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인연분(因緣分)

2007. 6. 15. 08:5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대승기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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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인연분(因緣分)
 
제 1 절 본론 저술의 여덟 가지 인연
제 2 절 본론 저술의 특수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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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절 본론 저술의 여덟 가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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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說 因緣分.
問曰, 有何因緣而造此論. 答曰, 是因緣有八種. 云何爲八. 一者 因緣總相. 所謂爲令衆生離一切苦, 得究竟樂. 非求世間名利恭敬故. 二者 爲欲解釋如來根本之義, 令諸衆生正解不謬故. 三者 爲令善根成熟衆生, 於摩訶衍法, 堪任不退信故.
四者 爲令善根微少衆生, 修習信心故. 五者 爲示方便消惡業障, 善護其心, 遠離癡慢, 出邪網故. 六者 爲示修習止觀, 對治凡夫二乘心過故. 七者 爲示專念方便, 生於佛前, 必定不退信心故. 八者 爲示利益, 勸修行故. 有如是等因緣, 所以造論.』
(초설 인연분. 문왈, 유하인연이조차론. 답왈, 시인연유팔종. 운하위팔. 일자 인연총상. 소위위령중생리일체고, 득구경락. 비구세간명리공경고. 이자 위욕해석여래근본지의, 령제중생정해불류고. 삼자 위령선근성숙중생, 어마하연법, 감임불퇴신고. 사자 위령선근미소중생, 수습신심고. 오자 위시방편소악업장, 선호기심, 원리치만, 출사망고. 육자 위시수습지관, 대치범부이승심과고. 칠자 위시전렴방편, 생어불전, 필정불퇴신심고. 팔자 위시이익, 권수행고. 유여시등인연, 소이조론.)

『 먼저 인연분을 설한다. 물어 말하기를, 무슨 인연 있어 이 논을 짓는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이 인연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 (1)는, 인연의 총상(總相)이다.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의 고(苦)를 떠 나 구경락(究竟樂)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세간(世間)의 명리(名利)나 공경(恭 敬)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2)는, 여래의 근본 뜻을 해석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바르게 이해토록 하여 오류가 없도록 하고자 함이다.
셋째 (3)는, 선근(善根)이 성숙된 중생으로 하여금, 마하연(摩訶衍,Mah y na)의 법[大乘法]에 있어, 물러서지 않는 믿음[不退信]을 견디어 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넷째 (4)는, 선근(善根)이 미소(微少)한 중생으로 하여금 신심을 닦아 익히도록[修 習]하기 위함이다.
다섯째(5)는 방편을 나타내어, 악업(惡業)의 장애를 소멸시키고, 그 마음을 잘 지 켜, 치만(癡慢)을 멀리 떠나게 하여, 사망(邪網)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함 이다.
여섯째(6)는, 지관(止觀)을 수습(修習)하는 것을 나타내 보여, 범부(凡夫)와 이승(二 乘)의 마음의 과오를, 바로 잡도록[對治] 하기 위함이다.
일곱째(7)는 전념(專念)의 방편을 나타내 보여, 불전(佛前)에 왕생하여, 반드시 물 러섬이 없는 신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덟째(8)는, 이익(利益)을 표시하여, 수행을 권유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인연(因緣) 등이 있어 이 논술을 짓는 것이다. 』

『 First explanation is the reason for writing this treatise.
What is the reason for this writing ? There are eight reasons. What are the eight?
(1) In General, it is to induce all living beings to liberate themselves from all the sufferings and to obtain the highest happiness. It is not for seeking the transient fame, profit and reverence of this world.
(2) It is to make clear the fundamental doctrines of the Buddha and to lead all living beings to the right comprehension without any error.
(3) It is to enable those who already have excellent good character and faith to have deeper faith in great truth (Mahayana) without retreating.
(4) It is to enable those who have very little good character and faith to cultivate the faithful mind.
(5) It is to indicate how to remove evil hindrances and to protect the mind
well, to keep out of stupid pride, and to extricate themselves from the evil view
(6) It is to show how to study tranquilization and clear observation of truth, and to correct the error in the mind of both the ordinary ones and the two kind of lower schools (H nayana).
(7) It is to indicate the easier way to the pure land by blessing the Buddha and never to loose the faith of the great truth.
(8) It is to disclose the benefits of this faith and to exhort them to participate in it and practise it. These are the reason for Writing this treatise. 』

起信論 짓는이유 여덟가지 무엇인가
중생의 일체고통 모두함께 벗어나서
마침내 즐거움만 가득차게 하고플뿐
세간의 명예이익 구하는게 아니라네

如來의 근본뜻을 중생들이 바로알아
그릇된 온갖견해 고치도록 하고싶고
善根이 많은중생 더욱더욱 가르쳐서
信心을 깊게하여 후퇴않게 하고싶네

선근이 적은중생 신심까지 미약하니
바른법 가르쳐서 신심닦게 하고싶고
惡業의 중생들엔 모든방편 가르쳐서
業障등 삿된그물 벗겨지게 하고싶네

범부와 二乘에겐 止觀法을 수습시켜
그들의 그릇수행 깨우치게 하고싶고
根機는 낮지마는 惡業障碍 없는분껜
念佛의 방편일러 극락왕생 하게하네

위대한 우리마음 大乘임을 믿는다면
큰이익 거기있어 믿는이께 돌아가니
일심의 대승진리 부지런히 닦게하여
일체의 그이익을 그들에게 회향하오

이글을 짓는것은 그와같은 이유지만
모든것 경전속에 이미설해 있는데도
어찌해 거듭하여 이글지어 설하는가
특별한 다른목적 있다면은 무엇인가


『해 설』
인연분은 이 기신론(起信論)을 저술하는 인연 즉 그 이유를 밝히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그 이유를 여덟 가지로 들고 있는데, 그 첫째는 총괄적 의미로서의 이유를 밝히고 있으며, 둘째 이하는 이 논의 각 부분에 대한 논술(論述)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 기신론은 신근(信根)이 확립되지 않은 사람이나 신근이 확립된 사람, 총명한 사람이나, 아둔한 사람,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 모두를 위하여 저술하였다고 볼 수가 있다.

물어 말하기를「무슨 인연으로 이 논을 지어 쓰는가」, 대답하여 말하기를「그 이유는 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 이유이다. 「모든 중생에게 일체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여, 성불(成佛) 해탈(解脫)하여 열반(涅槃)의 즐거움이라고 하는 궁극적 안락을 얻게 하려고 하는 마음에서 저술하였으며, 저자가 세간의 명예나 이익, 존경을 바라고 이 논문을 저술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둘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인간 심성(心性)에 대한 불타의 근본적 교의(敎義), 다시 말하면 일심(一心 : 중생심) 이문(二門 : 심진여문, 심생멸문) 삼대(三大 : 體相用) 또는 여래장(如來藏)등의 참뜻을 명백히 밝혀 모든 사람에게 올바른 이해에 이르게 하여, 착오나 오해(誤解)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본론 가운데 제2장의「입의분(立義分)」과 제3장의「해석분」중「현시정의(顯示正義)」와「대치사집(對治邪執)」을 설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이 부분은 본론의 중심으로서 신심이 확립된 중생을 대상으로 한다.
셋째 이유는, 선근(善根) 즉 선을 행할 힘이 성숙된 중생에 대하여 대승(大乘)의 법(法) 즉 일심·여래장(一心·如來藏)등 인간 심성의 위대성에 대하여 이해를 깊게 하여 불퇴전(不退轉)의 신심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이 부분은「해석분」중「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 부분을 설하는 이유이다.
넷째 이유는, 선근(善根)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심(信心)도 미약한 사람에 대하여,「여래장」에 대한 신심을 강화하는 수행(修行)을 시키고자 하기 위함이다. 이 부분은 제 4장「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중 최초의「네 가지 신심 (四信)」을 설하는 부분과「수행오문(修行五門)을 설한 부분중 시(施), 계(戒), 인(忍), 진(進) 등 최초의 사문(四門)을 설한 부분의 이유를 나타낸다.
다섯째의 이유는, 수행 미숙(修行 未熟)의 중생 가운데에서도, 특히 악업(惡業)의 장애가 무거운 사람[無善根]에게는, 불타를 예배하고 지성으로 참회하는 방법을

가르쳐, 악의 업장을 지우고, 그들의 신심을 지켜, 우치(愚癡)한 마음과 자만심을 제거하여, 사견(邪見)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이 부분은「수행신심분」중 수행의 사문(四門)을 설한 최후의 결말 문장[障碍를 제거하는 방편]을 설하는 이유이다.
여섯째 이유는, 총명한 이근(利根)의 사람들에게 선정(禪定)하는 마음의 지(止)와 그 안정된 마음에서의 진리의 관찰을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쳐, 범부(凡夫)와 이승(二乘)의 잘못을, 다시 말하면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버리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수행의 오문(五門)」중 최후의 지관문(止觀門)을 수습(修習)하도록 하는 것을 설하는 이유로 삼고 있다.
일곱째 이유는, 아둔한 열근기(劣根機)의 사람 가운데에서도, 상품(上品)의 사람들은 자력으로 깨달을 이근(利根)은 없으나, 악의 업장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애당초 아미타불을 전념(專念)하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방편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아미타불(阿彌陀佛) 앞에 반드시 태어나, 구원받는 몸이 된다는 것을 확신시켜, 물러서지 않는 신심을 획득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부분은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중 최후의 염불왕생(念佛往生), 불퇴방편(不退方便) 부분을 설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여덟 번째의 이유는, 이 대승의 법[一心 : 인간 심성의 위대성]을 믿으면, 그에 따른 이익이 광대함을 표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수행을 권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 5장「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을 설하는 이유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이 논을 저술하는 것이지만 이는 본론을 저술하는 이유를 열거함과 동시에, 뒤에 계속되는 논설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제 2 절 본론 저술의 특수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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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曰, 修多羅中具有此法, 何須重說. 答曰, 修多羅中, 雖有此法, 以衆生根行不等, 受解緣別. 所謂, 如來在世, 衆生利根, 能說之人, 色心業勝, 圓音一演, 異類等解, 則不須論. 若如來滅後, 或有衆生能以自力廣聞而取解者. 或有衆生, 亦以自力少聞而多解者. 或有衆生無自心力, 因於廣論, 而得解者. 自有衆生復以廣論文多爲煩, 心樂總持少文而攝多義能取解者. 如是, 此論爲欲總攝如來廣大深法無邊義. 故應說此論.』
(문왈, 수다라중구유차법, 하수중설. 답왈, 수다라중, 수유차법, 이중생근행부등, 수해연별. 소위, 여래재세, 중생이근, 능설지인, 색심업승, 원음일연, 이류등해, 즉불수론. 약여래멸후, 혹유중생능이자력광문이취해자. 혹유중생, 역이자력소문이다해자. 혹유중생무자심력, 인어광론, 이득해자. 자유중생부이광론문다위번, 심락총지소문이섭다의능취해자. 여시, 차론위욕총섭여래광대심법무변의. 고응설차론.)

『 물어 말하기를, 수다라 중에는 이 법이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하여 거듭 설하는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수다라 중에는, 이 법이 있을지라도, 중생의 근(根)과 행(行)이 같지 아니하여, 받아 해득하는 연(緣)이 달라서 이다. 이른바 여래(如來)재세시에는, 중생은 이근(利根)으로서, 능히 설하는 사람은, 색심(色心)의 업(業)이 뛰어나고, 원음(圓音)하나로 연설하면, 서로 다른 사람(異類)이 동등하게 해득하여 곧 논(論)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여래가 멸한 뒤에는, 어떤 중생은 능히 자력으로 널리 들어 해득하는 사람이 있다. 혹은 어떤 중생은 역시 자력으로서 조금 들고서도 많이 해득하는 사람이 있다. 혹은 어떤 중생은 스스로의 심력(心力)이 없어, 광론(廣論)을 의지하여, 해득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중생 또한 광론(廣論)의 글이 많다고 번거로워 하여 다 갖춘(總持) 적은 글이지만 많은 뜻을 간직한 것을 마음으로 즐겨 능히 해득하는 사람이 있다.
이와 같아서, 이 논(論)은 여래의 광대하고 깊은 법의 끝이 없는 뜻을 모두 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응하여 이 논을 설하는 것이다. 』

『 Question : These doctrines have already been explained in the Sutras. Then what is the reason for writing these here again?
Answer : Although these doctrines have already been expounded fully in the Sutras, yet the abilities and attainments of the living beings are not the same, and the reception and the comprehension are different. When the Buddha was in this world, he had the abilities. Exalted Buddha, his body and mind were so superior and his perfect words, when uttered, were understood by all, though different kind of capacities, and further explanation was unnecessary.
However, after the Buddha's death,
(1) There are some who possess the unaided power of understanding the profundities of the sacred scripture after widely reading and studying it.
(2) There are others who have the unaided power of understanding the sacred scripture after only hearing a little of it.
(3) There are also someone who do not have sufficient intelligence to understand the scriptures unless assisted by extensive commentaries.
(4) There are others again who dislike voluminous writings and prefer a concentrated form which embraces plentiful principles, and which they are able to easily comprehend. Thus this treatise is written for the last class of people who desire to know all the principles and doctrines of the Enlightened one. 』

그렇다 모든법이 경전속에 실려있네
그러나 중생들은 그뿌리가 같지않아
같은것 설하여도 이해함이 다르거늘
여래가 없는지금 根機따라 설함이네

여래가 계실때는 중생들도 똑똑하고
여래의 한목소리 뛰어나게 설법하니
모두가 이해하여 오해함이 없었지만
부처님 涅槃하셔 중생근기 달라졌네

근기도 다르지만 듣는인연 또한달라
경전을 공부하여 이해한이 있는한편
경전을 주석하여 지은글이 필요한이
이들의 근기찾아 이논서를 짓는다네

스스로 경전찾고 넓은經法 듣고배워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는 이도있고
조금만 經法듣고 많은내용 이해한이
이들의 두부류는 경전으로 공부하나

어떤이 자력으로 경전공부 힘이들어
수많은 논서보고 부처님법 이해하나
그마저 문장길어 괴롭다는 사람위해
간단한 문장으로 이글지어 내놓았네

이글은 간단하고 문장또한 짧지마는
그속엔 깊고넓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가없는 의미들이 가득가득 담겼으니
이들의 원에따라 지금이글 지었노라

『해 설』
이상에서 이 논을 짓는 여덟 가지 이유를 표시하였으나, 다시 본론의 특색인「짧은 글(論)속에 많은 의미를 포함한」점을 문답(問答)체로 밝히고 있다.
물어 말하기를「불타가 설한 경전(수다라 S tra의 음역) 가운데에는 이 논이 설하고 있는 법(法) 즉 여래장설등 모두 설해져 있다. 그럼에도 왜 다시 설하려 하는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확실히 여래가 설한 경전 속에는 모두 이 법이 설하여져 있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는 중생의 근기(根機)에는, 이둔(利鈍)의 구별이 있고, 수행 방법도 각기 차이가 있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누구로부터 받는가의 기연(機緣) 또한 같지가 않다. 수행자의 희망이나 기호도 각기 다르다.
따라서 설하는 내용은 같으나, 설하는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석가세존 재세시에는, 중생의 능력과 소질도 뛰어났으며, 거기에다가 설법자는 불타이고, 가르침을 설하는 여래의 신체나 마음의 활동이 뛰어나, 불타의 완전한 설법이 한 번 이루어지면 한 목소리(圓音)로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동일하게 해득하였기 때문에, 한번의 가르침으로 그 이상 논을 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여래의 열반 후에는, 근기가 뛰어난 사람[利根]도 있지만, 근기가 낮은 둔근(鈍根)의 사람도 있다.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는가의 수해(受解)의 연(緣)도 모두 뒤떨어진다. 그러므로, 그에 따르기 위한 경(經)과 논(論)도 다함께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네 종류 사람으로 구별할 수가 있다.
그 첫 번째(1) 사람은, 자력으로 널리 경전에 있는 법을 듣고 연구하여, 불타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사람이고,
두 번째(2)는 동일하게 자력으로 이해하는 사람이지만, 조금만 경정의 법을 들어도 거기에서 많은 뜻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경(經)에 의하여 가르침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3)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경전을 자력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이 주석해 놓은 논(論)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사람은 여러 논문을 연구하여 불법을 이해하는 사람이고,
(4) 또한 다른 사람들은, 여러 논문의 문장이 너무 길고 번잡하여,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 있어, 문장이 간단하고 내용이 풍부한 논문으로 불법을 이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 기신론은 짧은 논문으로서 글귀가 적지만, 여래의 광대미묘한 교법(敎法)의 여러 가지 의미가 총망라되어 있어 마지막 부류인 네 번째(4) 근기의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을 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