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것은 밝고 맑은 것이니

2009. 1. 2. 14:2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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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구경 독신품(篤信品) 제(2) 어리석은 이 하늘에 날 행 닦지 않고 또한 보시를 칭찬하지도 않네. 믿고 보시하여 선을 돕는 사람은 이로써 피안(彼岸)에 이르게 되리라. ------------------------------------------------- 어리석음이란 무명을 말함이요. 무명이란 앞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12연기에 대한 무지 오온 육입 내지 18계에 대한 무지라고 합니다.

    http://cafe.daum.net/jungjin37/64GS/9(참고)

    선한 것은 밝고 맑은 것이니 위로 상승하고 어둡고 탁한 맺힌 것은 자연히 아래로 하강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지혜로운 선행은 자연히 천상으로 승천하고 어둡고 어리 석은 악행은 자연히 하계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보내서 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지혜로운 선행이거나 어리석은 불선업에 의해 맺히고 풀려서 갈곳을 가는 것입니다. 천신이나 다른 것에 의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외도신자가 시골 농부 집에서 식사를 대접 받고 식사를 맛이게 잘 먹고 난 뒤 인사를 하는데 음식을 차려준 농부에게는 하지 않고 “하나님 오늘 저에게 좋은 음식을 내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하고 기도를 하드랍니다. 농부가 가만히 듣고 귀가 차더랍니다. 일 년 내 내 피땀 흘려 농사 진 곡식으로 정성 드려 식사대접 했더니 하나님께 감사하다니,,, 농부는 자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줄 알았 는데 엉뚱한 것에 감사 하다고 하니 화가 나더랍니다. 여름에 가물어서 비가오기를 하늘을 쳐다보며 바랬지만 그때 비는 오지 않았고 어느 때는 폭우가 내려 논밭을 쓸고 갈 적에 비가 그치길 원했지만 결국 곡식을 다 쓸고 가 한해 농사를 망친 적이 있지 않은가. 농부는 그냥 사계의 이치에 따라 자기 노력 것 안 되면 안 되는 되로 되면 되는 되로 지수화풍 자연의 이치를 믿고 열심히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곡식 한 톨 한 톨은 농부의 일 년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닌가? 농부는 그만 그 외도의 어리석은 행동에 화가 나고 괘심하여 당장 내 쫓아 버렸답니다. 그 어리석은 외도는 내 쫓겼다고 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 같군요. 하ㅎㅎ~ 믿음에도 두 가지의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굳건한 것도 중 요합니다만 그 믿음이 지혜에 의한 믿음인지 어리석음에 의한 믿음인지를 깊이 사유하고 궁구해서 믿어야 그 믿음을 올바르고 굳건한 믿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기꾼의 번지러하고 달콤한 말을 믿는 어리석은 자는 결국 사기를 당할 것입니다. 사기를 당하고 당한 줄 알고 후회하는 자는 그나마 나은 자입니다. 속고도 속고 있는 줄 모르는 자는 구제할 방법이 없는 자들입니다.
  • http://cafe.daum.net/jungjin37/64WA/54<--성서의 기원 참고 그러나 선지식을 믿고 선을 위해 보시하고 선을 돕는 자는 그 선보로써 상락아정의 피안에 이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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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소의 차거움 성재 서상민 찬겨울이라서 추운 것은 아니다. 춥다고해서 멈춤되는 것도 아니다. 냉소는 대상을 바라보는 쌀쌀한 비웃음이고 무관심은 삶을 멈춤하게 하는 시계바늘이지만, 얼음 속의 투명함이 인생살이의 맑음이고 얼음 밑의 흐름이 하루살이의 밝음이다. 꽁꽁얼은 겨울의 시간표에도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것들이 형제의 우애이고 친구의 우정이고 애정의 사랑이다. 냉소의 차거움이 고독 속으로 들어가는 외길이 되기도 한다. 저절로 흐르는 인생살이라고 할지라도 때로는 자신의 삶에 악연이 등장할 즈음에 상대적으로 갖추고 있야할 필요사항이 냉소의 차거움과 무관심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게 되고 고독 속에서의 깨끗한 맑음이 시인이 되는 해바라기의 씨앗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