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과 개화파9 - 현대중국의 진로

2007. 6. 9. 14:4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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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중국 공산당 창당 80주년<1921년 창당>기념식. 중국 공산당 역사=중국 현대사. 창당 인원10명이 13억 중국을 통치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중국 공산당의 승리 요인 1.농민중시 2.중국 전통사상과 부합된 도덕중시 3.국민당 부패 4.러시아의 공산화로 인한 유리한 국제정세 5.제국주의에 대한 명확한 투쟁이론 확립이다.

 

국민당 기본정책=安內攘外 안내<내부안정.공산당토벌>양외<외적물리침.항일> 항일을 위해서는 우선 공산당의 토벌<내부의 안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당시 국민당의 정책.

 

대장정 - 당시 모택동은 국민당에 쫒겨 1만Km 10만 출발 7-8천명만 살아 남았다. 홍군은 장정이 펼쳐진 368일 동안 하루 한 번 꼴로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고 평균 130km를 행군한 후 한 번의 휴식을 취했다. 때로는 열흘 이상 풀뿌리와 날 음식만 먹었고 맨발로 만년설이 덮인 산맥을 넘었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대도하 전투.

 

서안사변<시안사건> - 1936년 12월 12일 공산군 토벌을 위해 서안에 주둔 중이던 장학량 휘하의 군대가 남경에서 공산당 토벌을 독촉하기 위해 온 장개석을 감금하고 국공내전의 정지와 거국일치에 의한 항일을 요구한 사건. 장학량 아버지 장작림은 만주 군벌의 우두머리였다. 기차 폭파로 죽자 일본은 자기 집안의 원수였다. 이런 가족사로 인해 중국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만약 이런 하극상 사건이 없었다면 오늘 중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제국주의 투쟁. 공격적 개방성. 팽창주의 – 폐쇄적. 방어적 폐쇄성. 자주 민족 지나치게 강조. 작금의 우리 정치현실과 그대로 닮아있다.

제국주의 Complex - 1.열등감 2.배타심<외압 강조. 민족 자주 주체를 내세우며 정권을 계속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 것만 강조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대약진운동 – 자본이 부족한 공업분야에 농촌의 잉여노동력을 투입시켜 공업생산력을 향상시키려는 운동. 결과는 대실패. 대표적 관료였던 유소기 장정에도 참여하고 군사적으로도 뛰어난 지도자였던 등소평이 실각하고 결국 모택동 비판으로 이어지자 사회주의가 성공했다 해도 계급은 존재한다. 그러니 계급투쟁은 계속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에 대한 동조로 친위 쿠데타가 일으킨 것이 문화 혁명이다.        

 

문화대혁명<1966-1976> - 표면상으로는 구사상 구문화의 타파와 신사상 신문화의 수립이 있지만 실제로는 유소기 등소평 등의 실용주의적 우파 타도와 모택동 4인방 등의 보수적 좌파 옹립에 초점이 맞춰진 혁명이다. 모택동이 죽고 나서야 이 혁명은 끝이 난다. 이 후 4인방 숙청.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 사회주의 사회의 근본임무는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며 경제와 문화가 낙후되어 있는 조건에서는 사회주의 건설이 매우 장기적인 초급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 또한 그 건설은 국가의 현실적 상황에 근거해 독자적인 길을 걷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이 걸어가야 하는 길은 상품경제와 시장경제의 발전에 있다는 말이다. 즉 기본적으로 사회주의를 견지하면서도 생산력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과감히 수용하겠다는 중국 특유의 중국적 사회주의라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교묘한 결합이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쥐는 생산력을 말한다. 경제체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택동시대<계급간 모순으로 봄. 과제=계급투쟁 경제=폐쇄적 계획경제>

등소평시대<인민의 욕구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으로 봄. 과제=경제발전 경제=개방적 시장경제>

 

사회주의 시장경제. 지구상에 중국이 최초로 실험하고 있다. 년간 10%씩 성장은 13억 인구를 감안할 때 어마어마한 것이다. 중국이 잘 살면 좋겠다. 중국은 일본과 다르다. 일본은 제국주의에 편승해 아시아 국가에 피해만 주었다. 중국의 경제발전은 향후 아무 문제 없이 지속될 수 있을까?

 

1.빈부격차 문제 – 공산국가에서 고소득층 20%가 국부의 42%를 점유. 동부해안은 서부내륙의 2배. 계층간 지역간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다.

2.부정부패 문제 – 1999년 13만건 8% 증가 수치 기록.

3.민족 문제 – 서장 티벳. 신강 위구르. 내몽고 몽고족. 동북 만주족. 광서 장족 5개 민족만 빼면 순수한 한족 중심의 중국은 형편없이 작아진다.

 

1.공산당 정체성 문제 – 사유기업 25%. 신흥자산가 부르주아 부의 독점 현상 재연. 사유 불평등을 묵인하고 있다. 공유 평등은 뒷전이다. 그 게 문제 있다고 나온 것이 공산당인데 그럼 그 게 과연 공산당이냐? 경제발전 위해 자본주의 도입해도 프롤레타리아 공산당이 집권하는 이상 문제 없다 반론한다. 결국 집권을 위해서냐? 인민을 위해서냐? 인민을 위해서라 답한다. 과연 그럴까? 연착륙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2.민주화 문제 – 생산력 발달<공산주의+자본주의> 생산성 향상이란 관점에서 보면 결국 이 2가지는 산업주의의 자식들 이란성 쌍생아다.

산업화=근대화=다양한 지식보급<사상적 개방성. 합리화>+권력 민주적 분산<제도적 개방성. 산업화>+생산력 향상<기술 개방성. 민주화> 중국의 선택 산업화만 한다. 이 것이 잘못됐다.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총체적 과정이다. 중국에 민주주의가 있나? 그러자 중국에도 중국적 민주주의 인민 민주주의가 있다 반론한다. 그 속엔 광대한 인민 노동자 농민 뿐만 아니라 지식인 자본가까지 다 들어 있다. 유일한 하나의 정당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것은 민주를 가장한 독재다. 다수의 정당 서양식 민주제인 다당제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자 반론한다. 다당제는 춘추전국. 위진남북조. 국민당 공산당. 북경정부 광동정부 시대를 보면 혼란 분열만 일으키니 일당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그 얘기는 절대주의 시대 때 얘기다.

 

과거 있었던 실패한 운동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양무운동은 민주제 도입 없이 산업기술만 도입하면 청조를 보존하고 서구와 대등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공산당도 민주화 없이 산업화만 이루면 공산당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중국 공산당이 양무적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병행해야 한다.

이상 김종욱 교수의 아편전쟁과 개화파9 현대중국의 진로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