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를 무어라 불러도 최선을 다할 뿐. (제 7편 술이)

2007. 11. 11. 17:10사상·철학·종교(당신의 덕분입니다)/유교(儒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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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를 무어라 불러도 최선을 다할 뿐. (제 7편 술이)

 

 

제7편 술이(述而)


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옛것을 술(述)하되 새것을 만들어내지는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함을 나는 슬며시 노팽(老彭)에게 비기어 보노라.”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②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깨달은 것을 묵묵히 마음에 새겨두고 배움에 있어 싫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가르침에 게을리하지 아니하니, 그 밖에 또 무엇이 나에게 있단 말이오!

(子曰 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③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덕이 닦아지지 않는 것과 학문이 익혀지지 않는 것과 의를 들어도 능히 옮기지 못하는 것과 선하지 않음을 능히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의 근심이니라.”

(子曰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④ 공자께서 한가하게 계실 때에는 마음을 턱 놓으신 것 같았고, 기색이 즐거우신 듯이 보였다.

(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심하다,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구나, 내 다시 주공을 꿈에서 뵙지 못한 것이!

(子曰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⑥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道)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며 인(仁)에 따르고 예(藝)에 노닐지라.”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


⑦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스스로 속수(束脩;말린 고기 두름으로 적은 예물이라는 뜻) 이상의 예를 행한 사람이면 나는 아직까지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느니라.”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⑧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분발하지 않으면 계발해 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으며, 한 귀퉁이를 일러도 나머지 세 귀퉁이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다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니라.”

(子曰 不憤 不啓 不비 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


⑨ 공자께서는 상(喪)을 당한 사람 곁에서 식사하실 경우 일찍이 배불러 보신 적이 없으셨다. 공자께서는 상가에 가셔서 곡을 하신 날에는 종일토록 노래를 부르지 아니하셨다.

(子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子於是日 哭則不歌)


⑩ 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인정하여 써주면 도를 천하에 행하고, 써주지 않으면 도를 내 몸에 간직하여 숨는 것은 오직 나와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라.”

자로가 묻기를, “만약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더불어 하시겠나이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맨손으로 호랑이에게 덤비고, 맨발로 강을 건너려 하다가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그런 무모한 사람과는 같이 하지 않을 것이니라. 반드시 어려운 일에 임하여는 두려워하며, 미리 계획을 세워서 성공하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니라.”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唯我與爾有是夫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⑪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를 가히 구할 수 있다면 비록 마부 노릇이라도 내 하려니와, 가히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에 따르겠노라.”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⑫ 공자께서 조심하시는 것은 제계와 전쟁과 질병이었다.

(子之所愼 齊戰疾)


⑬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 순임금의 풍악을 들으시고 3개월 간 음식의 맛을 모르셨는데 말씀하시기를, “음악을 만드신 것이 이 경지에까지 이르셨을 줄은 생각지 못하였느니라.”

(子在齊聞韶 三月 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⑭ 염유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위나라의 임금을 도우시겠는가?”

자공이 말하기를, “글쎄, 내가 여쭈어 보겠네.”

공자의 처소에 들어가서 말하기를,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하시기를, “옛 현인이니라.”

“그들은 임금 노릇을 안 하려고 사양한 것을 후회했습니까?”

“인을 구하여 그 인을 얻었는데, 다시 무엇을 후회했겠느냐?”

자공이 밖으로 나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돕지 않을 것일세.”

(冉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 曰 諾 吾將問之 入曰 伯夷叔齊 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曰 夫子不爲也)


⑮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거친 밥을 먹고 물 마시고 팔배개를 하고 살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니, 의롭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있어 뜬구름과 같으니라.”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

 

 


<강독>

 

이 편에서는 공자의 호학(好學)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태도가 얼마나 철저하고 일관되어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1장의 술이부작(述而不作) 신이호고(信而好古)는 그 단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내 생각이야’라는 태도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이것은 다 옛 사람들이 밝혀 놓은 것일 뿐이고 나는 그것을 오직 배워서 전할 따름’이라는 진실로 겸허한 태도는 조금만 뭔가를 생각해 내면 마치 자신의 공이라고 생각하는 풍조와는 그 바탕이 다르다.

 공자는 이런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함으로서 당시까지의 중국 사상을 크게 완성하면서 인류 사상의 보고(寶庫)에 큰 기여를 한다.

요즘 새로운 것을 열어가려는 사람들에게 그 태도에서 훌륭한 모범을 보이시는 것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그 뿌리를 튼튼히 하지 않으면서  새로움 만을 추구하는 것은 위태로운 것이다.(제2편 15장의 思而不學則殆)

3장의 공자의 근심을 읽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근심하고 있는가 물어졌다. 공자의 평소 모습이 ‘마음을 턱 놓으신 듯하고 즐거우신 듯이 보였다’라는 구절과 겹치면서 그 근심의 바탕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져 온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를 실천하려고 할 때 그것 때문에 생기는 근심과  소아(小我)가 바탕이 되어서 생기는 근심 걱정과는 질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진리의 입장에서 근심하는 것과 ‘내’ 입장에서 근심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깨우쳐 주는 구절로 읽힌다. (36장 참조)

공자께서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데 권태(倦怠)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씀하신다.

당시 중국의 관례로 볼 때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포육 몇 속(束)의 작은 정성만 표해도 누구든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것을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제6편 19장의 ‘중인(中人) 이하는 가히 높은 도를 말할 수 없다’라는 구절과 이 편의 8장에서 ‘분발하지 않으면 계발해 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으며, 한 귀퉁이를 일러도 나머지 세 귀퉁이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다시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구절이 서로 상충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오히려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입장, 어떤 생각에서 가르치려 하는가? 자기 생각을 주입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상대의 상태 여하에 관계 없이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다 보면 공자의 이 말씀이 불친절이나 엘리트주의로 보이지 않고,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10장의 ‘용지즉행(用之則行), 사지즉장(舍之則藏)’은 군주에 의해서 등용되거나 버려질 때나 일관된 덕의 실천이라는 경지를 나타내는 여여한 삶을 나타내는 것으로 읽힌다. 요즘 읽으면 좀 수동적인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용(用)과 사(舍)를 세상으로부터 쓰여지고, 어떤 단계에서 그 쓰임이 변하는 것으로 읽는다면 좋지 않을까. 쓰여지지 못할까 안달하는 것은 자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요즘 선거든 임용이나 취직이든 창업이든 이 구절은 깊이 음미할 만 하다.

필야임사이구(必也臨事而懼;일에 임하여 두려워 한다)라는 구절에서는 참다운 용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어떤 일을 책임지고 끝까지 완수하려는 것과 무모함의 차이랄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대의를 좇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한 목숨 바쳐 일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일수록 이 구절을 음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11장과 15장의 말씀은 공자가 부(富)에 대해서 부정적이 아니면서 부(富)보다 더 높은 가치를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인간의 실태를 그대로 인정하는 현실적 사고와 인간이라면 추구해야할 이상의 조화를 생각하게 한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배개를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 아니 족한가!’ 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면만 강조하는 것은 공자의 중용과는 거리가 있지 않을까.

14장의 ‘인을 구하여 그 인을 얻었는데, 다시 무엇을 후회하리오(求仁而得仁 又何怨)’라는 말씀에서 깊은 감동을 받는다.

지금 나는 어떤가?


 

<대화>

 

A;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말을 읽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생각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의 모든 지식과 사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요.

 

B; 뭔가 조금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는 마치 그것이 ‘내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C; ‘배우는 것에 염증(厭症)을 느끼지 않고, 가르치는 것에 권태(倦怠)를 느끼지 않는다’는 말에서 염(厭)과 권(倦)이 너무 잘 맞는 말 같아요. 저는 이런 증상이 많거든요. (웃음)

 

D; 누가 우리에게 ‘지금 당신의 근심은 무엇입니까?’하고 묻는다면 공자 같은 답변을 할 수 있을까 생각되네요. 늘 돈 걱정, 사람과의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는 나를 돌아보게 하네요.

 

E; 근심의 바탕이 달랐으면 좋겠어요. 늘 ‘내’가 근심의 원인으로 되는 상태에서 벗어 나고 싶어요.

 

F; ‘심하다,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구나, 내 다시 주공을 꿈에서 뵙지 못한 것이!’하는 구절을 보면서 공자

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겸손한 사람인지가 느껴져 오네요. 나에게는 주공이 있는가,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고 돌아봐 지네요.

 

G; 그렇네요. 조금 앞 섰다고 ‘나를 따르라’ 하는 태도와는 다른 것 같아요.

 

H; 8장을 읽으면서 ‘우물에는 데리고 가도, 물을 마시게는 하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 나네요.   진실로 가르친다는 것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참된 만남이 아닐까요.

배우려는 사람의 열의도 중요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의 속 동기(動機)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저도 가끔 누구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나서 공허감을 느낄 때가 많은데 ‘결국 혼자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I; ‘用之則行 舍之則藏’이라는 말을 처음 들을 때는 왠지 요즘과는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봉건적인 사고랄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같이 강독하다 보니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오네요. 호연지기(浩然之氣)로도 다가 오고요.

 

J; 실제로 자신의 쓰임새는 자기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직 자신은 자신의 최선을 다 할 뿐이지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도 통하는 것 같구요.

 

K; 부(富)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아주 현실적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인간의 이상(理想)을 그리는 것 같구요. 부를 긍정하면서도 그 위에 인간적 가치를 놓는 것도 좋고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말씀하시면서도 그것이 즐거움(樂)으로 될 때 진실한 것이라는 말씀이 와 닿네요.

 

L; 순임금의 소악을 듣고 3개월 간 음식의 맛을 몰랐다는 이야기에서 공자의 면모랄까 하는 것이 다가와지네요.

어떻게 보면 음악 만큼 사람을 움직이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기독교가 제일 잘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찬송가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 질 때가 많아요.

 

M; 그 시대의 문화는 유행하는 음악을 통해 잘 나타나는 것 같아요. 사람도 그 사람의 18번을 들으면 그 깊숙한 정서랄까 하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예부터 가무음곡(歌舞音曲)에 능한 민족이라고 하지 않아요. 앞으로 이 분야에 많은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요. 학교 교육에서도 필수과목으로 하고요.(웃음)

 

N; 저는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는데, 다시 무엇을 후회(원망)하리요’ 하는 말에 마음이 편한 것을 느껴요. 제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만 해도 편해 지는 것 같아요. 삶의 목적이랄까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요.

 

O; 지금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겠지요. 저 역시 형태적으로 어떤 삶을 살더라도 ‘求仁而得仁 又何怨’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살고 싶어요.

 

P; ‘의롭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를 읽고 큰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 지금의 경제 상태가 생각나서 괴리감이 생기기도 하네요. ‘로또’라도 됐으면 하는 뜬구름 같은 생각이 나기도 하고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