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행5

2007. 6. 9. 14: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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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이렇게 알면 4무애를 얻으니 법 뜻 말에 걸림이 없고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 법에 걸림 없다 함은 모든 법과 법의 이름을 아는 것이요 뜻에 걸림 없다 함은 모든 법이 가지고 있는 뜻을 알고 모든 법의 이름을 따라 뜻을 짓는 것이요 말에 걸림 없다 함은 이름을 따르는 언론 바른 음성의 언론 천타론 세간 변재의 언론이요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의 무릇 연설하는 것이 걸림 없어 변동할 수 없으며 두려움이 없어 굴복할 수 없는 것이니 보살이 이렇게 보고 알면 4무애지를 얻는다.


법에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성문 연각과 보살과 불법을 두루 아는 것이요 뜻에 걸림 없다 함은 승은 비록 3이나 1에 돌아감을 알아 마침내 차별이 있다 말하지 않는 것이요 말에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1가지 법에 대해 가지가지 이름 지어 한량없는 세월 지나며 말해도 다할 수 없거니와 성문 연각은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요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한량없는 세월에 중생들 위해 법을 연설하되 이름과 뜻을 가지가지로 말해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법에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모든 법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함이요 뜻에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모든 뜻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함이요 말에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이름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함이요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말하기 좋아함이 이렇게 훌륭함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함이니 왜냐 하면 만일 집착하면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한다.

 

집착하는 것은 걸림이 없다 할 수 없으니 집착함이 없어야 걸림이 없다 한다. 모든 보살이 집착이 있으면 걸림이 없을 수 없고 만일 걸림이 없지 않으면 보살이라 하지 못하니 이런 사람은 범부다. 어째서 집착하는 이를 범부라 하나? 온갖 범부들은 빛에 집착하며 나아가 알음알이에 집착하니 빛에 집착함으로 탐심을 내고 탐심을 내기 때문에 빛에 속박되며 나아가 알음알이에 속박되는 것이며 속박되는 연고로 생노병사 근심 슬픔 괴로움 온갖 번뇌를 면치 못하니 그러므로 집착하는 이를 범부라 하며 이런 이치로 범부들은 4무애를 얻지 못한다.

 

보살은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벌써 법의 모습을 알고 봤고 알고 봐 그 뜻을 알았고 법의 모습을 보고 뜻을 알아 빛 가운데 집착을 내지 않고 나아가 알음알이 가운데서도 그와 같다. 집착하지 않아 보살이 빛에 대해 알음알이에도 탐심을 내지 않는다. 탐심이 없어 빛에 알음알이에도 속박되지 않으며 속박되지 않으므로 생노병사 근심 슬픔 괴로움 온갖 번뇌에서 해탈하니 이런 이치로 모든 보살이 4무애를 얻는다.


이런 인연으로 내가 제자들 위해12부 경전에서 얽매고 집착함은 마군에게 속박됨이라 했다. 만약 집착하지 않으면 마군의 속박을 벗어나니 마치 세상에 죄 있는 사람은 임금의 속박을 받지만 죄 없는 사람은 임금도 속박하지 못한다. 보살도 얽매이고 집착하면 마군의 속박을 받고 얽매이고 집착함이 없으면 마군이 속박하지 못하니 이런 뜻으로 보살은 집착함이 없다.

 

법에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글자를 잘 가지고 잊어버리지 아니함이다. 가진다는 것은 땅 산 눈 구름 사람 같고 어미 같으니 온갖 법도 그와 같다. 뜻에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비록 모든 법의 이름을 알지만 뜻은 알지 못하다 뜻에 걸림 없음을 얻으면 곧 뜻을 안다. 어떻게 뜻을 아는가? 땅이 가진다 함은 마치 땅이 모든 중생과 중생 아닌 것을 모두 가지는 것과 같으니 이런 뜻으로 땅이 가진다 한다. 무슨 이유로 산을 가진다 하는가? 산이 땅을 붙들어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게 하기 때문에 가진다 한다. 무슨 이유로 눈을 가진다 하는가? 눈은 광채를 가져서 가진다 한다. 무슨 이유로 구름을 가진다 하는가? 구름은 용의 기운이라 하고 용의 기운은 물을 가지는 까닭으로 구름을 가진다 한다. 무슨 이유로 사람을 가진다 하는가? 사람은 법과 법 아닌 것을 가져 사람을 가진다 한다. 무슨 이유로 어미를 가진다 하는가? 어미는 자식을 가져 어미를 가진다 이름하니 보살이 온갖 법의 이름 구절 뜻을 아는 것도 그와 같다.

말에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가지가지 말로 1가지 뜻을 설하지만 역시 뜻이 없으니 마치 남자 여자 집 수레나 중생의 이름과 같다. 어째서 뜻이 없다 하는가? 뜻은 곧 보살과 부처님 경계요 말은 범부 경계니 뜻을 아는 까닭으로 말에 걸림이 없게 된다.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 없다 함은 보살이 말을 알고 뜻을 아는 까닭으로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말을 연설하고 뜻을 연설해 다하지 않으니 이 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 한다.


보살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에 세상법을 수행하여 법에 걸림 없음을 알며 또 제일의제를 수행하여 뜻에 걸림 없음을 얻으며 또 비가라나 논을 익혀 말에 걸림 없음을 얻으며 또 세상 언론 말하기를 익혀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 없음을 얻는다.

 

성문 연각이 만일 이 4무애를 얻는다면 그럴 수 없다. 9부 경전 중 내가 성문 연각이 4무애가 있다 했지만 사실 없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들 제도 위해 4무애지를 닦아 익히지만 연각들은 고요한 법 닦아 혼자 있기 좋아하며 만일 중생 교화하려면 신통을 보일 뿐이요 종일토록 잠자코 있고 말하는 일이 없거늘 어째서 4무애지 어째서 잠자코 말하는 일이 없는가? 연각은 법을 말해 사람을 제도해 난법 정법 인법 세제일법이나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벽지불이나 보살을 얻게 하지 못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삼보리심을 내게 하지 못한다. 연각이 세상 날 때 세간에 9부 경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각은 말에 걸림 없는 일과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 없는 일이 없다.


연각들은 비록 여러 법을 알아도 법에 걸림 없지 못하니 왜냐 하면 법에 걸림 없다는 것은 글자를 안다는 것인데 연각들은 글자를 알지만 글자에 걸림 없지는 못하니 항상 머문다는 글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각들은 법에 걸림 없음을 얻지 못한다. 비록 뜻은 알지만 뜻에 걸림 없지 못하니 참으로 뜻을 안다 함은 중생들에게 불성 있음을 아는 것이며 불성이란 뜻은 삼보리라 하니 이런 이치로 연각들은 뜻에 걸림 없음을 얻지 못하여 연각들은 모두 4무애지가 없다.


어째서 성문들은 4무애지가 없는가? 성문들은 3가지 좋은 방편이 없는 연고다. 무엇을 3가지 방편이라 하는가? 첫째 반드시 부드러운 말을 한 뒤에 법을 받는 것이요 둘째 반드시 거친 말을 한 뒤에 교화를 받는 것이요 셋째 부드럽지도 않고 거칠지도 아니한 말을 한 뒤에 교화를 받는 것인데 성문들은 이 3가지가 없는 연고로 4무애지가 없다.

 

또 성문 연각들은 끝까지 말과 뜻을 알지 못하며 자재한 지혜가 없어 경계를 알지 못하며 10력 4무외심이 없어 필경 12인연의 강을 건너지 못하며 중생들 근성이 예리하고 둔한 차별을 알지 못하며 2가지 참된 이치의 의심을 끓지 못했으며 중생들이 가지가지 마음으로 반연하는 경계를 알지 못하며 제일의공을 말하지 못하니 그러므로 2승들은 4무애지가 없다.


마치 항하에 한량없는 물이 있고 신두하에도 박차하에도 실타하에도 아뇩달 못에도 바다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어 여러 곳 물을 모두 한량없다 하지만 그 분량은 진실로 같지 않은 것처럼 성문 연각 보살의 4무애지도 그와 같아 같다 말할 수 없다. 내가 마하구치라가 4무애지가 제일이라 한 것이니 그대가 물은 뜻이 이런 것이다. 성문들은 혹은 1- 2가지를 얻었을지언정 4가지를 구족한 것은 아니다.


보살은 진실로 얻음이 없다. 얻음이 없는 것을 4무애라 한다. 무슨 뜻으로 얻음이 없는 것을 걸림 없다 하는가? 만일 얻음이 있으면 곧 걸림이 있는 것이라 걸림 있는 것은 4전도라 한다. 보살이 4전도가 없어 걸림 없음을 얻었다 하므로 보살은 얻은 것이 없다 한다. 얻음이 없으면 지혜라 한다. 보살이 이 지혜를 얻어 얻음이 없다 하고 얻음이 있는 것은 무명이라 하니 보살은 무명의 어둠을 아주 끊어 얻음이 없다 하며 그래서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 한다. 얻음이 없는 것은 대반열반이라 하니 보살은 이 대반열반 가운데 머물러 온갖 법의 성품과 모양을 보지 않는 것이라 보살을 얻음이 없다 한다. 얻음이 있는 것은 25유라 하니 보살은 25유를 아주 끊고 대반열반을 얻었다. 그러므로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 한다.


얻음이 없는 것은 대승이라 보살은 모든 법에 머물지 않아 대승을 얻었으며 그래서 보살을 얻음이 없다 하고 얻음이 있는 것은 성문 벽지불의 도라 보살은 2승의 도를 아주 끊어 불도를 얻었으니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 한다. 얻음이 없는 것은 방등경이라 보살은 이런 경전을 읽고 외우므로 대열반을 얻어 보살을 얻음이 없다 하고 얻음 있는 것은 11부 경전이라 하니 보살의 닦는 것은 방등 대승경전만을 말하니 보살을 얻음이 없다 한다. 또 있는 바 없음을 허공이라 하고 세간에서 물건이 없음을 허공이라 하며 보살은 이 허공삼매를 얻어 보는 것이 없는 까닭이라 보살을 얻은 것이 없다고 한다. 얻은 것 있는 것은 나고 죽는 바퀴라 모든 범부는 나고 죽는 데서 바퀴 돌듯 하여 보는 것이 있으니 보살은 온갖 나고 죽음을 아주 끊어 보살을 일러 얻음이 없다 이름한다.


보살이 얻음 없는 것은 상락아정이라 하니 보살은 불성을 보아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어 보살을 얻음이 없다 하고 얻음 있는 것은 상락아정이 없다 하니 보살은 이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함이 없는 것을 아주 끊어 보살을 일러 얻음이 없다 한다. 또 얻음 없는 것을 제일의공이라 하니 보살은 제일의공을 관찰하여 보는 바 없어 보살을 얻음이 없다 한다. 얻음이 있는 것은 5가지 소견이라 보살은 이 5가지 소견을 아주 끊어 제일의공이라 하며 그해서 보살을 얻음이 없다 한다. 또 얻음 없는 것은 삼보리라 보살이 삼보리 얻을 때 보는 바가 없어 보살을 얻음이 없다 한다. 얻음이 있는 것은 성문 연각의 보리라 보살은 2승의 보리를 아주 끊어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 한다.

그대가 물은 것도 얻음이 없고 내가 말하는 것도 얻음이 없으니 만일 얻음이 있다 말하면 그는 마군의 권속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다. 

본래 있어도 지금은 없으며 본래 없어도 지금은 있으니 이 세상 앞 세상 지나간 세상 있다는 모든 법 옳은 곳 없으니 - 순타 한 사람만을 위해 이 게송을 말한 것이 아니다.

 

자세히 들어라! 본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옛날 본래 한량없는 번뇌가 있다는 것이니 번뇌가 있어 현재 대반열반이 없다는 것이며 본래 없다는 것은 본래 반야바라밀이 없다는 것이니 반야바라밀이 없어 현재 번뇌의 결박이 두루 있다는 것이다. 만일 사문 바라문 하늘 마군 범천이나 사람들이 여래는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에 번뇌가 있다 하면 옳지 않다.

 

본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본래 부모의 화합한 몸이 있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현재 금강 같은 미묘한 법신이 없다는 것이며 본래 없다는 것은 나의 몸에 본래 32상 80종호가 없다는 것이니 본래 32상 80종호가 없어 현재 404가지 병을 갖췄다는 것이다. 만일 사문 바라문 하늘 마군 범천 사람들이 여래께서는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에 병의 고통이 있다 하면 옳지 않다.


또 본래 있다는 것은 나에겐 옛적 본래 무상함과 내가 없음과 즐거움 없음과 부정함이 있다는 것이니 무상함과 내가 없음과 즐거움 없음과 부정함이 있어 현재 삼보리가 없다는 것이며 본래 없다는 것은 불성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니 불성을 보지 못해 상락아정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사문 바라문 하늘 마군 범천이나 사람들이 여래는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에 상락아정이 없다 하면 옳지 않다.

또 본래 있다는 것은 범부로서 고행 닦아 삼보리를 얻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니 이런 일이 있어 현재 4가지 마군을 깨뜨리지 못하는 것이며 본래 없다는 것은 나에게 본래 6바라밀이 없다는 것이니 본래 6바라밀이 없어 범부로서 고행 닦아 삼보리를 얻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사문 바라문 하늘 마군이나 사람들이 여래는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에 고행이 있다 하면 옳지 않다.


또 본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옛적 본래 잡식하는 몸이 있다는 것이니 잡식하는 몸이 있어 현재 가없는 몸이 없다는 것이며 본래 없다는 것은 본래 37조도법이 없다는 것이니 37조도법이 없어 현재 잡식하는 몸을 갖춰 있다. 만일 사문 바라문 하늘 마군 범천이나 사람들이 여래는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에 잡식하는 몸이 있다 하면 옳지 않다.


또 본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옛적 본래 온갖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니 이런 일이 있어 현재 필경까지 공한 선정이 없다는 것이며 본래 없다는 것은 나에게 중도의 진실한 뜻이 없다는 것이니 중도의 진실한 뜻이 없어 온갖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 만일 사문 바라문 하늘 마군 범천이나 사람들이 여래는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에 온갖 법이 모양이 있다 하면 옳지 않다.


또 본래 있다는 것은 내가 처음 삼보리를 얻었을 때 근기 둔한 성문 제자가 있다는 것이니 근기 둔한 성문 제자 있어 1승의 참다운 법을 설하지 못했으며 본래 없다는 것은 본래 근기 영리한 사람 중의 코끼리인 가섭보살 같은 이들이 없다는 것이니 근기 영리한 가섭 같은 이가 없어 마땅한 방편으로 3승법을 열어 보였다. 만일 사문 바라문 하늘 마군이나 사람들이 여래는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에 필경까지 3승을 설한다면 옳지 않다.

 

또 본래 있다는 것은 내가 본래 3달 뒤에 사라쌍수 사이 반열반에 든다 했으니 그러므로 현재 방등경전인 열반경을 설하지 못하는 것이며 본래 없다는 것은 옛적에 본래 문수사리 보살들이 없다는 것이니 보살들이 없어 현재 여래가 무상하다 했다. 만일 사문 바라문 하늘 마군 범천이나 사람들이 여래는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에 무상하다 말하면 옳지 않다.


여래는 여러 중생들 위해 모든 법을 알지만 모른다 모든 법을 보지만 못 본다 모양이 있는 법을 모양이 없다 모양이 없는 법을 모양이 있다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말하며 나이고 즐겁고 깨끗한 것도 역시 그러하다. 3승 법을 1승이라 1승 법을 3승으로 간략한 것을 자세하게 자세한 것을 간략하게 4가지 중대한 법을 투란차라 투란차 법을 4가지 중대한 것이라 범한 것을 범하지 않았다 범하지 않은 것을 범했다 가벼운 죄를 중대하다 중대한 죄를 가볍다 말하니 왜냐 하면 여래는 중생의 근성을 분명히 보는 까닭이다.

 

온갖 세상법도 여래에겐 곧 제일의법이다. 왜냐 하면 부처님 세존은 제일의법을 위해 세상법을 말하며 또 중생들로 하여금 제일의법을 얻게 하니 만일 제일의법을 얻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부처님께서는 세상법을 말하지 않는다. 여래가 어떤 때 세상법을 설해도 중생들은 부처님이 제일의법을 말한다 하고 어떤 때 제일의법을 설해도 세상법을 말한다 하니 부처님 깊은 경계는 성문 연각들 알 바 아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먼저 보살이 얻는 것이 없다 하지 말아야 하니 보살이 항상 제일의제를 얻는 것이거늘 어째서 얻음이 없다 힐난하는가?


도에 2가지 있으니 항상함과 무상함이요 보리 모양도 2가지 항상함과 무상이며 열반도 그와 같다. 외도의 도는 이름을 무상이라 하고 내도의 도는 항상하다 하며 성문 연각의 보리는 무상이라 하고 보살 부처님의 보리는 항상하다 하며 밖으로 해탈함은 무상하다 하고 안으로 해탈함은 항상하다 한다.

 

도와 보리와 열반을 모두 항상하다 하니 온갖 중생들은 한량없는 번뇌에 덮여 지혜의 눈이 없어 보지 못한다. 중생들이 보기 위해 계정혜를 닦으며 닦아 도와 보리와 열반을 보니 이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도와 보리와 열반을 본다 하지만 도의 성품과 모양은 진실로 생사가 없어 포착하지 못한다.


도는 모양을 볼 수도 칭량해 알 수도 없지만 실제 작용이 있으니 중생의 마음이 빛도 긴 것도 짧은 것도 굵지도 가늘지도 묶인 것도 풀린 것도 아니며 볼 수 있는 법도 아니지만 있다. 이런 뜻으로 내가 수달에게 장자여 마음은 성의 주인이니 장자가 마음을 수호하지 못하면 몸과 입을 수호하지 못하고 마음을 수호하면 몸과 입을 수호한다. 몸과 입을 수호하지 못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3악도에 이르게 하고 몸과 입을 수호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인간 천상이나 열반을 얻게 하니 얻는 것은 진실하다 하고 얻지 못하면 진실치 않다 한다.


도와 보리와 열반도 있기도 하고 항상하기도 하니 만일 없다면 어떻게 모든 번뇌를 끊으리요만 있음으로 모든 보살들이 분명하게 본다. 보는 데 2가지 있으니 1.모양으로 보고 2.분명하게 보는 것이다. 어떤 것을 모양으로 본다 하는가? 멀리 연기 보고 불 봤다 하지만 실제로 불 보지 못했으며 비록 불 보지 못했어도 허망한 것은 아니다. 공중에 있는 학 보고 물 봤다 꽃과 잎 보고 뿌리 봤다 멀리 울타리 너머 소뿔 보고 소 봤다 여인이 아기 밴 것 보고 탐욕 봤다 나무에 잎 난 것 보고 물 봤다 구름 보고 비 봤다 몸으로 입으로 하는 짓 보고 마음 봤다 하면 비록 마음을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않다. 이런 것을 이름하여 모양으로 본다 한다. 어떤 것을 분명하게 본다 하는가? 눈으로 빛을 보는 것과 같다.

 

사람 눈이 깨끗해 항상하지 않으면 손바닥에 아마륵 열매를 보는 것 같으니 보살이 분명히 도와 보리와 열반을 보는 것도 비록 이와 같이 보지만 애초부터 보는 모양이 없다.


이런 인연으로 내가 예전에 사리불에게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하늘 마군 범천이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여래는 모두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며 모든 세간에서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나와 보살도 알고 보고 깨닫는다. 세간 중생들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서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줄도 스스로 알지 못한다. 세간 중생들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문득 내가 알고 보고 깨닫노라 한다. 여래는 온갖 것을 알고 보고 깨닫지만 스스로 내가 알고 보고 깨닫는다 하지 않으니 보살들도 그와 같다. 왜냐 하면 만일 여래가 알고 보고 깨닫는다는 상을 지으면 이는 부처님이 아니고 범부라 하니 보살도 그러하다.

 

무심진심이 진심이다. 무상지상이 실상이다. 어둠이 있으면 곧 걸림이 있는 것이다. 허공은 걸림이 없다.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바다는 더럽다 깨끗하다는 개념을 떠났다. 오만 잡것이 다 흘러들지만 깨끗하다. 목숨은 슬퍼할지언정 겁낼 건 없다. 죽음이 있음을 슬퍼하라. 그러나 겁낼 건 없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도 큰 문제지만 태어나는 건 더 큰 문제다. 복 있는 사람은 지혜가 있어 장애가 없다. 지혜 있는 이는 오늘을 보면 어제도 알고 내일도 안다. 한결같이 사는 사람이 과거 미래 현재가 무슨 필요 있나? 

이상 정우스님 청정한 행5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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