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달위

2007. 6. 9. 14:2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유식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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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달위 – <28송> 견도위. 수행 5위 중 첫번째로써 수행자가 수행 발심하여 유식성에 주하고자 분별 2집은 복단하였으나 아직 번뇌 종자를 단멸하지 못한 상태가 자량위고 발심을 더욱 가행하여 증진 수행하는 상태가 가행위라면 자량위에서 가행위에 이르러서도 진성을 통달하지 못하지만 세제일위에 이르러 비로소 망념의 구름이 걷혀 본래 존재하는 달을 볼 수 있으므로 견도위라고도 한다. 

 

若時於所緣에 智都無所得하면 爾時에 住唯識하나니 離二取相故이니라. 혹 어느 때 밖에서 오는 경계<소연>에도 도무지 얻을 바가 모두 없다면 그 때<통달위> 이르러 유식의 실성에 머무르게 된다. 2취상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중생은 항상 구한다 도도 구하고 진리도 구한다. 아와 법이 2취다.

  

煩惱障 – 자발적으로 오는 장애. 실아

所知障 – 밖으로부터 오는 장애. 실법

일체 事<사리>에 대한 일체 理<이치>에 대한 장애가 있으면 진여자리를 얻을 수 없다. 실제 이치 현실에 대해 막힘이 없어야 통달위다. 사람은 3가지 마음 의타기 변계소집 원성실성의 마음이 있다. 번뇌장은 변계소집성을 실아로 여기는 것으로 128번뇌를 일으킨다. 변계소집은 전부 번뇌다. 수행은 변계소집을 없애는 것이다. 수면 번뇌까지 따지면 번뇌는 수없이 많다.   

 

소지장은 변계소집성을 실법으로 여긴다. 실법으로 착각한다. 변계소집성을 여의니까 실아 실법이 아닌 것을 안다. 번뇌장 소지장이 없는 지혜라야 한다. 아와 법 어떤 것이 근본 지냐? 공한 자리가 지혜다. 아에 집착 않고 일체 사물에 물들지 않는 마음이면 바로 그 자리가 지다. 끊어졌기 때문에 구할 바가 없다.

 

수행처 조차도 마음으로 찾더라. 진실한 수행자는 거처가 없다. 분별지를 갖고 수행처를 찾으면 천하 명승지도 다 소용없는 짓이다. 어떤 경우를 만나도 경우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한테 좋은 경우만 오기 바란다. 무분별지는 아무리 나쁜 경우도 좋은 경우로 되돌릴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운명이 있다 만물의 주재자가 있다 생각하는 게 중생이다. 그런 마음으로는 유식에 들어올 수 없다. 모든 일은 하늘의 뜻이다? 유식을 하게 되면 설사 부처님 뜻이라도 맞지 않다. 오직 이 세상은 유식일 뿐이다. 이 것이 부처님이 가르치신 것이다. 일체유심조 일체는 오직 마음이 만들고 마음일 뿐이다. 내 업에 의해 내가 존재한다. 앞으론 내 업장 죽이는 일에 마음 써라.      

 

물고기 군상에선 사람이 아무리 좋은 물에 옮겨주려 해도 저 죽이는 줄 잘못 알고 안 잡히려 발버둥 친다. 부처님이 아무리 나타나 제도하려 해도 제 업이 안되면 지 스스로 도망간다. 내 스스로 업장을 소멸해야 한다. 천지우주 만법이 다 부처 아닌 게 어디 있나? 유식의 실성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전부가 마음 뿐이다. 인연 없는 사람은 모여도 묘하게 공통점 있는 사람들 끼리 모인다. 아무리 사람 많이 모아 놓고 갈라 놓아도 또 같은 사람 끼리 끼리 모여 같은 배 탄다. 이렇게 업이 중요하다.

이상 혜거스님 유식삼십송 통달위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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