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삼십송의 구성1

2007. 6. 9. 14: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유식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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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부처님 법은 무아를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과연 존재하는가? 중생들은 내가 존재한다 믿어 그 아를 편안하고 영원하게 하려는 데서 세상의 고통이 생기는 줄 잘 모른다. 부처님은 중생이 본래 없는 아에 집착해 허덕인다는 것을 아셨다. 일체 만법이 마음이라는 유심조는 아가 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아는 가립 가설이다. 가설아법이다. 애초 무아인데 아법을 세워 일체법을 만든다.

 

가설이란 무엇인가? 이 땅의 중심은 어디인가? 땅 덩어리 중심은 본래 아무 데도 없는데 그래도 어딘지 중심을 세워줘야 동서남북이 이뤄진다. 내가 서있는 이 곳이 중심이다. 본래 중심은 아니지만 이 자리가 중심이 되는 거다. 그 게 가설이다.

 

의식 말라식 아뢰야식 3식. 이 중 의식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사람은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은 작용하지 않는다. 눈 귀 코 5개 혹은 6개 인식기관이 동시에 작동할 수 있다. 정밀한 마음이다. 세속에서 이런 이를 천재라 한다. 하지만 불교에선 이런 사람을 가장 복잡한 사람의 두뇌로 본다. 눈으로 볼 때 귀도 같이 봐줘 눈 한 쪽으로 모아주고 집중하는 천재가 동시에 여러 감각기관을 움직이는 천재보다 낫다고 보는 것이다.

 

의식<안이비설신의6식>이 일시에 정지돼 있다면 죽은 사람이지 살았다 볼 수 없다. 유식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사람이 기절하거나 수술시 마취하면 의식이 정지된다. 그러면 죽어야 할텐데 다시 산다. 뭣 때문에 안 죽고 그런가? 의식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라식이 살아있다.

 

의식이 작용할 때 말라식 아뢰야식도 동시 작동하지만 말라식은 의식 없이도 혼자 작동한다. 말라식은 잠재능력과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다. 혼자서 공상하거나 화를 내고 원망한 결과를 말라식은 본다. 너 그런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고 꿈을 꾸면 정확히 현실적인 꿈을 꾼다. 그러나 혼자 공상 망상을 피우면 허망한 꿈이 된다. 꿈이라고 전부 예지적인 꿈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의미가 전혀 없는 환상적인 꿈도 있다.

 

의식 말라식은 죽으면 동시에 정지되고 아뢰야식만 남는다. 아뢰야식은 죽을 때 작동한다. 죽으며 남는 것은 아뢰야식 하나만 남는다. 죽기 직전의 의식+6.7식이 남긴 의식이 내생을 결정한다. 임종하는 순간 어떤 생각을 갖고 죽느냐가 어떻게 살았느냐 보다 더 중요하다. 아뢰야식의 심소는 觸 作意 受 想 思 5가지로 가장 심소가 적다. 좋다 나쁘다 담담하다 중 아뢰야식은 담담하다 하나 밖에 없다. 선악이 없이 받아들인다. 마치 거울이 대상이 아무리 흉측해도 그대로 비출 뿐인 것과 같다. 일체 절대 물들지 않는다. 사람은 선악이 있으면 취하고 버린다. 그러나 아뢰야식은 선악이 없으므로 본래 지혜 그대로다.

 

5송에서 말라식을 밝힌다. 말라식은 사량을 근본으로 한다. 사량으로 성상을 삼는다. 계속 궁리하고 계산한다. 유부<덮인다. 물든다> 말라식이 제일 끊기 어렵다. 수행자는 말라식의 사량분별이 끊어지면 공부 다 한 거다. 말라식은 5변행심소<촉 작의 수 상 사>에+ 4번뇌<我痴 我見 我慢 我愛>가 더한 것이다. 내버려야 될 탐진치 3독 근본이 바로 이 말라식에 들어있다. 뿌리 깊이 간직하고 있다. 6식에도 있지만 여기에 들어있다. 이 것이 나를 계속 잘못 태어나고 윤회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부처님이란 아뢰야식 이 마음만 가지신 분이다.                 

이상 혜거스님 유식삼십송 총정리1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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