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입의분(立義分)
2007. 6. 15. 08:56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대승기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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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입의분(立義分) : 본론의 근본사상
제 1 절 법(法)과 의(義)
제 2 절 대승의 법(法)
§ 1. 일심(一心)
§ 2. 이문(二門)
제 3 절 대승의 의미(義)
§ 1. 삼대(三大)
§ 2. 승(乘)
.........................................................................................................................................................................
제 2 장 입의분(立義分) : 본론의 근본사상
제 1 절 법(法)과 의(義)
『已說因緣分, 次說立義分. 摩訶衍者, 總說有二種. 云何爲二. 一者法, 二者義.』
(이설인연분, 차설입의분. 마하연자, 총설유이종. 운하위이. 일자법, 이자의.)
『 이미 인연분을 설하였으니 다음은 입의분을 설한다. 마하연에는, 총설하여 두 종류가 있다. 무엇이 두가지인가. 첫째는 법(法)이고, 둘째는 의(義)이다. 』
『 Having already explained the reason for writing this treatise, we will now explain the fundamental doctrine of Mahayana. The Mahayana, totally speaking, has two aspects. What are the two ? The one is essential truth itself, and the other is the meaning of essential truth. 』
글짓는 이유들을 앞에이미 밝혔으니
이글의 기본사상 여기에서 세우겠네
大乘의 摩訶衍은 法이있고 義가있어
法體를 세우면서 그의미를 밝히는데
이른바 중생심을 法이라고 세웠으니
이글의 근본사상 우리마음 아니런가
대승의 기치아래 우리마음 찾아보니
이마음 일심으로 온갖법을 간직했네
『해 설』
이상에서 인연분 즉 본론을 쓰는 이유를 밝혔으므로 여기에서는 본론의 기본사상을 총괄적으로 제시하는 입의분(立義分)을 설하게 된다.
입의분(立義分)은 본론이 담고 있는 대승(大乘) 즉 위대한 마음에 대한 기본사상을 총괄적으로 법(法)과 의(義)의 두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역문의 마하연(摩訶衍)은 Mahayana를 음역(音譯)한 것으로서 대승(大乘)이라는 의미이며, 이는 소승(小乘)과 대비되는 대승의 의미가 아니라「위대한 마음의 진리」라는 의미의 대승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대하여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소승(小乘)과 대비되는 대승(大乘)의 교의(敎義)를 나타내기 위하여 설해진「대승경전 가운데의 하나」라는 의미로 파악하는 학자도 있다. 물론 그러한 의미를 부정할 수 없는 내용들이 본론에 제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대승기신론」이 중생의 마음 구조를 세밀히 분석하면서 그 마음이 여래지(如來地)를 향하여 매진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는 논서(論書)임이 분명하다고 볼때, 이를 소승(小乘)과 대비되는 대승(大乘)의 의미로 파악해 가려는 것은 본론이 중생심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대승의 의미와 그 견해가 상반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회통(會通)의 묘미를 찾아야 할 화쟁(和淨)의 교법(敎法)을 논쟁의 교법으로 오도(誤導)할 우려가 있는 견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본론은 대승(大乘)을 법(法)과 의(義)의 두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하면서 대승의 법(法)을 중생심(衆生心)이라고 분명히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승의 법(法)은 바로 우리의 중생심이고, 그 중생심의 내용과 의미를 설하는 대승의 의(義)에는 그 중생심 자체에 체(體)와 상(相)과 용(用)의 세가지 위대한 뜻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법(法)과 의(義)의 두가지 측면에서 설해지는 대승에 대하여, 법(法)은 대승의 법체(法體) 즉 중생심의 본체를 말하고, 의(義)는 대승이라 일컬어지는 의미, 즉 중생심의 법체 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의의(意義)를 말한다. 법은 자체의 성질이 변하지 않는,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본체(本體)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논에서는 이를 중생심(衆生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중생심이라고 일컬어지는 법이, 어찌 대승인가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의(義)」의 의미이다.
대승의 의미인 의(義)에 대하여 본론은 체·상·용(體·相·用) 삼대(三大)를 세우고 있다. 체대(體大)는 중생심 속에 자리하고 있는 진여(眞如)인 불위(佛位) 자체를 말하며, 상대(相大)는 그 진여가 간직하고 있는 속성(屬性), 즉 불타의 지혜와 자비 등의 무량한 덕성(德性), 그리고 용대(用大)는 그 무량공덕(無量功德)이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는 불타의 활동을 말한다. 이 사상은「법화경(法華經)의 일승(一乘)사상에서 유래되어 승만경(勝 經)등을 통하여 기신론에 계승된 것으로서, 여기에서 설해지는 대승의 법(法)은 중생심, 인간의 심성으로서의 법신·여래장(法身·如來藏)을 말하는 것이 된다. 이 법신·여래장을 대승이라 부르는 사상은「승만경」에 보이는 것이지만, 그 근원은「화엄경」의 심·불·중생(心·佛·衆生) 셋이 차별이 없다는 설에 근거하고 있는 것 같다. 중생이라는 것은 그것이 중생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에는 무한히 풍부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객관의 세계를 무한 광대하게 그리고 깊이 개척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본성은 영원히 변치 않는 순수 청정한 자리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범부(凡夫)에는 번뇌가 있고,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은 그 번뇌에 의하여 오염되어 있다. 이 자성청정심과 번뇌와의 관계를 체계화한 것이「여래장경(如來藏經)」「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승만경(勝 經)」등의 여래장 계통 경전이다. 이 여래장 사상은 한쪽으로서는「보성론(寶性論)」에서 조직화되었으나 다른 한 쪽으로는「기신론(起信論)」에서 유식(唯識) 사상과 잘 종합되어 체계화된 것이다.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과의 결합은「능가경( 伽經)」에서 나타나 있으나「기신론」은 이 사상을 받아 그것을 일보 전진시킨 것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대승의 법(法)과 의(義)를 다음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제 2 절 대승의 법(法)
§ 1. 일심(一心)
『所言法者,謂衆生心. 是心則攝一切世間法出世間法, 依於此心, 顯示摩訶衍義.』
(소언법자, 위중생심. 시심즉섭일체세간법출세간법, 의어차심, 현시마하연의.)
『 말하는 바 법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심을 이른다. 이 마음이 바로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간직하는 것이며, 이 마음에 의하여 마하연의 뜻을 나타내게 된다. 』
『 The word of Mahayana truth means the mind of living beings. This mind embraces all things in the phenomenal world and pure worlds. If they understand all of these minds, the meaning of Mahayana truth comes out from their mind. 』
법이란 무엇인가 중생심이 아니런가
이마음 世間法과 出世間法 간직하니
우리가 사는세상 우리들의 마음이고
그것이 일심으로 대승마음 의미라네
세간의 妄法妄念 사라지면 출세간법
출세간 眞如相은 마하연의 體가되고
세간의 생멸인연 마하연의 義가되니
一心의 自體相用 생멸문의 의미라네
『해 설』
여기에 본론은「말하는 바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심을 말한다」라고 설하고 있다.
중생심은 바로 우리 범인의 마음이다. 이 마음에는 무량무변(無量無邊)의 뛰어난 성질을 갖추고 있어 이 마음을 대승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 중생심은 이 논의「해석분」에서「일심의 법에 의하여 두 가지 문(門)이 있다」고 설하는 바와 같이 이 중생심을 일심(一心)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 마음이 일체의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出世間法)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세간(世間)이라함은 생사의 세계, 미혹의 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現象)의 세계를 말하며, 출세간(出世間)은 생사를 초월한 깨우침(悟)의 세계 즉 본체(本體)의 세계를 말한다. 여기서 법(法)은 마음의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중생심에는 생사의 세계에서의 존재[染法]와 깨우침의 세계에서의 존재〔淨法〕가 동시에 함장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과 악[淨과 染]이 구별될 수 있지만 동시에 하나로 화합되어 인격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을 일심(一心)이라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염(染)과 정(淨)은 불이(不二)이면서 또한 따로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범부의 중생심은 염(染)과 정(淨)이 함께 있으나 깨우쳐 불타가 되면, 염법(染法)은 사라져 없으므로, 선악이 함께 있는 중생심은 그 근본의 본성이 자성청정(自性淸淨)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 자성청정심이 번뇌와 함께 있는 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의 중생에는 불타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심에는 세간법[染]과 출세간법[淨]이 화합된 상태와 세간법이 멸하여 출세간법만이 남는 상태의 두가지의 존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출세간법만이 남는 후자를 마하연(摩訶衍)의 체(體)로 표시하는 것이고, 염정(染淨)이 함께 있는 전자를 마하연의 의(義)로 표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인식되는 것은「자기와 객관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범부가 생각하는「자기와 객관의 세계」는 현상의 세계인 세간법(世間法)만을 의미하게 된다. 세간법에서는 그것이 선(善)이라 하더라도 번뇌에 오염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불각(不覺)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그 깊은 곳에는 본체인 순수청정한 출세간법(出世間法)이 있다. 이와 같이 자성청정심으로서 인간은 세간과 출세간, 염(染)과 정(淨)이 함께 자리하고 있으나, 중생심의 본성에는 청정한 본각(本覺)이 있으므로 이것에 의하여 대승의 뜻(義)이 말해지는 것이다. 망법(妄法)이 사라지면 그것이 곧 진여의 세계로서, 그것은 영원한 세계이며, 여기에서 대승의 체(體) 즉 본체가 나타나는 것이다.
§ 2. 이문(二門)
『何以故, 是心眞如相, 卽示摩訶衍體故, 是心生滅因緣相, 能示摩訶衍自體相用故.』
(하이고, 시심진여상, 즉시마하연체고, 시심생멸인연상, 능시마하연자체상용고.)
『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이 마음의 진여 상은 즉, 마하연의 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생멸인연의 상은 능히 마하연 스스로의 체(體)와 상(相)과 용(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 Why do you say so? It is because this mind has two aspects. The one is True Suchness (眞如 true reality, true likeness, Bhtatathata) itself which is the substance of Mahayana, and the other is phenomenal mind which is the substance, attributes and activity of Mahayana itself. 』
一心의 우리마음 두가지문 세웠으니.....
하나는 心眞如門 마하연의 體가되고.....
둘째는 心生滅門 마하연의 義가되어.....
여기서 自體相用 우리마음 설한다네....
여기서 심진여문 마음본체 그것으로
영원히 변치않는 본체만을 가르키나
인연의 생멸문은 緣을만나 나타나니
본체는 숨었지만 自體相用 함께했네
『해 설』
이상의 설명에 대하여 본란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중생심의 진여의 상은 그것이 바로 대승의 본체이기 때문이며, 중생심의 생멸 인연의 상은, 대승 스스로의 체상용(體相用)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진여상(心眞如相)은 중생심의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진여는 실재(實在)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진여는 tatatha의 의역(意譯)이다. 마음의 진실한 실재라 함은 마음에서 무명(無明, 染)이 멸하여 불타의 마음이 된 상태를 말한다. 중생심에 있어서는 무명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진여에 의지하여 있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는 이를 멸할 수 있는 것이다. 불타의 마음은 열반과 합일되어 영원한 상으로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중생구제의 자비행을 행하고 있어 시간적인 면과, 시간을 초월한 면 등 두 면을 가지고 있다.
심진여상(心眞如相)은 이 시간을 초월한 면을 말하는 것으로서 여기에서 대승의 체(體)가 표시되는 것이다. 이것이 심진여문(心眞如門)이다. 심법(心法)은 하나 이지만 두 문〔二門〕이 있는데 그 두번째가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중생심의 생멸인연(生滅因緣)의 상은 마음이 연기(緣起)의 도리로, 즉 연을 만나면 생멸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진여의 상은 마음의 영원한 모습으로서, 마음의 실재성(實在性)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적 비교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대승의 체(體)만을 일컫는다. 체에 대비된 상(相)과 용(用)을 들지 않는다. 마음 그 자체는 염정(染淨)의 양면을 가지고 있으나, 심진여상(心眞如相)은 정(淨)만을 말한다. 염(染)은 영원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혹은 마침내 멸하기 때문이다. 진여는 영원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작용(作用)을 가지고 활동한다. 진여는 무위(無爲)이고 영원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동(動)을 떠난 정(淨)이 아니며 동(動)에 포함된 정(淨)인 것이다. 유위(有爲)와 하나로 된 무위(無爲)이다. 진여는 인격을 초월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 인격에 상즉(相卽)하고 있다. 마음의 생멸인연상은 대승 자체(自體)의 체상용(體相用)으로 표시하여 설해진 것으로서 이것은 시간적 세계 즉 현상의 세계에서의 중생심의 존재를 일컫는 것이다. 생멸문(生滅門)은 절대(絶對)가 배후에 숨어 있으며, 상대(相對)가 표면에 나타난 존재 형태이다. 이 생멸문의 체는 상대적이기 때문에「자체(自體)」라고 말한다. 심진여문에서는 여래장을 「부화합(不和合)」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지만, 그러나 여래장은 염심(染心)속에 있으므로 화합(和合)을 갖고 있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생멸문에서의 여래장심은 인격이 표면에 나타나 있으므로, 그 체(體)에 대하여 상(相)과 용(用)이 구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스스로의 체와 상과 용을 나타낸다」라고 설해진 것이다. 이 경우의 체는 생멸문 속에 있는 본각(本覺)이며, 이 본각은 고뇌와 화합되어 있으면서 번뇌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청정한 성질이 있다. 이것이 정(淨)이라고 일컬어지는 상(相)이다. 또한 이 본각에는 수염(隨染)의 업용(業用)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용(用)이다. 다시 말하면 번뇌와 화합하여, 또는 불타가 중생을 구제하는 활동, 그 작용이 수염(隨染)의 업용(業用)이다.
이상은 본문의 내용을 해설한 것이지만 본란의 목적은 입의분(立義分)에서 세우는 법(法)과 의(義)에 대하여 중생심의 진여상(眞如相)과 생멸인연상(生滅因緣相)을 해명함으로서, 대승을 중생심이라고 정의한데 대한 이유를 밝히는데 있다.
본란은 그 이유에 대하여「이 중생심의 진여상(眞如相)은 마하연[대승]의 체(體)를 나타내는 것」이고, 이어서「이 마음의 생멸인연상(生滅因緣相)은 대승 스스로의 체상용(體相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이상의 설명에 의하여 지금까지 전통적 주석가들은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의 이문(二門)을 모두 대승의 법(法)으로 배당하고, 대승의 의(義)에 대하여는「말하는바 의(義)라고 하는 것은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체대(體大)로서 일체법의 진여(眞如)를 말한다..... 둘째는 상대(相大)로서 여래장(如來藏)을 말한다..... 셋째는 용대(用大)로서.....」라는 구절에 따라 심생멸문 중 삼대의(三大義)만을 대승의 의(義)에 배당시키고 있어 초학자(初學者)로서는 법(法)과 의(義)를 구별하는데 다소 혼란스러운점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법(法)과 의(義)의 전통적 분류방식에 대한 필자의 견해>
필자는 그러한 전통적 주석가들의 분류방식은 전체의 사상체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위에서 지적한 몇몇 구절만을 협의(狹義)로 해석한데에 그 원인이 있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법(法)은 중생심이고 그 마음에는 일체의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出世間法)을 포섭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 마음에 의하여 대승의 의(義)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본론이 설하고 있다. 따라서 중생심은 법(法)이고 그 법인 중생심의 내용을 해석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의(義)이다. 그러므로 법(法)과 의(義)는 항상 함께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법(法)은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의 법체인 본체 바로 그것이고, 의(義)는 그 법체(法體)를 포함하여 그 법체에 의하여 전개되는 일체의 내용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심진여문(心眞如門)은 법체 자체만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당연히 법(法)에만 해당되고, 심생멸문(心生滅門)은 그 법체를 포함하여 그 법체가 전개하는 일체의 내용이 되는 것이므로 그것이 바로 대승의 의(義)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담연소(曇延疏)를 비롯하여 정영소(淨影疏) 및 해동소(海東疏)등 전통적 주석가들이 입의분(立義分)을 입법문(立法門)과 입의문(立義門)을 세워 전술한 바와 같이 생멸문중 삼대(三大)만을 좁게 해석하여 의(義)에 배당시키고 생멸문에서 다루는 기타 염정생멸(染淨生滅)과 염정훈습(染淨熏習)등을 대승의 법(法)에 배당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왜 그러냐하면 염정생멸(染淨生滅)과 염정훈습(染淨熏習)은 생멸문(生滅門)의 자체상(自體相)인 법신(法身) 여래장(如來藏)이 무명연(無明緣) 즉 무명의 기동(起動)에 의하여 전개되는 미계(迷界)에의 유전(流轉)과 오계(悟界)에의 환원(還元)과정에서 가해지는 훈습(熏習)과 생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래장(如來藏)이 무명의 기동으로 아리야식이 되고 무명(無明)이 훈습하여 각(覺)이 불각(不覺)이 되어 무명업상(無明業相)등 삼세(三細) 육추(六서)의 번뇌가 나타나 의(意: 五識)와 의식(意識, 分別事識)등 염심(染心)이 되는 미계유전(迷界流轉)의 양상이 전개되기도 하며, 그렇게 발생된 염심(染心)이 다시 정법훈습(淨法熏習)에 의하여 이단(離斷)되면서 다시 본래의 자리인 오계(悟界)에 환원되어 심생멸문(心生滅門)에서의 자체상용(自體相用)이 체대(體大) 상대(相大)로서의 불타가 되어 용대(用大)로서의 중생구제활동을 전개 시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본란이 대승의 법(法)을 중생심이라고 정의한데 대한 이유로서「이 마음의 진여상은 마하연의 체(體)를 나타내고, 이 마음의 생멸인연상은 마하연의 자체상용(自體相用)을 나타낸다」라고 밝힌 것은, 출세간법(出世間法)의 진여의 체(體)가 무명의 기동에 의하여 세간법의 자체상용(自體相用)으로 생멸인연상을 나타낸 것에 불과한 것이며,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심생멸문(心生滅門)에서 전개되는 모두는 그 자체상(自體相)의 내용을 해명하는 대승의 의(義)인 것이므로 이는 마땅히 의(義)에 배당시키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심생멸문(心生滅門)은 진여법체를 포함한 체상용(體相用) 및 그에 대한 염정생멸(染淨生滅)과 염정훈습(染淨勳習)등 모두가 포함된 일심(一心)의 구조와 의미를 모두 다루고 있으므로 이들 모두가 대승의 의(義)에 속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승은 중생심이고 그 중생심을 법(法)이라 하였으니, 법은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 등 이문(二門) 모두에 해당된다. 여기서 심진여문은 법(法)의 체(體)만을 일컫는데 대하여, 심생멸문은 그 생멸문안에 있는 법의 체(體)를 포함하여 중생심인 법(法)의 의미(義)를 다루고 있는 것이 본론의 사상체계이다. 따라서 본론의 기본사상을 제시하는 입의분(立義分)에 있어서, 어느 것은 법(法)이고 또한 어느 것은 의(義)라고 분별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중생심이라 세운 법(法)의 내용과 의미(義)를 총론적으로 초두에 세운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제 3 절 대승의 의미(義)
§ 1. 삼대(三大)
『所言義者, 則有三種. 云何爲三. 一者體大, 謂一切法眞如. 平等不增減故. 二者相大, 謂如來藏. 具足無量性功德故. 三者用大, 能生一切世間出世間善因果故.』
(소언의자, 즉유삼종. 운하위삼. 일자체대, 위일체법진여. 평등부증불감고. 이자상대, 위여래장. 구족무량성공덕고. 삼자용대, 능생일체세간출세간선인과고.)
『 말하는 바 의(義)라고 하는 것은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셋이 되는가. 첫째는 체대(體大)로서, 일체법의 진여를 말한다. 평등하여 증감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대(相大)로서 여래장을 말한다. 무량한 성공덕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용대(用大)로서 능히 일체의 세간출세간의 선(善)의 인과를 생하기 때문이다. 』
『 We say that there are three meanings in Mahayana truth. What are the three meanings? The first is great substance. We say that the true substance of all things are impartial and equal without any increase or decrease.
The 2nd is great attributes. It is Tathagata-garbha, because it is full of infinite virtues of the Buddha. The 3rd is the great activity which is based upon the infinite virtues and goodness of Buddha. 』
義에는 세가지의 위대함을 설하나니
첫째는 體大로서 眞如平等 自體이고
둘째는 相大로서 自體相의 功德이라
셋째는 用大로서 부처님의 능력이네
불타나 중생이나 진여의體 평등하고
여래의 性功德을 중생심도 간직하니
위대한 불타되어 중생구제 활동하고
體相用 그三大로 우리중생 부처되네
『해 설』
이상에서 대승의 법(法)과 의(義)에 대하여 총괄적 견해를 피력한 바 있으나, 여기에서는 대승의 의미(義)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설하고 있다. 즉 체대(體大), 상대(相大), 용대(用大)로서 이 셋으로 중생심이 갖추고 있는 대승의 의미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설한 이문(二門)의 생멸인연상에서「능히 자체상용(自體相用)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데 대하여, 본란에서는 심생멸문을 대표하여 대승의 의미(義)를 체상용(體相用), 삼대(三大)만을 세우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체대(體大)는 진여문(眞如門)의 체(體)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무시간적(無時間的) 불기문(不起門)의 체(體)이므로 범부(凡夫)의 상태와 불타의 상태를 일관하는 진여(眞如)이다. 따라서 이 체대는 평등하고 증감(增減)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중생심의 체(體)인 진여는 범부라 하더라도 증감이 없으며 불타가 되더라도 또한 증감이 없는 것이다. 이 진여는 연(緣)을 만나 오염되더라도 증가되는 것이 아니며 오염이 제거된다 하더라도 감소되는 것이 아니다. 중생심의 체는 생멸문(生滅門)에 있어서도 증감이 없다. 진여문에 있어서는 상(相)과 용(用)은 나타나지 않는다. 생멸문에서 체대(體大)는 무상(無常)속의 변화유전(變化流轉)중에서의 영원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진여문과 다름이 없으므로「일체법의 진여」라고 일컫는다. 이 진여는 인위(因位)의 범부에 있어서나 과위(果位)의 불타에 있어서도 다름이 없는 것이므로「평등하여 증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相大)는 여래장(如來藏)에 무량한 성공덕(性功德)이 갖추어져 있음을 말한다. 상(相)은 특질(特質) 성능(性能)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체대(體大)인 진여가 갖추고 있는 속성(屬性)이 상대(相大)이다.
여래장(Tathagata-garbha)의 장(藏: garbha)이라 함은 태(胎)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번뇌에 오염된 법신(法身)을 여래장이라 일컫는다. 여래성(如來性)은 범부에 있어서는 번뇌에 감추어져 있으며, 따라서 중생은 이를 볼 수가 없으므로 장(藏)이라 한다. 이와 같이 중생은 여래 속에 함장(含藏)되어 있다고도 하고[所攝藏], 여래를 감추고 있다고도 하며[隱攝藏] 또한 중생은 여래의 공덕을 모두 함장하고 있다고 한다[能攝藏]. 여기서는 무량한 성공덕을 갖추고 있는 능섭장(能攝藏)의 경우로 설해지고 있다.
중생심은 불타의 모든 덕성(德性)을 갖추고 있어 이 덕성을 상(相)이라 한다. 여기서 불타의 성공덕(性功德)은 여래의 지혜, 자비(慈悲)로서 이 상(相)이 위대하기 때문에 상대(相大)라고 일컫는 것이다.
제3의 용대(用大)는 여래의 성공덕(性功德)의 활동이 위대하다는 의미이다. 체대와 상대는 여래(如來)의 이지불이(理智不二)의 법신(法身)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용대(用大)는 이 불타가 세상 속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는「보신(報身)과 응신(應身)」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용대(用大)는 체대(體大)인 법신(法身)이 중생을 위해 보신(報身)과 응신(應身)으로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용대는 불타의 활동이므로 거기에서「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에 있어서 선(善)의 인과(因果)를 생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불타의 활동에서는 불선(不善)이 생기지 않는다.
전통적 주석가들은 여기서 설한 삼대(三大)를 심생멸문의 대표적 내용으로 보지않고 이를 협의(狹義)로 해석하여 체상용(體相用) 삼대만을 대승의 의(義)로 구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 2. 승(乘)
『一切諸佛本所乘故. 一切菩薩皆乘此法到如來地故.』
(일체제불본소승고. 일체보살개승차법도여래지고.)
『 일체제불은 본래 이 수래를 타고 (佛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체의 보살도 모두 이 법을 타고 여래지(如來地)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
『 Therefore every Buddha became Enlightened one by taking this vehicle (truth), and every Bodhisattva reach the pure land by taking this truth too. 』
일체의 부처님도 이법타고 건느셨고
일체의 보살들도 이수래를 타셨으니
불보살 건느신곳 如來地가 아니런가
우리도 그법타고 여래지에 가서보세
이같이 중생심엔 위대한힘 갖추워져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에로
굳건한 믿음갖고 이법타고 수행하면
마침내 건너간곳 그곳바로 여래질세
『해 설』
일체의 제불이 본래 인위(因位)인 보살로 있을 때 이 법(중생심, 여래장)을 타고 성불(成佛)하였으며, 일체의 보살도 모두 이 법을 의지하여 여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중생심에는 위대하다는「대(大)」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이 설하여 졌으며, 그것이 청정한 삼대(三大)로서 나타나, 미(迷)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이르는 힘을 함께 가지고 있음을 굳게 믿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중생에게 갖추어져 있는「승(乘)」의 의미이다. 과거의 일체 제불도 이 중생심에 갖추어져 있는 힘에 의하여 성불하였으며 일체의 보살 또한 이 일심(一心)의 법(法)을 타고 여래지(如來地)에 도달하는 것이다.
제 1 절 법(法)과 의(義)
제 2 절 대승의 법(法)
§ 1. 일심(一心)
§ 2. 이문(二門)
제 3 절 대승의 의미(義)
§ 1. 삼대(三大)
§ 2. 승(乘)
.........................................................................................................................................................................
제 2 장 입의분(立義分) : 본론의 근본사상
제 1 절 법(法)과 의(義)
『已說因緣分, 次說立義分. 摩訶衍者, 總說有二種. 云何爲二. 一者法, 二者義.』
(이설인연분, 차설입의분. 마하연자, 총설유이종. 운하위이. 일자법, 이자의.)
『 이미 인연분을 설하였으니 다음은 입의분을 설한다. 마하연에는, 총설하여 두 종류가 있다. 무엇이 두가지인가. 첫째는 법(法)이고, 둘째는 의(義)이다. 』
『 Having already explained the reason for writing this treatise, we will now explain the fundamental doctrine of Mahayana. The Mahayana, totally speaking, has two aspects. What are the two ? The one is essential truth itself, and the other is the meaning of essential truth. 』
글짓는 이유들을 앞에이미 밝혔으니
이글의 기본사상 여기에서 세우겠네
大乘의 摩訶衍은 法이있고 義가있어
法體를 세우면서 그의미를 밝히는데
이른바 중생심을 法이라고 세웠으니
이글의 근본사상 우리마음 아니런가
대승의 기치아래 우리마음 찾아보니
이마음 일심으로 온갖법을 간직했네
『해 설』
이상에서 인연분 즉 본론을 쓰는 이유를 밝혔으므로 여기에서는 본론의 기본사상을 총괄적으로 제시하는 입의분(立義分)을 설하게 된다.
입의분(立義分)은 본론이 담고 있는 대승(大乘) 즉 위대한 마음에 대한 기본사상을 총괄적으로 법(法)과 의(義)의 두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역문의 마하연(摩訶衍)은 Mahayana를 음역(音譯)한 것으로서 대승(大乘)이라는 의미이며, 이는 소승(小乘)과 대비되는 대승의 의미가 아니라「위대한 마음의 진리」라는 의미의 대승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대하여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소승(小乘)과 대비되는 대승(大乘)의 교의(敎義)를 나타내기 위하여 설해진「대승경전 가운데의 하나」라는 의미로 파악하는 학자도 있다. 물론 그러한 의미를 부정할 수 없는 내용들이 본론에 제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대승기신론」이 중생의 마음 구조를 세밀히 분석하면서 그 마음이 여래지(如來地)를 향하여 매진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는 논서(論書)임이 분명하다고 볼때, 이를 소승(小乘)과 대비되는 대승(大乘)의 의미로 파악해 가려는 것은 본론이 중생심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대승의 의미와 그 견해가 상반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회통(會通)의 묘미를 찾아야 할 화쟁(和淨)의 교법(敎法)을 논쟁의 교법으로 오도(誤導)할 우려가 있는 견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본론은 대승(大乘)을 법(法)과 의(義)의 두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하면서 대승의 법(法)을 중생심(衆生心)이라고 분명히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승의 법(法)은 바로 우리의 중생심이고, 그 중생심의 내용과 의미를 설하는 대승의 의(義)에는 그 중생심 자체에 체(體)와 상(相)과 용(用)의 세가지 위대한 뜻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법(法)과 의(義)의 두가지 측면에서 설해지는 대승에 대하여, 법(法)은 대승의 법체(法體) 즉 중생심의 본체를 말하고, 의(義)는 대승이라 일컬어지는 의미, 즉 중생심의 법체 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의의(意義)를 말한다. 법은 자체의 성질이 변하지 않는,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본체(本體)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논에서는 이를 중생심(衆生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중생심이라고 일컬어지는 법이, 어찌 대승인가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의(義)」의 의미이다.
대승의 의미인 의(義)에 대하여 본론은 체·상·용(體·相·用) 삼대(三大)를 세우고 있다. 체대(體大)는 중생심 속에 자리하고 있는 진여(眞如)인 불위(佛位) 자체를 말하며, 상대(相大)는 그 진여가 간직하고 있는 속성(屬性), 즉 불타의 지혜와 자비 등의 무량한 덕성(德性), 그리고 용대(用大)는 그 무량공덕(無量功德)이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는 불타의 활동을 말한다. 이 사상은「법화경(法華經)의 일승(一乘)사상에서 유래되어 승만경(勝 經)등을 통하여 기신론에 계승된 것으로서, 여기에서 설해지는 대승의 법(法)은 중생심, 인간의 심성으로서의 법신·여래장(法身·如來藏)을 말하는 것이 된다. 이 법신·여래장을 대승이라 부르는 사상은「승만경」에 보이는 것이지만, 그 근원은「화엄경」의 심·불·중생(心·佛·衆生) 셋이 차별이 없다는 설에 근거하고 있는 것 같다. 중생이라는 것은 그것이 중생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에는 무한히 풍부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객관의 세계를 무한 광대하게 그리고 깊이 개척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본성은 영원히 변치 않는 순수 청정한 자리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범부(凡夫)에는 번뇌가 있고,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은 그 번뇌에 의하여 오염되어 있다. 이 자성청정심과 번뇌와의 관계를 체계화한 것이「여래장경(如來藏經)」「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승만경(勝 經)」등의 여래장 계통 경전이다. 이 여래장 사상은 한쪽으로서는「보성론(寶性論)」에서 조직화되었으나 다른 한 쪽으로는「기신론(起信論)」에서 유식(唯識) 사상과 잘 종합되어 체계화된 것이다.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과의 결합은「능가경( 伽經)」에서 나타나 있으나「기신론」은 이 사상을 받아 그것을 일보 전진시킨 것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대승의 법(法)과 의(義)를 다음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제 2 절 대승의 법(法)
§ 1. 일심(一心)
『所言法者,謂衆生心. 是心則攝一切世間法出世間法, 依於此心, 顯示摩訶衍義.』
(소언법자, 위중생심. 시심즉섭일체세간법출세간법, 의어차심, 현시마하연의.)
『 말하는 바 법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심을 이른다. 이 마음이 바로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간직하는 것이며, 이 마음에 의하여 마하연의 뜻을 나타내게 된다. 』
『 The word of Mahayana truth means the mind of living beings. This mind embraces all things in the phenomenal world and pure worlds. If they understand all of these minds, the meaning of Mahayana truth comes out from their mind. 』
법이란 무엇인가 중생심이 아니런가
이마음 世間法과 出世間法 간직하니
우리가 사는세상 우리들의 마음이고
그것이 일심으로 대승마음 의미라네
세간의 妄法妄念 사라지면 출세간법
출세간 眞如相은 마하연의 體가되고
세간의 생멸인연 마하연의 義가되니
一心의 自體相用 생멸문의 의미라네
『해 설』
여기에 본론은「말하는 바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심을 말한다」라고 설하고 있다.
중생심은 바로 우리 범인의 마음이다. 이 마음에는 무량무변(無量無邊)의 뛰어난 성질을 갖추고 있어 이 마음을 대승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 중생심은 이 논의「해석분」에서「일심의 법에 의하여 두 가지 문(門)이 있다」고 설하는 바와 같이 이 중생심을 일심(一心)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 마음이 일체의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出世間法)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세간(世間)이라함은 생사의 세계, 미혹의 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現象)의 세계를 말하며, 출세간(出世間)은 생사를 초월한 깨우침(悟)의 세계 즉 본체(本體)의 세계를 말한다. 여기서 법(法)은 마음의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중생심에는 생사의 세계에서의 존재[染法]와 깨우침의 세계에서의 존재〔淨法〕가 동시에 함장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과 악[淨과 染]이 구별될 수 있지만 동시에 하나로 화합되어 인격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을 일심(一心)이라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염(染)과 정(淨)은 불이(不二)이면서 또한 따로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범부의 중생심은 염(染)과 정(淨)이 함께 있으나 깨우쳐 불타가 되면, 염법(染法)은 사라져 없으므로, 선악이 함께 있는 중생심은 그 근본의 본성이 자성청정(自性淸淨)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 자성청정심이 번뇌와 함께 있는 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의 중생에는 불타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심에는 세간법[染]과 출세간법[淨]이 화합된 상태와 세간법이 멸하여 출세간법만이 남는 상태의 두가지의 존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출세간법만이 남는 후자를 마하연(摩訶衍)의 체(體)로 표시하는 것이고, 염정(染淨)이 함께 있는 전자를 마하연의 의(義)로 표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인식되는 것은「자기와 객관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범부가 생각하는「자기와 객관의 세계」는 현상의 세계인 세간법(世間法)만을 의미하게 된다. 세간법에서는 그것이 선(善)이라 하더라도 번뇌에 오염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불각(不覺)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그 깊은 곳에는 본체인 순수청정한 출세간법(出世間法)이 있다. 이와 같이 자성청정심으로서 인간은 세간과 출세간, 염(染)과 정(淨)이 함께 자리하고 있으나, 중생심의 본성에는 청정한 본각(本覺)이 있으므로 이것에 의하여 대승의 뜻(義)이 말해지는 것이다. 망법(妄法)이 사라지면 그것이 곧 진여의 세계로서, 그것은 영원한 세계이며, 여기에서 대승의 체(體) 즉 본체가 나타나는 것이다.
§ 2. 이문(二門)
『何以故, 是心眞如相, 卽示摩訶衍體故, 是心生滅因緣相, 能示摩訶衍自體相用故.』
(하이고, 시심진여상, 즉시마하연체고, 시심생멸인연상, 능시마하연자체상용고.)
『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이 마음의 진여 상은 즉, 마하연의 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생멸인연의 상은 능히 마하연 스스로의 체(體)와 상(相)과 용(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 Why do you say so? It is because this mind has two aspects. The one is True Suchness (眞如 true reality, true likeness, Bhtatathata) itself which is the substance of Mahayana, and the other is phenomenal mind which is the substance, attributes and activity of Mahayana itself. 』
一心의 우리마음 두가지문 세웠으니.....
하나는 心眞如門 마하연의 體가되고.....
둘째는 心生滅門 마하연의 義가되어.....
여기서 自體相用 우리마음 설한다네....
여기서 심진여문 마음본체 그것으로
영원히 변치않는 본체만을 가르키나
인연의 생멸문은 緣을만나 나타나니
본체는 숨었지만 自體相用 함께했네
『해 설』
이상의 설명에 대하여 본란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중생심의 진여의 상은 그것이 바로 대승의 본체이기 때문이며, 중생심의 생멸 인연의 상은, 대승 스스로의 체상용(體相用)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진여상(心眞如相)은 중생심의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진여는 실재(實在)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진여는 tatatha의 의역(意譯)이다. 마음의 진실한 실재라 함은 마음에서 무명(無明, 染)이 멸하여 불타의 마음이 된 상태를 말한다. 중생심에 있어서는 무명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진여에 의지하여 있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는 이를 멸할 수 있는 것이다. 불타의 마음은 열반과 합일되어 영원한 상으로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중생구제의 자비행을 행하고 있어 시간적인 면과, 시간을 초월한 면 등 두 면을 가지고 있다.
심진여상(心眞如相)은 이 시간을 초월한 면을 말하는 것으로서 여기에서 대승의 체(體)가 표시되는 것이다. 이것이 심진여문(心眞如門)이다. 심법(心法)은 하나 이지만 두 문〔二門〕이 있는데 그 두번째가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중생심의 생멸인연(生滅因緣)의 상은 마음이 연기(緣起)의 도리로, 즉 연을 만나면 생멸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진여의 상은 마음의 영원한 모습으로서, 마음의 실재성(實在性)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적 비교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대승의 체(體)만을 일컫는다. 체에 대비된 상(相)과 용(用)을 들지 않는다. 마음 그 자체는 염정(染淨)의 양면을 가지고 있으나, 심진여상(心眞如相)은 정(淨)만을 말한다. 염(染)은 영원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혹은 마침내 멸하기 때문이다. 진여는 영원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작용(作用)을 가지고 활동한다. 진여는 무위(無爲)이고 영원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동(動)을 떠난 정(淨)이 아니며 동(動)에 포함된 정(淨)인 것이다. 유위(有爲)와 하나로 된 무위(無爲)이다. 진여는 인격을 초월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 인격에 상즉(相卽)하고 있다. 마음의 생멸인연상은 대승 자체(自體)의 체상용(體相用)으로 표시하여 설해진 것으로서 이것은 시간적 세계 즉 현상의 세계에서의 중생심의 존재를 일컫는 것이다. 생멸문(生滅門)은 절대(絶對)가 배후에 숨어 있으며, 상대(相對)가 표면에 나타난 존재 형태이다. 이 생멸문의 체는 상대적이기 때문에「자체(自體)」라고 말한다. 심진여문에서는 여래장을 「부화합(不和合)」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지만, 그러나 여래장은 염심(染心)속에 있으므로 화합(和合)을 갖고 있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생멸문에서의 여래장심은 인격이 표면에 나타나 있으므로, 그 체(體)에 대하여 상(相)과 용(用)이 구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스스로의 체와 상과 용을 나타낸다」라고 설해진 것이다. 이 경우의 체는 생멸문 속에 있는 본각(本覺)이며, 이 본각은 고뇌와 화합되어 있으면서 번뇌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청정한 성질이 있다. 이것이 정(淨)이라고 일컬어지는 상(相)이다. 또한 이 본각에는 수염(隨染)의 업용(業用)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용(用)이다. 다시 말하면 번뇌와 화합하여, 또는 불타가 중생을 구제하는 활동, 그 작용이 수염(隨染)의 업용(業用)이다.
이상은 본문의 내용을 해설한 것이지만 본란의 목적은 입의분(立義分)에서 세우는 법(法)과 의(義)에 대하여 중생심의 진여상(眞如相)과 생멸인연상(生滅因緣相)을 해명함으로서, 대승을 중생심이라고 정의한데 대한 이유를 밝히는데 있다.
본란은 그 이유에 대하여「이 중생심의 진여상(眞如相)은 마하연[대승]의 체(體)를 나타내는 것」이고, 이어서「이 마음의 생멸인연상(生滅因緣相)은 대승 스스로의 체상용(體相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이상의 설명에 의하여 지금까지 전통적 주석가들은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의 이문(二門)을 모두 대승의 법(法)으로 배당하고, 대승의 의(義)에 대하여는「말하는바 의(義)라고 하는 것은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체대(體大)로서 일체법의 진여(眞如)를 말한다..... 둘째는 상대(相大)로서 여래장(如來藏)을 말한다..... 셋째는 용대(用大)로서.....」라는 구절에 따라 심생멸문 중 삼대의(三大義)만을 대승의 의(義)에 배당시키고 있어 초학자(初學者)로서는 법(法)과 의(義)를 구별하는데 다소 혼란스러운점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법(法)과 의(義)의 전통적 분류방식에 대한 필자의 견해>
필자는 그러한 전통적 주석가들의 분류방식은 전체의 사상체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위에서 지적한 몇몇 구절만을 협의(狹義)로 해석한데에 그 원인이 있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법(法)은 중생심이고 그 마음에는 일체의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出世間法)을 포섭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 마음에 의하여 대승의 의(義)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본론이 설하고 있다. 따라서 중생심은 법(法)이고 그 법인 중생심의 내용을 해석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의(義)이다. 그러므로 법(法)과 의(義)는 항상 함께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법(法)은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의 법체인 본체 바로 그것이고, 의(義)는 그 법체(法體)를 포함하여 그 법체에 의하여 전개되는 일체의 내용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심진여문(心眞如門)은 법체 자체만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당연히 법(法)에만 해당되고, 심생멸문(心生滅門)은 그 법체를 포함하여 그 법체가 전개하는 일체의 내용이 되는 것이므로 그것이 바로 대승의 의(義)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담연소(曇延疏)를 비롯하여 정영소(淨影疏) 및 해동소(海東疏)등 전통적 주석가들이 입의분(立義分)을 입법문(立法門)과 입의문(立義門)을 세워 전술한 바와 같이 생멸문중 삼대(三大)만을 좁게 해석하여 의(義)에 배당시키고 생멸문에서 다루는 기타 염정생멸(染淨生滅)과 염정훈습(染淨熏習)등을 대승의 법(法)에 배당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왜 그러냐하면 염정생멸(染淨生滅)과 염정훈습(染淨熏習)은 생멸문(生滅門)의 자체상(自體相)인 법신(法身) 여래장(如來藏)이 무명연(無明緣) 즉 무명의 기동(起動)에 의하여 전개되는 미계(迷界)에의 유전(流轉)과 오계(悟界)에의 환원(還元)과정에서 가해지는 훈습(熏習)과 생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래장(如來藏)이 무명의 기동으로 아리야식이 되고 무명(無明)이 훈습하여 각(覺)이 불각(不覺)이 되어 무명업상(無明業相)등 삼세(三細) 육추(六서)의 번뇌가 나타나 의(意: 五識)와 의식(意識, 分別事識)등 염심(染心)이 되는 미계유전(迷界流轉)의 양상이 전개되기도 하며, 그렇게 발생된 염심(染心)이 다시 정법훈습(淨法熏習)에 의하여 이단(離斷)되면서 다시 본래의 자리인 오계(悟界)에 환원되어 심생멸문(心生滅門)에서의 자체상용(自體相用)이 체대(體大) 상대(相大)로서의 불타가 되어 용대(用大)로서의 중생구제활동을 전개 시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본란이 대승의 법(法)을 중생심이라고 정의한데 대한 이유로서「이 마음의 진여상은 마하연의 체(體)를 나타내고, 이 마음의 생멸인연상은 마하연의 자체상용(自體相用)을 나타낸다」라고 밝힌 것은, 출세간법(出世間法)의 진여의 체(體)가 무명의 기동에 의하여 세간법의 자체상용(自體相用)으로 생멸인연상을 나타낸 것에 불과한 것이며,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심생멸문(心生滅門)에서 전개되는 모두는 그 자체상(自體相)의 내용을 해명하는 대승의 의(義)인 것이므로 이는 마땅히 의(義)에 배당시키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심생멸문(心生滅門)은 진여법체를 포함한 체상용(體相用) 및 그에 대한 염정생멸(染淨生滅)과 염정훈습(染淨勳習)등 모두가 포함된 일심(一心)의 구조와 의미를 모두 다루고 있으므로 이들 모두가 대승의 의(義)에 속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승은 중생심이고 그 중생심을 법(法)이라 하였으니, 법은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 등 이문(二門) 모두에 해당된다. 여기서 심진여문은 법(法)의 체(體)만을 일컫는데 대하여, 심생멸문은 그 생멸문안에 있는 법의 체(體)를 포함하여 중생심인 법(法)의 의미(義)를 다루고 있는 것이 본론의 사상체계이다. 따라서 본론의 기본사상을 제시하는 입의분(立義分)에 있어서, 어느 것은 법(法)이고 또한 어느 것은 의(義)라고 분별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중생심이라 세운 법(法)의 내용과 의미(義)를 총론적으로 초두에 세운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제 3 절 대승의 의미(義)
§ 1. 삼대(三大)
『所言義者, 則有三種. 云何爲三. 一者體大, 謂一切法眞如. 平等不增減故. 二者相大, 謂如來藏. 具足無量性功德故. 三者用大, 能生一切世間出世間善因果故.』
(소언의자, 즉유삼종. 운하위삼. 일자체대, 위일체법진여. 평등부증불감고. 이자상대, 위여래장. 구족무량성공덕고. 삼자용대, 능생일체세간출세간선인과고.)
『 말하는 바 의(義)라고 하는 것은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셋이 되는가. 첫째는 체대(體大)로서, 일체법의 진여를 말한다. 평등하여 증감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대(相大)로서 여래장을 말한다. 무량한 성공덕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용대(用大)로서 능히 일체의 세간출세간의 선(善)의 인과를 생하기 때문이다. 』
『 We say that there are three meanings in Mahayana truth. What are the three meanings? The first is great substance. We say that the true substance of all things are impartial and equal without any increase or decrease.
The 2nd is great attributes. It is Tathagata-garbha, because it is full of infinite virtues of the Buddha. The 3rd is the great activity which is based upon the infinite virtues and goodness of Buddha. 』
義에는 세가지의 위대함을 설하나니
첫째는 體大로서 眞如平等 自體이고
둘째는 相大로서 自體相의 功德이라
셋째는 用大로서 부처님의 능력이네
불타나 중생이나 진여의體 평등하고
여래의 性功德을 중생심도 간직하니
위대한 불타되어 중생구제 활동하고
體相用 그三大로 우리중생 부처되네
『해 설』
이상에서 대승의 법(法)과 의(義)에 대하여 총괄적 견해를 피력한 바 있으나, 여기에서는 대승의 의미(義)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설하고 있다. 즉 체대(體大), 상대(相大), 용대(用大)로서 이 셋으로 중생심이 갖추고 있는 대승의 의미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설한 이문(二門)의 생멸인연상에서「능히 자체상용(自體相用)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데 대하여, 본란에서는 심생멸문을 대표하여 대승의 의미(義)를 체상용(體相用), 삼대(三大)만을 세우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체대(體大)는 진여문(眞如門)의 체(體)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무시간적(無時間的) 불기문(不起門)의 체(體)이므로 범부(凡夫)의 상태와 불타의 상태를 일관하는 진여(眞如)이다. 따라서 이 체대는 평등하고 증감(增減)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중생심의 체(體)인 진여는 범부라 하더라도 증감이 없으며 불타가 되더라도 또한 증감이 없는 것이다. 이 진여는 연(緣)을 만나 오염되더라도 증가되는 것이 아니며 오염이 제거된다 하더라도 감소되는 것이 아니다. 중생심의 체는 생멸문(生滅門)에 있어서도 증감이 없다. 진여문에 있어서는 상(相)과 용(用)은 나타나지 않는다. 생멸문에서 체대(體大)는 무상(無常)속의 변화유전(變化流轉)중에서의 영원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진여문과 다름이 없으므로「일체법의 진여」라고 일컫는다. 이 진여는 인위(因位)의 범부에 있어서나 과위(果位)의 불타에 있어서도 다름이 없는 것이므로「평등하여 증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相大)는 여래장(如來藏)에 무량한 성공덕(性功德)이 갖추어져 있음을 말한다. 상(相)은 특질(特質) 성능(性能)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체대(體大)인 진여가 갖추고 있는 속성(屬性)이 상대(相大)이다.
여래장(Tathagata-garbha)의 장(藏: garbha)이라 함은 태(胎)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번뇌에 오염된 법신(法身)을 여래장이라 일컫는다. 여래성(如來性)은 범부에 있어서는 번뇌에 감추어져 있으며, 따라서 중생은 이를 볼 수가 없으므로 장(藏)이라 한다. 이와 같이 중생은 여래 속에 함장(含藏)되어 있다고도 하고[所攝藏], 여래를 감추고 있다고도 하며[隱攝藏] 또한 중생은 여래의 공덕을 모두 함장하고 있다고 한다[能攝藏]. 여기서는 무량한 성공덕을 갖추고 있는 능섭장(能攝藏)의 경우로 설해지고 있다.
중생심은 불타의 모든 덕성(德性)을 갖추고 있어 이 덕성을 상(相)이라 한다. 여기서 불타의 성공덕(性功德)은 여래의 지혜, 자비(慈悲)로서 이 상(相)이 위대하기 때문에 상대(相大)라고 일컫는 것이다.
제3의 용대(用大)는 여래의 성공덕(性功德)의 활동이 위대하다는 의미이다. 체대와 상대는 여래(如來)의 이지불이(理智不二)의 법신(法身)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용대(用大)는 이 불타가 세상 속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는「보신(報身)과 응신(應身)」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용대(用大)는 체대(體大)인 법신(法身)이 중생을 위해 보신(報身)과 응신(應身)으로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용대는 불타의 활동이므로 거기에서「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에 있어서 선(善)의 인과(因果)를 생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불타의 활동에서는 불선(不善)이 생기지 않는다.
전통적 주석가들은 여기서 설한 삼대(三大)를 심생멸문의 대표적 내용으로 보지않고 이를 협의(狹義)로 해석하여 체상용(體相用) 삼대만을 대승의 의(義)로 구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 2. 승(乘)
『一切諸佛本所乘故. 一切菩薩皆乘此法到如來地故.』
(일체제불본소승고. 일체보살개승차법도여래지고.)
『 일체제불은 본래 이 수래를 타고 (佛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체의 보살도 모두 이 법을 타고 여래지(如來地)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
『 Therefore every Buddha became Enlightened one by taking this vehicle (truth), and every Bodhisattva reach the pure land by taking this truth too. 』
일체의 부처님도 이법타고 건느셨고
일체의 보살들도 이수래를 타셨으니
불보살 건느신곳 如來地가 아니런가
우리도 그법타고 여래지에 가서보세
이같이 중생심엔 위대한힘 갖추워져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에로
굳건한 믿음갖고 이법타고 수행하면
마침내 건너간곳 그곳바로 여래질세
『해 설』
일체의 제불이 본래 인위(因位)인 보살로 있을 때 이 법(중생심, 여래장)을 타고 성불(成佛)하였으며, 일체의 보살도 모두 이 법을 의지하여 여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중생심에는 위대하다는「대(大)」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이 설하여 졌으며, 그것이 청정한 삼대(三大)로서 나타나, 미(迷)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이르는 힘을 함께 가지고 있음을 굳게 믿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중생에게 갖추어져 있는「승(乘)」의 의미이다. 과거의 일체 제불도 이 중생심에 갖추어져 있는 힘에 의하여 성불하였으며 일체의 보살 또한 이 일심(一心)의 법(法)을 타고 여래지(如來地)에 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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