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복식 불의 출현과 유행

2007. 6. 9. 14:5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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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복식 불의 – 긴 네모꼴 천으로 이뤄진 가사의 원뜻을 상실한 것이 아닌 다만 여기에 중국식 포복<곤룡포 형식의 의복>이 가지는 외형적 특징을 부여한 의복 표현.

 

운강 16동 본존 시무외 포복 불입상. 옷 주름이 수직으로 접혀 내림. 황제들 곤룡포 옷 주름이다. 당시 선비족 의복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족 흉내를 냈다. 치마 끈은 신대의 표현으로 가슴에 맺어져 배꼽 아래 허벅지 사이로 드리워져 있다. 머리 모양 오만자형 소용돌이. 부시고 다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주자학 이상은 조선에서 실현했다. 공산주의 이론은 독일에서 이상은 쏘련에서 실현되었다. 대개 이상은 발안한 국가에서 실현되지 않는다.

 

북위 도무제39살 명원제 32살 태무제 45세 은제24살 문성제 12살 등극 26살 죽었다. 황제들 모두 단명이다. 태무제가 제일 오래 살았다. 이 후 포복식 불의로 중국화 된 불상으로 통일된다.

 

자귀모사 제도 - 당시 황제 아들이 황태자가 되면 생모를 죽이는 고약한 제도가 있었다. 1대 도무제부터 7대 선무제까지 시행되었다. 대신 황태자를 키운 유모나 보모가 정치에 개입 섭정했다. 이 제도는 황태자를 조기 확정 제왕수업을 시키면 황제교체기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운강 16동 남벽면 창 동쪽<460-470년>여기선 이상하게 포복식 불의를 입고 있지 않다. 운강 7동 주실 서남쪽 모퉁이<466-471년>중앙 불상만 그렇게 표현했다. 본전불이 항시 먼저 만들어진다. 그래서 학자들은 중심불을 부수고 다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주장한다.

 

운강 7동 주실 동벽 5층 남쪽<466-471년> 운강 6동 남벽 중층 중앙 불감불좌상<476-483년> 운강 6동 중심방주 동면 하층 불감 미륵보살교각좌상. 476년 돌아간 헌문제 위한 불상. 운강 6동 중심방주 북면 하층 이불병좌상<460-470년> 운강 6동 중심반주 서면 하층 미륵불의 좌상<476-483년> 포복 삼존 불입상<476-483년>헌문제 어머니 굴. 영명원년명 무량수불좌상<483년>훨씬 정제되고 세련된 모습이다.

 

문성제 황후 문명태후 풍씨<442-499년>는 헌문제<465-471년>와 효문제<471-499년> 양대 걸쳐 대리청정을 하는데 그 사이 헌문제를 시해하는 대역을 저지른다. 이 후 포복식 불의는 전중국으로 확산되고 우리에게 전해져 삼국시대 조성되는 불상은 대부분 포복식 불상이다.

이상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포복식 불의 출현과 유행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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