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 엄 경
능엄경:제3권 1/16 육입이 본래 진여.
"또 아난아, 어찌하여 육입이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졌을 때, 눈과 피로는 다 같이
보리가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를
반연하여 보는 주체가 생겨 그 중간에 있으
면서 이 물질의 현상[塵象]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보고 깨닫는 성품[見覺性]'
이라고 하나니, 이 보는 주체가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본다는 그 자체도 없어질 것이다.
이와 같나니 아난아,
저 보아 깨닫는 성품은 밝고 어두운 데서
온 것이 아니고 눈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밝은 데서 왔다면 어두워질
때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마땅히 어두움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고, 만약 어두운 데에서
왔다면 밝아질 때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마땅히 밝음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눈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밝음과 어두
움이 없으리니 이렇게 보는 주체의 정기는
본래 자성도 없어야 할 것이요,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앞에 나타난 물질의 현상을
보았으니 돌아갈 때에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또 허공이 스스로 볼 것이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눈으로 보아 받아들이는 것[眼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갑자기
귀를 막아서 그것이 오래되어 피로해지면 머리
속에서 또 다른 허망한 소리가 들릴 것이니 귀와
피로는 다 같이 보리가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움직이는 것과 고요한 것, 이 두 가지 허망한 대상
으로 인하여 듣는 주체가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소리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들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듣는 주체가 움직임과 고요
함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듣는다는 그 자체도 없어질 것이다.
아난아, 이 들어 깨닫는 성품은 움직임과 고요
함에서 온 것이 아니고 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고요한 데서 왔다면 움직일 때엔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마땅히 움직임을 듣지
못해야 할 것이고, 만약 움직임에서 왔다면
고요해질 때엔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마땅히
고요함을 듣지 못해야 할 것이요, 만약 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움직임과 고요함이 없으면
이와 같이 듣는 주체의 본래 자성은 없어야 할
것이요, 만약 허공을 좇아 나온 것이라면 들음이
있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며
또한 허공이 스스로 들을 것이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귀로 들어 받아들이는 것[耳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사람이 코로 숨을 급하게 들이켜
오래되면 피로가 생겨서 콧속에 찬 촉감이 있음을
느낄 것이니, 그 촉감으로 인하여 트이고 막힘과
허하고 실한 것을 분별하며, 이와 같이 모든
향기와 구린내까지도 맡는 것이니 코와 피로는
다 같이 보리가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트인 것과 막힌 것, 이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냄새 맡음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모든 냄새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맡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나니, 저 냄새를 맡는 주체가
트임과 막힘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냄새라는 그 자체도 없어질 것이다.
아난아, 이 맡아 깨닫는 성품은 트이고 막힌 데서
온 것이 아니며 코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트인 데서 왔다면 막힐 때엔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마땅히 막힘을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일 막힌 데서 왔다면 트일
때엔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마땅히 트임을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고, 만약 코에서 생긴 것이
라면 반드시 트임과 막힘이 없으면 그와 같이 맡는
주체의 본래 자성이 없어야 할 것이고,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냄새를 맡는 주체가
도리어 네 코를 맡아야 할 것이며, 또 허공 스스
로가 냄새를 맡을 것이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코로 맡아 받아들이는 것[鼻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핥아서 오래오래
핥다가 피로가 생겼을 때 그 사람이 만약 병이
있으면 쓴맛을 느낄 것이고, 병이 없는 사람이면
약간 단맛을 느낄 것이다.
이 달고 쓴 것으로 말미암아 혀의 의식이 드러날
것이고, 핥지 않을 적에는 담담한 성품이 항상
있으리니 혀와 피로는 다 같이 보리가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달고 쓴맛과 담담한 맛, 이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맛을 봄이 생겨 그것이 중간에 있으면서
맛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맛보아 깨닫는 성품'
이라고 하니, 저 맛을 보는 성품이 달고 쓴맛과
담담한 맛,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맛이라는 그 자체도 없어질 것이다.
아난아, 이 쓴맛과 담담한 맛을 맛보아 아는 것은
달거나 쓴데서 온 것이 아니며 담담한 맛에서 온
것도 아니고 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달고 쓴 데서 왔다면 담담할 때엔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담담한 맛을 알며,
만약 담담한 데서 왔다면 달거나 쓸 때엔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달고 쓴 맛을 알며,
만약 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달거나 담담
하거나 쓴맛이 없으면 이렇게 맛보는 주체의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어야 할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허공이 스스로 맛볼
것이니 네 입이 아는 것이 아니며, 또 허공
스스로가 아는 것이리니 그것이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혀로 맛보아 받아들이는 것[舌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사람이 찬 손으로 따뜻한 손을 잡았을
적에 만약 찬 기운이 많으면 따뜻한 손이 차가워질
것이고, 따뜻한 기운이 많으면 찬 손이 따뜻해
지리니, 이와 같이 합했을 때 깨닫는 촉감은 서로
떨어져도 느낌이 남아 있나니 교섭하는 세력이
만일 이루어진다면 접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
것이니 몸과 피로는 다 같이 보리가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떨어지고 합하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촉감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촉감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느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느끼는 본체가 떨어지고 합하는 것과 배반하고
따르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느끼는 그 자체도 없어질 것이다.
이와 같으니 아난아,
이 느껴 깨닫는 성품은 본래 떨어지거나 합해진
데서 온 것이 아니고 어긋나거나 따르는 데서 온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합하는 데서 온 것이라면
떨어질 때엔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떨어짐을 알겠으며, 어긋남과 따르는 두 가지
현상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니라.
만약 몸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떨어짐과
합함과 어긋남과 따르는 네 가지 현상이 없으면
이와 같이 느끼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허공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리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몸의 접촉으로 받아들이는 것[身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요,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피로해졌을 때 실컷
자고는 문득 깨어서 대상 물질을 보면 기억하고,
그 기억이 사라질 때 잃어버린다고 한다면
그것이 곧 생겨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뒤바뀐 현상이니, 습관을 흡수하여 들여서
그것이 가운데로 돌아가되 서로 차례를 어기지
아니함을 '생각으로 인식하는 근원'이라고 하나니
생각과 피로는 모두다 보리가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생기고 없어지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모아진 앎이 중간에 있으면서 내진
(內塵)을 흡수해 들여서 보고 들음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흐름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거꾸로
흐르는 것을 '깨달아 아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성품이 깨고 잠자는 것과 생기거나 없어지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그
자체도 없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아난아,
이 알아 깨닫는 성품은 깨거나 잠자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생기거나 없어지는 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깨어 있는 데서 온 것이라면 잠잘
때엔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누가 잠을 잘
것이며, 만약 생기는 데서 온 것이라면 없어질
때엔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무엇이 없어
짐을 느끼겠으며, 없어지는 데서 온 것이라면
생기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그 무엇이
깨고 잠자고 생기고 없어지는 두 가지 현상은
몸의 개합(開合)을 따르는 것이니 이 두가지
실체를 여의면 저 깨달아 아는 것은 허공의
헛꽃과 같아서 마침내 그 성품이 없어지리라.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허공 스스로가
아는 것이거니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뜻으로 생각하여 받아들이는 것
[意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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