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무엇인가?(대승기신론)
2008. 7. 20. 16:0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대승기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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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각 이르려면 止觀 등 五行 실천해야”
〈대승기신론〉에서는 중생도 위대한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수행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수행자의 이러한 믿음은 내훈(內薰)이 되어 불보살의 외훈(外薰)과 합치될 때 정법훈습이 일어나 번뇌가 차단된다고 말한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수행은 어떻게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시작한 본지의 지상토론이 벌써 열 번째를 맞았다. 출가수행자는 물론 재가불자와 일반학자, 불교전공 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적극 참여해온 결과다. 이번호에는 대승기신론연구회 전종식 회장이 기신론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룬 글을 싣는다. 전종식 회장은 “흔히들 수행이라하면 선수행 하나만으로 알고 있으나, 선수행은 오행(五行)과 육바라밀(六波羅蜜)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기신론은 ‘네가지 믿음’실천 강조…확고한 신심이 첫째
깨달음은 ‘망념 사라진 상태’…本覺이르면 般若智 빛나
깨달음이란 우리의 마음에서 망념이 떠나 무념의 세계를 이룩하고, 반야지혜가 마음의 세계 전체에 빛나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는 각(覺)의 세계를 말한다. 〈대승기신론〉에서는 “각(覺)의 의미는 심체(心體)에서 염(念)이 떠난 것을 말한다. 망념이 떠난 모습은 허공계와 같아, 두루 퍼져 있지 아니한 곳이 없으며, 법계일상으로서 그것이 여래의 평등법신이다. 이 법신에 의하여 설하여 본각(本覺)이라 이름한다”고 설하고 있다.
깨달음의 각(覺)은 여래의 지혜이며 진리를 깨달은 지혜는 이지불이(理智不二)이기 때문에, 이것을 여래의 법신이라 한다. 이 법신은 번뇌에 감추어진 여래장의 지위에서나 또는 번뇌를 이탈한 여래 법신의 지위에서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평등한 법신이라 말한다. 이와 같이 법신은, 본래 마음에 있는 고유한 것이므로, 이름하여 본각(本覺)이라 한다. 본각과 대비하는 시각(始覺)을 설하지만, 이 시각은 번뇌를 차단하기 위한 수행을 실천하여 계속하면 깨달음의 지혜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그로부터 수행이 진척되어, 각(覺)의 작용이 차차 더해져, 수행이 완성되면 시각(始覺)은 본각(本覺)과 합치하게 된다.
〈화엄경〉에서는 각(覺)의 완성 단계를 초지(初地)부터 십지(十地)까지 열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대승기신론〉에서는 지전(地前)의 불각(不覺)으로부터 시작하여 상사각(相似覺)을 거쳐 수분각(隨分覺)을 이루는 지상(地上)에 이르러 초지부터 시작하여 십지에 이르러 구경각(究竟覺)을 이루면서 본각과 합치되므로 수행의 처음에서 끝까지를 시각이라 부르게 된다.
이와 같이 각(覺)은 범부에 있어서는 불각이지만, 불각으로부터 시작하여 성자(聖者)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 모두를 시각(始覺)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시각이 본각과 합일되기 전까지 단계는 아직 번뇌와 공존하고 있는 단계이며, 이 번뇌가 차차 소멸되어 각(覺)만의 세계에 도달되어 그 시각이 본각과 하나가 되면 시각의 이름은 사라지고, 마침내 본각의 깨달음이 완성되어 여래법신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바로 중생심이지만 여래가 될 수 있는 위대한 대승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 이를 일심(一心)이라 일컫는다. 찰나찰나 번뇌로 생멸하는 우리의 마음이지만, 이 마음은 진여본성을 항상 간직하고 있어, 수행에 따라 언젠가는 여래가 될 수 있는 위대한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이를 여래장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성이 청정한 여래장 진여가 어찌하여 중생이 되어 미계에 유전하고 또한 미계에 유전하고 있는 중생이 어떻게 하면 또다시 깨달음 세계인 여래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들의 관심사이자 이 지상토론의 주제다.
이에 대해 〈대승기신론〉은 미계에 유전하는 최초는 여래장 진여가 무명의 훈습으로 우리의 마음이 각과 불각의 두 성격을 간직한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인 아리야식(阿梨耶識)이 되면서부터라고 본다. 미계에 유전하는 아리야식의 각(覺)은 본체로서 뒤에 숨고 있으나 그 각의 바탕(體)을 빌어 불각이 표면에 나타나 생멸의 세계가 전개된다. 생멸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생각 하나하나가 모두 번뇌이다. 무념(無念)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이같은 번뇌를 미세하고 거친 삼세(三細).육추(六)설, 심식(心識)으로 설명되는 의(意).의식(意識)설, 염심(染心)으로 설명하는 육염(六染)설 등으로 번뇌를 분석하고 그 같은 번뇌를 큰 번뇌로부터 미세한 번뇌에 이르기까지 차례차례 차단해가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를 이룩하는 수행과정으로 설하고 있다. 이를 시각(始覺)이라 부르고 이 시각은 불각으로부터 시작하여 상사각, 수분각을 거쳐 마침내 구경각을 완성하여 본각에 합일하면서 깨달음의 법신여래가 되는 것이다.
① 불각은 일종의 범부각(凡夫覺)으로서 시각의 첫 출발점으로서 전에 망념이 악을 일으켰다는 것을 깨닫고 뒤에 일어나는 망념이 동일한 악을 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정도의 깨달음이다. ② 제2단계의 상사각(相似覺)은 성문 등 이승(二乘)과 초발의보살 등이 깨닫는 단계로서 각(覺)에 유사한 단계라고 해서 상사각이라 이름한다. 이들은 여섯가지 염심(染心)중 아집이 가장 강하고 거치른 집상응염(執相應染)을 차단하였으나 아직 십지의 지상(地上)에서의 반야공의 지혜에는 이르지 못하여 각은 각이지만 유사한 각이기 때문에 상사각이라고 말한다. ③ 제3단계의 수분각은 지상에 이른 법신보살이 초지에서부터 십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십지의 만위(滿位)에서 차단되는 가장 미세한 번뇌(細中之細)인 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만을 남겨놓고, 거친번뇌중 약간 미세한(中之細) 염심인 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과 분별지상응염(分別智相應染), 그리고 미세한 번뇌중 약간 거친 염심인 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과 능경심불상응염(能竟心不相應染)의 번뇌가 차례차례 차단되어 법신보살의 경지를 이룩하였으나, 10지의 만위에서 부처가 되는 최후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진여를 증득했다는 의미로서 수분각이라고 한다.
④ 마지막 제4단계인 구경각(究竟覺)은 각(覺)의 최고 단계로서 마음의 본체에 있어서의 영원불변의 원리와 현상계에 있어서의 생멸변화하는 원리를 완전히 통달하여 최미세한 번뇌를 완전히 끊고, 시각(始覺)과 본각(本覺)이 합일(合一)하게 되면 이때 지금까지 미망(迷妄)을 계속시킨 망념이 생긴 근원인 생상(生相)의 구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깨달음으로서, 망념분별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망념은 그것이 망념이라는 것을 알 때 소멸된다. 마치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 때, 거기서 꿈은 끝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때 시각(始覺)이 완성되는 것이므로 시각의 이름은 사라지고 구경각이라는 이름으로 지혜가 완성되어 망념이 없는 무념(無念)의 세계가 실현되는 것이다.
불지(佛智)에는 있는 그대로의 인식의 세계가 나타나 전세계, 삼라만상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 진다. 거기에는 하등의 선입견도 없고, 편견도 없으며, 저절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있는 그대로의 일들이 불지(佛智)에 비추어져, 불타는 그것에 응하여 중생구제를 위한 지혜의 활동이 있게 된다. 이러한 불타의 활동에 의하여, 불타가 갖추고 있는 무량한 공덕은 영원히 단절됨이 없이 중생의 근기따라 능력따라,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의 변화된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함으로서, 중생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깨달음이 완성하여 저절로 중생구제의 신비한 힘이 발휘될 때까지 어떻게 수행하여야할 것인가. 〈대승기신론〉에서는 사신(四信)과 오행(五行)의 실천수행을 강조하고, 또한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과 해행발심(解行發心) 및 증발심(證發心) 등의 발심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수행의 첫걸음은 확고한 신심(信心)을 성취하는 수행이다. 이 신심에는 네 가지가 있다. ① 첫째는 자기의 근본에는 위대한 불타가 될 수 있는 진여법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② 둘째는 불타는 한량없는 성공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③ 셋째는 불타의 법과 진리를 굳게 믿어 실천하면 크나큰 이익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④ 넷째는 스님들이 바른 수행을 실천하여 자리(自利)와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함을 굳게 믿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신심은 근본진여와 불.법.승 삼보를 굳게 믿는 것이 된다. 이같은 신심을 성취하겠다는 굳건한 발심이 비롯되면, 〈대승기신론〉은 오행(五行)의 실천수행을 강조하고 또한 해행발심(解行發心), 증발심(證發心) 등의 수행을 강조한다. 이 수행에서는 수행자의 내훈(內熏)과 불보살의 외훈(外熏)등 정법훈습(淨法熏習)이 일어나 번뇌가 차단되어가는 것이다.
오행(五行)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지관(止觀)등 다섯 가지의 실천수행을 강조하는 것이고, 해행발심(解行發心)에서는 육바라밀의 실천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오행과 육바라밀은 동일한 것으로 선정과 지혜의 수행을 지관(止觀) 수행으로 하나로 묶어 수행하는 것이다. 흔히들 수행하면 선(禪)수행 하나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수행은 오행(五行)과 육바라밀 중 하나에 불과하고, 〈대승기신론〉에서는 사신(四信)과 더불어 십선(十善)의 실천, 육바라밀, 오행의 실천수행으로 부처가 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전종식/대승기신론연구회 회장
[불교신문 2045호/ 7월6일자]
〈대승기신론〉에서는 중생도 위대한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수행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수행자의 이러한 믿음은 내훈(內薰)이 되어 불보살의 외훈(外薰)과 합치될 때 정법훈습이 일어나 번뇌가 차단된다고 말한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수행은 어떻게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시작한 본지의 지상토론이 벌써 열 번째를 맞았다. 출가수행자는 물론 재가불자와 일반학자, 불교전공 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적극 참여해온 결과다. 이번호에는 대승기신론연구회 전종식 회장이 기신론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룬 글을 싣는다. 전종식 회장은 “흔히들 수행이라하면 선수행 하나만으로 알고 있으나, 선수행은 오행(五行)과 육바라밀(六波羅蜜)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기신론은 ‘네가지 믿음’실천 강조…확고한 신심이 첫째
깨달음은 ‘망념 사라진 상태’…本覺이르면 般若智 빛나
깨달음이란 우리의 마음에서 망념이 떠나 무념의 세계를 이룩하고, 반야지혜가 마음의 세계 전체에 빛나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는 각(覺)의 세계를 말한다. 〈대승기신론〉에서는 “각(覺)의 의미는 심체(心體)에서 염(念)이 떠난 것을 말한다. 망념이 떠난 모습은 허공계와 같아, 두루 퍼져 있지 아니한 곳이 없으며, 법계일상으로서 그것이 여래의 평등법신이다. 이 법신에 의하여 설하여 본각(本覺)이라 이름한다”고 설하고 있다.
깨달음의 각(覺)은 여래의 지혜이며 진리를 깨달은 지혜는 이지불이(理智不二)이기 때문에, 이것을 여래의 법신이라 한다. 이 법신은 번뇌에 감추어진 여래장의 지위에서나 또는 번뇌를 이탈한 여래 법신의 지위에서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평등한 법신이라 말한다. 이와 같이 법신은, 본래 마음에 있는 고유한 것이므로, 이름하여 본각(本覺)이라 한다. 본각과 대비하는 시각(始覺)을 설하지만, 이 시각은 번뇌를 차단하기 위한 수행을 실천하여 계속하면 깨달음의 지혜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그로부터 수행이 진척되어, 각(覺)의 작용이 차차 더해져, 수행이 완성되면 시각(始覺)은 본각(本覺)과 합치하게 된다.
〈화엄경〉에서는 각(覺)의 완성 단계를 초지(初地)부터 십지(十地)까지 열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대승기신론〉에서는 지전(地前)의 불각(不覺)으로부터 시작하여 상사각(相似覺)을 거쳐 수분각(隨分覺)을 이루는 지상(地上)에 이르러 초지부터 시작하여 십지에 이르러 구경각(究竟覺)을 이루면서 본각과 합치되므로 수행의 처음에서 끝까지를 시각이라 부르게 된다.
이와 같이 각(覺)은 범부에 있어서는 불각이지만, 불각으로부터 시작하여 성자(聖者)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 모두를 시각(始覺)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시각이 본각과 합일되기 전까지 단계는 아직 번뇌와 공존하고 있는 단계이며, 이 번뇌가 차차 소멸되어 각(覺)만의 세계에 도달되어 그 시각이 본각과 하나가 되면 시각의 이름은 사라지고, 마침내 본각의 깨달음이 완성되어 여래법신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바로 중생심이지만 여래가 될 수 있는 위대한 대승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 이를 일심(一心)이라 일컫는다. 찰나찰나 번뇌로 생멸하는 우리의 마음이지만, 이 마음은 진여본성을 항상 간직하고 있어, 수행에 따라 언젠가는 여래가 될 수 있는 위대한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이를 여래장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성이 청정한 여래장 진여가 어찌하여 중생이 되어 미계에 유전하고 또한 미계에 유전하고 있는 중생이 어떻게 하면 또다시 깨달음 세계인 여래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들의 관심사이자 이 지상토론의 주제다.
이에 대해 〈대승기신론〉은 미계에 유전하는 최초는 여래장 진여가 무명의 훈습으로 우리의 마음이 각과 불각의 두 성격을 간직한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인 아리야식(阿梨耶識)이 되면서부터라고 본다. 미계에 유전하는 아리야식의 각(覺)은 본체로서 뒤에 숨고 있으나 그 각의 바탕(體)을 빌어 불각이 표면에 나타나 생멸의 세계가 전개된다. 생멸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생각 하나하나가 모두 번뇌이다. 무념(無念)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이같은 번뇌를 미세하고 거친 삼세(三細).육추(六)설, 심식(心識)으로 설명되는 의(意).의식(意識)설, 염심(染心)으로 설명하는 육염(六染)설 등으로 번뇌를 분석하고 그 같은 번뇌를 큰 번뇌로부터 미세한 번뇌에 이르기까지 차례차례 차단해가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를 이룩하는 수행과정으로 설하고 있다. 이를 시각(始覺)이라 부르고 이 시각은 불각으로부터 시작하여 상사각, 수분각을 거쳐 마침내 구경각을 완성하여 본각에 합일하면서 깨달음의 법신여래가 되는 것이다.
① 불각은 일종의 범부각(凡夫覺)으로서 시각의 첫 출발점으로서 전에 망념이 악을 일으켰다는 것을 깨닫고 뒤에 일어나는 망념이 동일한 악을 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정도의 깨달음이다. ② 제2단계의 상사각(相似覺)은 성문 등 이승(二乘)과 초발의보살 등이 깨닫는 단계로서 각(覺)에 유사한 단계라고 해서 상사각이라 이름한다. 이들은 여섯가지 염심(染心)중 아집이 가장 강하고 거치른 집상응염(執相應染)을 차단하였으나 아직 십지의 지상(地上)에서의 반야공의 지혜에는 이르지 못하여 각은 각이지만 유사한 각이기 때문에 상사각이라고 말한다. ③ 제3단계의 수분각은 지상에 이른 법신보살이 초지에서부터 십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십지의 만위(滿位)에서 차단되는 가장 미세한 번뇌(細中之細)인 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만을 남겨놓고, 거친번뇌중 약간 미세한(中之細) 염심인 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과 분별지상응염(分別智相應染), 그리고 미세한 번뇌중 약간 거친 염심인 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과 능경심불상응염(能竟心不相應染)의 번뇌가 차례차례 차단되어 법신보살의 경지를 이룩하였으나, 10지의 만위에서 부처가 되는 최후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진여를 증득했다는 의미로서 수분각이라고 한다.
④ 마지막 제4단계인 구경각(究竟覺)은 각(覺)의 최고 단계로서 마음의 본체에 있어서의 영원불변의 원리와 현상계에 있어서의 생멸변화하는 원리를 완전히 통달하여 최미세한 번뇌를 완전히 끊고, 시각(始覺)과 본각(本覺)이 합일(合一)하게 되면 이때 지금까지 미망(迷妄)을 계속시킨 망념이 생긴 근원인 생상(生相)의 구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깨달음으로서, 망념분별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망념은 그것이 망념이라는 것을 알 때 소멸된다. 마치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 때, 거기서 꿈은 끝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때 시각(始覺)이 완성되는 것이므로 시각의 이름은 사라지고 구경각이라는 이름으로 지혜가 완성되어 망념이 없는 무념(無念)의 세계가 실현되는 것이다.
불지(佛智)에는 있는 그대로의 인식의 세계가 나타나 전세계, 삼라만상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 진다. 거기에는 하등의 선입견도 없고, 편견도 없으며, 저절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있는 그대로의 일들이 불지(佛智)에 비추어져, 불타는 그것에 응하여 중생구제를 위한 지혜의 활동이 있게 된다. 이러한 불타의 활동에 의하여, 불타가 갖추고 있는 무량한 공덕은 영원히 단절됨이 없이 중생의 근기따라 능력따라,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의 변화된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함으로서, 중생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깨달음이 완성하여 저절로 중생구제의 신비한 힘이 발휘될 때까지 어떻게 수행하여야할 것인가. 〈대승기신론〉에서는 사신(四信)과 오행(五行)의 실천수행을 강조하고, 또한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과 해행발심(解行發心) 및 증발심(證發心) 등의 발심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수행의 첫걸음은 확고한 신심(信心)을 성취하는 수행이다. 이 신심에는 네 가지가 있다. ① 첫째는 자기의 근본에는 위대한 불타가 될 수 있는 진여법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② 둘째는 불타는 한량없는 성공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③ 셋째는 불타의 법과 진리를 굳게 믿어 실천하면 크나큰 이익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④ 넷째는 스님들이 바른 수행을 실천하여 자리(自利)와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함을 굳게 믿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신심은 근본진여와 불.법.승 삼보를 굳게 믿는 것이 된다. 이같은 신심을 성취하겠다는 굳건한 발심이 비롯되면, 〈대승기신론〉은 오행(五行)의 실천수행을 강조하고 또한 해행발심(解行發心), 증발심(證發心) 등의 수행을 강조한다. 이 수행에서는 수행자의 내훈(內熏)과 불보살의 외훈(外熏)등 정법훈습(淨法熏習)이 일어나 번뇌가 차단되어가는 것이다.
오행(五行)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지관(止觀)등 다섯 가지의 실천수행을 강조하는 것이고, 해행발심(解行發心)에서는 육바라밀의 실천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오행과 육바라밀은 동일한 것으로 선정과 지혜의 수행을 지관(止觀) 수행으로 하나로 묶어 수행하는 것이다. 흔히들 수행하면 선(禪)수행 하나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수행은 오행(五行)과 육바라밀 중 하나에 불과하고, 〈대승기신론〉에서는 사신(四信)과 더불어 십선(十善)의 실천, 육바라밀, 오행의 실천수행으로 부처가 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전종식/대승기신론연구회 회장
[불교신문 2045호/ 7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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