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과 개화파7. 진보의 이념과 불교

2007. 6. 9. 14:4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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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국주의 2.합리주의 산업주의 3.진보의 이념과 불교

산업혁명:산업기술혁신<대량생산> – 생산성 향상<대량소비> 이 과정에서 이윤은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초래하고 소비위축으로 연결된다. 과잉상품 과잉자본은 시장을 제한-시장 해소 제국주의를 초래하며 산업주의가 결국 제국주의로 가게 된다.

 

제국주의<Imperialism> - 한 국가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타국을 은밀히 영향력 지배력을 행사. 경제 군사는 팽창주의 패권주의로 문화는 중화주의로 이어진다. 19C말 제국주의는 까놓고 경제 이득을 얻고 군사력을 행사하고 주권을 침탈하고 직접 지배한다. 공격적 개방성의 결과는 식민주의<Colonialism>다.

 

식민지 원료공급<공급지> - 지배국 상품생산<생산지> - 식민지 상품판매<소비지>=세계분할 세계분업  

근대의 특징은 합리성+기계성.

 

합리주의 - 세상은 이성과 합치되게 되어 있다. 내재되어 있다 - 이성신뢰

과학혁명 – 우주.자연 문제 이성이 해결 -  합리주의 – 과학

시민혁명 – 정치.사회 문제 이성이 해결 – 게몽주의

산업혁명 – 경제 생산 문제 이성이 해결 – 산업주의 – 기술

 

1.과학<science>는 라틴어로 scientia=관조적인 앎이며 그리스어로 theoria=이론활동 - 유용성 이전 2.기술<Technic>은 그리스어로 Techne=도구사용 라틴어로는 ars=능숙함 실천활동 – 유용성 지향    

합리주의 인간형<Homo sapiens>지혜인 이성인 – 산업주의 인간형<Homo faber> 도구인 생산인

 

1.이성 – 정신 – 인간 – 남성 – 산업<산업주의> – 문명<제국주의> – 서양중심 – 지배국

2.육체<감성.본능> - 물질 – 자연 – 여성 – 농업 – 야만 – 비서양 – 주변 – 식민지

합리주의 기본도식이다. 합리적 개방성 분할의 논리가 생산적 개방성으로 그리고 제국주의의 공격적 개방성으로 진화해 나간다. 지배의 논리로 가는 사이에 진보가 있다. 

 

진보<Progress=pro진+gradi보> -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의 향상운동. 하지만 진정한 뜻은 높은 단계에 의한 낮은 단계의 지배를 의미한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의 향상. 낮은 단계에 대한 높은 단계의 우위. 낮은 단계에 대한 높은 단계의 지배. 생산성 낮은 단계<농업국가>에서 생산성 높은 단계<산업국가>로 결국 제국주의로 발전. 여기서 진보의 무서움을 본다.

 

진보와 진화론의 결탁. 생물학적으로 보지 않는다. 적자생존 자연도태. 최적자<The fittest>. 적자는 현재 부강한 산업국가 부적자는 과거 안주하던 농업국가다. 도태된 자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우연히도 Darwin은 19C말 제국주의가 가장 왕성하던 때 사람이었다. 심지어 kipling은 지배는 백인의 사명이요 짐이라고까지 말했다.

 

진보를 잘 살펴보면 미래의 목표에 명분.기준을 정해 놓고 현재의 최적자 중심이 되어 과거의 무적자를 도태.지배한다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시간적이다. 과거 – 현재 - 미래로 시간은 직선 전진한다는 생각이 기독교의 시간관이다. 순환 회기가 불가능하다. 새로운 것의 출현만 있다. 진보다. 창조가 있으니 종말이 있다. 유시유종이다. 창조는 무<시간 시작>에서 유<시간 끝>이다. 최고 원인 그 이전 원인 없는 것이 無다. 신은 더불어 시간도 창조했다. 모순이다. 여기서 종말론을 삭제한다.       

 

기독교 시간관<有始有終>. 진보의 시간관<有始無終> 과거 현재 미래를 실체로 구분한다. 하지만 불교의 시간관<無始無終>은 과거 현재 미래를 비실체 공으로 본다. 최초의 시작은 자기 이전의 조건과 관계 맺지 않는다. 최후의 끝은 자기 이후의 조건과 관계 맺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는 연기를 통해 끝은 絶緣 자성은 없고 공하다 말한다. 연기의 Network를 따지다 보면 지친다. 그래서 이 쯤에서 끝낸다.

 

시간은 연속. 불연속<단절> - 단절이 없다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시간은 단절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항상 동일하게 불변하는 것은 없다. 常은 없다. 시간의 연속이 없다면 과거 현재 미래가 흐를 수 없다. 시간은 연속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절되서 멈춘 것<부단>이 아니다. 불교에서 시간은 不常不斷이다. 不常<연속>과 불연속의 중도과정으로 본다.

 

진보가 잘못돼 지배.종속이 된다. 이 과정에 자기중심이 무너진다. 모두 다 중심이 된다<공존.상생>     

이상 김종욱 교수 아편전쟁과 개화파7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