쪽에 대해 위 없는 위가 되듯. 항상한 법이다. 견실이다. 전단나무나 침향의 견실한 것 같이. 비지 않음이다. 갈대와 달리. 더럽힐 수 없다. 단청한 것 처럼. 가가 없다. 공중에 새 발자국 보지 못하듯. 보지 못한다. 자기 정수리 보지 못함 같이. 집이 없다. 허공에 집이 없는 것 같이. 가질 수 없다. 잡을 수 없다. 환으로 된 물건은 잡을 수 없듯.


몸이라 할 게 없다. 그래서 병이 없다. 한 맛이다. 젖이 한 맛인 것 처럼. 고요하고 청정하다. 없애 버림이다. 보름달을 구름이 가리지 않는 것 처럼. 평등이다. 죽이려는 마음이 없다. 만족한 줄 안다. 끓음이다. 모든 의심의 결박을 끊음이다. 저 언덕에 이름이다. 잠잠하다. 아름답고 묘하다. 감로 같다. 번뇌를 제함이다. 비좁지 않다. 음욕이 없다. 여인들은 애욕이 많지만 해탈은 그렇지 않다. 탐진치교만의 번뇌가 없다.

 

사랑이 없다. 아귀 같은 사랑 여의고 중생을 불쌍히 여겨 법에 대한 사랑이 있다. 나와 내 것을 여의었다. 구호함이다. 두려워하는 이를 구호하는 것이다. 귀의할 곳이다. 임금에게 의지하면 흔들리지만 해탈에 의지하면 흔들림이 없다. 집이다. 험난이 없다. 두려움이 없다. 사자가 모든 짐승을 두려워 않듯 모든 마군을 두려워 않는다.

 

해탈은 협착한 일이 없다. 협착한 길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갈 수 없는 것 같이. 착박하지 않다. 낡은 배를 버리고 견고한 배를 타면 바다를 건너 편안한 곳에 이르러 마음이 쾌락함 같이. 인연이 없다. 교만을 항복 받고 방일을 굴복한다. 무명을 없앤다. 무명의 찌꺼기를 없애면 참 밝음이 나타난다. 고요하여 하나 뿐이다. 둘이 없다. 빈 들판에 코끼리 하나 뿐이고 짝이 없듯. 견실하다. 대나 갈대나 피마자 줄기는 속이 비었지만 씨는 견실함 같이. 온갖 번뇌와 생사를 여의었다. 잘 깨달아 나를 이익케 함이다. 모든 것을 버림이다. 이름이 결정이다. 마사꽃 향기가 칠엽수엔 없는 것같이.

 

해탈은 이름이 수대라. 들어감이다. 문이 있으면 들어갈 수가 있듯 그 문으로 무아를 닦은 이가 들어갈 수 있다. 선이다. 세상에 뛰어난 법이다. 해탈은 혼들리지 않는다. 파도가 없다. 쓸 데가 많다. 허물이 없다. 어린애의 버룻을 버림이다. 5음을 제하여 버렸다. 구경이다. 끝까지 깨끗하다. 함이 없는 즐거움이다. 함이 없는 즐거움이란 탐진치를 토한 연고다. 독약 먹고 토하듯. 번뇌를 끊음이다. 모든 생사를 여의고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온갖 즐거움을 얻으며 탐진치를 영원히 끊고 모든 번뇌의 뿌리를 뽑아버린 것이다.

 

해탈은 모든 함이 있는 법을 끊고 무루의 선근을 내며 여러 갈래를 막음이다. 무아다. 내가 아니고 내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는 데서 다만 집착만 끊고 나란 소견을 끊지 않는 것이다. 나란 소견은 불성이요 불성은 해탈이다. 공하지 않은 공 불공공이다. 마치 물병 꿀병에 물이나 술이 없더라도 물병 꿀병이라 하니 이 병들을 공하다 할 수도 없고 공하지 않다 할 수도 없다. 공하다면 빛 냄새 맛 촉<색성향미촉>이 없어야 할 것이고 공하지 않다면 물이나 꿀이 있어야 할 것이니 해탈도 그와 같아 빛이라 빛 아니라 말할 수 없으며 공하다 공하지 않다 말할 수 없다. 만일 공하다 말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상락아정>이 없을 것이요 공하지 않다면 누가 상락아정을 받겠느냐 !

 

해탈은 사랑을 떠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석천왕을 희망하지만 해탈은 그렇지 않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면 사랑도 없고 의심도 없다. 탐욕을 끊고 온갖 모양새 속박 번뇌 생사 인연 과보를 끊는다. 중생은 번뇌와 생사를 무서워하여 3귀의를 받는다. 열반은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음은 불성이요 불성은 결정함이요 결정함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어찌 3귀의가 있다 하나요? 중생은 생사가 두려워 3귀의를 구해서 불성이 결정이요 열반임을 안다. 어떤 법은 이름은 같으나 뜻이 다르고 어떤 법은 이름과 뜻이 모두 다르다. 이름은 같으나 뜻이 다른 것은 불법승이 항상하고 열반과 허공이 모두 항상하므로 이름은 같으나 뜻이 다르다는 것이요 이름과 뜻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불즉각이요 법은 깨닫지 않음이요 스님은 화합이요 열반은 해탈이요 허공은 선한 것이 아니며 걸림이 없음이라 이름하니 이 것은 이름과 뜻이 모두 다른 것이다. 3귀의도 그와 같이 이름과 뜻이 모두 다른 것인데 어찌 하나라 하겠느냐!  내게 공양 말고 승가에 공양하라. 승가에 공양하면 3귀의에 구족히 공양함이 된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해탈이라 하나요? 그렇다. 생멸 없음이 해탈이다. 허공의 성품엔 생멸이 없잖아요? 그렇지 않다. 가란가새나 명명새의 소리가 맑고 아름다움이 까마귀 까치 소리와 같겠느냐? 참 해탈은 천상 인간에 비유할 것이 없으며 허공도 비유가 되지 못하건만 중생교화 위해 비유가 안 되지만 비유한다.

 

어떤 사람이 칼을 들고 여래를 해할 때 여래의 몸을 상하여 역적죄를 이루겠느냐? 아니요. 여래의 몸은 상할 수 없지요. 색신이 아니고 법신인데. 흉악한 사람이 자기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 이 자가 무간지옥 죄를 이루는가? 죄가 있다 말하려면 어머니 몸이 상했어야 할 텐데 상하지 않았으니 죄가 있다 할 수 없고 죄가 없다 하려 해도 죽인 줄 생각하고 쾌한 마음을 가졌으니 어떻게 죄가 없다 하나요?


훌륭하다. 그런 인연으로 가지가지 방편과 비유를 말하여 해탈에 비유하거니와 아무리 한량없는 아승기 비유를 들더라도 실로 비유로는 비교할 수 없다. 어떤 인연은 비유로 어떤 인연은 비유하지 못하니 해탈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여 열반에 나가는 것이며 열반과 여래도 이와같이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원만히 성취해서 대열반이라 한다.

 

이상 정우스님 열반경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