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제2권 9/11 허망한 생각에서 참된 생각을 보이다

2008. 7. 18. 11: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능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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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 엄 경

    능엄경:제2권 9/11 허망한생각에서 참된생각을 보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오직 저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서로 합하여 조화된 현상과 합하여 조화되지 못한 것을 설명해 주셨으나 마음은 아직 열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는 주체를 보는 것은 보는 주체가 아니다'라고 하심을 듣고서는 더욱 의혹이 짙어집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써 지혜의 눈을 베푸 시어 저희들의 깨닫는 마음이 밝고 맑다는 것을 열어 보여 주소서." 아난이 말을 마치고는 슬피 울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성인으이 가르침을 받으려 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큰 다라니와 모든 삼마제의 오묘한 수행 방법을 다시 설명하시기 위하여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비록 기억력은 강하나 다만 많이 듣는 것에만 힘썼고, 사마타를 미묘하고 정밀하게 비추어 보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에 아직까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없으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내가 너를 위하여 이를 분별하여 보여줄 것이며, 또한 장래에 번뇌를 끊지 못한 여러 사람들에게도 보리의 과업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세간을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뀐 분별하는 망견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그것이 장소에 따라 발생하며 업보에 따라 흘러 전전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두 가지 망견이라 하는가? 첫째는 중생의 서로 다른 업인[別業]으로 인하여 허망 하게 보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의 동분으로 인하여 허망 하게 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서로 다른 업인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 이라고 하는가?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눈병이 생겨 눈이 붉어지면 밤에 등불을 볼 적에 또 다른 둥근 그림자가 생겨서 다섯 가지 색깔이 중첩으로 나타나 보이느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는 이것이 등불의 빛이냐, 아니면 보는 사람의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의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그와 같은 현상을 보지 못하고, 그 둥근 그림자는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느냐? 만약 그것이 보는 주체의 빛이라면 보는 주체는 이미 빛을 이루었으니 저 눈병 걸린 사람만이 둥근 그림자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고 말하겠느냐? 또 아난아, 만약 이 둥근 그림자가 등불을 여의고서 따로 있다면 마땅히 곁에 있는 병풍과 휘장과 의자와 자리를 볼 적에도 둥근 그림자가 생겨야 하며, 보는 주체를 떠나서 또 따로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눈병 걸린 사람에게만 둥근 그림자가 보이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빛깔은 사실 등불에 있는 것인데, 보는 주체가 병으로 인하여 둥근 그림자가 생긴 것이니라. 그림자와 보는 주체가 모두 눈병으로 생긴 것이지만 눈병을 보는 것은 병들지 아니했느니라. 그러니 이것은 '등불의 탓이다, 보는 주체의 탓이다' 라고 할 것이 못 되며, 또 그 가운데에서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주체의 탓이 아니다'라고도 할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제2의 달'은 본체도 아니요,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다. 왜냐하면 '제2의 달'을 보는 것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는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을 가리켜 '달의 형체다, 달의 형체가 아니다'라고 한다거나,'보는 주체이니, 보는 주체가 아니니'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느니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지금 무엇을 이름하여 '등불의 탓이다, 보는 주체의 탓이 다'라고 하려느냐? 더구나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주체의 탓이다' 라고 분별하는 것이겠느냐? 어떤 것을 '같은 분수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 이라고 하느냐 하면,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 큰 바닷 물을 제외하고 그 중간에 삼천 개의 섬이 있으니 그 한복판에 있는 큰 섬을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 보면 큰 나라가 이천삼백 개가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가운데에 혹은 삼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혹은 이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혹은 한두 나라에서 삼십, 사십, 오십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느니라. 아난아, 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으니 오직 한 나라 사람만이 악한 인연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작은 섬에 사는 중생들은 상서롭지 못한 모든 세계를 보는데 있어 더러는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혹은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달무리나 해무리. 해의 귀걸이. 혜성. 패성. 흐르는 별똥. 부이.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나쁜 모양을 오직 이 나라 사람들만 볼 뿐, 저쪽 나라 중생들은 본래 보지도 못하고 또한 듣지도 못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앞뒤로 맞춰가면서 밝혀 주리라. 아난아, 저 중생들이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것 때문에 등불 주위에 둥근 그림자가 비록 대상의 물체처럼 나타나지만 마침내 보는 이의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눈병은 곧 보는 주체의 피로 때문에 생긴 것이지 물질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눈병을 보는 것도 마침내 보는 주체의 허물은 없느니라. 예컨대 네가 지금 눈으로 산과 강, 그리고 국토와 여러 중생들을 보는 것이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주체가 병듦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은 마치 눈앞의 경계로 나타 나지만 본래는 나의 깨닫는 것이 대상인 물체를 보다가 생긴 병이다. 그러니 깨닫는 것과 보는 주체가 병든 것이지 본래부터 있어온 깨달음의 밝은 마음으로 대상인 물체를 깨닫는 것은 병들지 않았느니라. 분별할 대상을 분별하는 것은 눈병이고, 분별하는 본체는 눈병 속에서 생긴 것이 아니니라. 이는 사실 보는 주체를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다시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그리고 모든 세간과 열 가지 중생을 보는데 그것은 모두 보는 주체가 눈병을 앓고 있는 것이지 눈병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저 보는 주체의 정밀하고 참된 성품은 병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보는 주체라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아난아, 저 중생의 같은 분수로서 허망하게 보는 것과 따로 지은 업장으로써 허망하게 보는 한 사람을 예를 들어 말하면, 눈병이 생긴 한 사람은 한 나라와 같고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는 눈병으로 생긴 것과 같아서, 상서롭지 못하게 보는 것은 같은 업장 가운데 장악으로 생긴 것이니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것의 허망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염부제 삼천 개의 섬과 사방의 큰 바다와 사바세계와 그리고 시방의 번뇌가 있는 모든 나라들과 모든 중생들 을 예로 들면 이 모두가 알고 분별하는 번뇌가 끊어진 오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허망한 인연과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서 허망하게 나고 죽느니라. 만약 화합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 모든 인연을 멀리 여의면 곧 나고 죽는 여러 가지 원인을 없앨 수 있어서 나고 죽지 아니하는 보리의 성품을 원만하게 이루어 깨끗한 본래 마음의 본각에 늘 머무르게 되리라.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의 오묘하고 밝은 성품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깨달음의 근원은 서로 어울려 조화되어 생긴 것도 아니며 서로 어울려 조화되니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님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나타나는 경계로써 너에게 묻겠는데, 너는 지금 오히려 모든 세간의 허망한 생각 으로, 화합하는 인연의 성품을 스스로 의혹하여 보리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긴다고 여기는구나. 너의 지금 오묘하고 깨끗하게 보는 주체의 정기는 밝은 것과 화합된 것이냐, 어두운 것과 화합된 것이냐, 통한 것과 화합된 것이냐, 막힌 것과 화합된 것이냐? 만약 밝은 것과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적에는 마땅히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곳에 보는 주체가 섞여 있느냐? 보이는 대상과 물질은 분별할 수 있지만 섞인 것은 어떠한 형상이냐? 만약 보는 주체가 아니라면 어떻게 밝은 것을 보며, 만약 보는 주체라면 어떻게 보는 주체를 본다고 하겠느냐? 반드시 보는 주체가 원만하다면 어느 곳에서 밝은 것과 화합할 것이며, 만약 밝은 것이 원만하다면 보는 주체가 화합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보는 주체는 반드시 밝은 것과는 다르므로 섞였다면, 저 성품이 밝다는 명분을 잃으리니 섞임으로 해서 밝은 성품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밝음과 화합을 이루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하는 것과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이와 같느니라. 또 아난아, 너의 오묘하고 깨끗한 보는 주체의 정기는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냐, 어두운 것과 합해진 것이냐, 통한 것과 합해진 것이냐, 막힌 것과 합해진 것이냐? 만약 밝음과 합해진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밝은 모양이 이미 없어졌을 것이니, 저 보는 주체가 어두움과는 합하지 못할 터인데 어떻게 어두움을 본다고 하겠느냐?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음과 합했을 적에도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밝음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것이며 밝은 것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오묘한 깨달음의 근본은 상대되는 모든 물질과 그리고 마음과 생각이 더불어 화합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또 말하기를 깨달음은 화합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묻겠다. 이 오묘한 보는 주체의 정기가 화합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화합한 것이라면 보는 주체와 밝은 것이 반드시 경계선이 있어야 하리니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밝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보는 주체이냐? 보는 주체와 밝은 것 사이에 어떤 것이 경계가 되느냐? 아난아, 만일 밝은 것 중에 반드시 보는 주체가 없다면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밝은 모양이 있는 데를 알지 못할 것인데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 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또 오묘한 보는 주체의 정기가 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 아니라면 곧 보는 주체와 밝음의 성격이 서로 어긋남이 마치 귀와 눈이 서로 접촉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 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