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30. 09:56ㆍ사상·철학·종교(당신의 덕분입니다)/유교(儒敎)
제1편 학이(學而)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음은 어찌 군자의 도리가 아니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 而不 不亦君子乎)"
*說:말하다는 뜻으로는 '설'로 읽으나 여기서는 기쁘다는 뜻으로 '열'로 읽음
<강독>
첫머리에 공자의 이상적 인간상(君子)으로 자유인(自由人)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도 역시 우리가 그리는 자유인의 모습이다.
포폄(褒貶)에 좌우되지 않는 것은 진정으로 주체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폄하에 마음 쓰고 있는가. 칭찬을 받는 것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대를 늘 저버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것이 깨지지 않을까하는 일말의 불안이 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산다고 말하기 힘들다.
일시적으로는 기쁠지 모르지만 진실한 기쁨은 아니다.
기쁘고 즐거운 것이 자유로운 것이다.
說과 樂이 첫머리에 나오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주체적이라 하지만 그것이 자기 멋대로의 기쁨이나 즐거움은 아닌 것이다.
학이시습은 보편적인 진리에 바탕을 두어야함을 의미하고 유붕자원방래는 그 사회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리를 지향하며 사회성을 갖춘 주체적 인간 이것이 진정한 자유인이 아닐까.
<실례>
A;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면 반가우면서도 한 편 "나는 이곳에서 왜 살고 있는가?"를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특히 오랜 지인(知人)이면서도 동기(動機)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뭔가 힘이 들어가고 불편한 심정을 맛보는데 이것은 왜일까요?
B; 자기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는데 대한 불편함이 아닐까요.
C; 어쩌면 우리가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이나 가치에 대해서 머리로는 생각을 하는데(學) 익지 않아서(不習) 그러지 않을까요. 역시 보다 내면화하고 체득하는 노력을 해야할 것 같아요.
D; 불온(不 )은 '속으로도 화가 나지 않는 상태'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E; 나는 그런 경우 우선 '자기를 그대로 바라보기'를 하는데, 이 때 자기를 책(責)하는 마음이 들어서 힘들 경우가 많아요. 제대로 볼 수 있으면 그 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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