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경과 정견

2007. 6. 9. 13: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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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교법을 신행하게 되면 제일 먼저 시작하는 일이 예경이다. 예경은 예배와 공경이다. 예경후 자기 스스로 보는 과정이 정견이다. 예경은 기본 입문이고 정견은 입문에서 더 깊이 들어간 것이다. 바르게 보는 세계까지 들어가야 자기 문제가 해결된다. 이 경지를 깨달음 또는 해탈이라 한다. 바르게 보는 정견이 깨달음이다. 진리 생명 마음 말은 거창한데 뭐가 마음인지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 것을 직접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정견은 새로운 세계다.

 

바르게 보지 못했을 때 가졌던 생각은 모두 망견이고 망견은 망상을 만든다. 허망하게 보고 허망한 생각을 낸다. 망상은 번뇌다. 번뇌는 번역된 용어고 망상은 쓸데 없는 걱정이다. 번뇌는 번거롭고 걱정된다는 뜻이다. 번뇌의 성격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는 점이다. 정견으로 보면 번뇌의 결과는 고뇌다. 우리는 쓸데 없는 걱정 평생하다 죽는다.

 

정견을 해도 쓸데 없는 걱정이 금방 없어지지 않고 사람마다 다르다. 부처님께서는 정견후 삼칠일간 사유하셨다고 하셨다. 사유 과정이 번뇌 망상이 사라진 기간인지 모른다. 깨달음의 2번째 과정이 망상심이 소멸되는 기간이다.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지눌스님은 25세에 정견을 얻고 40에 근심걱정이 사라졌다고 했다. 15년이 걸린 것이다.

 

화내는 것은 전부 망상이다. 부처님도 화내셨다는데? 화의 성격이 다르다. 화내는 데 자기 욕심 때문에 화냈다면 참회해야 한다. 화란 걸리는 것이다. 조견오온개공 오온이 공한 불생불멸의 모습을 확실히 봐야 한다. 우리 몸이 생사가 없다는 것을 깊게 보는 것이 조견이다. 조견후 일체 망상을 다 여위어야 한다. 집착은 욕구다. 나에 대한 욕구가 없으면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가피를 입어야 한다. 가피를 입었을 때 정견을 얻을 힘이 생긴다. 가피는 예경을 통해 얻게 된다.

 

예배 독경 기도 참회 참선 모두 예경이다. 부처님을 향한 행위는 모두 예경이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행위요 만남이다. 가피를 모르고 스스로 견해를 내면 일체가 망상이다. 이 생각하다 저 생각하다 결국 못 들어간다. 예경문에 깊이 들어갈 수 록 해탈이 빠르다. 여실하게 보고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새끼를 새끼로 보는 것이 여실하게 보는 것이다. 새끼를 뱀으로 보는 순간 걱정이 생기고 망상이 생기고 미혹하여 업을 짓고 고통이 생긴다. 근본을 잘못 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잘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잘못 본데서 중생의 고통이 시작된다.

 

땅에서 넘어진자 땅을 짚고 일어선다 했다. 땅에 왜 넘어졌나? 잘못 봐서 그런 것이다. 땅을 짚고 일어서니 잘 보는 것이다. 실답게 보는 것이다. 무상을 바로 봐야 한다. 열반은 적정이다. 생각은 적정이 아니다. 전부 사견이다. 좋다 나쁘다는 적정이 아니다. 무상하게 보지 않는 것은 전부 적정이 아니다. 생각만 일으키면 무상을 못 본다. 무상을 바로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고는 모여 생긴다. 지수화풍이 모여 고가 됐다. 오온이란 5가지 요소가 모인 것이지 나란 없다. 생각만 일으키면 나를 떠날 수 없다. 내 생각하고 아무 관계 없이 늙고 죽는다. 이 것이 바로 무아의 증거다. 내 의식대로 안되는데 집착한다. 없는데 있다 하니 전도몽상이다. 적정이란 개념화 될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삼법인은 검사필증이다. 공을 보면 그 것이 정견이다. 공이란 불생불멸이다. 연생연멸이기 때문에 불생불멸이다. 인연따라 생기고 사라진다. 생겨도 자체가 없다. 파도는 바람이라는 인연 때문에 생겼다. 바람이 없어지면 파도도 없어진다. 물이란 것은 있어도 파도는 없다. 우리 몸도 그와 같다. 따라서 생겨도 생긴 것이 아니다. 이 것을 확실히 보는 것이 조견오온개공이다.

 

근심 걱정 다 사라지는 것이 3번째 단계요 중생구제가 4번째 단계다. 예불 하나 못하면서 부처된다 큰 소리 친다. 고통은 업장 때문이다. 예경을 통해 업장이 사라진다. 무상을 못보면 깨달음이 아니다.                

외부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은 외부 인연이 바뀌면 사라진다. 손님을 주인으로 착각하고 도둑을 자기로 아는 격이다. 행복하다 믿으면 큰 일이다. 환경이 바뀌면 행복이 사라지고 화가 난다.

 

정말로 아이만을 위해서 화를 낸다고? 하지만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다면 자기 불만으로 화내는 거다. 자기 욕심으로 바른 말 하지 마라. 전부 죄 짓는 거다. 화낼 때 조금이라도 내 욕심이나 불만이  섞여 있는지 생각해 보라.   

               

이상 종범스님 예경과 정견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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