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9. 16:4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대승기신론
聞思修 법을 듣고 핵심을 사유하고 그 핵심에 집중하는 것을 사마타라 한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허물이 있나요 없나요? 수미산. 그러면 한 물건도 갖고 오지 않았다는 데 뭘 버리라는 말이며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데 무슨 죄가 수미산 같다는 말인가요? 방하착.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그 생각도 버리라는 것이다. 수미산 방하착 이 때 핵심을 잡고 놓지 말라는 것이다<不忘>. 잊어버리지 않고 딱 집중하면 말과 생각 이 전 자리다.
법<진여 일심>은 말과 생각을 떠나 있다. 나중엔 사유라는 알음알이도 버리게 된다. 사유할래야 사유할 수 없는 곳까지 가게 된다. 과거불가득 현재불가득 미래불가득이 무상의 특징이다. 身受心法 몸 감각 마음 마음의 현상이 관찰의 대상이다. 이 것을 잘 관찰하면 무상 고 무아라는 삼법인이 나타나게 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상이다. 매 순간 바뀐다는 것이다. 변화요 움직임이다. 그래서 무상은 공이라 한다. 공은 불생불멸이다.
無常을 잘 관찰하면 무상 속에서 무아와 고를 다 발견할 수 있다. 매 순간 몸과 마음이 바뀌면 불만족스런 마음이 생기는데 그 마음이 바로 고다. 하지만 불만족스런 고통을 살펴보면 주체나 실체가 없는데 바로 그 것이 무아다. 무상을 관찰하면 의식이 깨어난다. 과거는 지나가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 없다. 마음이 과거로 미래로 가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이 아닌 것은 꿈 속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에 머물러 있는 마음은 의식의 깨어남이며 깨달음이다.
선정을 하면 마장이 생기지만 지혜를 추구하면 마장이 없다. 왜 그럴까? 지혜는 모른 채 기도만 죽어라 한 사람에게 마장이 든다. 기도만 하면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다. 기도는 수행이 아니다. 기도를 마치 수행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행자는 마장이 들면 어 이 것 봐라? 바로 알고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사구게를 사유한다. 의식이 깨면 속에 든 놈이 견디지 못하고 나간다. 의식이 깨면 미혹이 사라진다. 지혜를 개발하면 마장이 붙질 못한다. 그래서 사마타에서 귀신 얘길 하지 위파사나에서는 안 한다.
의식이 고도로 정화되면 거울 같이 반사하는 능력을 갖는다. 드러난 세계는 상이 없고 실체가 없다. 의식은 움직이지 않는다.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입체적으로 같이 드러난다. 안과 밖이 동시에 관찰 된다. 의식의 지평이 점점 넓어진다. 빛이 비추며 바다 속 만상이 드러나는 海印三昧가 된다. 전체 연기적 상호관계가 시간과 함께 동시에 드러난다. 이 정도 가야 동정일여 꿈 속에 이뤄지면 몽정일여 깊은 잠 속에 이뤄지면 숙면일여다. 그 때야 자아가 없어지고 말라식의 악은 사라진다.
세간의 모든 몸뚱이가 깨끗하지 못하고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 차 즐거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탐심이 많은 사람은 부정관 성 잘 내는 사람은 자비관 산란심이 많은 사람은 수식관 자아심이 많은 사람은 계분별관 어리석은 사람은 연기관을 한다. 18분별<6근6경6집>. 분별해 보면 대상에도 자아가 없고 의지하는 눈에도 자아가 없고 시각에도 자아가 없음을 안다. 하루 1분이라도 호흡관찰에 집중하면 산란심이 사라진다. 탐심 중에도 음욕심이 많은 사람이
123강. 이상 지운스님 지관의 이익3<대승기신론> 강론 중에서
위파사나 관의 수행조건.
위파사나 수행은 사마타와 달리 혼자 하기 힘들다. 그래서 1.선지식에 의지해야 한다<1.다문. 불법을 많이 아는 자 2.그 자신을 아주 명확하게 표현하는 자. 말 솜씨가 있는 사람 3.연민을 가지고 있는 자. 선지식의 가장 큰 덕목이다. 자비심이 없는 사람은 가까이 하면 안 된다 4.역경을 견딜 수 있는 자>
2.상세한 가르침을 진중하게 탐구할 줄 알아야 한다<올바른 사유> 가르침에도 2종류의 가르침이 있다. 요의와 불요의. 완전한 뜻이 드러난 가르침이 요의다. 뜻이 불분명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이 가능한 것이 불요의다. 요의에 의한 가르침이 되야 한다.
3.고기 먹는 것을 절제하며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삼가 해야 한다. 자기를 위해 죽였다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특히 발굽 있는 동물. 남방에선 공양만 먹는다. 고기를 먹는 짓은 자비의 종자를 끊는 일이기 때문에 보리심이 일지 않는다. 고기 맛을 즐기게 되면 결국 살아 있는 것까지 잡아 먹게 된다.
법상관은 법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법상관도 2방법이 있다. 법에 의지하는<依法> 관과 법을 의지하지 않는<不依法> 관이 있다. 무상 고 무아 삼법인 혹은 부정관 같은 법에 의지하지 않고 가르쳐주는 대로 수행하는 것이 남방의 불의법 관이다. 법에 대해 사유하는 것은 의법 관이다.
聞思修 법을 듣는 것도 지혜를 개발하는 방법이다. 법문 듣는 것 자체가 위파사나다. 법을 듣고 비판적 혹은 관조적 사유를 하면서 확실하게 법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한다. 사유엔 能正思擇 最極思擇 周徧尋思 周徧思察이 있다. 바르게 사유해 결택한다. 뭘? 현상계에 대한 연기와 무상을. 최극심사 아주 세밀하게 사유한다. 뭘? 본질인 무아와 공을. 주변을 두루 심사하고 세밀하게 관찰한다. 늙고 죽는 걸 좋아할 사람이 있나? 대신 늙고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늙고 죽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탐욕이고 늙는 것도 죽는 것도 다 싫다는 것은 번뇌다.
이 때 무상이란 진리를 가져와 사유하는 것이다. 아 내가 괜히 늙음과 죽음을 싫어했구나. 알고 보니 늙음과 죽음은 번뇌구나! 영원히 살고 싶은 데 그 것이 탐욕이고 싫어하는 것은 성냄인 것을 알았다. 늙음도 죽음도 실체가 없고 無我 공이로구나 하고 아는 것이다. 이렇게 사유를 통해서 의식이 깨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사유가 수행이 되는 것이고 이 것이 바로 위파사나다.
修 닦는 것은 왜 닦나? 내가 사유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진아 자아 또는 신에 대해 사유해 보면 있는 것 같다. 다들 있다니까. 그럼 확인해 보자. 수행해 보니까 절대 타자로서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매 순간 바뀌어가는 것이 진실이고 실체도 없고 자아도 없는 것이 진실인데. 그러니 진아도 없다. 진아 자아를 주장하고 신을 주장하는 것은 번뇌구나 하고 확인되는 것이다. 聞思修는 수행의 삼박자다.
122강. 이상 지운스님 지관의 이익2<대승기신론> 강론 중에서
'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 > 대승기신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1 장 인연분(因緣分) (0) | 2007.06.15 |
---|---|
공부할 때 일어나는 마구니 장애14 (0) | 2007.06.09 |
관을 닦는 방법 (0) | 2007.06.09 |
지와 관은 함께 수행해야 함을 밝힘 (0) | 2007.06.09 |
수행자가 도에서 물러나지 않는 방편을 보여줌 (0) | 2007.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