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2)

2007. 6. 15. 08:5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대승기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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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관문(止觀門)

1. 지(止)에 대하여 
(1) 수지(修止)의 방법
(2) 지(止)의 승능(勝能)
(3) 지(止)의 마사(魔事)
(4) 외도(外道)의 삼매(三昧)와 참삼매의 차이
(5) 수지(修止)의 이익


§ 2. 지관문(止觀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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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云何修行止觀門. 所言止者, 謂止一切境界相. 隨順奢摩他觀義故. 所言觀者, 謂分別因緣生滅相. 隨順毗鉢舍那觀義故. 云何隨順. 以此二義漸漸修習, 不相捨離, 雙現前故.』
(운하수행지관문. 소언지자, 위지일체경계상. 수순사마타관의고. 소언관자, 위분별인연생멸상. 수순비발사나관의고. 운하수순. 이차이의점점수습, 불상사리, 쌍현전고.)

『 어떻게 지관문을 수행하는가.
말하는바 지(止)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경계상을 멈추는 것을 말한다. 사마타관에 수순하는 뜻이기 때문이다.
말하는바 관(觀)이라고 하는 것은, 인연생멸상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비파사나관에 수순하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수순하는가. 이 두 가지 뜻은 점점 수습하면 서로 사리(捨離)되지 아니하고 나란히 현전(現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 How should one practice the stage of tranquilization and clear observation of true mind? We say that tranquilization is to make cessation of the mind against all external objects. We say that clear observation is to observe clearly the original state of phenomenal cause and conditions.
How are these to be followed? These two aspects of tranquilization and clear observation can not be separated even if they are practiced each other because if someone practices them gradually, both of them will come out at the same time to him. 』

止와觀 그의미는 禪과般若 같음이니
止로서 마음멈춰 자기마음 통일하고
觀으로 生滅이치 관찰하여 알아내니
두뜻이 통합되어 모든지혜 완성되네

일체의 모든경계 止를하면 멈춰지고
인연의 생멸상도 관찰하여 알게되니
두가지 止觀門을 차근차근 수습하면
서로가 합쳐져서 하나되어 나타나네

『해 설』
이상에서 수행오문(修行五門) 중 시(施), 계(戒), 인(忍), 진(進)의 네 가지 수행방법을 제시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내면적 수행인 지관문(止觀門)에 대하여 설하는 것이다. 지관문은 욱바라밀(六波羅蜜) 중 선(禪)바라밀과 반야(般若)바라밀과 같은 것으로서, 여기서는 지관문으로 이를 통합하고 있다.

지(止)는 마음을 멈추는 것으로서, 마음의 통일 즉 선(禪)에 해당되고, 관(觀)은 혜(慧)의 성격이 있으나, 관(觀)에도 마음을 집중하는 성격이 있으므로, 이 둘을 기계적으로 선(禪)과 혜(慧)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본론은「지관문(止觀門)을 어떻게 수행하는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지(止)는 일체의 경계상(境界相)을 멈추는 것」이라고 설한다. 일체의 경계상은 우리 범부에 있어 망분별(妄分別)이다. 이 망분별로 인하여 일체의 외계가 그대로 실재한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객관적 존재인 외계는 모두가 유심소작(唯心所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망심으로 보는 외계의 상을 떠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止)이다. 객관을 떠나면 주관의 망분별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본문에 지(止)라고 하는 것은「샤마타관(奢摩他觀)에 수순하는 뜻」이라고 설하고 있다. 이는 본래 샤마타관의 방법을 따라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샤마타(S matha)는 지(止)의 원어로서, 한문 사마타(奢摩他)는 그 원어의 음역이다.
신역에는 샤마타라는 원어(原語)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지(止)라고 의역(意譯)하여「이것은 지(止)의 뜻이다(是止義).」라고 간단히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止)는 샤마타관에「수순한다」고 수순(隨順)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지(止)만으로는 불완전하고 관(觀)과 함께 할 때만이 각각의 힘을 발휘할 수가 있는 것이므로「수순한다」고 말한 것이라고 법장의 의기(義記)에서 밝히고 있다.
다음 관(觀)은「인연생멸(因緣生滅)의 상(相)을 분별하여 비파사나(毗針舍那)관에 수순하는 뜻」이라고 설한다.
비파사나는 원어 "비파슈야나(Vipa yana)"를 음역한 것으로서 관(觀), 혜(慧), 정견(定見) 등으로 번역된다. 법상(法相)을 관찰하는 것이다.
인연생멸(因緣生滅)이라 함은 생멸문에서 제법의 생멸을 관찰하는 것이다. 법의 시간적 존재는 생멸이다. 그러나 그 생멸에는 연기(緣起)의 이법(理法)이 관통하고 있으므로 제법의 생멸속에서 연기의 이치를 보는 것이며, 이것을 인연생멸의 상(相)이라 하는 것이다. 인연의 상을 분별한다는「분별(分別)」은 여기서 망분별(妄分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나누어 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비파사나관에 수순한다」는 것은 관(觀)의 본 뜻에 수순한다는 것으로서, 인연생멸의 상을 분별하는 것이며,「수순」이라는 용어 역시 지(止)와 함께 할 때만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므로 수순(隨順)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관(觀)의 깊은 곳에는 지(止)가 있다. 지(止)는 일체의 산란한 생각을 멈추고 일체는 바로 진여(眞如)라는 이치에 도달하는 것이다. 지(止)는 진여문에서 모든 경계의 상을 멈추고 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에 이르는 것이다. 이 근본무분별지 속에서 생멸의 상을 분별하는 이치를 아는 것이 바로 관(觀)이다.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은 일심(一心)의 양면이므로 숙달되면 지(止)와 관(觀)은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본론에서는 이를「수순」이라 설명하고, 이 두 가지 뜻을 점점 닦아 나아가면 서로 떨어져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止)는 육바라밀에서 정(定)에 해당되고 관(觀)은 혜(慧)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정(定)도 지관(止觀)에 통하고 혜(慧) 또한 지관에 통하는 것이므로, 이를 본론에서는 나누지 아니하고 통합하여 지관(止觀)을 설하는 것이다.
이를 달리 설명하면, 지관문(止觀門)은 지(止)와 관(觀)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止)는 일체의 어지러운 생각을 멈추고 마음이 적정(寂靜)에 귀일하는 것이며, 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를 얻는 인(因)이 된다. 이것에 의하여 진여문(眞如門)에 들어가는 것이다. 관(觀)은 진리를 관찰하는 것으로서 생멸문(生滅門)에 들어가는 지(智)로서 후득지(後得智)를 얻는 인(因)이 된다.

이상은 지관문(止觀門)을 총체적으로 설한 것이며 이하에서는 지(止)와 관(觀)을 각각 나누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1. 지(止)에 대하여

(1) 수지(修止)의 방법

『若修止者, 住於靜處, 端坐正意, 不依氣息, 不依形色, 不依於空, 不依地水火風, 乃至, 不依見聞覺知. 一切諸想隨念皆除, 亦遺除想. 以一切法本來無相, 念念不生, 念念不滅. 亦不得, 隨心外念境界後以心除心. 心若馳散, 卽當攝來, 住於正念. 是正念者, 當知, 唯心無外境界. 卽復此心亦無自相, 念念不可得. 若從坐起, 去來進止有所施作, 於一切時常念方便, 隨順觀察. 久習淳熟, 其心得住. 以心住故, 漸漸猛利, 隨順得入眞如三昧, 深伏煩惱, 信心增長, 速成不退. 唯除疑惑, 不信, 誹謗, 重罪業障, 我慢, 懈怠. 如是等人, 所不能入.』
(약수지자, 주어정처, 단좌정의, 불의기식, 불의형색, 불의어공, 불의지수화풍, 내지, 불의견문각지. 일체제상수념개제, 역유제상. 이일체법본래무상, 염념불생, 염념불멸. 역불득, 수심외념경계후이심제심. 심약치산, 즉당섭래, 주어정념. 시정념자, 당지, 유심무외경계. 즉부차심역무자상, 염념불가득. 약종좌기, 거래진지유소시작, 어일체시상념방편, 수순관찰. 구습순숙, 기심득주. 이심주고, 점점맹리, 수순득입진여삼매, 심복번뇌, 신심증장, 속성불퇴. 유제의혹, 불신, 비방, 중죄업장, 아만, 해태. 여시등인, 소불능입.)
『 만약 지(止)를 닦는 자는 고요한 곳에 머물며, 단정히 앉아 뜻을 바르게 하고 기식(氣息)에 의하지 아니하고 형색(形色)에 의하지 아니하고, 공(空)에도 의하지 아니하며, 지수화풍(地水火風)에도 의하지 아니하며, 내지 견문각지(見聞覺智)에도 의하는 것이 아니다. 일체의 제상(諸想)을 염(念) 따라 모두 제거하고, 역시 상(想)을 버리는 것도 버리는 것이다. 일체법은 본래 무상(無相)으로서 염념으로 불생이고, 염념으로 불멸이다. 역시 마음 밖을 따라 경계를 염하면, 후에 마음으로서 마음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치산(馳散)해지면, 바로 마땅히 가다듬어, 정념에 주(住)하게 하는 것이다. 이 정념이라 함은, 마땅히 알지어다, 오직 마음이오, 밖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즉 또한 이 마음은 역시 자상(自相)이 없어, 염념으로 불가득(不可得)인 것이다.
만약 자리에서 일어나 거래진지(去來進止)의 시작(施作)하는 바 있다면, 일체시에 있어, 항상 방편임을 염하고, 수순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오래 익히어 순숙(淳熟)하면 그 마음은 득주(得住)한다. 마음이 주(住)하는 것이기 때문에, 점점 맹리(猛利)해져서, 수순하여 진여삼매에 들어갈 수 있어, 깊이 번뇌를 굴복시켜, 신심을 증장시키고, 속히 불퇴(不退)를 이룬다. 오직 의혹, 불신, 비방, 중죄업장, 아만 및 해태가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

『 Those who would practice the tranquilization should seek a quiet place, sit correctly with the correct mind. It is neither by breathing exercises nor by concentrating the mind on forms or colors, nor on the emptiness of space, nor on the four elements of earth, water, fire and wind, nor on the knowledge which may be experienced by the senses. All the false imaginations should be eliminated at that very moment and even the conception of eliminating them should also be excluded. Substance of all things are originally no false state, therefore it is not to arise or cease at that very moment. False conception caused by external objects should be eliminated in advance, otherwise the conception of the mind can not be eliminated by true mind after. If the mind is distracted by external attachment, it should be brought back immediately into its correct conception. The correct conception is to understand that external existence is not real. It is merely made by false mind. However this mind does not have any form itself. Nobody catches the true mind with false conception. Even if somebody have risen from the sitting place, whether in going out or coming in or advancing or standing still, or any work, at all times they should think of the means of tranquilization and observe the truth and follow the means of practice.

At last, if somebody have attained the practice proficiency, his mind could enter into correct conception. As their mind could enter the correct conception, the power of concentration for tranquilization is violated gradually. By following it they begin to enter into the tranquilization of True Suchness. In this state, they can subdue the delusion profoundly and become strong in faith and attain to the state of never-returning. However, doubters, unbelievers, blasphemers, great sinners, conceited and indolent persons etc. can not enter the true tranquilization. 』

止修習 위해서는 조용한곳 좌정하고
마음을 집중하여 正念으로 定에드니
小乘의 좌선아닌 唯識觀의 삼매로서
일체의 온갖상념 찰나찰나 없애보세↗

그러나 없앤다는 상념마저 없어지는
그러한 유심관이 법성無相 이치이니
마음밖 온갖경계 인정해선 아니되며
그진리 찰나찰나 생멸함이 아니로다

마음이 외부경계 집착하여 산란하면
산란한 그마음을 正念으로 가다듬어
오로지 마음이다 마음으로 있음이니
그이치 唯識無境 그경지를 이해하세

그러나 이마음도 어떤相이 없는것이
일체가 진여이니 어떤모습 있을손가
찰나에 변해가는 그마음은 망념이니
正念에 이르면서 찰나마음 없애보세

좌선을 중지하고 다른일을 행할때도
언제나 心集中의 그방편을 되노이며
법성은 不動이다 그이치를 관찰하는
그수행 거듭하면 성숙되어 定을얻네

이렇게 정을얻어 정념속에 살게되면
止의힘 맹렬해져 진여삼매 얻게되니
번뇌를 굴복시켜 믿는마음 깊어지어
正定聚 들게되어 후퇴없이 나아가네

진여를 의심하고 신심없는 그런사람
正法을 비방하고 중죄업장 많은사람
자만심 있는사람 게으름에 빠진사람
그러한 사람들은 진여삼매 못이루니

오로지 의심않고 깊은신심 일으켜서
정법에 순종하여 그법믿고 나아가면
마침내 정법이뤄 부처의길 가게되니
산란한 그런마음 정념으로 가다듬세

『해 설』
여기서는 지(止)의 수행방법 즉, 좌선(坐禪)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본론의 목적인「진여의 관찰」즉 진여삼매(眞如三昧)에 들어가는 것을 밝히고 있다.

먼저 수지(修止)의 방법으로서「지(止)를 닦는 자는 고요한 곳에 머물며, 단정히 앉아 뜻을 바르게 한다」고 설한다. 단정히 앉는다는 단좌(端坐)는 결가부좌(結跏趺坐) 또는 반(半)가부좌하여 몸을 바르고 곧게 앉는 것을 말하며, 정의(正意)는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 자타(自他)를 무상도(無上道)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항상 갖는 것을 말한다. 선정(禪定)의 방법에 있어「기신론」은 원시불교이래 설해지는 방법을 부정하고 있다.

원시불교에 있어서는,
호흡을 헤아려 마음을 통일하는 수식관(數息觀)이 있으나,「기신론」은 유식관(唯識觀)에 의하여 진여삼매(眞如三昧)에 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그와 같은 전통적인 선(禪)수행을 채택하지 않고 있어, 본론에서는「기식(氣息)에 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형색(形色)에도 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신체의 부정(不淨)을 관하는 부정관(不淨觀)과 해골(骸骨)을 관하는 골쇄관(骨 觀)등을 말한다. 우리의 탐욕을 없애기 위하여 관하는 법이다.
또한 일체는 공(空)이라는 관법이나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는 관법은 사정(事定) 즉 색정(色定) 무색정(無色定)에 들어가는 선정방법의 하나를 말한다.
④ 흩어진 마음에서 보고 듣는 육진(六塵)의 일체는 의식(識)의 소산(所産)이라고 관하는 견문각지(見聞覺智) 등 원시불교에서 행하는 전통적 선정(禪定) 방법에 의하지 말 것을 설하고 있다.

이들 관법은 외계에 사상(事象)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것을 관(觀)함으로써, 마음의 통일을 수행하는 방법이나,「기신론」은 유식관(唯識觀)을 취하기 때문에 그러한 사상관(事象觀)을 취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본론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헤아리는 기식(氣息)에 의하지 아니하고, 또는 해골과 뼈와 그 밖의 더러운 육체라는 부정관(不淨觀)등 형색(形色)에 의하지 아니하며 공(空)이니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니 또는 보고 듣고 아는 의식이나 관념 등에 의하지 아니한다고 설하고 있다. 그리하여 온갖 상념(想念)을 그 상념이 생기는 찰나 찰나에 모두 제거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더욱이 그 상념을 제거하여야 한다는 그 상(想) 자체마저 역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체법은 본래 무상(無相)으로서 찰나찰나 생기는 것이 아니며 또한 찰나찰나 멸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일체는 유심소작(唯心所作)으로서 마음의 본성은 본래 무념(無念)이므로 이 법성무상(法性無相)의 이(理)에 도달되면, 일체법은 본래 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 밖의 경계를 인정하면서, 그 후에 마음에 의하여 마음을 제거하는 그러한 방식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외경(外境)에 집착하여 산란해지면, 그 산란한 마음을 가다듬어 정념(正念)에 들게 하여야 한다.

정념(正念)이란 유심무경(唯心無境) 즉 오직 마음에 의한 것으로서 마음 밖의 경계는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마음에 자상(自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체는 진여(眞如)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찰나 찰나의 마음을 인식하는 한, 그것은 아직 유심(唯心)의 이치에 이르지 못한 것이며, 따라서 정념(正念)에 주하게 되면, 마음은 염념(念念)으로 불가득(不可得)인 것이다. 만약 좌선(坐禪)을 그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좌선 이외의 행주좌와(行住坐臥) 등 여러 가지 행동, 즉 가고 오고 나아가고 머무는 거래진지(去來進止)의 경우에도 언제나 항상 마음을 집중하는 지(止)의 방편을 잊지 않도록 염하여 법성부동(法性不動)의 이치를 관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편을 오래 익혀, 순수하게 성숙해지면 마음은 정념에 들어 득주(得住)하게 되는 것이므로, 마음을 집중하는 지(止)의 힘은 더욱 맹렬해져서, 그것을 따름으로서 진여삼매(眞如三昧)에 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번뇌를 깊이 굴복시키고 신심을 증장시킬 수 있게 되어, 물러서지 않는 신심을 속히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람은, 지(止)를 완성할 수가 없다. 즉
진여를 의혹(疑惑)하는 자, 즉 의심이 있으면 마음이 산란해져 하나로 통일 할 수 없는 것이며,
불신(不信)하는 자, 믿음이 없으면 역시 그러하며,
비방(誹謗), 즉 정법을 비방하는 자도 지(止)를 이룰 수 없는 것이며,
오역(五逆)을 범하는 등의 중죄(重罪)의 업장이 있는 사람이나,
아만(我慢) 즉 자기에 대한 자만심이 강한 사람,
해태(懈怠) 즉 게으른 사람들은 진여삼매를 완성할 수 없는 것이다.


(2) 지(止)의 승능(勝能)

『復次, 依如是三昧故, 則知法界一相. 謂一切諸佛法身, 與衆生身平等無二. 卽名一行三昧. 當知, 眞如是三昧根本. 若人修行, 漸漸能生無量三昧.』
(부차, 의여시삼매고, 즉지법계일상. 위일체제불법신, 여중생신평등무이. 즉명일행삼매. 당지, 진여시삼매근본. 약인수행, 점점능생무량삼매.)

『 다시, 이와 같은 삼매에 의하기 때문에, 바로 법계 일상임을 알게 된다.
말하건데, 일체 제불의 법신과 중생신은 평등하여 둘이 아니다. 즉 일행삼매라 이름한다. 마땅히 알지어다, 진여는 이 삼매의 근본이다. 만약 사람이 수행하면 점점 능히 무량한 삼매를 생하는 것이다. 』

『 Furthermore, those who have attained this tranquilization comprehend that all universe is just one, and they know that Buddha's True Body is the same as all living beings' body, not two but one in substance. Therefore we call it tranquilization, samadhi. You should know that True Suchness is the original root of this samadhi. If somebody keeps practicing it, then he will be able to promote the limitless samadhi gradually. 』

修止가 완성되어 진여삼매 얻게되면
법계가 一相이라 부처중생 둘아니고
평등한 한몸임을 알게되는 능력얻어
그능력 이름하여 一行三昧 이른다네

진여는 그삼매의 근본임을 알지어다
무량한 삼매모두 그속에서 나오나니
사람이 이三昧를 계속하여 수행하면
진여를 따름이니 무량삼매 계속되네

『해 설』
지금까지 지(止)의 수행방법을 설해왔다. 지(止)가 완성되어 마음의 안정을 얻으면 마음이 정념에 들게 되고 진여삼매에 득입(得入)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여삼매(眞如三昧)의 뛰어난 능력이란 무엇인가.
지(止)가 완성되어, 진여삼매를 얻으면, 마음에는 여러 가지 승능(勝能)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여삼매에 의하여, 법계일상(法界一相)임을 알게 되고, 그래서 제불의 법신(法身)과 중생신(衆生身)이 평등무이(平等無二)임을 알게 된다. 진여는 성인(聖人)이나 범부에 있어 전혀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 평등무이(平等無二)를 아는 것을 일행삼매(一行三昧)라 일컬어진다. 신역(新譯)에서는 일상삼매(一相三昧)라 이름한다. 진여(眞如)는 삼매(三昧)의 근본이 된다. 무량한 삼매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이 삼매를 수행하면 진여에 따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무량한 삼매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진여삼매의 지(止)에는 뛰어난 힘이 있다.

* 참고사항 : 신구역(新구譯) 비교대조표



(3) 지(止)의 마사(魔事)

『或有衆生, 無善根力, 則爲諸魔外道鬼神之所惑亂. 若於坐中現形恐怖, 或現端正男女等相. 當念唯心. 境界則滅終不爲惱. 或現天像菩薩像, 亦作如來像相好具足, 若說陀羅尼, 若說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智慧, 或說平等, 空, 無相, 無願, 無怨無親, 無因無果, 畢竟空寂, 是眞涅槃. 或令人知宿命過去之事, 亦知未來之事, 得他心智辨才無애. 能令衆生貪著世間名利之事, 又令使人數瞋數喜, 性無常準, 或多慈愛, 多睡多病, 其心懈怠. 或卒起精進, 後便休廢, 生於不信, 多疑多慮, 或捨本勝行, 更修雜業, 若著世事, 種種牽纏, 亦能使人得諸三昧少分相似. 皆是外道所得, 非眞三昧. 或復令人若一日, 若二日, 若三日, 乃至七日, 住於定中, 得自然香美飮食, 身心適悅, 不飢不渴, 使人愛著. 或亦令人食無分齊, 乍多乍少, 顔色變異. 以是義故, 行者常應智慧觀察, 勿令此心墮於邪網. 當勤正念, 不取不著, 則能遠離是諸業障.』
(혹유중생, 무선근력, 즉위제마외도귀신지소혹난. 약어좌중현형공포, 혹현단정남녀등상. 당념유심. 경계즉멸종불위뇌. 혹현천상보살상, 역작여래상상호구족, 약설다라니, 약설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혹설평등, 공, 무상, 무원, 무원무친, 무인무과, 필경공적, 시진열반. 혹령인지숙명과거지사, 역지미래지사, 득타심지변재무애. 능령중생탐착세간명리지사, 우령사인수진수희, 성무상준, 혹다자애, 다수다병, 기심해태. 혹졸기정진, 후변휴폐, 생어불신, 다의다려, 혹사본승행, 경수잡업, 약착세사, 종종견전, 역능사인득제삼매소분상사. 개시외도소득, 비진삼매. 혹부령인약일일, 약이일, 약삼일, 내지칠일, 주어정중, 득자연향미음식, 신심적열, 불기불갈, 사인애착. 혹역령인식무분제, 사다사소, 안색변이. 이시의고, 행자상응지혜관찰, 물령차심타어사망. 당근정념, 불취불착, 즉능원리시제업장.)

『 혹 중생이 있어, 선근력이 없으면 바로 제마(諸魔), 외도(外道), 귀신 때문에 혹란(惑亂)된다. 혹은 좌중(坐中)에서 어떤 형체를 나타내 공포케하고, 혹은 단정한 남녀 등의 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마땅히 오직 마음뿐이라는 것을 염하여야 한다. 경계는 곧 멸하고, 마침내 괴롭혀지지 않는다. 혹은 천상(天像), 보살상을 나타내고, 역시 여래의 상을 만들어 상호(相好)가 구족하고, 때로는 다라니를 설하고, 때로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를 설하고, 혹은 평등, 공, 무상(無相), 무원(無願), 무원무친(無怨無親), 무인무과(無因無果), 필경 공적, 이러한 것이 참된 열반이다 라고 설한다.
혹은 사람으로 하여금 숙명(宿命)의 과거지사를 알게 하고, 역시 미래지사를 알게 하며 타심지(他心智)를 얻어, 변재무애(辨才無애)한다. 중생으로 하여금 세간의 명리지사에 탐착케하고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수시로 성내고 수시로 기뻐하게 하여, 성품에 상준(常準)이 없게 한다.
혹은 많이 자애(慈愛)케하고, 많이 잠자게 하고, 다병(多病)케 하여 그 마음을 게으르게 한다. 혹은 갑자기 정진(精進)을 일으키게 하고 뒤에 곧 휴폐케 하며, 불신(不信)을 낳게 하며, 많이 의심하고 많이 생각게 한다.
혹은 본래의 뛰어난 행을 버리게 하여, 다시 잡업을 닦게 하고 때로는 세상사에 집착케하여, 여러 가지로 얽매이게 한다. 역시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삼매의 조금 비슷한 것(少分相似)을 얻게 한다. 모두 이것은 외도(外道)의 얻는 바로서 참된 삼매가 아니다.
혹은 다시 사람으로 하여금 때로는 일일(一日), 때로는 이일(二日), 때로는 삼일(三日), 내지 칠일(七日)을 정중(定中)에 주하여, 자연의 향미 음식을 얻어 신심(身心)을 적열케 하고, 배고프지 않게 하며, 갈증나지 않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케 한다.
혹은 역시 사람으로 하여금, 먹는 데 한계(分齋)없게 하며, 갑자기 많게 갑자기 적게 하여, 안색을 변하게 한다. 이러한 뜻인 것이기 때문에, 행자는 항상 응하여 지혜로 관찰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삿된 그물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마땅히 부지런히 정념(正念)으로, 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 곧 능히 이것이 여러업장을 멀리 떠나게 한다. 』

『 There are various Maras afflicting activity such as evil spirits or demons of heretical religions. This activity may appear to those who have no power of goodness. Sometimes it appears to them in fearful forms while sitting in contemplation, at other times it may appear in beautiful forms of both sexes to tempt them. In this case, you should try to think that it is merely a form in mind, then the appearances in mind will vanish and give no more trouble. These Maras sometimes appear as heavenly beings, or as Bodhisttvas, or as Buddha himself in all his manifold perfection. They preach the "dharani" truth of Buddhism, or explain the offering charity, morality, patience, diligent vigour, tranquil concentration and wisdom, or preach the impartial reality, the
emptiness (unseen reality), the formless reality, the passionless reality, no enmity or favorite, no cause or result, all phenomena are nothing but final pure substance, this is true Nirvana. Sometimes, Maras also makes them give miraculous power such as understanding of someone's past deed and future event, and understanding of others' mind. Or makes them give the ability of true speech.

These make them covet the fame and wealth of this world. At another time, these evil spirits may cause them to be frequently angry or happy suddenly. Their character is not so normal. Sometimes, they have great charity and compassion, or they are to be very sleepy or seriously ill, or to be indolent. Sometimes, they do practice the diligent vigour suddenly but stop it shortly after. They lose faith and have doubts and deep thoughts. Or give up their practice of excellent tranquilization and make them follow miscellaneous matters. As they are attached with the many affairs of the world, they are placed under restraint. At another time, Maras makes them obtain some similar tranquilization samadhi. All of these is of the heretical religions, not of true samadhi. Sometimes, Maras makes them remain in tranquilization for one, two, three or even seven days. They feel as if they are eating delicious food, and they feel most happy in mind and body without any hunger or thirst, so it makes them love the untrue samadhi. At another time, Maras makes them eat so much or little abnormally that their countenance changes. As there are such things, trainees of tranquilization should always examine themselves wisely, and should not let their mind fall into the nets of heresy (Maras). Therefore they should practice true tranquilization, but even if they could obtain the excellent experience of tranquilization in the correct conception, it is never to be adopted and attached. Then, they can eliminate all the hindrance. 』

선정을 수행할때 선근력이 없는사람
마귀나 귀신들에 시달리고 현혹되니
때로는 행자에게 두려움을 주게되고
때로는 아름다운 모습보여 유혹하네

이들의 魔事들은 오직마음 나타난것
오로지 마음이다 염을하면 사라지니
이렇게 괴롭히는 선정속의 온갖魔事
단호히 쫓아내는 그수행도 함께하세

때로는 천인상과 보살상도 나타내고
때로는 여래상이 나타나서 설법하여
보시등 육바라밀 여러佛法 설해가니
행자는 현혹되어 악마유혹 빠져드네

그렇게 마귀들은 수행자를 유혹하며
때로는 신통력을 행자에게 주게되니
행자는 명예이익 탐착하여 빠져들어
수행의 바른정도 벗어나서 헤매이네

행자가 魔에걸려 一喜一悲 나타내고
때로는 慈愛心이 어떤때는 病이많고
때로는 정진하다 후퇴하고 의심하고
올바른 수행길이 흔들리어 헤메이네↗

비슷한 삼매홀려 외도선정 그속에서
하루나 이틀사흘 이레까지 定에들어
향긋한 음식먹는 그런기분 느끼면서
心身이 상쾌해져 그즐거움 탐착하네

때로는 별안간에 많이먹다 적게먹고
그렇게 魔에걸려 안색또한 변해가니
행자는 선정체험 그眞僞를 분별하고
지혜로 관찰하여 삿된그물 벗어나세↗

진정한 수행에서 나타나는 體驗마저
그것을 취하거나 집착해선 안되나니
모든것 벗어날때 진정수행 행해지고
禪魔의 모든業障 그속에서 사라지네

『해 설』
지(止)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신비로운 심리적 마사(魔事)를 접하게 된다. 이같은 마사는 지(止)를 수행하는 동안 선정(禪定)의 심리(心理)속에 악마가 나타나거나, 불보살이 나타나 수행자의 마음을 뇌란시킨다. 이것은 모두가 선정의 본도(本道)가 아닌 것으로서, 그러한 심적 체험이 진정한 삼매(三昧)가 아님을 경고하기 위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마사(魔事)에 빠지는 것은 선근력(善根力)이 없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본론은 설파하고 있다. 선근력이 없으면 지(止)를 닦고 있는 동안 마라(Mara)나 외도(外道), 귀신 등에 의하여 뇌란케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수행하는 좌중에서 돌연 모습을 나타내 행자가 공포에 떨게 하기도 하며, 때로는 역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남녀의 모습을 나타내 유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선정 중에 나타나는 심리적 영상에 불과하다. 이것은 자기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행자는 오직 마음이라는 것을 염하여, 이를 제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심(唯心)을 염하면 이들 마사(魔事)는 사라져 재차 행자를 괴롭히는 일이 없어진다. 마사는 악마의 형상을 취하는 것만이 아니라 천인상(天人像)이나, 보살상(菩薩像), 또는 여래상(如來像)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다라니를 설하기도 하고, 보시(布施) 지계(持戒) 등 육바라밀을 설하기도 하며, 때로는 평등, 공(空), 무상(無相), 무원(無願), 인과(因果)를 부정하는 무인무과(無因無果), 원수도 없고 부모친척도 없다는 무원무친(無怨無親)을 설하고, 또는 본체진여(本體眞如)마저 부정하는 필경공적(畢竟空寂)이 참열반이라고 설하기도 하여 수행자를 미혹(迷惑)케 한다. 때로는 수행자에게 신통력(神通力)을 주어, 과거 전생(前生)을 아는 숙명통(宿命通), 미래를 아는 신통력, 남의 마음을 아는 타심지통(他心智通), 자유자재로 법을 설하는 변재무애(辨才無애) 등 불가사의한 힘을 얻게 하는 마사도 있다. 이러한 신통력을 얻은 행자는 세간의 명리(名利)에 탐착하여 수행의 정도를 벗어나 세상의 명예나 이익을 얻는데 빠지고 마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악마의 유혹에 빠진 결과이다. 또 어떤 행자는 마귀의 유혹으로 마음이 흔들려, 때로는 노여워하다가도 갑자기 기뻐한다던가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감정의 기복이 극심해지고 성격이 일정치 않게 된다. 때로는 극단적인 자애심(慈愛心)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잠이 너무 많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병이 많이 생기기도 하며, 그 마음이 쉽사리 해이해지고 게을러지며, 때로는 별안간 정진하다가도 바로 그만 두기도 하여 신심이 없어져 의심이 생기고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때로는 올바른 수행을 해오다가도 그것을 버리고, 잡일에 매달려 세상일에 집착하고 여러 가지로 얽매여 속박 당한다. 마사(魔事)에는 외도(外道)의 선정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진여삼매와 다소 유사한 삼매를 사람에게 주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은 외도의 삼매로서, 모두가 참삼매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1일, 2일, 3일 또는 7일 동안 계속하여 참선 중에 향기롭고 미묘한 음식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기도 하며, 배고픔과 갈증도 느끼지 못하며, 그래서 그러한 선정의 즐거움에 집착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 역시 올바른 선정을 닦는 것이 아니며 악마의 길에 들어간 것이 된다. 때로는 불규칙적인 식사로 갑자기 많이 먹거나 적게 먹어 건강을 해치어 안색이 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수행자의 생활을 파괴하는 마사(魔事)도 있다.

이상과 같이 지(止)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마사가 있으므로 수행자는 그러한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지혜로서 관찰하여야 하며, 선정 체험의 진위(眞僞)를 분별하는 데 주의하여 자기의 마음이 악마의 삿된 그물에 사로 잡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수행자는 정념(正念)속에서 뛰어난 선정체험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취하거나 집착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니, 하물며 어찌 외도의 삼매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될때, 이들 선마(禪魔)에 의한 모든 업장은 저절로 멀리 떨어져가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선정체험의 진위(眞僞)에 대하여 원효는 상당한 비중을 두고 사정(邪正)의 판단방법을 문답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선정중「보살상등의 경계를 볼 수 있는 것은 숙세(宿世)의 선근(善根)을 원인으로 하여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니, 그것을 어떻게 구별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인가고 묻는데 대하여, 해명하여 말하기를,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는 것이니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만약 모든 마구니가 만드는 상(相)을 보고 이를 좋은 상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희열하는 마음으로 집착한다면, 곧 이러한 그릇된 편벽(偏僻)이 원인이 되어 병을 얻어 발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만약 선근(善根)으로 일어난 경계를 얻고서도 이를 마사(魔事)로 생각하여 마음으로 의심하여 이를 버린다면 바로 좋은 이익을 퇴실시켜 끝내 나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옳고 그름을 구별하기가 어려운 것이니, 그 때문에 세가지 방법으로 시험하여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일이 세가지인가. 첫째는 선정(禪定)으로 연마하는 것이고, 둘째는 본래수행으로 다스려 보는 것이며, 셋째는 지혜로 관찰해 보는 것이다. ..... 중략 ..... 만약 선정중에 경계상이 일어날 때 옳고 그름을 알기 어려우면, 마땅히 정심(定心)에 깊이 들어가 그러한 경계속에서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고, 단지 평등하게 선정에 머물러야 한다. 만약 그것이 선근(善根)에서 나온 것이라면 선정의 힘이 더욱 깊어져서 선근이 더욱 일어날 것이며, 만약 마(魔)가 행한 것이라면, 머지 않아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둘째의 본래수행으로 다스려 본다는 것은 본래수행이 부정관선(不淨觀禪)이었다면 지금 바로 본래대로 부정관을 수행하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수행하여 경계가 더욱 밝아진다면 이는 바로 거짓이 아니며, 만약 본래수행대로 다스려보아 점점 경계가 없어진다면, 이는 그릇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셋째의 지혜로 관찰해본다는 것은 나타난 상(相)을 관찰하여 근원을 추구해 보면 생처(生處)를 보지 못하여 깊이 공적(空寂)함을 알고, 마음이 그에 머물러 집착하지 않으면 그릇된 것은 마땅히 스스로 없어지며 정당한 것은 스스로 나타난다. .... 중략 .... 이 세가지를 시험해보면 사(邪)와 정(正)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이하생략」
[問. 如見菩薩像等境界. 或因宿世善根所發. 云何簡別, 判其邪正. 解云. 實有是事.
不可不愼. 所以然者. 若見諸魔所爲之相, 謂是善相, 悅心取著, 則因此邪僻, 得病
發狂. 若得善根所發之境, 謂是魔事, 心疑捨離, 卽退失善利, 終無進趣. 而其邪正
實難取別. 故以三法驗之可知. 何事爲三. 一以定硏磨. 二依本修治. 三智慧觀察.
- 中略 - 謂如定中境相發時邪正難了者. 應當深入定心. 於彼境中不取不捨. 但平 等定住. 若是善根之所發者, 定力逾深, 善根彌發. 若魔所爲, 不久自壞. 第二依本 修治者. 且如本修不淨觀禪, 今則依本修不淨觀. 若如是修境界增明者, 則非僞也. 若以本 修治漸漸壞滅者, 當知是邪也. 第三智慧觀察者. 觀所發相, 推驗根原, 不 見生處. 深知空寂, 心不住著. 邪當自滅. 正當自現. - 省略 - 以此三驗, 邪正可知 也.]

(4) 외도(外道)의 삼매(三昧)와 참삼매의 차이
 
『應知, 外道所有三昧, 皆不離見愛我慢之心. 貪著世間名利恭敬故. 眞如三昧者, 不住見相, 不住得相, 乃至, 出定亦無懈慢, 所有煩惱漸漸微薄. 若諸凡夫, 不習此三昧法, 得入如來種性, 無有是處. 以修世間諸禪三昧, 多起味著, 依於我見繫屬三界, 與外道共. 若離善知識所護, 則起外道見故.』
(응지, 외도소유삼매, 개불리견애아만지심. 탐착세간명리공경고. 진여삼매자, 불주견상, 불주득상, 내지, 출정역무해만, 소유번뇌점점미박. 약제범부, 불습차삼매법, 득입여래종성, 무유시처. 이수세간제선삼매, 다기미착, 의어아견계속삼계, 여외도공. 약리선지식소호, 즉기외도견고.)

『 마땅히 알지어다, 외도의 온갖 삼매는 모두가 견애(見愛)와 아만(我慢)의 마음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간의 명리와 공경에 탐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여삼매는 견상(見相)에도 주하지 않는 것이며, 내지 정(定)에서 빠져나와도 역시 해만(懈慢)하지 않으면 온갖 번뇌는 점점 미박(微薄)해진다. 만약 여러 범부가 이 삼매법을 닦지 못하면 여래의 종성(種性)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같은 곳이 있을 수 없다. 세간의 여러 선삼매(禪三昧)를 닦으면, 많이 미착(味著)을 일으키고, 아견에 의하여 삼계에 얽매이고, 더불어 외도와 함께 하는 것이다. 만약 선지식의 지키는 바를 멀리하면, 바로 외도의 견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

『 You should understand that the tranquilization of heretical religions is of the senses, of the affections, of self-conceit because they are attached covetously to fame, benefit and the respect of the world. True samadhi, tranquilization is not of subjective or objective senses, and even after tranquilization, they will also be neither negligent nor conceited. Then their delusion will be diminished gradually. If people do not practice this true tranquilization, there will be no other way to obtain the Buddha's seed. As people do practice the untrue samadhi, they mostly give rise to the delicious attachment. So they are restricted by objects of Three Worlds due to self-senses. It causes to go with heretical religions. If they are not kept by a truly good leader, there will arise false doctrine of the heresies immediately. 』

이같은 外道三昧 참삼매와 다른점은
탐욕과 我慢으로 세간명리 구해가니
근본을 無我에둔 진여삼매 아니로다
아집의 외도삼매 참삼매가 아니라네

진여의 참된삼매 선정에서 나온뒤도
태만이 없어지고 번뇌점점 엷어지어
見相도 得相에도 住하지를 아니하니
이三昧 닦아가면 여래의집 들게되네

『해 설』
여기서는 그릇된 외도의 삼매가 참된 불교의 삼매와 어떻게 다른가를 밝히는 부분이다. 외도의 삼매는 불교 이외의 여러 종교에서 닦는 선정(禪定)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들 삼매의 바탕에는 모두가 견애(見愛)와 아만(我慢)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견애는 견혹(見惑)과 탐욕(貪慾), 탐애(貪愛) 등을 말한다. 이같은 견혹과 아만을 바탕으로 하여 세간의 명예나 이익, 존경 등에 탐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외도의 삼매는 무아(無我), 공(空)을 바탕으로 하는 불교의 진여삼매(眞如三昧)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그것이 아무리 뛰어난 경우라도 아집(我執)이 있으므로 그것은 참 삼매가 아니다.
따라서 불교의 진여삼매는 자기의 견해에 집착하는 견상(見相)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유심(唯心)의 이치에 통달하고 있어, 외경(外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외경에 집착하는 득상(得相)에도 주(住)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진여삼매(眞如三昧)는 선정 속에서 빠져 나온다 하더라도 해이해지거나 태만해지는 마음이 일어나거나, 자만심을 일으키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탐진치(貪瞋癡) 등 온갖 번뇌가 점점 줄어들고 희박해진다.

이것이 바른 삼매라는 것이다. 만약 범부수행자가 이 진여삼매법을 닦지 아니하면, 여래가 될 수 있는 성품, 즉 여래종성(如來種性)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이다. 범부는 반드시 진여삼매를 닦음으로서, 여래종성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세간의 선정(禪定)인 외도(外道)를 수습(修習)하면, 외도에는 아견(我見)이 있고 자아(自我)에 집착하기 때문에 선정의 즐거움에 미착(味著)을 일으켜, 삼계(三界) 윤회에 속박되게 된다. 따라서 진여삼매를 닦기 위해서는 선지식(善智識)의 도움과 보호를 받아야 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 외도의 아견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5) 수지(修止)의 이익

『復次, 精進專心修學此三昧者, 現世當得十種利益. 云何爲十. 一者 常爲十方諸佛菩薩之所護念. 二者 不爲諸魔惡鬼所能恐怖. 三者 不爲九十五種外道鬼神之所惑亂. 四者 遠離誹謗甚深之法, 重罪業障漸漸微薄. 五者 滅一切疑諸惡覺觀. 六者 於如來境界, 信得增長. 七者 遠離憂悔, 於生死中, 勇猛不怯. 八者 其心柔和捨於驕慢, 不爲他人所惱. 九者 雖未得定, 於一切時一切境界處, 則能減損煩惱, 不樂世間. 十者 若得三昧, 不爲外緣一切音聲之所警動.』
(부차, 정진전심수학차삼매자, 현세당득십종리익. 운하위십. 일자 상위시방제불보살지소호념. 이자 불위제마악귀소능공포. 삼자 불위구십오종외도귀신지소혹난. 사자 원리비방심심지법, 중죄업장점점미박. 오자 멸일체의제악각관. 육자 어여래경계, 신득증장. 칠자 원리우회, 어생사중, 용맹불겁. 팔자 기심유화사어교만, 불위타인소뇌. 구자 수미득정, 어일체시일체경계처, 즉능감손번뇌, 불락세간. 십자 약득삼매, 불위외연일체음성지소경동.)

『 다음, 정진전심(精進專心)으로 이 삼매를 수학하면 현세에서 마땅히 열 가지 이익을 얻는다. 무엇을 열로 하는가.
첫 째는 항상 시방의 제불과 보살에 의하여 호념(護念)하는 바가 된다.
둘 째는 제마(諸魔)와 악귀 때문에 능히 두려움을 받지 않게 된다.
셋 째는 95가지 외도와 귀신 때문에 혹란되지 않는다.
넷 째는 심심(甚深)의 법을 비방하는 것에서 멀리 떠나게 되고, 중죄업장도 점점 엷 어진다.
다섯째는 일체의 의심과 모든 사악한 관찰사유(覺觀)를 멸하게 된다.
여섯째는 여래의 경계에서 신심을 증장시킬 수 있게 된다.
일곱째는 근심과 후회를 멀리 떠나게 하고, 생사 중에서도 용맹스럽고 비겁하지 않 게 된다.
여덟째는 그 마음이 유화하여 교만을 버리게 되고 타인 때문에 괴롭혀지지 않 는다.
아홉째는 아직 정(定)을 얻지 못했을지라도 일체의 때와 일체 경계의 자리에서 도 곧 능히 번뇌를 감손시켜 세간을 즐기지 않게 된다.
열 째는 만약 삼매를 얻게 되면 외연의 일체의 음성 때문에 놀라지 않게 된다. 』

『 Next, those who practice this tranquilization (samadhi) diligently could attain ten(10) benefits, even in this present life. What are the ten?
(1) They are remembered and protected by all the Buddhas and Bodhisattvas anywhere and anytime.
(2) They are never feared by any Maras or the evil spirits.
(3) They are not deceived by any evil spirits of the ninety-five kinds of heretical religions.

(4) They are no longer question and slander the true doctrine, and their great sins of last hindrance will gradually diminish.
(5) All doubts and all sorts of heresies will be eliminated.
(6) Faith in Buddha's world will be strengthened.
(7) They can remove the sorrow and groom far away with doubtless spirits while they are in phenomenal world.
(8) Their mind will become very gentle and they will be free from pride and conceit, and will not be troubled by others.
(9) Even if the tranquilization is not yet attained, they can decrease the delusion at anytime and anywhere, and they do not covet the worldly pleasures.
(10) If they attain the true tranquilization, samadihi, they will never be moved by any outside attractions. 』

이삼매 眞如三昧 전심으로 수학하면
열가지 이익들이 현세에서 나타나니
언제나 어디서나 불보살이 가호하고
魔事의 두려움이 남김없이 사라지네

수많은 외도에도 현혹되는 혼란없고
깊은법 비방하는 重罪業障 벗어나며
일체의 의혹이나 그릇思惟 사라지고
여래의 법신알아 그믿음이 깊어지네

生死의 고통에도 겁을내지 아니하며
마음이 유화해져 惡緣에서 벗어나고
삼매를 未完해도 번뇌망상 감소되니
삼매가 완성되면 외부유혹 벗어나네

그러나 그삼매는 아직까지 凡夫단계
범부가 수행하며 진여삼매 나가지만
망념이 감축되어 진여본성 근접할뿐
삼매에 이르러도 그단계는 信心일세

『해 설』
다음은 진여삼매(眞如三昧) 즉 지(止)를 수학함으로서 어떠한 이익이 있는가를 밝혀, 더욱 더 수행할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본론에서 밝히고 있는 수지(修止) 이익은 현세에서 나타나는 이익으로서 진여삼매를 전심으로 정진 노력하면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이익이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
(1) 시방세계의 제불·보살이 항상 행자를 염하여, 보호해준다. 이는 불보살에 의한 가호의 이익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2) 모든 마귀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천마악귀(天魔惡鬼) 등의 모습이 나타나는 등의 마사(魔事)가 없어진다.
(3) 95가지나 되는 많은 외도와 귀신들 때문에 마음이 유혹되거나 혼란해지지 않는다. 95종의 외도(外道)는 불타시대에 인도에 있던 이단학파(異端學派)를 총괄해서 말하는 것이다. 둘째와 셋째는 외부로부터 받는 악념(惡念)의 장애에서 떠날 수 있는 이익이 있는 것이다.
(4) 깊고 깊은 대승의 법을 비방하는 일이 없어지며, 따라서 그 동안 지은 중죄업장(重罪業障)이 점점 줄어 적어진다. 심심(甚深)의 정법을 비방한다는 것에 대하여 여기에서 특별히 설하고 있는 것은 외도(外道)에 의한 비방뿐만아니라, 대소승(大小乘) 상호간의 비방논쟁도 있었으므로, 다시말하면 소승에서는 대승의 제설(諸說)을 비불설(非佛說)이라 비방하고, 대승에서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이름 아래 소승(小乘)을 외도(外道)이상으로 비판하는 상호비방논쟁이 계속됨에 따라, 원효는 십문화쟁론(十門和淨論)을 제기하기도 하였지만, 여하튼 본란은 대승의 정법을 비방하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대소승 상호비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논쟁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대소승통합론적 교리해석이 이루어지도록 더욱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5) 일체의 의심과 사악(邪惡)한 관찰사유(觀察思惟)의 그룻된 수행(修行)을 멸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마음, 즉 여래장(如來藏)에 대한 신심이 확립됨으로서, 어떠한 의혹이나 외도의 사악한 사유(思惟)를 멸할 수 있게 되어, 내부의 혹업장(惑業障)을 제거시키는 이익이 있는 것이다. 넷째의 경우도 또한 같다.
(6) 제불여래(諸佛如來)의 깨달음의 세계에 대한 신심(信心)이 증장될 수 있게 된다. 이는 본체 즉 여래의 법신에 대한 신심을 증장시키는 이익이 있는 것이다.
(7) 생사의 세계에 태어나, 끊임없이 겪고 받는 슬픔이나 고통에 대하여, 실망하거나 탄식하는 근심걱정을 멀리 할 수 있게 되고, 용맹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어, 생사에 겁내는 일이 없게 된다. 진여삼매는 이러한 용맹심을 일으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오염된 세계에서도 생사를 겁내지 않는 이익이 있게 되는 것이다.
(8) 이는 진여삼매를 수습함에 따라 마음이 부드럽고 평화로워 겸허하게 되고, 교만한 마음을 버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도 원만해지는 것이므로 타인에 의하여 괴롭혀지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악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9) 그러나 아직 진여삼매를 확실히 얻지 못한 경우라 할지라도, 언제 어디서나 번뇌를 잘 경감시킬 수 있어, 세속적 쾌락을 구하는 일이 없어지게 된다.
이는 세속적인 재미를 버릴 수 있는 이익이 있게 되는 것이다.
(10) 여기에서 진여삼매를 확실히 얻을 수 있게 되면, 신심이 확립되고 물러서지 않는 불퇴심에 들게 되므로, 외부에서 오는 일체의 언설이나 사상(思想) 유혹에 놀라거나 마음이 움직이는 일은 결코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깊은 선정을 얻은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진여삼매라 함은 진여에 이르는 삼매인 것이지만 아직 신심의 실현단계인 것이므로 아직 범부의 단계이다. 자기의 본성인 진여와 자기와는 분열된 망념의 세계에 있는 범부로서, 거치른 망념에서 미세한 망념으로 수축되어 가면서, 자기본성인 진여에 근접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진여와 일치했다 하더라도 이는 신(信)의 단계에서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수지(修止)의 방법, 지(止)의 승능(勝能), 지(止)의 마사(魔事), 외도 의 삼매와 참삼매의 차이, 수지(修止)의 이익 등으로 나누어 지(止)의 수행에 관하여 설명한 바 있다. 다음에는 지관(止觀) 중 관(觀)에 대하여 설명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