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9. 15:0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열반경
모든 세간은 불성을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니 만일 불성을 알고 보고 깨닫는 이가 있으면 세간이라 않고 보살이라 이름한다. 세간사람들은 12부경 12인연과 4가지 뒤바뀜과 4제와 37품을 듣는 일과 삼보리와 대반열반을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니 만일 알고 보고 깨달으면 세간이라 이름하지 않고 보살이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하는가? 범천 자재천 8비천 성품 때 티끌 법 그리고 법 아닌 비법 조화의 주인 세계의 나중과 처음이 아주 없다는 단견 늘 있다는 상견 초선에서 비비상천까지를 열반이라 말하는 따위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세간에서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한다.
보살이 이렇게 알고 보고 깨닫고도 만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말하면 이는 허망한 것이요 허망한 법은 죄가 되는 것이며 이런 죄로 지옥에 떨어진다. 남자 여인 사문 바라문으로 도와 보리와 열반이 없다 말하면 이런 이는 일천제며 마군의 권속이며 법을 비방하는 것이니 이렇게 법을 비방하는 것을 부처님들을 비방한다 한다. 이런 사람은 세간이라 않고 세간이 아니라 하지도 않는다.
인자하게 중생들을 사랑하니 그러므로 제가 지금 귀의하며 중생들 독화살을 뽑아 주시기에 큰 의왕이라 일컫습니다. 세상의원들이 고친 병들은 나았다가 또 도지거니와 여래께서 고치신 우리 병은 끝까지 다시 발병 않으니 세존께서 훌륭한 감로약으로 우리 중생에게 베푸니 그 약을 한 번 먹으면 죽지도 않고 나지도 않네. 부처님이 오늘날 우리 위해 대반열반 큰 경을 연설하니 중생들이 비밀한 법장 듣고 나고 죽지 않는 일 얻었습니다.
보살이라 말함은 세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니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세간이라 이름하고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세간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어떻게 다르냐고 물은 것을 지금 말한다. 남자나 여인이 처음 이 열반경을 듣고 공경하고 믿어 삼보리심을 내는 이는 세간 보살이라 하니 모든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보살도 세간과 같아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지만 보살이 열반경을 듣고 세간에서는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나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달아야 할 줄 안다. 이런 것을 알고 또 내가 무슨 방편으로 닦아 익혀 알고 보고 깨닫게 되겠는가 하며 다시 생각하기를 오직 깊은 마음으로 깨끗한 계율을 닦아 지녀야 하리라 한다.
보살이 이런 인연으로 오는 세상 태어날 적마다 계행이 항상 깨끗하다. 계행이 깨끗함으로 곳곳에 태어날 적마다 교만 삿된 소견이나 의심이 없으며 여래가 필경 열반에 든다고 말하지 않으니 이 것을 보살이 깨끗한 계행을 닦는다 한다. 계행이 깨끗하고 다시 선정을 닦으니 닦음으로 곳곳에 태어날 적마다 바르게 기억하고 잊지 않으니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는 것과 12부경과 부처님들 상락아정과 모든 보살이 방등 열반경에 편안히 머물러 불성을 보는 것 따위의 일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며 선정을 닦는 인연으로 11공을 얻으니 이 것을 보살이 청정한 선정을 닦는다 한다. 계행과 선정을 구비하고 깨끗한 지혜를 닦으니 닦아 애초부터 몸 속에 내가 있다거나 내 속에 몸이 있다거나 이 것이 몸이고 이 것이 나라든가 몸이 아니고 내가 아니라는 데 집착 않으니 이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깨끗한 지혜를 닦는다 한다.
지혜를 닦음으로 받아 지니는 계율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니 마치 수미산이 4가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4가지 뒤바뀜에 흔들리지 않는다. 보살이 이 때 스스로 받아 지니는 계율이 흔들림이 없는 줄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 세간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보살이 자기 지니는 계행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아 뉘우치는 마음이 없으며 뉘우침이 없어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기뻐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마음이 편안해지고 편안해 동요하지 않는 선정을 얻고 동요 않는 선정을 얻어 진실하게 알고 보게 되며 알고 보아 생사를 싫어해 생사를 여의어 해탈을 얻고 해탈을 얻어 불성을 분명하게 보니 이 것을 보살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요 세간이 아니라 한다. 이 것을 말해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들은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한다.
세간의 계율은 청정하다 이름하지 않으니 왜냐 하면 세간의 계율은 생존<유>을 위한 연고며 성품이 결정되지 못한 연고며 끝까지 이르지 못한 연고며 모든 중생을 널리 위하지 못하는 연고니 그러므로 깨끗하지 못하다 이름한다. 깨끗하지 못해 뉘우치는 마음이 있고 뉘우침이 있어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어 즐겁지 못하고 즐겁지 못해 편안하지 못하고 편안하지 못해 동요하지 않는 선정이 없고 동요하지 않는 선정이 없어 진실하게 알고 보지 못하고 진실하게 알고 보지 못해 싫어함이 없고 싫어함이 없어 해탈이 없고 해탈이 없어 불성을 보지 못하고 불성을 보지 못해 마침내 대반열반을 얻지 못하니 그러므로 세간의 계율은 청정하지 못하다 이름한다.
보살의 청정한 계율이란 것은 계율이 계율 아닌 까닭이며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까닭이며 결정코 끝까지 이르는 까닭이며 중생들을 위한 까닭이니 이 것을 보살의 계율이 청정하다 한다. 보살의 청정한 계율 속에는 뉘우침이 없는 마음을 내지 않고자 해도 뉘우침이 없는 마음이 자연히 생긴다. 마치 사람이 밝은 거울을 들었으면 보려 하지 않아도 얼굴이 저절로 나타나고 또 농부가 밭에 씨를 심으면 기다리지 않아도 싹이 저절로 나는 것이며 또 등불을 켜면 없애려 하지 않아도 어둠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과 같다. 보살이 깨끗한 계율을 가지면 뉘우침이 없는 마음이 자연히 생기는 것도 그와 같다. 깨끗한 계율을 가져 마음이 기쁘게 되니 마치 단정하게 생긴 사람이 자기 얼굴을 보면 기쁜 마음이 생기듯 깨끗한 계율을 가지는 것도 그와 같다.
파계한 사람이 계율이 깨끗하지 못함을 보면 마음이 기쁘지 않으니 마치 병신이 자기의 모양을 보면 기쁘지 않은 것처럼 파계한 사람도 그와 같다. 마치 소를 기르는 두 여인이 하나는 타락 병을 가지고 또 하나는 물만 든 병을 가지고 함께 성안에 가서 팔려다 길에 넘어져 두 병이 모두 깨지거늘 한 사람은 기뻐하고 한 사람은 근심했으니 계율을 가지는 이와 파한 이도 그와 같아 깨끗한 계율을 가지는 이는 마음이 기쁘다. 마음이 기뻐 문득 부처님 여래께서 열반경에서 청정한 계율을 가지는 이는 열반을 얻는다 하셨으니 내가 지금 깨끗한 계율 닦는 일로 열반을 얻으리라 하고 이 인연으로 마음이 즐겁다.
보살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 적엔 기쁘다 하고 마음이 깨끗해 계율을 가지는 것은 즐겁다 한다. 보살이 생사를 관찰하는 것은 기쁘다 하고 대열반을 보는 것은 즐겁다 한다. 하품은 기쁘다 하고 상품은 즐겁다 하니 세간과 함께하는 법을 여의는 것은 기쁘다 하고 함께하지 않는 법을 얻는 것은 즐겁다 한다. 계율이 깨끗해 몸이 가벼워지고 입에 허물이 없으면 그 때 보살의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아는 것에 나쁜 일이 없고 일이 없어 마음이 편안해지고 편안해 고요한 선정을 얻고 선정을 얻어 진실하게 알고 보고 알고 보아 생사가 싫어 여의려하고 여의어 해탈을 얻고 얻어 불성을 보고 보아 대반열반을 얻나니 이 것을 보살의 청정하게 가지는 계율이요 세간계율이 아니라 한다.
무슨 까닭이냐? 보살이 받은 깨끗한 계율은 5가지 법이 돕는 것이니 무엇을 5가지라 하는가? 1.믿음 2.제 부끄러움 3.남 부끄러움 4.선지식 5.공경하는 계율을 숭상함이니 5개를 여의는 까닭이며 소견이 깨끗하니 5견을 여의는 까닭이며 마음에 의심이 없으니 5가지 의심을 여의는 까닭으로 1.불 2.법 3.승 4.계율 5.방일하지 않음을 의심함이다.
보살이 이 때 5근을 얻으니 믿음 생각 정진 선정 지혜며 5근을 얻어 5열반을 얻으니 빛에서 해탈한 색해탈이며 내지 알음알이에서 해탈한 식해탈이다. 이 것을 보살의 깨끗한 계율이라 하니 세간계율이 아니다. 이 것을 세간사람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데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한다.
만일 나의 제자로 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면서 계율을 파하는 이가 있거든 어떤 사람이 꾸짖고 만일 부처님 비밀장인 대반열반경이 위력이 있다면 어째서 너로 하여금 받은 계율을 파하게 하겠느냐? 계율을 파하는 것은 이 경이 위력이 없음을 알 것이요 위력이 없다면 비록 읽고 외운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할 것이며 이렇게 열반경을 업신여기고 훼방케 하는 인연으로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할 것이니 이 경을 받아 지니면서 계율을 파하는 이는 중생의 나쁜 자식이며 내 제자가 아니요 마군의 권속이다. 이런 사람은 이 경전을 받아 가지는 것을 나도 허락하지 않으니 차라리 받지도 가지지도 닦지도 않을지언정 계율을 파하면서 받아 가지고 닦지는 못하게 할 것이다.
나의 제자로 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려거든 마땅히 심신을 바르게 하고 조심하여 희롱하거나 경솔한 동작을 말아야 한다. 몸은 희롱함이 되고 마음은 경솔한 동작이 되니 유를 구하는 마음을 경솔한 동작이라 하고 몸으로 여러 업을 지음을 희롱이라 한다. 만일 나의 제자로 유를 구하여 업을 짓는 이는 대승경전인 열반경을 받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나의 제자로 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연설하려거든 1.때 아닌 때 2.나라 아닌 데 3.청하지 않는데 4.경솔한 마음으로 4.곳곳마다 5.자기를 찬탄하여 6.남을 업신여겨 7.불법을 없이 하는 8.세상 법을 치성하게 하는 말을 하지 말라.
만일 받아 가지려는 이. 열반경. 불성. 여래의 비밀장. 대승. 방등경전. 성문승. 벽지불승. 해탈을 말하려는 이와 불성을 보려는 이는 먼저 몸을 깨끗이 해야 하니 깨끗해 꾸짖는 책망이 없고 책망이 없어 한량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열반에 들어가서 깨끗한 신심이 나게 할 것이요 신심이 생겨 이 경을 공경할 것이다. 만일 한 게송 한 구절 한 글자를 듣거나 법을 말하는 이는 삼보리심을 낼 것이니 이 사람은 중생들의 선지식이요 나쁜 지식이 아니며 나의 제자요 마군의 권속이 아니니 이 것을 보살이요 세간이 아니라 한다.
어떤 것을 모든 세간에서는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하는가? 그 것은 6념처니 무엇이 6가지인가? 불법승 계율 보시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부처님을 생각하는가?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은 항상해 변역하지 않으며 10력 4무소외를 구족하여 크게 사자후 하시므로 대사문 대바라문이라 하며 깨끗하게 구경의 저 언덕에 이른 이. 이길 수 없는 이. 정수리를 볼 수 없는 이. 두려움 없는 이. 놀라지 않고 변동없는 이. 혼자요 짝할 이 없는 이. 스승 없이 혼자 깨달은 이며 바른 큰 예리한 깊은 해탈한 함께 하지 않는 넓은 필경의 지혜로 지혜의 보배를 성취한 이며 사람 중 코끼리와 사람 중의 우왕. 사람 중 용왕. 사람 중 장부. 사람 중 연꽃과 분다리 꽃. 사람을 억제하는 스승이며 대시주 대법사라 이름하니 법 이치 때를 만족함을 나 대중 중생 가지가지 성품을 모든 근성의 영리하고 둔하고 중품임을 알아 대법사라 하고 중도를 말해 대법사라 이름한다.
어찌해 여래라 이름하는가? 지난 세상 부처님들처럼 말씀하는 것이 변치 않기 때문이다. 지나간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느라 12부경을 연설했는데 여래도 그러하므로 여래라 이름하며 부처님 세존들이 6바라밀 37품 11공으로부터 와서 대열반에 이르렀거든 여래도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여래라 하며 부처님 세존들이 중생 위해 적당한 방편으로 3승을 열어 보이었으며 수명이 한량없어 계산할 수 없거든 여래도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여래라 한다.
어찌해 응이라 하는가? 세간 법은 모두 원수라 하는데 부처님이 응당 해할 것이므로 응이라 하며 4 마군은 보살의 원수인데 부처님이 보살이던 때 지혜로 4마군을 깨뜨렸으므로 응이라 한다. 또 멀리 여읜다는 뜻이니 보살이던 때 한량없는 번뇌를 응당 멀리 여의었으므로 응이라 하며 또 즐겁다는 뜻이니 지난 세상 부처님들이 보살이던 때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중생들 위해 많은 고통을 받더라도 싫어하지 않고 항상 즐거워했거든 여래도 그러하여 응이라 한다. 또 모든 인간 천상 사람들이 응함 여러 향과 꽃과 영락과 짐대와 깃발과 음악으로 공양하니 그러므로 응이라 한다.
어찌해 정변지라 하는가? 정이란 말은 뒤바뀌지 않았다는 뜻이요 변지란 말은 4가지 뒤바뀐 것을 모두 안다는 뜻이며 또 정은 고행이란 말이요 변지는 고행의 원인으로 결정코 괴로운 결과가 있음을 아는 것이며 또 정은 세간의 중도란 뜻이요 변지는 중도를 닦으면 결정코 삼보리를 얻을 것을 끝까지 안다는 뜻이며 또 정은 셀 수 있고 요량할 수 있고 일컬을 수 있다는 뜻이요 변지는 셀 수 없고 요량할 수 없고 일컬을 수 없다는 뜻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정변지라 한다. 성문연각은 변지하기도 하고 변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왜냐 하면 변지라 함은 5음12입18계를 이름하니 성문연각도 두루 알 수 있으므로 변지라 이름한다. 무엇을 변지하지 못한다 하는가? 가령 2승이 한량없는 겁에 한 색음을 관찰해도 다 알지 못하니 이런 뜻으로 성문연각은 변지할 수 없다 한다.
어찌해 명행족이라 하는가? 명은 한량없는 선한 과보를 얻는다는 말이요 행은 발이란 뜻이며 선한 과보는 삼보리를 말함이요 발은 계율과 지혜를 이름함이니 계율과 지혜의 발을 의지해 삼보리를 얻는 것이므로 명행족이라 한다. 또 명은 주문 행은 길하다는 말이요 족은 과보니 이 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니 주문은 해탈이라 하고 길한 것은 삼보리라 하고 과보는 대반열반이니 그러므로 명행족이라 한다. 또 명은 광명 행은 업 족은 과보니 이 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니 광명은 방일하지 않음이요 업은 6바라밀이요 과보는 삼보리다. 또 명은 3명이니 보살 부처 무명의 명이다. 보살의 명은 곧 반야바라밀이요 부처의 명은 곧 부처님 눈이요 무명의 명은 곧 필경공이다. 행은 한량없는 겁에 중생 위해 선업을 닦음이요 족은 불성을 분명히 보는 것이니 이런 뜻으로 명행족이라 한다.
어찌해 선서라 하는가? 선은 높다는 말이요 서는 높지 않다는 말이니 이 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니 높은 것은 삼보리요 높지 않은 것은 여래의 마음이다. 마음이 높은 이는 여래라 이름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여래를 선서라 한다. 또 선은 선지식이란 말이요 서는 선지식의 과보니 이 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니 선지식은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것이요 과보는 대반열반을 말하는 것이니 여래는 최초에 낸 마음을 버리지 않고 대열반을 얻는 것이므로 여래를 이름하여 선서라 한다. 또 선은 좋다 서는 있다는 뜻이니 이 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거니 좋다 함은 불성을 보는 것이요 있다 함은 대열반이다. 열반의 성품은 실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부처님들이 세간으로 인해 있다 말하는 것이니 마치 세상사람이 실로 아들이 없건만 아들이 있다 말하고 실로 길이 없건만 길이 있다 말하는 것처럼 열반도 세간으로 인해 있다 말하니 부처님 세존이 대열반을 이루는 까닭으로 선서라 이름한다.
어찌해 세간해라 하는가? 세간이란 것은 5음이란 뜻이요 해란 것은 안다는 뜻이니 부처님 세존은 5음을 잘 아는 까닭으로 세간해라 한다. 또 세간은 5가지 탐욕 해는 집착하지 아니함이니 5탐욕에 집착하지 않아 세간해라 한다. 세간해라 함은 동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를 모든 성문독각은 알지 보지 이해하지 못하나 부처님께서는 모두 알고 보고 이해하니 남방 서방 북방과 4간방과 상하방도 그와 같아 부처님을 이름해 세간해라 한다. 또 세간은 온갖 범부 해는 범부들 선악의 원인 결과를 아는 것이니 성문연각 알 것이 아니고 부처님만 알므로 이름하여 세간해라 한다. 또 세간은 연꽃 해는 더럽히지 않는다 하니 이 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니 연꽃은 곧 여래 더럽히지 않음은 여래가 세간의 8가지 법에 더럽히지 아니함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세간해라 한다. 또 부처님과 보살들을 세간해라 하니 왜냐 하면 부처님과 보살들은 세간을 보는 까닭으로 세간해라 이름한다. 마치 밥으로 인해 생명을 보존하므로 밥을 이름해 생명이라 하듯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 세간을 보는 까닭으로 세간해라 이름한다.
어찌해 무상사라 하는가? 상사라는 말은 끊는다는 뜻이요 끊을 것이 없어 무상사라 이름한다. 부처님 세존은 번뇌가 없어 끊을 것이 없고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 한다. 또 상사는 다툰다는 뜻이요 무상사는 다툼이 없다는 것이니 여래는 다툼이 없어 부처님을 이름해 무상사라 한다. 또 상사는 말을 깨뜨릴 수 있음이요 무상사는 말을 깨뜨릴 수 없음이니 여래가 말한 것은 모든 중생들이 깨뜨릴 수 없어 부처님을 이름해 무상사라 한다. 또 상사는 윗자리라 이름하고 무상사는 위가 없는 자리라 이름하니 3세의 부처님들은 다시 그보다 지나갈 이가 없어 부처님을 이름해 무상사라 한다. 상은 새 것이요 사는 낡은 것이니 부처님 세존은 대열반을 체득하여 새 것도 없고 밝은 것도 없어 부처님을 이름해 무상사라 한다.
어찌해 조어장부라 하는가? 자기가 이미 장부인데 다시 장부를 조복 어거하는 것이니 여래는 실로 장부도 아니고 장부 아닌 것도 아니지만 장부를 조복 어거하므로 여래를 이름해 조어장부라 한다. 모든 남자나 여인이 4법을 갖추면 장부라 이름하니 무엇이 4가지인가? 1.선지식 2.능히 법을 듣고 3.뜻을 생각하고 4.말한 대로 수행함이다. 남자나 여인이나 이 4법을 갖추면 장부 남자라도 이 4법이 없으면 장부라 이름하지 못하니 왜냐 하면 몸은 비록 장부나 행동은 짐승과 같기 때문이다.
여래는 남자와 여인을 조복하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조어장부라 한다. 또 말을 모는 데 4가지가 있으니 1.털 2.가죽 3.살 4.배에 닿음이다. 닿는 대로 따라 어거하는 이의 뜻에 맞게 한다. 여래도 그러하여 4법으로 중생을 조복하니 1.생을 말해 2.생노를 말해 3.생노병을 말해 4.생노병사를 말해 부처님 말씀을 받게 함이니 털과 가죽과 살과 배에 닿게 하여 모든 이의 뜻에 맞게 함이다. 말을 모는 이가 말을 조복함에는 결정함이 없지만 여래 세존이 중생을 조복함에는 반드시 결정해 허망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조어장부라 한다.
어찌해 천인사라 하는가? 사에 2가지가 있으니 1.착하게 2.나쁘게 가르침이다. 부처님과 보살은 항상 선법으로 중생들 가르치니 무엇을 선법이라 하는가? 신구의로 하는 선이니 중생을 가르칠 때 이런 말을 한다. 너는 마땅히 몸으로 짓는 나쁜 업을 여의어야 하니 왜냐 하면 몸으로 짖는 악업을 여의면 해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법으로 저를 가르치니 만일 이 악업을 여의고도 해탈을 얻을 수 없다면 너로 하여금 멀리 여의라 하지 않는다. 만일 중생들이 악업을 여의고도 3나쁜 갈래에 떨어진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멀리 여윔으로 삼보리를 이루고 대열반을 얻게 되니 그러므로 항상 이 법으로 중생을 교화한다. 입과 뜻으로 짓는 업도 그와 같으니 부처를 이름하여 위없는 스승<무상사>이라 한다. 또 예전에 얻지 못했던 도를 지금 얻었으므로 얻은 도를 말하며 본래는 깨끗한 행을 닦지 못했다가 지금엔 닦았으므로 자기 닦은 것을 말하며 스스로 무명을 깨뜨렸으므로 무명을 깨뜨리게 하며 스스로 깨끗한 눈을 얻어 다시 어두운 눈을 제하고 깨끗한 눈을 얻게 하며 스스로 2가지 이치를 알고 2가지 이치를 말하며 스스로 해탈하고 해탈하는 법을 말하며 스스로 가없는 생사의 강을 건너고 건너게 하며 자기가 두려움 없음을 얻고 두려움이 없게 하며 자기가 열반을 얻고 또 중생들에게 대열반을 연설하므로 부처를 이름해 위없는 스승이라 한다.
천은 낮이라 천상은 낮이 길고 밤이 짧아 천이라 한다. 또 천은 근심이 없고 항상 쾌락을 받아 천이라 한다. 또 천은 등불이라 컴컴한 어둠을 깨뜨리고 밝게 하므로 천이라 하며 또 악업의 어둠을 깨뜨리고 선업을 얻어 천상에 태어나게 하므로 천이라 한다. 또 천은 길하니 길상하므로 천이라 한다. 또 천은 해 해는 광명이 있어 해를 천이라 하니 이런 뜻으로 천이라 한다. 인이라 함은 해는 은혜가 많다는 뜻이며 또 인은 몸 입이 부드럽다는 것이며 또 인은 교만이 있다 이름하며 또 인은 교만을 깨뜨린다 한다. 부처님이 모든 중생에게 위없는 스승이 되지만 경전에서 천인사라 말했으니 왜냐 하면 모든 중생 중에 천과 사람만이 삼보리심을 낼 수 있으며 10선업을 닦아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과와 벽지불의 도를 얻으며 삼보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니 그래서 부처님을 천인사라 한다.
어찌해 불이라 하는가? 불은 깨닫는다는 뜻이니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마치 도둑이 주인이 있는 줄 알면 당황해 어찌할 수 없듯 보살도 한량없는 온갖 번뇌를 깨달았으며 깨달은 뒤엔 번뇌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게 하니 그러므로 불이라 하며 깨달았으므로 생노병사 없으니 그러므로 불이라 이름한다.
바가바<세존>라는 것은 바가는 깨뜨린다는 뜻이요 바는 번뇌라는 뜻이니 번뇌를 능히 깨뜨리므로 바가바라 한다. 또 모든 선법을 성취하는 까닭이며 또 모든 법의 뜻을 잘 아는 까닭이며 큰 공덕이 있어 이길 이가 없는 까닭이며 큰 소문이 시방에 두루 퍼진 까닭이며 가지가지 큰 지혜로 보시하는 까닭이며 또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여근을 받지 않은 까닭이다. 남자나 여인이 이렇게 부처님을 생각하면 행주좌와 주야나 밝거나 어둡거나 간에 항상 여의지 않고 부처님 세존을 보게 된다.
어찌해 여래 응공 정변지 나아가 바가바라 하며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과 큰 이름이 있는가? 보살이 옛적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부모 화상 스승들과 상좌와 장로에게 공경했으며 한량없는 겁 동안 중생 위해 항상 보시하고 계율을 가지고 인욕을 익히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선정 지혜와 대자 대비와 대희 대사를 행했으므로 지금 32상80종호의 금강 같은 몸을 얻었다. 또 보살이 옛적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신심 생각 정진 선정 지혜의 근본을 닦았으며 여러 스님들을 공경 공양했으며 항상 법의 이익을 위했고 음식의 이익을 위하지 않았다. 보살이 12부경을 가지며 읽으며 외우는 것은 항상 중생 위해 해탈과 안락함을 얻게 하려는 것이요 자기를 위함이 아니니 왜냐 하면 보살은 항상 출세간 출가한 함이 없는 다툼이 없는 때가 없는 속박이 없는 집착이 없는 덮임이 없는 무기가 없는 생사가 없는 의심이 없는 탐진치만이 없는 더러움이 없는 번뇌가 없는 괴로움이 없는 한량이 없는 넓고 큰 허공 같은 마음 없음이 없는 마음<무무심> 조복한 보호하지 않는 숨김이 없는 세간이 없는 항상 정한 마음<상정심> 항상 닦는 항상 해탈한 갚음이 없는 서원이 없는 잘 원하는 잘못이 없는 부드러운 머물지 않는 자재한 무루한 제일의 물러가지 않는 무상한 정직한 아첨이 없는 순전히 선한 다소가 없는 마음<무다소심> 견고함이 없는 범부성문연각이 없는 잘 아는 계를 아는 생기는 계를 아는 머무는 계를 아는 자재한 계의 마음을 닦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10력과 4무소외와 3념처와 상락아정을 얻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래 나아가 바가바라 일컫는 것이다. 이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부처님을 생각한다 한다.
어떤 것을 보살이 법을 생각한다 하는가? 보살이 생각하기를 불법은 가장 묘하고 높은 것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현재의 과보를 얻게 하니 이 정법은 시절이 없으며 법안으로 볼 수 있고 육안으로 볼 것이 아니며 비유로 비교할 수도 없으니 나지도 내지도 머물지도 멸하지도 비롯하지도 마치지도 않으며 함도 셀 수도 없으며 집 없는 이에게는 집이 되고 돌아갈 데 없는 이에게는 돌아갈 데가 되며 밝음 없는 데는 밝음이 되며 저 언덕에 이르지 못한 이는 저 언덕에 이르게 하며 향이 없는 곳에는 걸림 없는 향이 되며 볼 수도 없으며 동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고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모든 즐거움을 아주 끊었으나 편안한 쾌락이 끝까지 미묘하며 빛이 아니고 빛을 끊었지만 그래도 빛이며 내지 알음알이가 아니고 알음알이를 끊었지만 그래도 알음알이며 업이 아니고 업을 끊었으며 맺힘이 아니고 맺힘을 끊었으며 물건이 아니고 물건을 끊었지만 그래도 물건이며 계가 아니고 계를 끊었지만 그래도 계며 유가 아니고 유를 끊었지만 그래도 유며 입이 아니고 입을 끊었지만 그래도 입이며 인이 아니고 인을 끊었지만 그래도 인이며 과가 아니고 과를 끊었지만 그래도 과며 빈 것도 아니고 참된 것도 아니고 온갖 참된 것을 끊었지만 그래도 참된 것이며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고 생멸을 아주 끊었지만 그래도 생멸하는 것이며 모양도 멸함을 아주 끊었지만 그래도 생멸하는 것이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고 온갖 모양을 끊었지만 그래도 모양이며 가르침도 아니고 가르치지 않음도 아니지만 그래도 스승이며 공포도 아니고 편안함도 아니고 온갖 공포를 끊었지만 그래도 편안하며 참음도 아니고 참지 않음도 아니고 참지 않음을 아주 끊었지만 그래도 참는 것이며 고요함도 아니고 고요하지 않음도 아니고 모든 고요함을 끊었지만 그래도 고요하며 온갖 법의 정수리여서 모든 번뇌를 온통 끊었으며 청정하고 모양이 없어 온갖 모양을 영원히 벗어났으며 한량없는 중생 필경 머물 곳이며 모든 생사의 성한 불을 멸했으며 부처님들 노닐며 계시는 곳이어 항상 변역하지 않으니 이 것을 보살의 법을 생각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승가를 생각한다 하는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법답게 머물러 있으면서 정직한 법을 받고 따라서 수행하며 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깨뜨릴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고 생각하고 말할 수도 없으며 모든 중생의 좋은 복밭이며 비록 복밭이나 받는 것이 없고 청정하여 더럽지 않으며 새는 일도 없고 함도 없으며 넓기는 가없고 마음은 부드럽고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시끄러움이 없고 항상하여 변역하지 않으니 이 것을 이름하여 승가를 생각한다 한다.
어떤 것을 계율을 생각한다 하는가? 계율을 파하지 않고 새지 않고 깨뜨리지 않고 잡란하지 않으며 비록 형상이 없으나 보호하여 가질 수 있으며 비록 마주 대할 수 없으나 방편을 닦으면 구족할 수 있고 허물이 없어 부처님과 보살의 칭찬하는 바니 이 것이 대방등 대열반의 일이다. 땅덩이와 같고 배 영락 바다 잿물 집 칼 다리와 같으며 의원 약 아가타약 여의주와 같으며 발 눈 부모 그늘과 같으며 억지로 뺏을 수도 해롭게 할 수도 불로 태울 수 물로 휩쓸어 버릴 수 없으며 큰 산의 사다리 길이요 불 보살의 훌륭한 짐대다. 이런 계율에 머물면 수다원과를 얻을 것이며 나도 얻을 명분이 있지만 요구하지 않으니 왜냐 하면 내가 만일 수다원과를 얻으면 모든 중생을 널리 제도할 수 없는 까닭이며 만일 이 계율에 머물면 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나도 얻을 명분이 있고 요구하니 왜냐 하면 삼보리를 얻으면 중생들을 위해 묘한 법을 말해 구원을 지을수 있으리라 하니 이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계율을 생각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보시를 생각한다 하는가? 보시가 삼보리의 인이 된다 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이 보시를 친근하고 닦았으니 나도 그와 같이 친근하고 닦는다 하며 만일 보시하지 않고는 사부대중을 장엄할 수 없으며 보시가 필경까지 번뇌를 끊지 못해도 현재의 번뇌를 덜어버릴 수 있으며 보시한 인연으로 시방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항하의 모래 수 세계의 중생들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며 보살이 중생에게 밥을 보시하면 곧 생명을 보시함이니 이 과보로 성불할 때 항상 변역하지 않으며 즐거움을 보시한 인연으로 성불할 때 안락을 얻으며 보살이 보시할 때 법답게 재물을 구하고 저 사람 것을 침노하여 이 사람에게 보시하지 않았으므로 성불할 때 청정한 열반을 얻으며 보살이 보시할 때 중생들로 하여금 구하지 않고 얻게 했으므로 성불할 때 자재한 나를 얻으며 보시한 인연으로 다른 이로 하여금 힘을 얻게 했으므로 성불해서 10력을 얻으며 보시한 인연으로 다른 이로 하여금 말할 수 있게 했으므로 성불해서 4무애를 얻으며 부처님과 보살이 보시를 닦아 열반의 인이 됐으므로 나도 그와 같이 보시하여 열반의 인을 삼으리라 하니 자세히 말한 것은 잡화경과 같다.
어떤 것을 가리켜 하늘을 생각한다 하는가? 사천왕천으로부터 비상비비비상처천이 있으니 만일 신심이 있으면 사천왕천을 얻게 되니 나도 얻을 명분이 있으며 만일 계율과 많이 아는 것과 보시와 지혜로 사천왕천으로부터 비상비비상처를 얻으며 나도 또한 얻을 명분이 있으며 내가 욕구하는 것은 아니니 왜냐 하면 사천왕천과 내지 비상비비상처천은 모두 무상한 것이며 무상한 연고로 생노병사 하는 것이니 이런 뜻으로 내가 욕구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환술로는 어리석은 사람은 속일수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의혹케 하지 못하니 환술은 사천왕천과 비상비비상처천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범부들이거니 나는 어리석은 범부와는 같지 않다. 나는 제일의천이 있음을 들었으니 부처님과 보살들이 항상하여 변역하지 않음이며 항상 머물러 있어 생노병사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부지런히 제일의천을 구하게 하니 왜냐 하면 제일의천은 중생들로 하여금 번뇌를 끊어버리기를 의수와 같게 한다. 만일 나에게 신심이 있고 지혜가 있으면 제일의천을 얻게 되니 마땅히 제일의천을 분별해 말하리라 하니 이 것을 이름해 보살이 하늘을 생각한다 한다. 이 것을 보살이라 이름하고 세간이 아니며 이 것을 말하여 세간은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다 한다.
만일 나의 제자가 12부경을 받아 수지독송하는 것이 열반경을 받아 수지독송하는 것과 더불어 차별이 없다 말하면 옳지 않다. 왜냐 하면 열반경은 모든 부처님 세존의 깊고 깊은 비밀장이요 가장 훌륭하니 그런 이치로 열반경은 매우 기특하여 말하거나 생각할 수 없다.
보살은 가르치는 이가 없지만 스스로 보리심을 내었고 마음을 내고는 부지런히 정진하며 설사 큰 불이 몸과 머리를 태워도 마침내 구원을 청하느라 법을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니 왜냐 하면 보살이 항상 내가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혹은 지옥 아귀 축생 인간이나 천상에 있으면서 여러 번뇌의 불에 몸을 태웠지만 일찍이 결정한 법을 얻지 못했으며 결정한 법은 곧 삼보리니 삼보리를 위해 몸과 마음과 목숨을 아끼지 않겠으며 몸이 티끌같이 부서져도 뜻을 버리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리니 왜냐 하면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이 곧 삼보리의 인이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보살이 삼보리를 보지 못하고도 이렇게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거든 하물며 이미 보았음이랴 그러므로 보살이 불가사의하다. 또 불가사의한 것은 보살이 생사의 한량없는 허물을 보는 것은 성문연각 미칠 바 아니며 비록 생사의 한량없는 허물을 알지만 중생 위해 그 속에서 받는 고통을 싫어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다시 불가사의라 한다. 보살이 중생을 위하는 까닭으로 비록 지옥에서 여러 시끄러움을 받더라도 3선천의 즐거움과 같이 여기니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 한다.
마치 장자가 집에 불이 난 것을 보고 뛰어나왔으나 여러 아들들이 뒤에 떨어져 화재를 벗어나지 못하자 장자는 아들들이 불에 타게 됨을 알고 다시 들어가 구원할 때 자기 몸을 돌보지 않듯 보살도 비록 생사의 허물을 알지만 중생 위해 싫어하지 않고 그 속에 있으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한다. 한량없는 중생들이 보리심을 냈다가도 생각 중에 걱정이 많은 것을 보고 마음이 퇴타하여 성문연각도 되거니 보살들로 이 경을 들은 이는 마침내 보리심이 퇴타하여 성문연각 되지 않으니 이런 보살은 비록 초지의 변동되지 않는 자리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퇴타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한다.
어떤 사람이 나는 큰 바닷물에 떠서 건너갈 수 있노라 하면 이 말을 그러리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범부들은 참으로 큰 바닷물을 건너갈 수 없고 보살만이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갈 수 있어 불가사의라 한다. 어떤 사람이 연근에서 나는 실로 수미산을 매어 달수 있다면 생각할 수 있겠는가? 보살은 잠깐 동안 온갖 생사를 헤아릴 수 있으므로 불가사의라 한다. 보살이 한량없는 아승기겁부터 생사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는 줄 알았지만 중생 위해 상락아정을 연설하는 것이며 비록 그렇게 말해도 삿된 소견은 아니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한다.
마치 사람이 물에 들어가도 물이 빠뜨리지 못하며 맹렬한 불에 들어가도 불이 태우지 못한다면 이런 일은 불가사의한 것이니 보살도 비록 생사 속에 있더라도 생사가 시끄럽게 하지 못하니 불가사의라 한다. 사람에게는 3품이 있으니 상품 중품 하품이다. 하품사람은 처음 태 속에 들어갔을 때 내가 지금 더러운 것들이 모여드는 뒷간에 있는 것이 마치 송장들 속에나 가시덤불 캄캄한 속에 있는 것 같다 하며 태에 나와서는 또 나는 지금 더러운 것들이 모여든 뒷간에서 나왔고 내지 캄캄한 속에서 나왔다 하며 중품사람은 나는 지금 많은 나무숲 속에나 깨끗한 강 가운데나 방안에 들어갔다 하고 나올 때도 그러며 상품사람은 나는 전당에 올라가서 꽃 숲속에 있으며 말도 코끼리도 타고 높은 산에 올라갔다 하고 나올 때도 그와 같다. 보살은 처음 태에 들 때도 드는 줄 알고 머물 적에도 머무는 줄 알고 나올 때도 나오는 줄 알아서 마침내 탐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지만 초주에는 이르지 못했으니 불가사의라 이름한다.
삼보리는 비유로 말할 수 없으니 마음도 역시 비유로 말할 수 없다. 보살은 스승에게 묻고 배운 곳이 없지만 삼보리를 얻으며 법을 얻고는 아끼는 마음이 없이 중생 위해 연설하니 불가사의라 한다. 보살이 몸으로 여의었고 입이 아닌 것이 있으며 입으로 여의었고 몸 아닌 것이 있으며 몸도 입도 아니면서 멀리 떠난 것이 있다. 몸으로 여의었다 함은 살생 훔치는 일 음행을 떠난 것이니 이 것을 이름하여 몸으로 여의었고 입이 아니라는 것이다. 입으로 여의었다 함은 허망한 말 이간하는 말 욕설 옳지 않은 말을 여윈 것이니 이 것을 이름하여 입으로 여의었고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몸도 입도 아니면서 멀리 여의었다 함은 탐욕 성내는 일 나쁜 소견을 멀리 여읜 것이니 이 것을 이름하여 몸도 입도 아니면서 멀리 여의었다는 것이다. 보살이 한 법도 몸이거나 입이거나 및 주재를 여읜 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여의는 것이 있으니 그러므로 불가사의하며 입도 역시 그와 같다.
몸으로부터 몸을 입으로부터 입을 여의고 지혜로부터 몸이 아니고 입이 아님을 멀리 여읜다. 진실로 지혜 있지만 보살로 하여금 멀리 여의게 하지 못하니 왜냐 하면 1법도 능히 깨뜨리거나 짓게 하지 못하며 함이 있는 법의 성품은 다르게 나고 다르게 없어지니 그러므로 이 지혜가 능히 멀리 여의게 하지 못한다. 지혜가 깨뜨리지 못하며 불이 태우지 못하며 물이 풀리게 하지 못하며 바람이 흔들지 못하며 땅이 가지고 있지 못하며 나는 것이 나게 하지 못하며 늙음이 늙게 하지 못하며 머무름이 머물게 하지 못하며 깨뜨림이 파괴하지 못하며 탐심이 탐하지 못하며 성냄이 성나게 하지 못하며 어리석음이 어리석게 하지 못하니 함이 있는 성품이 다르게 나고 다르게 없어지는 연고다. 보살이 내가 이 지혜로 모든 번뇌를 깨뜨린다 하지 않지만 스스로 내가 번뇌를 깨뜨린다 하며 비록 이런 말을 해도 허망한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 이름한다.
열반경과 같은 것은 나아가 5행이 있으니 거룩한 행<성행> 청정한 행<범행> 하늘의 행<천행> 병난 행<병행> 어린아기의 행<아행>이다. 만일 나의 제자가 받아 수지독송하고 뜻을 연설하여 중생들의 공경 존중 찬탄 여러 공양함을 받으면 그런 때는 없어지지 않는다. 만일 열반경이 구족하게 유통하는 때 나의 제자들이 계율을 많이 범하고 나쁜 짓을 하며 이런 경전을 공경 믿지 않으면 믿지 않는 연고로 받아 수지독송하거나 뜻을 해설하지 아니할 것이며 여러 사람의 공경 공양함을 받지 못할 것이며 받아 가지는 이를 보고는 비방하고 업신여기며 너는 육사외도요 부처님 제자가 아니다 하니 이런 때는 불법이 오래지 않아 없어진다.
내가 먼저 문수사리가 이 뜻을 안다 하였거니 이제 다시 말하니 지성으로 자세히 들어라. 부처님 세존에게 2법이 있으니 하나는 세상법이요 또 하나는 제일의법이다. 세상법은 멸할 수 있지만 제일의법은 멸하지 않는다. 또 2가지 있으니 하나는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함이 없는 것이요 또 하나는 상락아정이다.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함이 없는 것은 없어지거니와 상락아정은 없어지지 않는다. 또 2가지 있으니 하나는 2승들이 가지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보살들이 가지는 것이다. 2승들이 가지는 것은 멸하는 것이요 보살들이 가지는 것은 멸하지 않는다. 또 2가지 있으니 하나는 바깥법이요 다른 하나는 안법이니 바깥법은 멸함이 있고 안법은 멸함이 없다. 또 2가지 있으니 하나는 유위법이요 다른 하나는 무위법이니 유위법은 멸함이 있고 무위법은 멸함이 없다. 또 2가지 있으니 하나는 얻을 수 있는 법이요 하나는 얻을 수 없는 법이니 얻을 수 있는 법은 멸할 수 있고 얻을 수 없는 법은 멸할 수 없다. 또 2가지 있으니 하나는 함께 하는 법이요 하나는 함께 하지 않는 법이니 함께 하는 법은 멸하는 것이요 함께하지 않는 법은 멸하지 않는다. 또 2가지 있으니 하나는 사람 가운데요 하나는 하늘 가운데니 사람 가운데 법은 멸하고 하늘 가운데 법은 멸하지 않는다. 또 2가지 있으니 하나는 11부경이요 하나는 방등경전이니 11부경은 멸하는 것이요 방등경전은 멸하지 않는다.
만일 나의 제자가 방등경전을 받아 수지독송하고 뜻을 해설하며 공경 공양 존중 찬탄하면 그 때는 불법이 멸하지 않는다. 그대가 가섭에게도 이 경이 있었나요? 한 것은 열반경은 여러 부처님 비밀장이다. 왜냐 하면 여러 부처님이 비록 11부경이 있지만 불성을 말하지 않고 여래의 상락아정을 말하지 않고 부처님 세존은 언제까지나 열반에 들지 않는 일을 말하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이 경을 여래의 비밀장이라 한다. 11부경에서 말하지 아니한 것이므로 장이라 하니 마치 사람들이 7보를 들고 나와 쓰는 것이 아니므로 장이라 하는 것 같다.
사람이 이런 물건을 간직하여 두는 것은 다음 일을 위한 것이니 어떤 것을 다음 일이라 하는가? 곡식이 귀할 때나 대적이 와 나라를 침노할 때나 나쁜 임금을 만났을 적에 보배로 생명을 바꾸거나 길을 가다 어려울 때나 재물을 구하기 어려울 때 보배를 내어 쓰려는 것이다. 부처님 여래의 비밀장도 그와 같아 말세의 나쁜 비구들이 부정한 물건을 쌓아두고 사부대중에게 여래가 필경 열반에 든다고 말하며 세간 경전을 읽고 불경을 공경하지 않거든 이런 나쁜 일이 세상에 나타날 때 여래가 이런 나쁜 일을 없애고 잘못 생활하는 제양을 여의게 하기 위해 이 경전을 연설하니 만일 비밀장인 이 경전이 없어지고 나타나지 아니할 적엔 불법도 없어지는 줄 알아야 한다.
열반경은 항상 변역하지 않는 것이거늘 어찌해 가섭 부처님 때도 이 경이 있었느냐? 하고 묻느냐? 그 때는 중생들이 탐욕이 적고 지혜가 많았으며 보살들도 부드러워 교화하기 쉽고 큰 위덕이 있었으며 모두 기억하여 잊지 아니함이 코끼리왕과 같으며 모든 중생들도 여래가 필경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 줄 아는 까닭으로 이 경전이 있지만 연설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세상의 중생들은 번뇌가 많고 어리석어 잊기를 잘하며 지혜가 없고 의심이 많아서 믿음이 뿌리 박히지 못하고 세계가 깨끗하지 못하며 중생들은 모두 여래가 무상하여 자주 변천하는 터이매 나중에는 대반열반에 들어간다 하므로 여래가 이 경전을 연설한다. 가섭부처님 법은 진실로 멸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항상하여 변천하지 않는 까닭이다.
만일 중생들이 나인 것을 내가 없는 줄로 보고 내가 없는 것을 나라고 보며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보고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보며 즐거운것을 즐겁지 않다 보고 즐겁지 않은 것을 즐겁다 보며 깨끗한 것을 부정하다 보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보며 멸하는 것을 멸하지 않는다 보고 멸하지 않는 것을 멸한다 보며 죄를 죄가 아니라 보고 죄가 아닌 것을 죄라 보며 가벼운 죄를 중하다 보고 중한 죄를 가볍다 보며 승을 승이 아니라 보고 승이 아닌 것을 승이라 보며 도를 도가 아니라 보고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보며 진실한 보리를 보리가 아니라 보고 진실한 보리가 아닌 것을 보리라고 잘못 보며 고통인 것을 고통이 아니라 보고 집인 것을 집이 아니라 보며 멸인 것을 멸이 아니라 보고 진실한 것을 진실하지 않다고 보며 세제를 제일의제라 보고 제일의제를 세제라 보며 귀의할 데를 귀의할 데가 아니라 보고 귀의할 데가 아닌 것을 귀의할 데라 보며 참으로 부처님 말씀을 마군의 말이라 하고 참으로 마군의 말을 부처님 말이라 하면 이런 때 부처님들이 열반경을 말씀하신다.
모기 입으로 바다 밑바닥까지를 말린다 입으로 불어 수미산을 날린다 새끼로 폭풍을 엄어맨다 가다라 불 속에 연꽃이 난다 아가타약이 독약이라 차라리 달을 뜨겁게 하고 해를 차게 한다 차라리 4대가 각각 제 성품을 버린다 말할 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 말하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도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단월들이 있어 불법을 공경 존중하면 부처님이 열반해도 그 불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문다. 또 경법을 연설하면서 이양을 탐하고 열반을 구하지 않는데 부처님마저 열반한다면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한다.
또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도 나아가 부정한 물건을 저축 않고 또 스스로 말하기를 수다원과나 아라한과를 얻었노라 하지 않지만 제각기 소견을 고집해 가지가지 말을 짓되 장로여 부처님이 제정한 4중이나 내지 7가지 다툼을 없애는 법도 중생을 위해서는 막기도 하고 열기도 하며 12부 경전도 그런 것이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국토와 시절이 각각 다르고 중생이 한결같지 않으며 영리하고 둔근의 차별을 아시므로 막기도 하며 중대하고 경미하게 말씀하였으니 마치 용한 의원이 병을 위해 우유를 쓰기도 하고 금하기도 하여 열병에는 먹게 하고 냉병에는 금하는 것같이 여래도 중생들의 번뇌의 병을 관찰하여 열기도 막기도 한 것이다. 장로여 나는 부처님 따라 친히 이런 뜻을 들었으니 오직 내가 이 뜻을 알고 당신은 모르며 나만이 계율을 알고 당신은 모르며 내가 경을 알고 당신은 모른다 하는데 부처님마저 열반한다면 그 법은 오랫동안 세상에 머물지 못한다. 또 부처님이 처음 출가하여 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도 내가 수다원과나 아라한과를 얻었노라 말하지 않고 또 부처님이 중생 위해 막기도 하고 열기도 한 것이오. 장로여 나는 부처님 따라 친히 이런 뜻 법 계율을 들었으니 마땅히 여래의 12부경을 의지해 이 뜻이 옳으면 받아 가지겠고 그르면 버리겠노라 말하지 않는다면 부처님 세존이 비록 열반하더라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문다.
나의 법이 멸할 때 성문 제자들이 혹은 신이 있다 공하다 혹은 중음이 있다 없다 혹은 삼세가 있다 없다 혹은 3승이 있다 없다 혹은 온갖 것이 있다 없다 혹은 중생이 처음도 있고 나중도 있다 없다 혹은 12인연이 함이 있는 법이라 하고 없는 법이라 혹은 여래가 병고행이 있다 없다 혹은 여래가 비구들에게 10가지 고기 먹음을 허락하지 않았으니 무엇이 10가지인가? 사람 뱀 코끼리 말 나귀 개 사자 돼지 여우 원숭이요. 다른 것은 모두 허락하였다 하고 혹은 온갖 고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며 혹은 비구들은 5가지 일은 하지 않아야 하니 무엇이 5가지인가? 짐승 칼 술 낙사 참기름을 팔지 말아야 하고 다른 것은 모두 허락하였다 혹은 5종류의 집에 들어감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니 백정의 집 기생집 술집 왕궁 전다라의 집이요 다른 집은 다 허락하였다 혹은 교사야 옷은 허락하지 않고 다른 옷은 모두 허락하였다 혹은 여래가 비구들에게 옷이나 음식이나 침구 따위의 값이 금 10만 냥쯤 가는 것까지는 허락하였다 하고 혹은 허락하지 않았다 혹은 열반이 상락아정이라 하고 혹은 열반이라 함은 번뇌가 다한 것이요 다른 법이 없는 것을 열반이라 하니 마치 실을 짠 것이 옷인데 옷이 이미 해진 것을 이름하여 옷이 없다 할지언정 옷이 없다는 딴 법이 있는 것 아니니 열반 자체도 그러하다.
이런 때를 당해 나의 제자들도 바른 말 하는 이는 적고 삿된 말 하는 이가 많으며 정법을 받는 이는 적고 삿된 법 받는 이가 많으며 부처님 말을 받는 이는 적고 마군의 말을 받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 때 구담미국에 2제자 있으니 하나는 아라한이요 하나는 파계한 사람이다. 파계한 이 무리는 5백이요 아라한 무리는 1백이었다. 파계한 이가 여래는 끝까지 열반에 드는 것이니 나는 부처님께 이런 뜻을 친히 들었으며 여래가 마련한 4 중대법은 가져도 좋고 범해도 죄가 없으며 나도 지금 아라한과와 4무애지를 얻었으며 아라한도 이런 4중대법을 범하니 4 중대법이 만일 참말로 죄라면 아라한은 마침내 범하지 않을 것이나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 꼭 가지라 했지만 열반하실 적엔 모두 버렸다고 말했다.
그 때 아라한 비구가 장로여 당신은 여래께서 끝까지 열반에 든다고 말하지 마시오. 나는 여래가 항상해 변역하지 않는 줄 알며 세상에 계실 적에나 열반하신 뒤나 4중금을 범한 죄는 차별이 없으며 만일 아라한이 4중금을 범한다 말하는 것은 그럴 리가 없으니 왜냐 하면 수다원을 증득한 사람도 계율을 범하지 않거든 하물며 아라한이야. 장로가 아라한이라 말하거니 아라한은 마침내 내가 아라한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아라한은 선법만 말하고 악법은 말하지 않거늘 장로의 말은 모두 잘못된 법이니 12부경을 보면 장로가 아라한이 아님을 결정코 알 것이오 라고 했다.
그 때 파계 비구의 무리들이 달려들어 그 아라한을 죽이고 말았다. 이 때 마왕은 이 2무리들이 분노한 마음을 틈타 6백 비구들을 살해했으니 그 때 범부들은 각각 함께 말하기를 애달프다! 불법이 이제 없어진다 했으나 나의 정법은 진실로 멸하지 않았으니 이 때 그 나라에는 12만 보살들이 있어 나의 법을 잘 가졌는데 어째 나의 법이 멸한다 말하겠는가? 그 때 염부제 안에는 한 비구도 나의 제자가 없었고 이 때 파순은 큰 불로 모든 경전을 태워버렸으며 혹 남은 것은 바라문들이 훔쳐다 군데군데 뽑아서 자기들 경전에 써 넣었으니 그런 뜻으로 여러 작은 보살들이 부처님이 출현하기 전에는 모두 바라문의 말을 믿고 비록 우리에게 재계가 있다 말하나 외도들에게는 참으로 없는 것이며 외도들이 또 나이고 즐겁고 깨끗함이 있노라 말하거니 참으로 상락아정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고 불법에서 1자 2자 1구절 1구절 가져다 자기들 경전에 그런 이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때 구시나성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숭기 대중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세상이 비었다. 세상이 비었다 하거늘 가섭보살이 대중에게 그대들은 걱정하지 말고 울지 말라. 세상이 비지 않았다. 여래는 항상 계시어 변역하지 않으며 교법과 승가도 그렇다 했다. 대중들은 이 말을 듣고 통곡을 그치고 모두 삼보리심을 내었다.
이상 열반경 청정한 행6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